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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셋집 구하기 1

다운타운집 뷰맛집

by 맥씨


우리가 강아지들과 함께 첫 해외생활을 하게 된 곳은 독일의 비스바덴이었다. 비스바덴(Wiesbaden)은 작은 휴양도시로 프랑크푸르트에서 꽤 가깝다. 바덴(baden)은 온천이란 뜻으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온천물이 좋아서 은퇴한 사람들이 선호하는 곳으로 조용하고 고풍스러웠다. 온천으로 말하면 부근에 무려 바덴바덴이란 도시도 있고 고풍스럽기로 하면 가까이에 작은 도시 드레스덴이 있다. 드레스덴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무슨 행운이었던지 모든 폭격과 공습을 피해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다. 서로 멀지 않은 비스바덴도 도시 중심은 고풍스러움이 꽤 남아 있는 곳이었다.


비스바덴은 풍부한 온천수 덕분에 온천목욕탕이 도시 곳곳에 흔했다. 그런데 말을 들으니 대부분 남녀가 하까닥 벗고 함께 목욕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부끄러워 갈 수가 있나. 혼탕이 아닌 곳도 있다곤 했는데 그 온천 좋은 동네에서 살면서 한 번도 온천엘 가보지 못했다.




독일에서 셋집을 구하는데 한국과 다른 점이 많아 당황스러울 때도 신기할 때도 많았다. 계약기간이 5년이란 점이 인상적이었고 당황스러웠던 것은 주방에 싱크대고 뭐고 아무것도 없이 세를 놓는 집이 많다는 것이었다. 수도를 연결할 파이프와 하수도관이 벽과 바닥에 삐져나온 상태로 계약을 하고 모든 걸 내가 구비하고 설치해야 했다. 그리고 이사 나갈 때는 또 몽땅 뜯어서 가지고 가는 것. 그게 원래 기본이란다. 세월이 변해 다 갖추어진 집을 선호하는 사람이 늘어나자 갖추어 놓고 세를 내놓는 집도 있다고는 했다.


독일의 집안 구조는, 아니지 독일 전체가 그런지는 모르겠다. 비스바덴 이야기다. 꽤 모던하다. 각이 딱딱 맞는 게 딱 내 취향이긴 했다.


그런데 남편과 영 의견이 맞질 않았다. 최대한 가성비 있는 집을 구하는 게 나의 목표인 반면, 남편은 무조건 시내 중심에 뷰가 좋은 집을 고집했다. 의견이 달라 보는 집마다 퇴짜를 놓으니 결정이 지연되는 중에 난 한국에 세간 살림을 부치러 가야 했다. 제법 괜찮은 마당 있는 집을 두 곳을 찜을 해주고 떠났으나 개뿔. 남편 지 맘대로 엉뚱한 집을 계약하곤 보증금을 보내란다.


한국에서 계약서를 받아보니 난 본 적이 없는 집이었는데 예산보다 훨씬 비싼 데다 3층 상가 건물의 꼭대기 층으로 주차장도 없어서 길 건너 주차타워에 급하게 웃돈을 내고 주차 스팟을 렌트해야만 하는 곳이었다.


계약을 파기하면 계약금을 날리니 어쩔 수 없이 보증금을 보내고 남편이 홀로 옷가방만 들고 이사를 했다. 나는 한국에서 세간살림을 부치고 다시 독일로 돌아갔다. (대강이와 소강이는 아직 계류기간이 남아 한국에 있었다.)


새 집에 들어서고 한숨만 나왔다. 3층짜리 상가 건물의 삼층 전체를 쓰는 기다란 펜트하우스였다. 역시 반듯반듯 네모지고 모던한데 큰 사무공간을 살림집으로 급히 개조해 세를 내놓은 느낌이었다. 큰 거실이 두 개, 방이 세 개, 욕실은 춤을 춰도 좋을 만큼 컸는데… 여기에서 한숨이… 주방 싱크대는 원룸 스튜디오에서 봄직한 크기였다.


창을 열면 빨간 벽돌로 된 종탑이 있는 교회와 오래된 온천탕과 고풍스런 다운타운 전경이 눈 아래로 펼쳐지는 곳이었다. 남편이 그 뷰에 반해 모든 불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선택한 곳이었다. 고풍스런 동네라 길바닥도 고풍스러웠다. 수백 년 전 돌을 멋내어 깔은 카블스톤 그 길 말이다. 보기엔 예쁜데 장 본걸 잔뜩 실은 카트를 끌고 주차장에서 한블록 떨어진 집으로 가자면 속에서 울분이 올라오곤 했었다. 울퉁불퉁한 길을 덜그럭거리며 카트를 끌다가 양파가 떼구르르 구른 적도 있었으니까.


신청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인터넷은 감감무소식인 상태였다. 인터넷을 쓰려면 집 앞에 있는 카페에 가야만 했다. 거의 매일 카페에 앉아 인터넷을 쓰며 무료한 날을 보내곤 했다. 한 가지 즐거움이라면 주인과 함께 온 개들이 테이블 밑에서 진득하게 기다리는 모습을 보는 것. 그렇게 대강이 소강이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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