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하바롭스크까지
여행 매거진 BRICKS Trip
열차는 정시에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올랐다는 흥분에 3만 원짜리 삼등실마저도 마냥 낭만적이기만 했다. 하지만 2층 침대의 실체는 거의 입관 체험 수준. 코에서 천장까지 세 뼘 남짓 할까. 앉아서 물도 마실 수 없었다. 침대에 눕기 위해서는 아래층 침대 모서리를 밟고 올라 포복하듯 미끄러져 들어가 홱 돌아누워야 했다. 계산이 틀리면 그대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이다. 그래봐야 14시간짜리 밤기차일 뿐. 자고 일어나면 그만이다. 바닥도 깨끗하고, 화장실도 꽤 넓었으며, 침대마다 콘센트도 있고, 무엇보다 빳빳한 새 시트가 3만원 주고 누리기엔 호사스러웠다. 기차 안에는 승객들이 따로 쉴만한 공간이 없었다. 침대는 잠자는 것 외에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형편이 못되니, 2층 사람들은 보통 1층 침대칸을 의자 삼아 시간을 보낸다. 그러니 윗집 아랫집을 잘 만나야 삼등실의 생활을 순조롭게 이어갈 수 있다.
기차에 오른 승객들은 저마다 짐을 풀고, 시트를 탈탈 털어 침대 위에 깔고, 화장실을 들락대며 부산을 떤다. 어느 정도 정돈이 됐다 싶을 때, 아, 기차 안에 솔솔 풍기는 그 냄새! 아무리 배가 불러도 젓가락 들고 달려들게 하는 그 냄새! 비행기에서나 볼 수 있었던 ‘컵라면 도미노(승객 한 명이 컵라면 물을 붓는 순간 비행기 전체 승객이 컵라면을 먹는 현상)'가 여기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컵라면은 모두 팔도 도시락이었으며, 국물까지 말끔히 비우고 꺼내 드는 디저트는 초코파이였다. 한국에서는 눈길도 주지 않던 것들이 어찌나 맛있어 보이는지. 배불리 저녁을 먹었는데도 입에 침이 고인다.
좁은 기차 안, 꽉 들어찬 사람들이 뿜어내는 온기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남자들은 훌렁훌렁 웃통을 벗기 시작했다. 밤 12시가 되자 소등이 됐다. 얼른 잠에 드는 것이 관건! 침대에 누우니 마치 마사지 의자에라도 누운 듯 전신이 덜덜거린다. 한밤중에 화장실이라도 가고 싶으면 어쩌지 심란한 마음도 잠시, 금방 곯아떨어졌다. 침대의 크기에 충실하게 두 손 곱게 포갠 채 9시간을 내리 잤다.
다음 날 아침, 기차 안을 가득 메운 진한 홍차 향에 눈을 번쩍 떴다. 사람들은 이미 1층 침대를 테이블로 만들어 깔깔한 아침 입 속을 홍차로 덥히고 있었다. 창밖의 휑한 풍경은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 올 때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본격적인 자작나무 숲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바이칼 호수까지 며칠을 더 달려야 할 것이다.
나의 오랜 꿈은 서울역에서 유럽까지 기차를 타고 넘어가는 것이었다. 꿈의 단초는 '헤이그 특사’였다. 고종의 특명을 받아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세상에 폭로하기 위해 헤이그까지 갔던 특사는 일본의 계략으로 만국평화회의 참석도, 발언권도 얻지 못했다. 이준 열사는 분통함을 이기지 못해 그곳에서 자결하고 만다. 나라 잃은 설움을 도저히 헤아리기 힘들었기에 나는 그 안타까운 결정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헤이그까지 갔을까.
그는 서울 – 블라디보스토크 -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거치며 한 달이 꼬박 걸려 헤이그에 도착했다. 그 여정의 대부분은 광활한 대지를 훑고, 쓸쓸한 자작나무 숲을 품으며 달리던 시베리아 횡단 열차였다.
그는 어떤 마음으로 그 여정에 올랐을까.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고독한 풍경은 그에게 차라리 자결을 선택할 만큼의 사명감을 더욱 굳건히 해주었을까. 이준 열사의 절실함에 비할 수야 없겠지만, 나는 이곳저곳 헤매고 다니며 원대한 자연을 마주할 때마다 내 안으로 더욱 침잠하는 경험을 종종 했었다. 인간이란 참으로 나약하구나, 어떻게든 이 삶에서 충실하게 살아야겠구나. 대자연은 내게 그 모습을 얼핏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어디에서 배울 수 없던 근원적인 존재의 깨달음을 던져주고, 알지 못했던 겸허함을 가르쳤다.
따뜻했던 지난 봄, 군사 분계선에서 남북한 정상이 포옹을 하던 감격적인 순간을 목도하니, 그 꿈은 꿈만으로 머물지는 않을 것 같다. 이번에는 겨우 열흘짜리 여행, '블라디보스토크 - 하바롭스크 구간'이라는 맛보기 정도이지만, 언젠가 꼭 이 열차를 타고 대륙을 건너리라.
나에게 여름휴가 여행은 ‘일년지대계’라 할 만큼 가장 큰 공을 들이는 여행이다. 비단 직접 떠나는 것뿐만 아니라 여행지를 정하고, 문화나 역사에 대해 공부를 하고, 돌아와서 글을 쓰며 여행을 곱씹는 것으로 일 년을 풍성하게 보낸다. 올해의 여행지를 정하는데 있어서 몇 가지 조건이 있었다.
1. 익숙한 풍경이 아닐 것
2. 휑해서 쓸쓸할 것
3. 비행기를 오래 타지 않을 것
그리하여 극동 러시아로 낙점. 나는 사람과 장소도 일종의 '합'이 있다고 믿는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겪기도 전에 느낌이 온다. 그런데, 블라디보스토크는 나와 전혀 합이 맞지 않았다. 마치 얼떨결에 출근길 9호선 고속터미널역에 휩쓸린 느낌이었다. 쏟아지는 인파에 발 디딜 곳을 찾지 못해 공중부양 하듯 끼어있는. 그러면서도 내내 겉도는 이상한 기분.
사실 그 원인 중 하나는 너무나 명백하게 읽히는 지역 주민의 불편한 심기 때문이었다. 뜻밖의 한국 관광객의 러시는 이곳 사람들의 조용했던 일상을 빼앗아버렸다. 동네 식당은 ‘맛집’으로 둔갑하여 발 디딜 틈조차 찾기 힘들었다. 단골 카페에서 더 이상 커피 한잔 느긋하게 마실 수 없게 되어버렸다면 그 누가 이를 반기겠는가. 나 역시 그 러시에 머릿수를 더했으니, 혹시 내가 이곳 사람들 삶에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닐까 행동거지 하나하나 지나치게 신경 쓰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기차에 올라 점점 멀어지는 블라디보스토크를 바라보며 속이 후련할 정도였다.
맹렬하게 달리던 기차의 호흡이 길게 늘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차창 밖 풍경이 멈추었다. 빗방울 톡톡. 땅에 내려앉은 비 냄새가 아롱아롱 피어올랐다. 나는 기차에서 발을 내 딛는 순간 직감했다. 하바롭스크. 이곳이 바로 세 가지 조건에 딱 들어맞는 곳이라는 것을.
아무르 강에서 레닌 광장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무라예바 거리(Ulitsa Murav'yeva-Amurskogo)는 과함이 없었다. 오래된 건물, 카페와 레스토랑은 사람들의 애정 어린 손길이 묻어나 더없이 정갈했다. 헐거운 거리. 사람들의 걸음걸이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면, 촌스러워 더욱 마음이 가는 공원들이 툭툭 나타났다.
해가 천천히 기운다. 물기를 한껏 머금은 밤공기는 제법 쌀쌀했다. 겨울에 등 떠밀려 온 가을이 힘껏 버티고 있었다. 거리 위로 번지는 가로등 불빛. 오늘 처음 도착했을 뿐인 이 거리가 낯설지 않다.
이 느낌. 이 공기. 이 냄새.
오후 5시, 이미 땅거미가 내려앉은 깊숙한 겨울 속에, 리젠츠 파크를 지나 집으로 가던 그 길, 런던 유학 시절이 떠올라 묘한 향수가 일었다. 낯선 환경에 나를 던져 내 모든 감각을 온전히 이곳에 집중하여, 잊고 있던 감정과 기억이 한데 엉켜 흐르게 놔두는 것.
내게 여행지의 합은 이런 것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글/사진 miya
런던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옥스퍼드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지금은 서울 체류자. 대륙을 가리지 않고 오지를 휘젓고 다녔지만, 이제는 카페에 나른하게 앉아 일기를 쓰고 엽서를 쓴다. 창밖을 바라보는 맛이 더욱 좋아져 걷기도 싫어져 버린. 아니, 아니, 나이 때문은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