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김가지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츤데레 Aug 31. 2018

생일을 싫어했던 이유

그저 감사하려고 합니다, 이젠

9월 1일은 내 생일이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그 날이 딱히 좋지는 않다. 도리어 싫을 때도 꽤나 있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미친 듯이 혐오한다기보다도 약간은 꺼림칙하고 불편하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을 부정한다거나, 우울증적인 자기비하를 하는 것이 아니다. 뭔가 설명하기는 다소 애매한 불편함을 가지고 꽤나 오래 살아왔을 뿐이다. 지금까지 정확히 왜인지는 아직도 몰랐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생일이라는 날이 가진 행복에 대한 강박이 그 원인인 것만 같다.




모든 나라가 그렇겠지만, 우리나라는 행복할 것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있다. 각자의 행복이나 재미가 다른 것인데, 획일화된 기준으로 강요한다. 혼자 있는 것이 편한 사람한테 "왜 연애를 안 하냐?"라고 캐묻기도 하고, 여행보다는 집이 좋은 사람을 '황금연휴에 아무 곳에도 가지 않는 바보' 취급하기도 한다. 데이트 비용이나 여행 자금을 내줄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이러한 행복에 대한 압박이나 강요를 우리는 일종의 오지랖으로 부른다.


생일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원래 생일에 대해 크게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 편이다. 생일과 관련된 일정이 100이라면, 50은 가족과 보내고 나머지는 친구들과 보낸다. 여자 친구가 있다면 양측의 분량을 그녀에게 조금 더 할애해왔다. 이렇게 내 생일은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가 열어주던 생일파티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원래 별 생각이 없던 나는, 그렇게 쉽게 적응을 마쳤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는 이런 나의 모습이 불행으로 비치는 것 같다. 생일에 본가에 박혀있거나, 자취방에서 쉬고 있으면 행복에서 도피하는 히키코모리처럼 보이나 보다. 그래서 뭔가 계속 물어보기도 하고, 필요 이상으로 챙겨주려고도 하고, 친분 이상으로 날 건드리기도 했다. 그러한 오지랖이 나는 불편했다.


부모님께 앞으로 더더욱 감사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생일은 탄생을 기념하기에 의미 있는 날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냥 하루하루가 다 똑같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며 산다. 그렇기 때문에 생일이라고 해서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는 않는 편이다. 그렇지만 주변에서 계속 이러니 마음이 불편해지고, 나도 일종의 강박을 가지게 되었다. 생일에 꼭 무언가를 해야 될 것 같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 마치 어떤 특별한 이벤트가 있어야 그걸 통과의례 삼아 행복한 생일을 보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추가적으로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기 싫은 것도 있다. 정작 나는 별 생각이 없는데, 생일이라는 날이 되면 상대는 내가 뭘 기대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싫었다. 서로에게 부담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지랖 때문에 스스로 행복에 대한 압박감을 받으면서도 상대에게도 일정 수준 이상의 부담을 주는 날, 나에게는 그게 생일이었다. 가족끼리는 한없이 감사하고 행복한 날이었지만, 집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저러한 압박이 날 옥죄었다.


그러다 보니 나 스스로 힘들었다. 주목 아닌 주목을 받으면서 뭔가를 해야 하고, 동시에 상대에게 부담을 주는 그 날이 불편했다.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과 동시에 저런 부정적인 감정이 드는 것도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이 같은 감정이 극한에 치달았던 작년 생일에는 연차를 쓰고 원룸 안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잤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냥 고마움으로 받아들여보려고 한다. 


나의 도피로 인해 작년 9월 1일에 열린 회사 동기 회식에서는 '나 없는 내 생일 파티'가 열렸다고 한다. 다들 적당히 웃어넘겼지만, 몇몇은 의아하기도 했을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어이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생일을 축하한다는 짧은 동영상을 찍어서 나에게 보내주었다. 조금 늦게 그 영상을 확인한 나는 감동과 동시에 멍했다. 부담 준다는 기분을 피하고 싶었던 나의 행위는 그들에게 어쩌면 실망을 안겼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다가 더 큰 실수를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나는 친구라는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보고 있다. 한 번도 실수하지 않고 완전무결함을 지향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왔다. 그렇지만 살다 보니 친구는 서로에 대한 부담을 적절히 주고받으면서 고마움을 느끼고, 그렇게 돈독해지는 것임을 알아가고 있다. 그래서 나를 챙겨주는 이들을 부담스러워만 하지 말고, 감사해보려고 한다. 그 부담을 책임감으로 인식해서 앞으로 나도 그들을 좀 더 신경 쓰면 되는 것이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유명한 표현처럼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길들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앞으로도 더 감사할 것 같다. 부모님께는 항상 감사했던 것의 두 배로 감사하고, 친구들에게는 부담을 핑계로 피했던 것을 그만하고자 한다. 평소에도 나를 챙겨주는 이들이 9월 1일이라는 하루에는 더 세심하게 나를 신경 써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족과 친구(단순히 동갑뿐만이 아니라 나와 친밀한 모든 사람들) 이외의 사람, 즉 처음부터 말했던 오지랖을 부리며 행복을 강요하는 사람들은 그냥 무시하려고 한다. 최대한 흘려듣고, 그저 나만의 생일을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할 것이다. 왁자지껄할 필요는 없다. 그저 마음이 함께면 된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올해부터 시도해보려는 다짐을 담아 이렇게 글을 써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 사람에게 계기가 되어 준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