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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렌터카로 벨기에 가기

졸음 운전(?)

by 맥씨



오래오래 전 일이다.

영국 히드로 공항에서 렌터카를 했다. 남편과 둘이었다.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이번 여행의 목적인 볼일을 본 다음 영국 일부와 파리 관광을 잠깐 하고 다시 히드로공항에서 귀국하는 3일의 짧은 일정이었다.


영국에서 차를 렌트했으니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잖은가.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는 차를 타보기가 일본에 이어 두 번째이긴 했지만 역시 낯설었다.

정작 운전을 하는 남편은 바로 적응한 것 같은데 옆에서 지도를 읽어주는 내가 적응하기가 더 어려웠다. 운전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왼쪽에 앉아있는 것도 어쩐지 불편하고 마주 오는 차가 오른쪽을 스쳐가는 것도 영 어색했다.


영국 일정을 마치고 프랑스로 가기 위해 차에 탑승한 채 기차에 실려 도버해협을 건넜다.

도버해협을 건넌 순간 다시 운전대가 왼쪽에 있는 차가 다니는 나라 프랑스가 되었다. 운전대가 오른쪽에 달린 차를 끌고서!



왼쪽 도로형 차를 타고 오른쪽 도로에서 하는 운전이 쉽지만은 않아 딴생각할 겨를이 없을 것 같건만 남편은 한술을 더 뜬다.

남편이 원래 좀 즉흥적이다. 프랑스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벨기에 수도 브뤼셀로 가잔다. 그러면 파리를 포기해야 했다. 파리는 꼭 가보고 싶었지만 통 크게 오케이 했다. 그런데 선견지명이었다고나 할까. 십 년 후에 우리는 독일에서 2년간 살게 되었고 그때 프랑스 파리는 여러 번 갈 기회가 생겼지만 벨기에는 기회가 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도버해협에서 프랑스를 거쳐 벨기에까지 가는 도로는 동서로 거의 일직선이었던 것 같다. 들과 언덕을 스쳐가는 긴 길이었다. 프랑스와 벨기에 국경 즈음에서 치림상태가 정원스타일에서 밀림스타일로 확 달라지는 것이 신기한 것 말고는 지루했던 기억이 난다.



벨기에 수도 브뤼셀은 동화 속 같았다. 오래된 성에 둘러싸인 광장은 칙칙하면서도 푸른 하늘과 이루는 대조가 멋졌다. 오줌 싸는 소년 동상과 초콜릿가게와 와플가게가 즐비한 거리는 예쁨이 넘쳐났다.



그리고 음식이 맛있었는데 특히 맥주가 너무나 맛있었다. 술을 못하는 내겐 신기한 경험.

점심식사를 하며 남편만 맥주 한잔을 시켰다. 맛보라는 권유에 한 모금 살짝 넘겼는데…

오~~ 나도 술을 마실 줄 알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맛있었다. 결국 내가 반 잔이나 뺏아먹었다.

이래서 ’ 한입만‘이 무서운가.

이 일이 있기 얼마 전 독일에 출장 가서 동료들 성화에 못 이겨 맛본 맥주는 쓸개를 핥으면 이런 맛이겠지 싶을 정도로 쓰기만 했었다.(독일맥주 미안).


브뤼셀에서 남편 걸 빼앗아 마신 반잔의 맥주가 내 생애 처음이자 현재까지 마지막이다. 그 일이 있은 후 이젠 맥주를 마시게 된 줄 알고 시도해 보았지만 역시나 목에서 넘기기를 거부했다.


어둑어둑 해졌다. 초콜릿 가게 안 초콜릿 분수가 불빛에 반짝이는 거리를 떠나 런던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도버해협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거의 일직선인 지루한 길을 다섯 시간가량 운전해야 한다. 어두워지자 불빛이라곤 우리 차의 헤드라이트가 전부일 때가 많았다. 남편은 시야에 방해된다면서 차 안의 불빛을 최소로 하는 버릇이 있다. 가로등도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시골길을 달릴 때면 바로 옆에 있는 남편의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두운 도로를 마냥 달리니 졸음이 밀려왔다.

혼자 졸기 미안해서 꾹꾹 참아보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리곤 몇 초 또는 몇 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왼쪽으로 차문의 진동이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운전 중 졸았다는 생각에 화들짝 놀라 깼다. 말로만 듣던 졸음운전! 악. 모골이 송연해지면서 급박한 눈길로 도로를 보았다. 아직 사고는 나지 않았다! 급히 자세를 고쳐 잡자 내가 앉은 곳이 왼쪽이지만 운전대 앞이 아니란 걸 인지한 순간. 가슴을 쓸어내리며 오른쪽 옆을 보았다. 깜깜해서 얼굴은 안 보였지만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참지 말고 자.”

“지금 운전하는 것 맞지?” 뇌의 일부가 아직 잠에 취해있는지 정신이 덜 돌아온 질문을 했다.

“응, 자.“


그 후로도 또 졸렸으니 참 어이가 없다. ㅎㅎ

아마도 생전 처음 마신 맥주 때문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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