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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Dec 12. 2018

모리스 베자르

그는 인생이 무엇인지 몸짓으로 보여준다.

여행 매거진 BRICKS Tour

춤추는 세계 #8





 2016년 2월 빡빡한 일정으로 유럽을 여행하던 중 스위스 로잔에 하루 묵은 적이 있다. 알프스 마테호른 봉우리를 보러가기 위해 동선 상 지나가야 했을 뿐 로잔이라는 도시에서 딱히 하고 싶은 건 없었고, 저녁에 도착해서 다음 날 오전에 떠났으니 기억에 남는 일도 없다. 적당히 고색창연하고 적당히 선진화되어있는 스위스의 도시들 대부분이 비슷한 느낌이어서, 취리히, 제네바, 로잔 같은 주요 도시들 모두 깔끔하고 예뻤다는 인상 정도로만 남아있다. 굳이 기억해 보자면 로잔에 대해 두세 가지 정도가 떠오른다. 예약해 둔 숙소를 찾아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어느 샌가 몸이 뒤로 기우는 걸 느꼈다. 응? 이거 위로 올라가고 있는 건가? 지하철이 지하터널을 통해 산 위로 올라가는 건 처음 경험했다. 어찌나 신기하던지. 그렇게 내린 산 위의 지하철역 근처 호텔에 짐을 풀고 호텔 바에서 맥주를 마셨다. 지역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든 Docteur Gab's이라는 맥주였다. 이 브랜드의 여러 에일을 종류별로 먹어봤는데 각각의 개성과 밸런스가 훌륭해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거의 ‘맥주의 이데아’였다. 결국 한국에 돌아와 이 양조장에 메일도 보내고 해외직구를 해보려고 알아봤는데, 관세 문제 때문에 개인이 소량 사는 건 힘들다는 걸 알고 마음을 접었다. 스위스에 다시 가게 되면 우선 하고 싶은 건 이 맥주를 마시는 거다.



 다음 날 오전 다시 지하철을 타고 산을 내려가 기차역을 향했다. 그런데 지하철 다음 역 안내 멘트에서 ‘모리스 베자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아는 그 ‘모리스 베자르’ 말이다. 역 이름이 안무가 모리스 베자르일 리가 있나, 거 참 이상하다 싶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내가 들은 것이 맞았다. 로잔 지하철 2호선 Riponne역의 부역명은 Maurice Béjart역이었다. 베자르가 2007년 타계하자 역명이 헌정되었다고 한다.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안무가 베자르는 1987년부터 타계 전까지 로잔에서 ‘베자르 발레 로잔 무용단’을 이끌었고 사후 그 공을 인정받아 스위스 시민권을 받았다. 프랑스인이지만 로잔의 발레단을 전세계에 알렸으니 스위스인들이 자랑스러워할 만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듣던 대로 유럽에서는 춤 예술을 중요하게 여기는구나 싶어 부럽기도 했다. 어떠한 예술가도 도달하지 못할 현대 예술의 지평을 연 이가 베자르이기에 그런 정도는 마땅하다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지하철역 이름에 안무가 이름을 쓰다니 전세계에서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위대한 안무가 모리스 베자르, 자세한 이야기는 도서 『춤추는 세계』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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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허유미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춤과 관련된 수업과 글쓰기를 함께 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춤들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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