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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May 02. 2018

지금, 종묘제례악

종묘제례악의 춤은 기호적이다

여행 매거진 BRICKS Trip - 춤추는 세계 #4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종묘에 가보게 되는 것 같다. 종로에 일이 있어 나갔다가 시간이 남았을 때, 종묘에 쓱 한 번 들어가 보면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종묘 앞은 장기 두며 시간 보내는 노인들, 바쁘게 지나가는 행인들, 지나가는 많은 차들, 세운상가, 방산시장과 청계천의 가게들, 물건 사고파는 사람들 등 복잡한 도심의 풍경이 뒤섞인 곳이다. 먹고 사는 다양한 모습들이 와글와글 모여 있는 곳을 지나 종묘 안으로 들어가면 먹고 사는 것과 전혀 관계없는 나무들과 사당이 나타난다. 죽은 왕들의 공간, 종묘는 그렇게 도심 중앙에서 시민들에게 낯선 쉼터를 내어준다. 주변의 창경궁, 창덕궁, 경복궁 등의 고궁과는 다른, 고요함과 위엄이 느껴지는 이유는, 왕들이 업무를 보고 생활을 하던 공간이 아니라 선대 왕들의 제례를 올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종묘는 일상의 공간에 적용되는 것과는 다른 논리로 건축되었다.


 고(故) 구본준 기자의 저서 『세상에서 가장 큰 집』(한겨레출판, 2016)은 인류 유산이 된 세계의 공공건축물 여러 곳을 소개하는데, 이 중 종묘를 설명하는 데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종묘 정전은 한국에서 가장 긴 한옥으로, 왕조의 생명과 함께 유기체처럼 칸이 늘어났다. 세계의 종교, 왕궁 건물들을 살펴보면 처음 지을 때부터 신성함을 드러낼 수 있도록 높게 혹은 넓게 짓지, 종묘처럼 나라와 함께 건축물이 성장한 경우는 없다고 한다. 처음 태조 이성계가 지은 종묘 정전은 일곱 칸이었는데 왕조의 역사와 함께 점점 옆으로 증축되어 지금은 열아홉 칸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중국의 태묘가 중심축에 따라 좌우 대칭구조를 띠며, 한 건물 뒤에 다른 건물이 겹겹이 배치되어 권위적인 효과를 주는 데 비해, 우리의 종묘는 모든 건물이 특정 시점에서 시야 전체에 펼쳐지는 비대칭적 부채꼴 배치를 취함으로서 또 다른 위엄과 숭고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 베트남에 남아 있는 유교제례 건축물들과 비교해보면, 우리의 종묘는 공신을 모신 공신당도 함께 있다는 점이 특이한데, 왕권만큼이나 신권을 중요하게 생각한 우리 조상들의 정치문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이런 건축학적인 이해 없이 보아도 좋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특히 종묘 정전은 그냥 감탄이 나온다. 나는 이곳을 볼 때마다 아주 세련되고 깊이 있는 예술작품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니 이 공간에서 공연을 함께 보는 느낌은 또 어떠하랴!




한국의 종묘제례악, 자세한 이야기는 도서 『춤추는 세계』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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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허유미 / 표지사진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탈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춤과 관련된 수업과 글쓰기를 함께 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춤들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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