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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츤데레 Sep 02. 2018

꼰대가 되기 싫은 자의 몸부림

여기 꼰대 추가요, 를 피하기 위한 고민

S : 저 화방 알바비 뜯긴 것 같아요.. 어제 계산해봤더니 조금 비더라고요.

    물어보니깐 특강 타임에만 70%로 적용된 거라고 하더라고요. 관례래요..


나 : 음 그래도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노동청에 말하거나 좀 더 따져 봐도 될 것 같아.


S : 근데 저 거기 대우도 괜찮고 해서 계속 일 하고 싶어요. 그럼 더 따지면 좀 그렇겠죠??


나 : 그것도 그러네. 크게 돈 차이 나지 않으면 참아야겠다.


S : 휴... 저 원래 불의 같은 거 잘 못 참는데, 너무 답답해요.


나 : 앞으론 더 그럴 거야. 살다 보면 그렇게 되더라. 나도 잘 못 참았는데 이젠 잘 참아 ^^..



지난주 교회에서 있었던 대화이다. 미대생인 S는 알바로 화방에서 일하는데, 특강에 대해서 제대로 정산받지 못했던 것이다. 나름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이루어진 조언이자 대화였고, 마지막에는 S가 빵 터지면서 종료된 상황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그녀의 씁쓰름함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다들 웃어넘겼다. 모두들 그렇기 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집에 돌아가는 길의 내 마음은 다소 무거웠던 것 같다.


내가 뱉은 말들을 돌이켜보니 상당한 농도의 꼰대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나의 삶을 돌이켜보면 '꼰대에 대한 투쟁'이었던 것 같다.


다들 그냥 넘어가고는 했던 꼰대들의 발언들에 한 번씩 태클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무조건 어떤 편이 좋다고 말하면 아닌 경우도 있다고 말했고, 어떤 행위를 강요하면 일부러 안 하기도 했다. 종종 은근히 비꼬기도 했다. 꼰대가 '나 어릴 땐 안 그랬는데..'로 시작하는 연설을 퍼부으면, 나는 '음 지금은 21세기인데 신석기시대랑 비교를 하시면..'라는 식으로 대답하곤 했다. 꼰대 스스로가 꼰대임을 자각하기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러한 상황마다 다 같이 웃으면서 넘어가기도 하고, 꼰대에게 혼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나이를 먹어 갔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에는 꼰대에 점차 적응했다. 그들의 말이 항상 옳지 않은 것은 알고 있지만, 굳이 토를 달면 피곤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나는 침묵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속으로는 그들이 틀렸다고 외치고 있었지만, 표현을 하지 않고 삼키곤 했다.


그 공간에 있던 꼰대들은 날 죽이지는 못했고, 나는 더 강해졌다. 니체의 말처럼.


'언어가 생각을 규정한다'는 말이 있다. 사회언어학에서 많이 논의되는 이 가설은 내가 항상 공감하고 믿는 말이다. 우리는 우리가 말하는 대로 생각하게 되어있고, 단어나 문장이 표현하는 그 이상을 잘 생각하지 못한다. 무지개가 일곱 가지 색깔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일 것이다. 굳이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꼰대를 대함에 있어서 그냥 넘어가 버릇했더니 나도 조금은 바뀐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조용한 거절은 어떻게 보면 담담한 수긍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무의식 중에 꼰대들도 나도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에는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었다. '꼰대들이 항상 맞는 건 아니지만, 뭐 꼭 틀린 것도 아니지.'에서 나아가 '사회라는 부조리한 곳에서 살게 되면 저런 인식이 맞을 때가 많아.' 정도로 바뀐 것 같다.


스스로를 돌이켜 보니, 나조차 꼰대가 된 것 같아서 무서웠다. 그러던 차에 내가 S에게 저런 식의 말을 하게 된 일이 생긴 것이다. 훈계가 난무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스스로를 객관화해서 바라보니 꼰대의 싹이 나에게서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S에게 미안해졌고,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내 주변에서 자라나는 꼰대 새싹들을 많이 본다. 자신이 조금 더 먼저 경험해봤다는 이유가 일종의 진리인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남녀노소에 관계없다. 1년 늦게 들어온 회사 후배를 보며 본인이 신입일 때는 그러지 않았다며 혀를 차는 사람도 있고,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고민하는 사람에게 하나의 목표가 진리인양 떠드는 사람도 있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싫어하던 꼰대는 기성 꼰대가 늙어감에 따라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꼰대의 대물림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심각함을 인지하더라도 우리는 바뀌지 않는다.


상대를 위한다는 마음에서 최대한 조언해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고, 그러한 조언의 근거는 본인의 경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최대한 꼰대의 기운을 제거하고 선배의 느낌을 풍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1. 짧은 조언

어머니가 예전부터 나에게 해주시던 말씀이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입을 닫고 지갑을 여는 게 좋다는 것이다. 그냥 웃고 넘어갔던 이 말은 요즘 부쩍 마음에 와 닿는다. 상대가 나보다 조금 경험이 부족하다고 해서 상대는 바보가 아니다. 그리고 결국 선택은 상대의 몫이다.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폭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요즘 드는 생각은 최대한 짧게 정리한 내 의견을 가볍게 정리하고 밥이나 한 번 사주자는 것이다. 상대를 드론처럼 조종하려고 하기보다는 그저 응원해주는 것이 낫다고 믿기 때문이다.


2. 빠른 수긍

얼마 전 <라디오스타> 재방송을 보며 든 생각이다. 그 방송에는 작사가 김이나와 가수 김흥국이 나왔다. 딩크족이었던 김이나는 그녀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김흥국은 "그래서 우리나라가 저출산인 것"이라고 말했다. 싸해질 수도 있는 분위기에 김이나는 차분하게 본인의 의견을 피력했고, 이를 이해한 김흥국은 바로 부럽다고 태세 전환을 했다. 그러한 그의 모습에 모두가 웃으면서 다음 꼭지로 넘어갔던 기억이 난다.


이 상황에서 보면 김흥국의 태도는 모든 꼰대를 대변한다. 개인의 선택이라고 볼 수 있는 출산을 통념이라는 잣대로 재단하여 비난하는 것이다. 김흥국은 김이나에게뿐만이 아니라 방송을 본 사람들과 네티즌들에게도 욕을 먹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상대의 의견을 듣고 난 뒤에는 빠르게 수긍했다. 자신만이 옳다는 아집이 없는 그의 태도가 그를 꼰대가 아닌 재미있는 어른으로 만든 것이다.


3. 웃음

'사람은 자고로 유쾌해야 한다.'는 J의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입장을 조금만 바꿔 생각해보면 조언을 빙자한 꼰대질을 당하는 사람은 얼마나 괴롭겠는가. 그러니 어차피 벌어질 일이라면 조금이나마 위트 있고 유머러스하게 하는 편이 좋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김흥국의 예시가 여기서도 나름 적절할 것 같다. 웃음을 띄고 있는 대화는 언제나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진정으로 상대를 위한다면 부담은 줄이고 재미를 늘리는 편이 낫다.




지금도 꾸준하게 나이를 먹어가며 다채로운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이러한 연륜이 나를 성장시켜주겠지만, 꼰대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현격하게 높여줄 것이다. 그래서 항상 긴장하고 살려고 한다. 나 자신이 '내가 혐오하는 무언가'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견디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교회에 가서 S를 만난다. 커피라도 한 잔 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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