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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Apr 03. 2019

London, It's my cup of tea! #1

나는 그때서야 앤티크 세계에 개안했다.

여행 매거진 BRICKS Trip

카페 미야 #15





 혈혈단신 떠나온 유학생들은 아등바등 학교 따라가느라, 새로운 삶에 적응한다고 치이느라, 여지없이 찾아드는 외로움을 달래느라 무언가에 골몰하게 마련이다. 다행히 런던은 늘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으니 조금만 발품을 팔아보면 인생 취미를 찾을 수도 있다. 런던은 사우스뱅크 센터(Southbank Centre), 바비칸(Barbican), 로얄 알버트 홀(Royal Albert Hall)과 같은 훌륭한 공연장도 문턱이 낮은 덕에 나는 클래식 공연에 기대어 유학 생활을 근근이 버텨냈다. 덕분에 내 책상머리는 공연 티켓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내가 2년의 짧은 영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던 해에, H가 바톤터치라도 하듯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같이 떠났으면 의지도 되고 좋았을 테지만, 그래도 4년 동안은 한 쪽이 그곳에 살고 있어 언제든 훌쩍 날아갈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찾았다. 공부를 마치고 여행자의 신분으로 다시 런던을 찾았을 때, H의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를 위로하는 것이 무엇인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그녀의 행복의 주 원천은 노팅힐(Notting Hill)이었다.





 노팅힐은 팔딱팔딱 뛰는 런던의 심장 같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낸 특유의 활기는 골목마다 스며들어 있다. 사실 노팅힐은 한때 우범 지역이었다. 1960년대 이 지역에 밀려들어온 아프리카, 카리브해 등지의 이주민들에게 지역 주민들은 위기감을 느꼈다. 그들의 피부색을 이유로 들어 각종 텃세를 부려댔으니 동네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이 일어났다. 뜯어 말리는 것도 한두 번이지, 골머리를 앓던 정부는 몽둥이는 내려놓고 차라리 질펀하게 놀도록 멍석을 깔아주는 게 어떠냐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렇게 시작된 노팅힐 카니발(Notting Hill Carnival)은 세계 10대 축제의 하나로 손꼽힐 정도로 크게 발전하였다.


 혹시라도 이 축제에 가려면 마음 단단히 잡수시길. 퍼레이드가 꽤 볼만하지만, 골목마다 진동하는 마리화나 냄새에, 거리에 굴러다니는 술병에, 성추행, 폭행 시비도 빈번히 일어나니 경찰 옆에 꼭 붙어있는 것이 신상에 이롭다. 퍼레이드가 지나는 길은 관람객 반, 경찰 반이니 그리 어렵지 않은 미션이다. (영국에 살면서 그렇게 많은 경찰을 한꺼번에 본 적은 처음이었다.)



 노팅힐을 로맨틱 성지로 바꿔놓은 것은 바로 영화 「노팅힐」이다. 포토벨로 마켓(Portobello Market)에서 마주치는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은 헐리웃 대 스타마저 사랑에 빠지게 했다. 빌 위더스Bill Withers의 쓸쓸한 목소리 “Ain’t no sunshine” 이 흐르던 그 장면. 휴 그랜트의 모습을 더욱 처량하게 만든 것은 그가 실연으로 속이 썩어 문드러지거나 말거나,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활기 넘치는 포토벨로 마켓이었다. 내리치는 눈발에 옷깃을 여미며 지나치던 과일 가게, 식료품 가게, 꽃 가게들이 기억이 나는지? 그 길 끝에는 포토벨로 마켓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앤티크 가게들이 주욱 늘어서있다.


 은수저, 그릇, 찻잔, 카메라, 지도, 가방, 그림, 조각, 책 등 갖가지 골동품을 뒤적이다 보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매주 토요일이면 골동품 판매상들이 가판을 세우고 따끈따끈한 '신상'들을 내놓는다. 적당히 쌓인 먼지만 후후 떨어내면 100년이 훌쩍 넘어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우아한 자태를 발견할 수 있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느 집 찬장 안에 숨었다가 다시 세상 빛을 보려고 나왔을까. 보물찾기하는 맛에 빠져 주말마다 노팅힐을 어슬렁대다, H는 그만 찻잔에 꽂혀 문양과 모양만 보고도 브랜드와 역사를 줄줄 꿰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녀의 방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비좁은 방을 가득 채우고 있던 앤티크 찻잔들이었다. 혼자 사는데 왜 찻잔이 100개나 필요하냐 물으신다면, 세월을 거스르는 우아미, 세련미, ‘귀욤미’ 등 찻잔마다 내게 주는 기쁨이 제각각인데 어떻게 데려오지 않을 수 있냐고 되물을 것이다. 유학생이 무슨 돈이 있어서 그렇게 사댔냐 물으신다면, 이태원 앤티크 거리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두 눈 질끈 감고 지갑을 열어야만 데려올 수 있는 아이들이 반의 반도 안 되는 가격에 눈앞에서 방실대는데 안 사면 손해 아니겠는가로 귀결되어 죄책감도 없었다 할 것이다.



 H의 앤티크 찻잔 예찬론에 감화되어 나도 포토벨로 마켓에 따라 나섰다. 그녀는 마켓을 수차례 오가며 알아낸 가장 질 좋고 가격도 괜찮은 판매상에게로 나를 이끌었다. 그녀의 추천으로 Made in England가 선명히 박힌 로얄 알버트(Royal Albert), 안슬리(Aynsley), 스포드(Spode)의 티팟, 티컵 트리오 세트를 손에 쥐었다. 이 브랜드들은 여전히 영국에서 한 자리 차지하는 것들로, 지금은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해 해외로 공장을 이전했다 하니 더욱 Made in England에 집착하게 됐다.


 거뭇거뭇 먼지 앉은 아이들 데려다가 베이킹 소다로 빡빡 씻어 고운 얼굴 반짝 드러내는 재미가 첫째요, 백 마크(Back Mark)를 따져보니 80세 훌쩍 넘은 할머니임에도 짱짱한 미모에 감탄하는 재미가 둘째요, 싼 가격에 데려왔으니 아낌없이 실전에 투입하여 홍차를 우려내 날렵한 찻잔에 입술을 갖다 대는 재미가 셋째다. '앤티크=중고' 정도의 얄팍한 인식이 있었던 나는 그때서야 앤티크 세계에 개안을 했다. 그렇게 드나들었던 노팅힐인데 왜 이 재미를 이제야 알았나 2년간의 영국 생활이 무지몽매한 나날로 규정되기에 이르렀다.



 영국인의 홍차 사랑은 유별나 한때 세계 홍차 생산량의 60%를 소비하던 나라였으며, 그 사랑이 지나쳐 아편 전쟁, 보스턴 차 사건 등 비극까지 몰고 온 전력이 있다. 우리 식의 “라면 먹고 갈래?”가 "A cup of tea?"(영화 '노팅힐'에서도 휴 그랜트가 줄리아 로버츠에게 계속해서 던지는, 그로서는 최선의 수작이다)일 정도이니, 엄청난 홍차 소비량에 따라 다기(茶器) 산업 또한 발달하여 중국을 제치고 도자기 종주국의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지금도 영국의 찻잔은 좋은 품질에 질리지 않는 세련된 디자인으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그냥 보내기 아쉬워, 울고 있어도, 파파라치에 쫓겨 도망가도 "cup of tea?"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등 쟁쟁한 나라에 비하면 관광지로는 조금 빈약해 보이는 듯한 영국이지만, 여행의 테마를 '쉼표'로 한다면 영국이 단연 선두에 나설 만하다. 그중에서도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만큼 훌륭한 것이 없다. 하지만, 이름 그대로 오후에 마시는 차 한 잔 정도로 생각하면 오산, 까지는 아니고, (모든 것을 그렇게 생각하면 자칫 인생이 심심해 질 수 있으니) 애프터눈 티에 담긴 영국 문화를 헤아리고, 나아가 격동의 제국 시대 아래 유럽 대륙 문화의 집약체를 경험해 본다는 마음으로 즐겨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Nikos Roussos


2편에 계속




글/사진 miya

런던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옥스퍼드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지금은 서울 체류자. 대륙을 가리지 않고 오지를 휘젓고 다녔지만, 이제는 카페에 나른하게 앉아 일기를 쓰고 엽서를 쓴다. 창밖을 바라보는 맛이 더욱 좋아져 걷기도 싫어져 버린. 아니, 아니, 나이 때문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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