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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츤데레 Sep 08. 2018

평범하게 사는 것이 제일 어렵다

점점 느끼고 있습니다.

"나는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어. 돈도 명예도 그다지 필요는 없는 것 같아. 마음에 맞는 남자랑 결혼해서 애들 두 명 정도 낳고 적당하게 내 할 일 하면서 살림도 하고, 그러고 싶어."


고등학교에 다닐 때 한 친구에게 들은 말이다. 현실의 냉혹함을 잘 모르고 패기에 부풀어 있을 나이여서 그런지, 모두의 꿈이 화려했던 그 시절에 말이다. 대통령부터 교사, 판사, 의사, 약사 등등의 휘황찬란한 타이틀이 난무했던 시절에 저런 꿈을 꾸는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녀의 말에 코웃음을 쳤고, '호랑이를 그리려고 해야 고양이라도 그리지~'라면서 적당히 놀렸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한 살씩 꾸준하게 나이를 먹어갈수록 드는 생각은 그러한 평범함이 굉장히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녀의 꿈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큰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서울에 집을 사고 애를 키우는 것이
요즘 얼마나 과한 욕심인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N포세대라는 키워드가 더 이상은 화제가 아닌 사회에 대한 비판을 하고자 함도 아니다. 내가 지금부터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냥 인간적으로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다는 말이다. 내가 살고 싶은 평범한 삶은 큰 곡절이 없는 삶이다. 하지만 그러한 곡절들은 우리를 쉽게 놓아주지 않기 때문에 평범함이 어려운 것이다. 나의 20대를 수놓았던 수많은 곡절들은 크게 세 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시험

나는 대개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생각보다 큰 시험에는 약했다. 대학교 시절의 학점은 내내 괜찮았지만, 한 번에 끝나는 시험에는 나의 능력을 100% 발휘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 대표적인 것이 수능이다. 나는 수능을 세 번 봤다. 세 번째는 아니 보았으면 좋았을 것이다.(feat. 피천득 선생님...) 그만큼 관련한 기억이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수능에는 나태했고, 두 번째 수능은 물수능이라 표준점수가 떨어졌으며, 세 번째 수능은 뭐.. 할 말이 없는 수준이다. 내가 자초한 일이기에 내가 겪는 고통은 괜찮았다. 그렇지만 내 주변이 얻는 부가적인 고통, 특히 어머니 느꼈을 시련은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아직도 시험 한 방으로 모든 걸 결정짓는 상황은 나에게는 다소 버겁다.



#연애

가장 할 이야기가 많은 부분이다. 많은 여자를 만났다는 말을 하고자 함이 아니다. 내가 사람과 관련된 일에 유독 마음을 쏟기에, 인연과 관련된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나는 인연에는 끝을 정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대다수이기에 우리가 뭘 정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내가 앞으로 안 볼 사람이란 없다고 믿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절연했던 친구나 나를 인간 이하로 생각했던 헤어진 여자 친구에게 우연히 연락이 오는 것도 인연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헤어짐이 있어야 한다면 아름답고 깔끔했으면 한다. 그 어떤 사람이건 이별이 '영원한 작별'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만큼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인연인 것 같다.


그렇지만 '헤어짐'이라는 명사와 '아름다운'이라는 형용사는 제대로 호응할 수가 없다. 모순 형용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래서 항상 좋은 끝을 기도했지만, 현실은 냉담했다. 곧 유학을 떠나니 어차피 헤어질 거 지금부터 정리하자는 사람, 서로 처음 겪어본 권태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페이드 아웃했던 사람, 나를 속을 알 수 없는 놈이라고 말하며 애정을 갈구하다가 떠나간 사람도 있었다. 남녀관계가 함의하는 몇몇 불합리함에 대한 문제제기를 짜증내 하면서 나를 지운 사람도 있었고, 기특했던 나의 노력이나 집념(?)에 지쳐서 배려심이 없다고 말하던 사람 또한 있었다. 나를 사랑했던 이유들은 시간이 지나면 나를 싫어할 수 있는 이유가 되기 마련이었다.


이렇게 다양한 사유의 이별이었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 끝은 아름답지 않았다는 것이다. 욕설이나 폭력이 난무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서로의 자존감을 많이도 갉아먹었다. 법정 스님의 말처럼 싸우되 막말은 하지 말아야 하는데, 어떻게든 서로를 할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많이 아팠다. 아프니까 청춘이고, 아플수록 성장한다고들 한다. 그렇지만 아직도 이별이 익숙하지 못하고, 아픔의 강도는 오히려 강해지는 것 같아서 미묘한 자괴감이 든다.



#사회생활

나는 모든 걸 가지고 싶었다. 적당한 연봉도, 나의 꿈에 부합하고 적성에 맞는 업무도, 꿀 같은 워라밸도, 회사가 가지고 있는 화려한 네임밸류도, 그리고 해당 산업이 앞으로도 꾸준히 성장하는 가능성이 있는지도. 이러한 모든 것을 가지고 싶었기에, 나름의 밸런스 조절을 해서 입사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1년 4개월 뒤에 나는 퇴사했다.


사회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일이나 사람이 힘들다는 투정을 부리고 싶지는 않다. 그건 어디나 비슷한 것일 테니 말이다. 내가 힘들었던 이유는 고됨을 합리화해줄 만한 포인트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에 대한 애정이 넘쳤지만 그곳의 장단점을 잘 인지하고 있던 나는 열심히 합리화 포인트를 찾았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만의 포인트는 찾기 어려웠고, 힘듦을 삼키면서 그곳에 버틸 이유가 없었다. 안티가 되어버린 팬이 제일 무서운 법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퇴사라는 결정은 정말 심플하고 빠르게 내려졌던 것 같다.


루피는 아니지만 꿈을 따라가 보려고 합니다.


그곳에서 내가 배운 점은 '하나를 얻고자 하면 반드시 하나 혹은 그 이상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위에서 언급했던 여러 조건 중 딱 하나만 좇아보려고 한다. 바로 나의 꿈이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겠다는 꿈 하나만 따라가서 일을 고를 것이다. 이번에는 직장이 아니라 일을 골라보고자 한다.




요즘도 나의 삶은 주변에 대비하여 참 다이내믹하다. 혹자는 너보다 더 힘들고 고생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무슨 소리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유병재 씨가 언급한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힘들다고 내가 힘들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삶은 서로의 상호작용을 통해 운영될지도 모르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개인의 체감은 철저하게 독립적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평범한 삶을 꿈꾸고 있지만, 항상 별 일이 다 일어난다. 어제까지 좋아하던 사람과 서로의 연을 끊어버릴 듯 싸우기도 하고, 믿고 있던 나의 실력에 배신당해 철저히 무력감을 느끼기도 하며, 의지하던 사람이 나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갈기는 일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좀 평온했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버텨갈 수 있을까, 하면서 말이다.


인생은 원래 고(苦)란다.


이렇게 나의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나도 120% 동의하는 바이다. 어차피 고통스러운 삶인데 이걸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살이나 하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고통 사이사이에 자리한 소소한 행복을 섬세하게 느끼면서 크게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했던 소확행과 어느 정도는 유사한 논지이다. 다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소소한 기분 좋은 일들을 조금은 과하게 확대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나의 시간에 맞춰서 버스나 지하철이 바로 온다거나, 을밀대에 줄을 서지 않고 들어가서 냉면 한 그릇을 비워낼 수 있는 것에 기뻐하자는 것이다. 요즘 내가 그렇게 살고 있다. 고통을 피하고자 만들어낸 내 삶의 레시피인 것이다. 쉽지는 않지만 노력을 하면 생각도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뀐다. 맨날 염세적이었던 내가 조금은 긍정적으로 변한 것도 이러한 노력 덕분일 것이다.


12년 전부터 평범함이라는 소중함을 이해하고 있었던 그 친구에게 박수를 보낸다. 동시에 그녀의 꿈을 놀렸던 그 당시의 나에게 딱밤도 보낸다. 그래서 나도 지금부터라도 그 소중함을 이해해보려고 한다. '평범함'이라는 호랑이를 그리기 위해서 노력하겠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 삶의 틈틈이 자리한 티끌들을 꾸준히 모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 보면 태산까지는 아니겠지만 동산 정도의 평범한 행복 속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고(苦)라는 인생을 'GO'로 바꿔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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