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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Dec 02. 2017

이 밤 그날의 반딧불을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르는 희망 노래

 찬바람이 불자 부지런한 농부들은 벼를 베기 시작했다. 이웃 지역인 철원에서는 8월에 추수를 시작했다고 한다. 아직 이르지 싶었지만, 논에 갔더니 누런 벼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지난 4월 볍씨를 뿌리고 5월 모내기를 했는데, 벌써 추수할 때가 되었다니. 한없이 푸르던, 황금빛 들판이 사라질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떠나는 것들이 점점 서운해진다.


 여름이 서둘러 떠난 것도 약간 서운할 뻔했지만, 매서운 비바람으로 확실히 정을 떼고 갔다. 안 그래도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데, 옆에서 밀치고 위에서 때리니 쓰러진 벼들이 있다. 속상한 마음에 논두렁을 걸었다. 넘어지다 말고 힘겹게 버티고 있는 벼들이 보였다. 포기하면 차라리 편할 텐데, 더 이상 쓰러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에 괜히 눈물이 날 뻔했다.



 이 시기 가장 고된 일은 고추 따기이다. 콤바인이 탱크처럼 논을 휘저을 때 주인은 낫 하나 들고 춤만 춰도 끝나는 벼 베기는 더 이상 일이 아니다. (농부의 수고가 줄어서일까. 쌀값이 한없이 떨어져 추수의 기쁨은 곧 한숨으로 변한다.) 하지만 허리를 숙여 빨갛게 잘 익은 것을 고르고, 무성한 가지를 헤치고 따야 하기 때문에 고추는 여전히 농부의 손길만 기다린다.


 빨간 엉덩이(작업용 방석)를 하고 쪼그려 앉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그래도 하다 보니 그것도 익숙해졌다. 가을 햇살은 땀을 내어 농부답게 하고, 바람은 땀을 날려준다. 이 평화를 깨는 건 ‘두 얼굴의 고추’이다. 내 쪽에서 볼 때는 분명 빨갰는데, 막상 따 보니 반대쪽이 파랗다. 짜증이 나서 담을까, 버릴까 몇 번을 망설이고는 한다.



 ‘우리 동네’라는 말을 떠올렸을 때, 어쩐지 길을 잃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곳을 사랑한다. 서울에서 대학도 나오고 취업도 했지만, 이제는 도회에서 일주일도 못 버틴다. 그렇다고 여기가 내놓을 뭔가가 있는 동네는 아니다. 포천시 관인면. 지장산 계곡과 한탄강이 있다. 하지만 TV에 나오는 한국 명소들에 비하면, 정우성 앞에 선 나라고나 할까?


 드라이브나 해야겠다.


 관인면의 남쪽 경계인 영로교로 가서, 구(舊) 영로교에 차를 세웠다. 위에 더 큰 놈이 생겨 이제는 차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다. 덕분에 길게 뻗은 다리를 마음껏 활보하며 물빛과 하늘빛을 감상할 수 있다. 한탄강 절벽 사이로 부는 바람은 더할 나위 없이 상쾌했다. 얼마 후 한탄강과 옆에 있는 종자산이 붉은 옷으로 갈아입으면, 이곳은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가끔 ‘내가 시장이 된다면?’ 하고 상상해 본다. 서울이나 도시에서 이런 말을 하면 개소리라고 하겠지만,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주변 사람들이 진심으로 응원해준다. 난 영로교 위에서 합창대회를 열 것이다. 유유히 흐르는 물줄기, 다리 위에 설치된 무대, 산과 하늘은 벽과 천정이 되고, 노을과 별빛, 달빛은 조명이 된다.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지장산이 보일 무렵 중리초등학교가 나온다. 개인적으로 (아빠가 된) 내가 무척 좋아하는 곳이다. 아이는 마음껏 뛰어놀 수 있고, 어른은 행복한 아이의 모습을 보다가 느티나무 아래서 잠시 쉴 수 있다. 운동장에서 보이는 것은 산과 하늘뿐, 평화로우면서도 생동감 넘친다. 오래 곁에 있으면 좋겠는데. 부모님이 다니셨고 내가 다녔던 이 학교에 우리 아이들도 다닐 수 있을지, 그때까지 이 학교가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30명 남짓한 아이들이 가을운동회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뻥!”하고 산 위에서 엄청난 대포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산을 흔들며 날아갔지만 동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게 이 동네 아이들의 위엄이다. 평소 군인을 워낙 많이 본 탓에 총도, 대포도 겁내지 않는다. 버스보다 군용 지프가 자주 다니고, 택시보다 탱크가 더 많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다.


 내가 국민학생(초등학생) 때에는 미군이 여기서 훈련을 많이 했다. 지나가는 탱크를 보며 손을 흔들면 초콜릿, 캔 참치 등을 던져주었다. 미군이 오면 언제나 달려갔는데, 한 번은 사진 괴담이 퍼져 망설인 적도 있었다. 미군한테 사진 찍히면 잡혀간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그렇게 잡혀간 아이는 없었다. 카투사 병사들은 우리를 무척 싫어했는데, 그들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닐까.



 고남산 고개를 넘고, 관인 시내를 지나면 냉정리 벌판이 나온다. 사실 찻길에서는 벌판이란 말을 실감할 수 없다. 냉정리 저수지가 있는 길로 꺾고 그곳을 지나면 120만 평에 이르는 넓은 땅에 논이 가득 있다. 이곳이 관인이 자랑하는 냉정리 뜰이다. 흙이 찰지고, 맑은 한탄강 물을 끌어올려 농사를 짓기 때문에 밥맛이 아주 좋다.


 솔직히 말해서, 포천 최북단에 있는 작은 농촌에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없다. 기대할 것도, 자랑할 것도 없다. 이곳에 사는 농부에게 좋은 땅에서 좋은 쌀을 키워낸다는 것은 유일한 자랑거리이자, 위안거리이다. 누렇게 익은 벼가 바람의 지휘에 맞춰 읊조리듯 노래한다. ‘사~’, 벼를 스치고 내 뺨을 보듬는 바람이 오늘도 희망이라는 것을 품게 만든다.



 집 앞에서 반딧불이를 만났다. 간절히 기다린 만큼 더없이 반가웠다. 나는 웃고 있었다. 영롱한 빛을 내뿜으며 살랑살랑 춤을 추다가, 무수히 빛나는 별들 사이로 하나의 점이 되어 날아갔다. 그래, 이거야말로 자랑거리이다. 우리 집에 반딧불이가 산다! 내년 이 밤에도 반딧불을 볼 수 있을까? 너나 나나 삶을 즐길 처지는 아니지만, 견디고 견뎌 또 함께 춤출 수 있기를.





글/사진 농촌총각

인생의 절반에서 새로운 기회가 한 번은 더 올 거라 믿는 농부. 좋은 책, 음악, 영화, 사람들로 가득한 문화 창고를 꿈꾸고 있다.

mmb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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