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Dec 16. 2017

동네 한 바퀴만 뛰다 올게요

나는 둥지 같은 곳에 살고 있다

 십 년이 조금 지났을까. 그날은 차가운 일요일 오후였다. 예배는 언제나 지루했기에 끝나기가 무섭게 어떻게든 도망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엄마는 우리가 새로 이사 갈 아파트를 보여주겠노라 했다. 나와 동생은 차에 올라 알 수 없는 동네에 짐처럼 실려 갔다. 비둘기가 살아야 할 것 같은 네모 칸이 켜켜이 쌓인 아파트 단지를 보며 “우리가 저기에 들어가서 산다고? 인간이 어떻게 저런 곳에 살지?” 질문을 쏟아냈다. 우리가 살던 곳도 다 짓기 전엔 저런 모습이었어. 엄마가 슬쩍 웃어 보였다.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궁금증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차가운 회색 시멘트가 덕지덕지 발린 네모난 통에 들어가 밟고 밟히며 같은 형태의 삶을 지속하는 게 우리의 임무이자 인생인 양 살아가는 게 맞는 걸까?


 그리고 난 그 집에 십 년이 넘게 살고 있다.


 그 세월 동안 동네는 많이 변했다. 아무것도 없던 길가에 무언가가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제 사람들은 내가 사는 동네를 ‘중심상가’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중심이 되는 상가들이 즐비해 있다. 호프집, 병원, 프랜차이즈 식당…….


 뭔가 자랑을 해 보려 했는데, 잘 떠오르지가 않는다. 동네에서 시작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돈가스 집, 매일 아침 빵을 굽는 케이크 가게, 두꺼비가 사는 개울물이 흐르는 공원, 가을이면 잘 익은 도토리가 떨어지는 나무들, 집 앞 언덕 위 가로등 불빛, 아마도 반경 20km 이내에서 가장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 우리 집, 나. 아랫집에는 애기가 둘인데 뱃속에 또 아기가 있는 엄마가 살고 있고, 옆집에는 주인만 없으면 미친 듯이 짓는 개가 살고 있다.


 나는 슬리퍼를 신고 중국집을 가거나 내 방 창문에서 바로 보이는 언덕으로 떨어지는 밤을 주우러 가기도 하고, 산과 산 사이를 연결해주는 야트막한 언덕을 따라 (내 기준에) 높은 산을 오르기도 한다. 올봄에는 새벽이면 6Km를 뛰며 명상을 즐긴다는 모 교수님에게 자극을 받아 아침마다 조깅을 했는데 (지금은 하지 않고 있다) 신혼부부와 다양한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이름도 대단한 ‘센트럴 파크’까지 뛰다 걷다를 반복하며 집에 돌아오면 딱 5km를 달리게 된다. 그 사이에 볼 수 있는 수많은 나무, 하늘, 자동차, 어린이들, 학교들에서 받는 인상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생명”이다. 그들은 생명력을 갖고 있다.


 오전 8시 15분 즈음엔 어린이집을 향해 가는 노란 병아리 같은 아이들과 부은 얼굴의 엄마들이 보인다. 그리고 9시가 되기 5분 전이면 등교하는 학생들의 얼굴과 어쩐지 꼭 닮은 것 같은 책가방들이 무리 지어 간다. 분주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산책하는 어르신들,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학생들의 환성 소리, 산에서 내려오는 완전무장 아주머니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나는 그 사이를 뛰고 걸으며 그렇게 나의 동네를 바라봤다.


빗방울이 쉬어가는 새파란 여름 대추나무


 이곳엔 많은 사람들이 산다. 그리고 서울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인상을 준다. 어디 살아? ‘동탄’이라고 하면 우와, 그 먼 곳에서 어떻게 출퇴근을? 그럼 나는 아주 자세히 부연 설명을 해야만 하는 입장이 된다. 음, 우선 수원은 알아? 거기랑 비슷해. 분당에서 차로 20분 정도 (막히지 않으면 15분) 걸리고 고속버스를 이용하면 강남이나 명동은 35~40분 정도 걸려. 서울 외곽보다 동탄에서 더 빨리 강남에 도착할 걸?


 부질없는 자기방어를 하고 나면 이어지는 질문은 화성시? 살인의 추억? 정도가 되기 마련이다. 그런 질문을 받기 전 동탄이라는 곳을 정의하기 위해 해야 하는 말은 다음과 같다. 내가 사는 곳은 ‘삼성’이 즐비한 곳이야. 그런데 사실 그건 잿빛 뿌연 하늘 아래 내가 살아 정도의 특별하지도, 흥미가 생기지도 않는 말이다. 더군다나 삼성은 나의 직장도 아니다.


 나는 그러한 곳에 살고 있다. 분주한 사람들이 많은 곳.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을 자기 위해 저녁마다 돌아오는, 그리고 새벽같이 일어나 그 길을 되돌아가야만 하는 둥지 같은 곳.


해 지는 동탄의 전경. 삼성기흥반도체.


 내 방에는 책상이 없다. 커다란 옷장과 침대, 화장대와 티 테이블, 피아노로 빼곡한 방 안에서 창밖을 보면 바로 도서관이 보인다. 심지어 도서관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표정까지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곳의 넓은 책상을 마치 나의 책상인 듯 이용하곤 한다.


 보름에 한 번씩 낮고 높은 계단을 올라가 2층에 위치한 열람실에 들어간다. 신작 코너 앞을 서성이다가 눈에 들어오는 책이 없으면 내가 좋아하는 소설 코너로 걸음을 옮겨 혹시 발견하지 못한 소설이 있나 슬쩍 둘러본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번역된 책은 거의 다 읽었기에 다시 빌릴만한 책이 없을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혹시나 하며 둘러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주말에는 다섯 시, 평일에는 밤 아홉 시에 문을 닫는 종합열람실과 해야만 하는 공부가 생기면 찾는 새벽 1시까지 불을 밝히는 성인 열람실. 그 두 곳은 지난 십 년 동안 내가 우리 동네에서 가장 많이 드나든 공간일 것이다. 요즘은 글을 써야 하는 일이 생기면 2층 구석진 자리에 앉아 창가에 닿아 있는 나뭇잎의 단면을 살펴보며, 또, 나뭇가지의 단단함에 감탄하며 글을 쓰곤 하는데 그게 그렇게 재밌다.


 그 다음으로 동네에서 좋아하는 공간을 떠올려 보면 스타벅스다. 도서관에 가지 않으면, 프리랜서로 일을 하던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오전 9시가 되기 전에 그곳에 간다. 아무도 없는 매장 안 널찍한 테이블에 홀로 앉아 작업송(몇 가지가 있다. 주로 재즈나 마이너 화성의 음악들)을 들으며 오늘의 커피를 홀짝거린다. 그리고 작업을 시작한다. 때때론 해가 지기도 하고, 날이 좋으면 점심에 탈출하기도 하고, 가끔 반가운 얼굴이 퇴근하고 먼 길을 달려 그곳으로 오기도 한다. 어찌 됐든 그 공간은 내게 사무실이자 미팅의 장이며 원하는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고 책을 읽다 가까운 카페에 슬슬 걸어가 레몬티 한 잔에 친구와의 수다까지 곁들이면 가장 완벽하고 고요한 하루가 되곤 한다. 어쩌면 무료함에 가까운 일상을 보내기에 참 좋은 곳일지 모른다, 내가 사는 우리 동네는.


새로운 내 친구, Qicycle


 그런 무료함을 만끽하던 내게 어느 날 갑자기 친구가 생겼다. 그 친구는 섹시하다. 차갑기도 하지만 따뜻하고 결정이 빠르며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곳은 어디든 함께하는 좋은 친구다. 심지어 그 친구는 혼자 있는 나를 흔들어 깨우고 무거운 몸을 일으켜 무엇이든 함께해야만 할 것 같은 애잔한 기운을 품고 있다.


 서른이 넘고 취미가 늘어나는 사람들을 보면 혼자 할 게 뭐 저리 많을까? 역시 나이 드는 건 참 슬픈 일이구나, 혹은, 저렇게 혼자 잘 노니 결혼도 안 하고 그렇고 그렇지 뭐, 그런 생각이 들던 시절도 있었다. 그 시절의 난 어렸고 시간과 나이가 비례하며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난 그 나이의 그렇고 그런 사람이 되었다. 서른 그리고 세 살.


 그 친구,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바람도 결이 다르다는 것, 나무들의 밀도가 높을수록 코 안으로 들어오는 공기의 질이 다르다는 것, 밤에는 더 빨리 달리고 싶어진다는 것, 그리고 혼자 노는 것도 꽤 의미가 생긴다는 것을 나는 그 친구와 함께 배운다.


 아, 이래서 혼자서도 잘 놀게 되는 거구나. 취미가 늘어나는 건 여가가 늘어나는 게 아니라 시간을 죽이기 위한 수단이 많아지는 거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순간부터 나는 동네에서 할 수 있는 혼자만의 일의 가짓수를 늘려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외롭거나 심심한 건 마찬가지다.



 올해 봄은 비가 오지 않아 유난히 장미들이 오래 맺혀 있었다. 커다란 얼굴을 가진 붉은 장미를 보며 봄이 왔구나, 오월이구나, 라고 알게 되는데 지난 올해 오월은 유난히 길고 또 맑았다. 그렇게 탐스러운 장미들은 몇 번의 비를 맞고 다시 나무 안으로 숨어 버렸고 장미가 떨어지는 길가에는 겨울을 준비하는 붕어빵 포장마차가 주인을 기다리며 서있다. 곧, 콧물을 훌쩍 거리며 3개에 천 원짜리 붕어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겠지. 그렇게 봄과 여름, 가을이 지나 겨울이 왔다. 이곳에서, 바로 우리 동네에서 말이다.


계절은 또 이렇게 너를 데려와
어느새 난 그 때 그 길을 걷다가
내 발걸음엔 리듬이 실리고 너의 목소리 들려
추억 속의 멜로디 저 하늘 위로
우리 동네 하늘의 오늘 영화는
몇 해 전 너와 나의 이별 이야기
또 바뀌어버린 계절이 내게 준 이 밤
동네 한 바퀴만 걷다 올게요

- 윤종신, ‘동네 한 바퀴’ 중에서




글/사진 별나

클래식 작곡 전공, 빌보드 코리아 아나운서, 예술 강사를 거쳐 이젠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 선 (우아한) 몽상가. 수전 손택을 닮고 싶고, 그보단 소박하게 전 세계를 산책하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현재 미학을 공부하고 있다.

이전 04화 책들이 거니는 동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