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매거진 BRICKS T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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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나는 살아있는 사람과의 대화를 좋아한다. 생명력이 넘쳐 파닥거리는, 바다의 기운이 느껴지는 날생선 같은, 또는 지난 뉴올리언스의 기억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생굴처럼 느껴지는 사람. 날것은 언제나 흥미롭다. 어떻게든 바뀔 기회가 있고, 어떻게든 바뀔 수 있다는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에 그러하다. 그들과 대화하려면 나는 항상 ‘살아있어야’ 한다. 내가 죽어 있으면 어찌 산 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사춘기 시절이 지난 후, 그리고 빤한 대학생활의 첫 해가 지난 뒤, 나는 내가 죽어 있음을 인지할 수도 없을 만큼 죽은 사람이었다. 숨을 쉬고 몸을 움직이고 대화를 하고 음식을 먹고 있었만, 나의 영혼은 심연에 가라앉은 작고 볼품없는 존재에 불과했다. 수면 위로 부상할 기회가 찾아온 건 그때였다.
8.
친구가 휴학을 하고 워크캠프와 유럽 여행을 가겠다고 했다. 아무런 정보도, 생각도 없던 나는 “그래? 그럼 나도 갈래”라며 무작정 그녀와 함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유레일패스와 비행기 티켓을 사고 여행할 도시를 선택하며 몇 개월을 보낸 뒤 생소하지만 저렴했던 베트남 항공(취항한 지 얼마 되지 않은)을 타고 우리는 파리로 떠났다.
파리에서 프랑스 남부로 기차를 타고 가 3주간의 워크캠프(봉사활동)를 마친 뒤 런던,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다시 파리 - 그렇게 무작정 기차를 타고 걷고 또 걸어 다니며 세상을 구경했다. 그 세상은 내가 아는 곳이 아니었다. 거기엔 무수하게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다들 자신만의 표정을 지으며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나는 작았고 불완전했으며 세상을 처음 보는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그들을 보았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나의 영혼과 마음이 깨어난 순간은 여행하던 그 순간들이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부자연스러웠으며 매 순간 선택의 연속이던 그 시절이 잠들어 있던 나를 흔들었다.
9.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여행을 간다. 휴가가 있으니 써야지, 친구가 갔다 왔는데 거기 좋대, 그냥 무작정 가보고 싶었어, 거기 음식이 맛있다는데? 그냥 비행기를 탈 때가 된 것 같아.
사진을 찍고 친구를 만나고 다양한 앱을 통해 검색을 한 뒤 평가가 좋은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고 한국보다 비교적 저렴한 브랜드에서 쇼핑을 한 다음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실시간으로 본인의 상황을 업데이트하며 여행을 즐긴다. 물론 나도 일정 부분은 그들과 비슷한 여행을 한다. 하지만 나는 여행을 하는 것이 샤넬백을 드는 것과 같은 이유로 치부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방 안 가득 먼지와 답답한 공기가 가득 차 있을 때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키는 것. 바로 인생의 환기를 위해 여행은 필요하다. 사실 여행은 피곤하고 지루하거나 한없이 무료하면서 가끔씩만 즐겁다. 하지만 여행을 가기 전 설레는 마음과 여행 후 기억 속에 맺힌 막연한 행복의 기운이 게으른 우리를 일으켜 세운다.
10.
그리고 나는 삶을 여행처럼 살아보고 싶었다. 산책하듯 삶의 여러 부분을 찬찬히 음미하며 살아보고 싶었다. 굳이 남들과 달라지려고 노력하진 않았지만, 때로는 다른 사람이 되어 보고자 했었다. 마음속의 무언가가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네가 하고자 하는 그것은 남들도 그러했듯 너 역시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할 때 두려움과 고민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나를 믿지 않으면 어느 누가 나를 믿을 수 있을까?
11.
나는 자기 계발서의 한 페이지를 쓰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나에겐 아무런 영향력도 없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말과 내가 살아온 삶의 일부에 관해 읊조리고 있을 뿐이다. 나는 막연한 꿈을 잘 간직해 왔고, 마음에 품고 있던 그것을 조금씩 현실로 꺼내다 보니 현실이 되었다. 지금의 내가 10년 전의 나를 만나 “너, 10년 뒤에는 텍사스 오스틴에 있는 쉐라톤 호텔 로비에 앉아 하루 종일 네 과거에 관한 글을 쓰게 될 거야. 어때? 믿을 수 있겠어?”라고 말한다면 이십 대 초반의 나는 아마 흐릿한 눈을 끔뻑거리며 “오스틴? 그게 어디야? 사람 이름이야?”라고 물을 것이다. 도라에몽에게 자신의 미래에 관해 듣던 진구의 안경 속 눈동자가 빙빙 돌아갔던 것처럼 말이다.
12.
지난 7개월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이었다. 내 손가락 위에서 반짝거리는 다이아몬드보다 더 반짝이고 상상하던 것보다 더 상상 같았던 시간들. 그러한 기억으로 인해 한 사람의 인생이 우뚝 서고 견고해지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이제 십 년 뒤의 나를 생각해본다. 무엇을 하고 무엇을 입고 누구의 눈동자 속에서 반짝이게 될지. 그 무엇보다 값진 사랑으로 삶을 채울 수 있을지.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해 무엇이든 아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냥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어찌나 감미로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다행이다. 매일 삶을 여행하는 기분으로 살고 있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다.
13.
나는 나와 같은 언어를 쓰고 나와 같은 땅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여행 오는 곳에 살고 있다. 그들은 이곳에 와서 사진을 찍고 음식을 먹고 친구를 잠시 만나고 나면 다시 나의 고향, 나의 부모가 있는 나라로 돌아간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 남아 그들과의 기억을 곱씹으며 나의 삶을 이어갈 것이다. 삶을 여행하듯 산책하듯 살아보고 싶다고 오래도록, 어쩌면 십 년이 넘도록 이야기하던 스물의 나는 너무나 낯설지만 사랑하는 모든 것이 현존하는 이곳에서 바라던 대로 살아가게 되었다.
“세상에는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것과 조절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조절할 수 있는 것을 가려내는 힘이 분별력이고 그것에 발휘하는 능력이 용기다. 어리석은 사람은 모든 것들을 자신이 조절할 수 있다고 만용을 부리거나,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스스로 포기한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고유한 임무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환경을 탓하거나 자신의 하찮은 일들을 합리화하여 설명한다. ‘창조’란 자신의 고유한 임무를 발견하고 그것을 삶의 최우선 순위에 두어 몰입하는 행위다. 그런 사람의 유일한 경쟁자는 자신이다. 창조적인 인간은 자신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고유한 한 가지를 발견하는 사람이다. 피타고라스, 단테, 루터, 베토벤, 그리고 아인슈타인과 같은 인간들은 자신을 감동시킬만한 일생의 과업, 하나를 발견하고, 그것을 거침없이 세상이 보여주었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반짝이는 마음의 별이 저 하늘의 별들보다 아름답다고 확신하였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별이었다.”
- 배철현 ‘묵상’ 중 일부
글/사진(2) 별나
클래식 작곡 전공, 빌보드 코리아 기자, 예술 강사를 거쳐 이젠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 선 (우아한) 몽상가. 수전 손택을 닮고 싶고, 그보단 소박하게 전 세계를 산책하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미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