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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Nov 18. 2017

수요일마다 장이 열리는 동네

우리의 동네가 궁금했다

 아파트단지엔 수요일마다 장이 선다. 이곳에서 기본적인 농수산물은 물론, 생활을 위한 잡품이나 외식거리까지 웬만한 건 다 구할 수 있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약 2500세대의 구성원 중 가족의 집밥을 책임지는 누군가에겐 수요일 저녁 하루가 부엌에서 벗어날 좋은 기회가 된다. 가격이 파격적으로 싼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저렴하고 대체로 맛도 꽤 좋다. 서로 안부까지 전할 만큼 친한 점포 주인과 주민들도 자주 볼 수 있다.


 꼭 장이 설 때가 아니더라도 아파트를 어슬렁거릴 때마다 참 서민적인 동네라는, 서민이라는 말의 표본이나 어떤 평균치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열아홉 동 똑같이 생긴 건물에 모든 세대가 똑같은 평수를 차지하고 사는 우리 아파트는, 다음과 같은 현실적이면서도 아주 긍정적인 문장의 실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심각한 수도권 주택난 속에서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나와 내 가족의 몸을 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어디냐’는 그런 만족의 모델하우스.


 어느 정도의 불편함이 무엇이냐 하면, 글쎄,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조금씩 다르겠지만, 불편한 교통편과 턱없이 부족한 주차 공간을 꼽을 수 있겠다. 가까운 지하철역까진 배차 간격이 불규칙한 버스를 타고 10여 분을 나가야 한다. 직선거리는 2km 정도 되기 때문에 선선한 저녁에는 걸어도 좋겠지만, 가파른 경사가 두 번이나 이어지는 탓에 올라가는 일은 물론 내려가는 일조차 쉽지 않다. 주차 공간도 비슷한 처지다. 부동산 사이트는 우리 아파트의 가구당 주차공간이 0.43대라고 표기하지만, 그건 뭘 모르고 하는 소리고, 아무래도 0.35대는 되지 않을까 싶다. 밤이 되면 실내외 주차장이 터트리기만을 기다리는 테트리스 블록처럼 자동차로 가득 찬다. 운전을 하는 주민 누구나 주차에 통달하고, 심지어 이런 곳에 이렇게 델 수도 있구나, 그 창의력에 감탄하게 만들어 주니 그것도 순기능이라면 순기능이랄까. 그런 상황임에도 2년 넘게 살면서 접촉사고 난 걸 한 번 보지 못했다.


'내가 있는 곳이 천국'이라는데.


 처음 이 아파트를 보러 왔을 땐, 매주 장이 열린다는 사실에 정감이 갔다. 잊혔다기보단 나는 경험해보지 못한 어떤 정서를 여기 도시의 외곽에서 느껴보겠다는 기대도 했었다. 물론 지금도 수요일 저녁마다 복도에 서면 묘한 기분이 든다. 건너편 길에 축젯날처럼 쭉 늘어선 대형 천막과 거기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보면, 전혀 다른 상황인데 어쩐지 이 풍경과 결이 닿아있는 것 같은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만들어진 적 없으나 이미 생겨나 버린 추억으로 미화되기도 한다. 이윽고 그 분위기에 휩쓸려 만 원 한 장 들고 장터로 내려가는 것이다.


 그러나 수요일은 수요일일 뿐이고, 나란 사람은 사는 동네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부류에 속한다. 지금껏 여러 동네를 전전했고, 그중 가장 오래 산 서울의 한 동네는 ‘고향’이라는 이미지로 나에게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오랜만에 고향 골목을 찾아 추억에 젖어볼까, 여유를 부릴 낭만은 없다. 나는 살았거나 살고 있을 뿐이고, 동네는 그저 동네일뿐이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살면서 느끼는 불편은 살다 보면 참아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뚜렷해지는 흉터 같은 것이라 얼른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이만큼 서민적인 동네를 발굴하겠노라 이곳저곳 일부러 찾아가 보기도 했다. ‘살아보고 싶은 동네’라는 제목의 리스트도 만들어 두었다. 결국, 내가 사는 동네만큼 진입장벽이 낮은 곳은 없다는 현실만 시퍼렇게 날이 돋았지만.



 다시 복도에 선다. 주변에 산이 많아서 그런지 공기가 서늘하고, 노을이 아량을 베풀 땐 그 모습이 퍽 아름다워 일이 분을 그냥 서 있기도 한다. 하지만 똑같이 생긴 아파트가 하늘을 반쯤 가리며 솟아 있기 때문에 나는 하릴없이 똑같이 배당된 다른 이의 공간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저마다 다른 색의 전등을 달고 저마다 다른 벽지로 거실을 꾸민, 화가가 일부러 강조한 피사체 마냥 집안을 돌아다니는 무명의 사람들.


 저 사람들은 어떨까. 이 동네를 어떻게 생각할까. 가능하면 좀 더 오래 살고 싶지만, 불편한 걸 견디지 못하는 성미를 어찌 누를 수 있을까. 가진 것도 없으면서 욕심은 왜 이렇게 많을까. 저 노인과 저 아이와 저 부부는, 나보다 마음이 넉넉하고 사는 곳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일까. 살아보고 싶다는 동네에 살 수 있게 된다 하더라도 내가 그곳에 소속감을 느끼고 ‘나의 동네’라며 가슴에 둘 수 있을까.


 그래서 궁금했다. 나의 동네가 아닌 당신의 동네가. 나는 모르는 우리의 동네가.




글/사진 베르고트

여행 매거진 BRICKS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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