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약한 건물주 미스터 야스민
독일 건물엔 웬만해선 에어컨이 없다. 남편이 뷰에 반해 들어간 다운타운집도 에어컨이 없었다. 날이 점점 더워지고 있었다. 선풍기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저녁에도 창을 열어두어야만 할 정도로 더운 날이었다. 창을 늦게까지 열어두자 요란한 음악소리가 귀를 때렸다. 밤새 그칠 줄 모르는 신나도 넘 신난 음악… 일찍 창을 닫았을 땐 몰랐었다. 독일 창호가 기밀성이 좋다는 거 완전 인정이다.
알고 보니 일층에 자리한 가게는 살사댄스바였던 것. 독어도 모르고 간판이 요란하지 않아 눈치를 못 챘었다. 쿵쿵 울리는 댄스뮤직은 평일에는 저녁시간에 주말이면 밤을 새며 금요일밤부터 일요일 오후까지 논스톱이었다. 한번 음악소리를 인지하자 이제는 창을 닫아도 소리가 들렸다. 머니머니해도 날씨가 더워 창을 닫을 수도 없었다.
소음을 견딜 수 없어 남편을 설득하고 결국 이사하기로 했다. 이사 들어간지 3개월 만이었다. 건물주의 이름이 지금도 기억난다. 미스터 야스민. 스쿠루지를 연상시키는 고약한 노인네였다. 소음에 대해 미리 고지하지 않았으니 계약파기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물을 수 없다고 주장했으나 펄쩍 뛰었다. 보증금을 포기하고 이사하기로 했다.
이번엔 남편을 떼어두고 혼자 집을 보러 다녔다. 대여섯 집을 본 후 다행히 맘에 드는 집을 만났다. 깔끔한 4층 빌라건물 펜트하우스가 주방시설이 완벽한 것은 물론, 가구며 살림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었다. 개별 주차 공간도 있었다. 조용한 동네였고 교통도 편했다. 남편은 걸어서 출퇴근이 가능했다. 이런 보물이 나타나다니! 한눈에 내 집 같았다. 빌라 건물 중앙엔 최소 백 살은 넘어 보이는 우람한 체리 나무가 운치까지 더하고 있었다. (비스바덴은 체리 산지로도 유명하다. 그럼에도 체리는 역시 비쌌던 기억이 난다. ) 4층인 그 집 베란다와 체리나무의 윗가지가 높이가 같았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계약하고 싶었지만 알고 보니 이미 누군가가 찜을 한 집이었다.
때로는 인생사가 재미있게 풀리기도 한다. 살다 보면 기적 같은 일도 가끔 일어난다. 그래서 숨통이 트이곤 했다.
먼저 찜을 해두고 고민 중인 이도 같은 중개회사를 끼고 있었다. 연세 지긋한 할머니인데 요양차 비스바덴에 집을 구하는 중이었다. 휠체어에 의지할 때가 많다고 했다. 그런데 이 체리나무집은 복층구조였기에 고민이 될 만도 했다.
나를 담당한 중개인에게 기술을 부려볼 것을 요청했다. 내가 사는 다운타운 펜트하우스가 긴 복도식의 집이라 그분께 소개해 봄직하지 않냐고. 다행히 중개인이 한 번에 말을 착 알아 들었다.
결국 그 할머니가 다운타운 집을 완전 맘에 들어해서 서로 집을 바꾸는 양 간단히 해결되어 버렸다. 덕분에 우리는 계약을 일찍 파기하는데 따르는 페널티 없이 보증금 전액을 받아 나올 수 있었다.
체리나무집은 풀 퍼니쉬드였다. 가구가 갖추어져 있는 집이 주는 안정감이 말할 수 없이 좋았다. 사람 사는 느낌이 제대로 드는 아름다운 집이었다. 지금도 남편은 그 집 이야기를 가끔 한다. 그때 참 좋았다고. 그러게 마누라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단 옛말이 헛말이 아닌 게다.ㅎㅎ 체리나무가지가 드리운 베란다에서 저녁식사를 할 때면 세상 부러울 게 없는 그런 기분이 되곤 했었다. 체리나무집도 역시 에어컨이 없었다. 그러나 한 번도 아쉽지 않았다. 우람한 체리나무 덕에 여름엔 시원했고 훌륭한 단열 덕에 겨울엔 따듯했다.
이쯤에서 궁금하지 않은가? 그 살사댄스바와 할머니!
몇 주 후 근처를 지날 때 보니 가게가 영업을 접고 폐쇄된 게 보였다.
중개인을 통해 내용을 들어보기로 했다.
댄스바가 있는 다운타운집으로 들어간 그 할머니는 기가 막히게도 은퇴한 변호사였다. 일반 가정집과 그런 업소가 공존하는 것 자체가 (당연하게도) 불법이었던 것이다. 독일어를 못하는 이방인에겐 잡아떼는 걸로 넘어가려 했던 건물주 미스터 야스민. 그 할머니에겐 억지가 안통할 밖에. 결국 댄스바는 영업을 접고 나가야 했다. 다만 미스터 야스민이 어떤 법적 조치를 받았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전직 변호사 할머니, 여러모로 당케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