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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BRICKS Apr 09. 2019

이상한 나라 포틀랜드의 파웰북스

"이게 우리만의 방식이고 삶의 가치야."

여행 매거진 BRICKS Trip

서점이 들려주는 책 이야기 #1





 시애틀에서 기차(AMTRAK)를 타고 3시간 반 만에 포틀랜드 유니온역에 도착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구름에 잔뜩 가려진 하늘은 내가 상상한 겨울의 포틀랜드, 딱 그 이미지였다. 몽롱하면서도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 마치 앨리스가 토끼굴로 따라 들어가 이상한 나라에 도착했을 때처럼. 처음 마주한 광경이 맑은 하늘이었으면 그런 생각을 했을까, 모든 게 신비롭고 묘하기까지 한 포틀랜드야, 어쨌든 반갑다, 드디어 널 만났구나, 조용히 마음속으로 읊조리며 미소 지었다.



 포틀랜드를 가야겠다고 생각한 결정적인 이유는 단순했다. 자연과 도시가 공존한 지역이어서도 아니고 TaxFree가 매력적이라서도 아니다. (참고로 포틀랜드는 세금이 없는 지역이다) 작은 동네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서점 주인으로서 포틀랜드의 파웰북스에 가보고 싶었다.


 킨포크 매거진을 본 사람이라면 자연 친화적인 포틀랜드의 라이프 스타일에 끌려 한번쯤 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 직접 재배한 유기농 식재료로 친환경 밥상을 차리고 이웃과 소소한 일상을 보내는 잡지 속 포틀랜드 사람들의 모습은 ‘포틀랜드가 대체 어떤 곳’인지 궁금해 하게 했으니까. 그러나 이번 여행은 서점탐방이 목적이므로, 소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시간을 잘 분배해야 했다. 



 첫날은 오후 늦은 무렵 도착했으니, 저녁을 먹고 숙소로 들어가 내일을 위해 충전하는 시간을 가져야지, 대체 이곳의 매력이 무엇이기에, 왜 특별하다고 하는지 내 눈으로 검증하고 말테다, 그런 생각으로 이른 저녁을 먹을 겸, 포틀랜더들이 사랑하는 고층 전망 좋은 레스토랑에 갔다. 입구에 들어서자 길거리가 한산했던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해피아워 시간에는 저렴한 가격에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즐길 수 있어 사람들이 늘 북적인다) 빈 테이블이 없어 한참을 헤매다 결국 현지인들과 합석을 하게 되었는데, 낯선 나라에서 온 우리가 여기 올 줄 미리 알았던 것처럼 반겨주고 메뉴까지 추천해준 덕분에 ‘첫 음식을 실패하면 여행이 순탄치 않다’는 슬픈 공식을 피할 수 있었다. 



 맥주 한 잔을 들이켜고 어둑해진 거리를 걷는데, 저 멀리서부터 시선을 사로잡는 문구가 있었다.  


 “KEEP PORTLAND WEIRD” 


 ‘포틀랜드의 독특함을 유지하자’라니, 이것이 말로만 듣던 포틀랜드 감성이라는 것인가. ‘힙스터들의 도시’, ‘DIY와 창조의 도시’라는 수식어가 떠오르며 동시에 드는 생각은 “자부심이 굉장하다”였다. 얼마나 이 도시에 애정을 갖고, 자부심마저 있으면 이런 비공식 슬로건을 만들 수 있을까. 독특함과 개성을 추구하면서도 그들만의 것을 지키고 발전시키려는 의지가 글자 너머로 강하게 전해졌다. 게다가 홈리스들은 왜 이렇게 당당한지. 유명한 도넛 가게 문 앞을 가로막은 홈리스들은 타인의 시선이라고는 조금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내가 불청객 같아 보였다. 



 첫날밤의 강렬했던 기억 때문인지, 서점탐방의 기대감 때문인지 밤새 뒤척거리다 아침을 맞이했다. 포틀랜드의 랜드마크인 에이스 호텔 내부에 있는 스텀프 커피에서 가볍게 커피와 빵을 먹고 나서, 직접 로스팅한 신선한 원두에 포틀랜드 효과까지 더해진 커피에 올해 최고라는 극찬을 붙이며 선물용 원두를 살뜰히 구매했다. 



 비가 한두 방울. 몇 블록을 걸어 파웰북스Powell's Books에 도착했다. 파웰북스는 1971년에 세워진 세계에서 가장 큰 독립서점이다. 포틀랜드 여행자라면 책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들리는 코스이며, 도서 목록만 백만 권이 넘는다. 서너 시간이면 충분할 거란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고 점심에 들어가 7시간 만에 그것도 ‘오늘은 이쯤하고 내일 오자’며 아쉽게 서점을 나왔다. 그 뒤로도 이틀 내내 출근했다. 


 입구에서 본 파웰북스는 블록 하나를 통째로 채울 만큼 엄청난 규모(약2,000평)였다. 그리고 이 안에선 저자 초청 낭독회, 사인회를 포함한 다수의 이벤트와 워크숍, 동화 구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었다. 병아리 서점을 운영하는 내 입장에선 배우고 싶은 콘텐츠가 많고, 벤치마킹을 하고 싶은 것들이 수도 없었다. 규모의 차이가 자꾸 현실 가능성을 떨어뜨리긴 했지만.



 파웰북스의 대표적인 특징은 9개로 나누어진 섹션(컬러로 구분) 안에서 카테고리를 분류별로 세분화 했다는 점과 직원들의 큐레이션(직원 추천책, 책 소개 등)이었다. 게다가 상태 좋은 중고 책을 손쉽게 구할 수 있고, 심지어 다 읽은 책을 판매하는 곳이 별도로 있다. 수요자가 공급자가 되는 형태로 책을 사고파는 행위가 자유롭게 이루어지다 보니 지역주민들에게 파웰북스는 도서 장터이자 문화를 향유하는 공간이었다. 


 책을 사지 않더라도, 파웰북스를 찬찬히 둘러보는 것만으로 왜 포틀랜드가 특별한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근무하는 모든 직원이 기본적으로 책을 좋아하며, 손 글씨로 적힌 직원 추천 코멘트엔 애정이 듬뿍 묻어 있었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알리고 홍보할 수 있도록 곳곳에 마련해 놓은 진열대에선 ‘이게 우리만의 방식이고 삶의 가치야’라는 지향점과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늘 막연하게 그려 본 유토피아가 이런 모습일까. 유토피아의 현실판 버전이라 말하는 것이 적합할지는 모르겠지만(이면의 모습도 많기에, 가령 대마초가 합법화라 약간 취해 있는 듯한 사람들이 많았다.) 흡입력 강한 괴짜 도시인건 분명했다. 



 파웰북스에서 사온 에코백을 우리 서점에 걸어 놓자 하루 만에 소진될 만큼 인기가 많았다.  또 만날 수 있겠지, 포틀랜드, 이상한 나라로 다시 걸어들어 갈 날을 그려 본다.  





글/사진 이유리

성산동에서 책방 '그렇게 책이 된다'를 운영합니다.

http://instagram.com/becoming_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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