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종업원과 마스터가 이 밴드의 멤버다.
테이블 열 개와 카운터 석에 대여섯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나가사키의 작은 라이브 바는 특별할 게 없다. 하나 별난 게 있다면 이 바의 위치다.
예를 들면 이렇다. 어떤 일본인이 명동 롯데호텔에 묵었다. 남산에서 야경을 감상하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명동 쪽 길을 지나쳐 영락병원 방향으로 들어섰다. 그 길의 분위기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아무것도 없다”이다. 왕복 6차선 도로 옆으로 고만고만한 사무실이 들어선 낮은 빌딩들이 줄지어 있을 뿐이다. 그런 길 어느 곳쯤 뜬금없이 기타와 드럼 소리가 웅웅대는 라이브 바가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것도 1층에.
길을 헤매다 우연히 만난 이 라이브 바는 나가사키 어느 동네 딱 그런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가운데 유리문을 두고 양 옆으로 투명한 창이 나 있고, 빵집이었다면 갓 구운 빵을 쌓아두고 지나는 이 들을 불러 모으기에 좋은 구조이다. 빵들이 보여야 할 유리창 너머엔 드러머와 기타리스트가 어깨를 들썩인다. 잔뜩 경계심을 품고 좁은 계단을 내려가야 되는 지하도 아니었으니 낯을 가리는 일본인이라도 기웃거렸을 상황이다.
연주 중엔 기다렸다가 한 곡이 끝나면 입장해 달라는 문구를 핑계 삼아 입구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창에 얼굴을 대고 분위기를 엿보다 밴드의 연주를 감상하던 손님과 눈이 마주쳤다. 벌떡 일어나 들어오라는 손짓을 한다. 가늘게 새어 나오는 노랫소리가 갓 구운 빵 냄새 같아 참을 수 없던 참이었으니 벌컥 문을 열 수밖에.
CCR의 〈배드 문 라이징Bad Moon Rising〉이 바 안을 가득 매우고 있다. 이 가게의 손님들, 이 노래에 고작 어깨춤 정도였다니. 하나 남은 자리를 채우고 원래부터 앉아 있었다는 듯 신나게 허리와 팔을 흔들었다. 손님들의 박수와 환호가 〈배드 문 라이징〉의 클라이맥스와 함께 어우러진다. 나에게 손짓했던 서양인 네 명과 악수를 나누며 방금 연주를 마친 마스터에게 생맥주를 주문한다. 현대중공업에서 근무하다 일 년 전 미쓰비시중공업으로 발령받아 나가사키에 왔다는 한 손님은 제법 한국어가 익숙하다. “언니 이뻐요” “오빠 멋져요”라며 연신 건배를 제의한다.
두 명의 종업원과 마스터가 이 밴드의 멤버다. 연주를 할 수 있는 이는 마스터가 유일하며 손님 중 연주가 가능하면 누구나 드럼이든 베이스든 마스터와 호흡을 맞추면 된다. 정해진 연주시간 없이 마스터와 손님의 흥이 다할 때까지 노래를 부른다.
몇 곡의 일본 노래가 끝나고 시작된 노래는 놀랍게도 두비 브라더스Doobie Brothers의 〈롱 트레인 런닝Long Train Running〉이다. 군더더기 없이 기타와 드럼만으로도 충분한 노래다. 마스터의 취향을 알 것 같다. 뉴웨이브니 프로그레시브 같은 수식어가 붙으면서 록도 세상살이처럼 복잡해졌지만, 이곳은 그저 단순한 리듬과 비트에 몸을 흔들면 되는 곳이다.
흥이 오른 일본 여성이 어깨를 치며 춤을 권했다. 사양할 이유가 없다. 이미 우리는 맥주로 충만해 있으니까. 빈 잔을 들고 몇 번이나 오카와리를 외쳤는지 모른다. 마침내 종업원이 생맥주가 떨어졌노라 말했다. 손님 모두가 힘을 합쳐 이 가게의 생맥주를 동낸 것이다. 아쉽지만 행복했다. 이 얼마나 가슴 뿌듯한 성과란 말인가.
대신 나온 기네스를 반쯤 들이켰을 때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가 시작됐다. 곡 후반부의 기타 애드리브에 빠진 마스터와 나의 거리는 50cm. 한 줄로 배치된 이 가게의 테이블은 누구에게도 등을 보이지 않는 구조다. 50cm를 사이에 두고 모두가 일행이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확인한 핸드폰 카메라엔 아무것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사진 한 장 찍을 틈 없이 우리는 그 가게의 분위기에 흠뻑 빠졌던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와 검색창에 ‘나가사키 라이브 바’, ‘뮤직바’, 검색어를 다채롭게 바꿔가며 입력한 한참 후에 찾아낸 사진은 단 한 장. 이곳에서 저녁식사로 카레를 먹었다며 올린 사진이었다. 나 또한 그저 우연히 만나 하룻밤을 뜨겁게 보낸 인연이니 이름과 나이 정도는 알아두고 싶었을 따름이다. 그곳은 2002년에 생긴 뮤직바 ‘크레이지 호스’다.
:: Crazy Horse
〒850-0035 長崎県長崎市元船町7−7
글/사진 김경일
'디자인 회사 DNC'의 대표이자 디자이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