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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Dec 09. 2017

책들이 거니는 동네

빨래골이란 순한 이름 덕분일까, 동네는 평화롭고 조화롭다.

 오래전 대학 후배가 사는 곳이 빨래골이라 했을 때 서울특별시와 어울리지 않는 촌스러운 지명에 웃음이 났다. 그때 나는 서울의 끝 거여동에 살고 있었다. 지금, 빨래골 주민으로서 나는 비밀로 가득한 삶, 그 한 단면이다. 그리고 이 동네에는 그런 징후들이 곳곳에 놓여 있다. 2015년 10월 8일, 4·19국립묘지 근처에 살다 빨래골로 이사 왔다. 오래된 연립 입구에 벽화 속 펭귄 가족이 마중 나와 있었다. 앞으로 사는 동안 이처럼 예쁜 담이 세워진 집에서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펭귄 가족의 환대는 뜨거웠다. 이곳에서라면 원하는 모든 것이 이뤄질 것 같았다.


 예전 동네들은 그저 추억되는 장소였다. 후회와 그리움이 적절히 혼합된 모습으로 문득문득 찾아오는 한때들. 그런데 산자락 생활 10여 년이 지나니 좀 다르다. 나이를 먹었기 때문일까. 혜화여고, 4·19, 드디어 빨래골. 동네의 사물들과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건넨다. 구름 위를 허우적대던 몽상은 그 소리에 이끌려 점점 산자락으로 내려오고 있다.


 이곳에서 맞던 첫 봄, 창 너머에서 노인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는 소리가 들렸다. 겨우내 방 안에 유폐된 삶이 얼마나 답답하고 지루했는지 경쟁하듯 주고받는 이야기들. 삭신, 관절염, 자식, 끝도 없이 대화는 계속됐다. 꽃보다 일찍 핀 이야기는 가을까지 이어지다 겨울이 돼서야 멎었다. 늙음을 생각했다. 두려웠다. 그리고 쓸쓸했다.


 궁에서 나와 소풍 가듯 이곳까지 빨래하러 왔다던 무수리들. 인왕산, 북악산, 정릉 주변에도 계곡은 많았을 것 같은데 굳이 그들은 발품을 팔아 이곳까지 찾아왔다. 결국 후세에 마을 이름까지 선물했다. 빨래골이라는 그 순한 이름 덕분일까. 동네는 평화롭고 조화롭다. 골목마다 노인들이 쉽게 눈에 띈다. 타인에게 한 번도 제대로 읽히지 않은 자서전들은 문득문득 뭉클한 감동과 난해한 질문을 던진다. 그들이 그때까지 삶을 끌고 온 인내와 용기는 지천명에 가까운 내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질이 됐다. 허나 한낮 망중한을 즐기는 그들의 눈빛은 쓸쓸한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산다는 건 뭘까.



 이 질문에 답을 찾으라는 듯 빨래골 아래에는 도서관이 지천이다. 무려 십여 군데나 된다. 어디든 걸어서 한 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위치한다. 이 중 빨래골 주민이 가장 자주 찾는 곳은 수유문화정보도서관이다. 나는 지금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그곳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노인들이 던져준 질문을 품고 그곳까지 내려가는 길은 만만치 않다. 도로 확장 공사가 한창이라 빨래골 입구까지 이어진 길은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골목에 위치했던 가게들은 2년 새 많이 사라졌다. 삼흥주택 앞에 있던 슈퍼와, 그것과 연한 가게와 집 들은 완전히 사라져 아스팔트가 됐다. 아스팔트는 옛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자리한 슈퍼 앞에는 제법 넓은 은행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낮술을 즐기던 길손들이 이따금 있었는데, 이제는 그리운 풍경이 돼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식당 고향집이 여전히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곳에서 오랫동안 벼려왔던 의식을 완성했다. 청국장에 소주 한잔.


 고향집의 편한 분위기 때문일까. 그 의식은 너무 싱거웠다. 양푼에 끓인 5천 원짜리 시큼한 청국장은 양이 너무 많아 반주로 소주 두 병쯤 비우기에 충분했다.


 음식뿐만 아니다. 가게 입구에 재떨이가 놓인 테이블은 삶의 미스터리다. 늦은 밤 집으로 가는 길이 힘들 때 불 꺼진 식당 앞 테이블에서 담배를 피우면 이상하게 시름이 조금은 가벼워진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이 골목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도봉사우나였다. 건물 전체가 24시 사우나였는데, 지금은 없다. 밤 열 시가 넘으면 사람의 흔적이 드문 적막한 이 골목에 사우나라니, 그것도 24시! 이곳에 이사 오기 전 4·19국립묘지 근처에 살던 때였다. 필요한 책을 찾으러 솔샘문화정보도서관에 갔다 돌아오던 중 붉은 십자가들 사이에서 도드라지던 네온. 두 시 방향에서 빛나던 사우나는 낮은 지붕들 사이 우뚝한 등대 같았다.


 빨래골에 이사 온 둘째 날 등대 안에 들어갔다. 망망대해에 나 혼자였다. 그 후로도 그랬다. 찜질방에는 올라가 본 적이 없지만 늦은 밤 맞은편 편의점에서 찜복을 입은 손님들이 자주 눈에 띄었던 것으로 봐 분명 자유로운 분위기였으리라. 서울 시내에 외출이 허락되는 찜질방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한겨울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밤, 흠뻑 땀을 흘린 후 편의점 탁자에 앉아 마시는 맥주를 자주 상상했지만 결국 실현되지 않았다. 그 후로 번화가도, 아파트 상가도 아닌 호젓한 동네 골목에 24시 사우나를 개장한 사장의 마음이 이따금 떠올랐다. 그런데 아직까지 나는 그 마음 근처에도 닿지 못했다. 빨래골은 삶의 다양한 면을 품고 있다.



 내가 알 수 없는 것은 그 마음뿐만 아니다. 이 골목에서는 한빛맹학교의 시각장애인을 자주 볼 수 있다. 한 손을 앞사람의 어깨에 얹은 채 서너 명의 무리가 이동하는 모습은 전혀 새롭지 않다. 흰 지팡이를 두드리다 주차된 차 앞에서 잠시 멈칫대는 이를 눈앞에서 바라보는 것 또한 흔한 경험이다. 매일 오지로 떠나는 이들과 맞닥뜨릴 때마다 자괴감이 이는 것도 이젠 아무렇지 않다.


 늦은 밤 홀로 지팡이를 지도 삼아 버스가 다니는 빨래골 입구까지 내려가던 모험왕을 잊을 수 없다. 한빛예술단의 일원이다 싶은 그에게 밤과 낮의 변화는 소음과 적막, 그리고 촉감의 정도로 쉽게 구분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를 지켜보는 이에게 이 세상은 모든 게 위협적이다. 밤도 예외는 아니다. 도대체 그는 늦은 시간까지 뭘 좇았던 걸까. 어둠 너머 또 어둠, 어둠, 어둠, 벗겨지지 않는 암흑 속에서 그가 찾았던 건 뭘까.


 나는 그들의 행진 앞에 눈뜬 맹인이 되는 경우가 잦다.




 골목 여기저기에서 걸어다니는 뜨거운 책들. 빨래골 주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그 책에 데여 겸허해졌으리라. 덕분에 더 순해진 동네. 문득 강의 서쪽 마을에서 무릎을 꿇었던 어머니들이 떠오른다. 왜 같은 하늘 아래 그토록 씁쓸한 시간이 존재하는지 알 길이 없다. 이 골목의 끝에 다다르면 그 의문이 풀릴까.


 수유문화정보도서관 맞은편에 파출소가 있고, 그 앞 횡단보도 옆에 허름하고 초라한 비석이 비쭉 고개를 내밀고 있다. 가드펜스에 바싹 붙어 있는 그것의 존재는 눈 밝은 행인이 아니면 쉽게 발견할 수 없다. 비석인 듯, 이정표인 듯 서운할 정도로 홀대받는 애매한 구조물에는 ‘공초오상순선생묘소입구’라 적혀 있다. 골목 여정은 이정표 앞에서 끝나도 괜찮을 듯싶다.



 이곳에서 산 방향으로 삼십 분 정도 걸으면 하루에 열 갑 내외의 담배를 피웠다는 시인 공초의 묘에 닿는다. 하관 후 백여 명에 이르는 추모객들이 살아생전 그의 애연 습관을 기리기 위해 관 위에 담배를 던졌는데, 그 깊이가 자그마치 50센티미터나 됐다고 한다. 수년이 지나 쌓였던 담배의 부피가 줄어들면서 묘가 붕괴됐다는 기사는 그의 생전과 기묘할 정도로 잘 어울린다. 그래서일까. 빨래골을 끼고 있는 삼각산 둘레길 3구간 명칭인 ‘흰구름길’은 공초를 떠올리게 한다. 평생 독신으로 집도 없이 름처럼 유유자적했던 삶의 끝에는 이런 묘비명이 남았다.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오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나의 혼


 한 달 전쯤 도서관에서 그에 관한 오래된 책을 빌렸다. 뒷면에는 아직도 대여 카드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어떠한 기록도 없었다.


 어제 찾아간 공초의 무덤은 잡초가 무성했다. 꽁초로 수북할 것 같았던 돌재떨이는 깨끗했다. 담배에 불을 붙여주자 그는 천천히 오랫동안 담배를 피웠다. 참배객이 바뀔 때마다 담배 종류도 달라지겠지,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죽은 뒤 50여 년 동안 수많은 종류의 담배를 피웠으니 삶에 도통할 것만 같았다. 산다는 건 뭡니까, 묻고 싶었지만 그만뒀다. 공초가 꼭 이렇게 나무랄 것만 같았다. 


 예의가 없군, 그 질문에서 벗어난 지 이제 겨우 60년도 안 됐는데 또 귀찮게 하는구먼. 왜 산 자의 마땅한 짐을 죽은 이에게 얹는 겐가. 담배나 더 주고 썩 꺼지게.


 2017년 9월 18일 현재, 한동안 초조하게 기다렸던 집주인의 연락은 없다. 행운이다. 빨래골 산책은 2년 더 연장된다.





글/사진 박범서


소설을 쓰다 남는 시간은 등산과 음주로 채우고 있다. 잡지 등 여러 지면에 글을 기고했지만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최근엔 산행 에세이 <나는 절대 늙지 않는다>를 출간했다. 현재는 프리랜서로 다른 이들의 글을 다듬어 주고 있으며, 남는 시간 소설을 쓰고 등산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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