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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Apr 28. 2020

저, 저, 하는 사이에

시가 오는 로마

여행 매거진 BRICKS City

시가 오는 로마 #2





저, 저 하는 사이에 / 이규리

그가 커피숍에 들어섰을 때 
재킷 뒤에 세탁소 꼬리표가 그대로 달려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왜 아무도 말해주지 못했을까
그런 때가 있는 것이다
(중략)
7년간의 연애를 덮고 한 달 만에 시집간 이모는 
그 7년을 어디에 넣어 갔을까
그런 때가 있는 것이다
아니라 아니라 못하고 발목이 빠져드는데도
저, 저, 하면서
아무 말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그런 때가 
있는 것이다


-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문학동네, 2014)




저는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마주하는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살면서, 이곳에 오는 한국 여행객들에게 로마를 소개하는 가이드입니다. 때때로 손님들이 물어봅니다. 


“어쩌다 여기에서 가이드를 하게 되었어요?” 


이 ‘어쩌다’라는 단어의 어감이 참 재미있습니다. 처음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에는 조금 무례하게 느끼기도 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일의 가치가 낮다고 여겨서 저런 질문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익숙해지고 나니 순수한 호기심에 툭 튀어나온 말일 때가 더 많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질문을 받으면 마음 상하지 않고 “그러게요. 어쩌다 여기서 이러고 있을까요. 하하하”하며 지나갑니다.


어제는 바티칸 투어를 진행했습니다. 가족, 신혼부부, 학생 등 다양한 손님들이 많았는데, 70대 노부부가 있었습니다. 열 시간 동안의 투어라서 체력적으로 힘들 수 있는 데도, 투어를 하는 내내 잘 따라와 준 고마운 분들입니다. 그분들이 끝날 때 저에게 물어보시더군요. 


“가이드 선생님은 어쩌다 여기에 오게 되셨어요?” 


오랜만에 이 질문을 받아서 그런지, 아니면 이분들의 눈빛이 맑고 고와서인지 ‘내가 정말 어쩌다 여기에 있게 된 걸까…’ 하고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대학교에서는 언어학을 전공하고 심리학을 이중전공했습니다. 이렇게 소개를 하면 이중전공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냥 전공이 두 개라 배울 것이 많아 학교를 오래 다녔다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그리고 대학교 3학년 때 인문학 육성 사업을 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학교에서는 장학 사업을 펼치는데, 제가 그 사업의 장학생이 됩니다. 인문학과 대학원에 진학하면 졸업하기 전의 1년, 그리고 석사 과정 동안 장학금을 지원해주겠다는 사업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지원금을 받으며 학교생활을 했고, 해외 유학 지원금까지 받아서 일 년간 일본 간사이 대학교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합니다.


사주에 흙이 많아서 나무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물이 많은 섬나라로 가서 그런지(?) 일본에서 저는 우울증과 섭식장애를 겪게 됩니다. 나갈 수 없는 큰 섬에 홀로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시인 친구를 만납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학점을 채우며 졸업 준비를 하고, 대학원에 갈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우울증이 낫지 않았고, 섭식장애도 치료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제 몸에 대해 자신감이 없었고, 사람들을 만나기가 두려웠습니다. 무엇보다 삶에 대한 의욕이 없었습니다. 이 상태에서 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대학원에 가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결국 저는 대학원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자취방을 정리하고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의 온기였는지, 우울증 치료제였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집에 돌아와서는 병원에 다니며 우울증 치료제를 복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섭식장애를 이겨내기 위해  미술치료를 받았습니다. 미술치료를 하는 곳이 집에서 한 시간 반을 가야 하는 먼 거리였고, 나의 병을 마주한다는 것이 겁이 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제 마음을 알고 친언니는 그 먼 길을 함께 해주기도 했습니다. 이 노력들이 효과가 있었는지 제 몸에는 살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언니와 작은 테이크아웃 커피 가게를 엽니다. 동네에 있는 서점 안에 작은 카페를 열었습니다. 원래 카페를 여는 것은 언니의 꿈이었습니다. 우연하게 시작하게 된 이 카페가 집에서 우울함에 침잠하고 있던 저에게 새로운 세상의 풍경을 만나는 기회를 줍니다. 마음에도 살이 찌기 시작하며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다시 사회에 나가기로 결심했습니다. 호텔 예약 플랫폼 회사에 취직을 했습니다. 이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회사의 시스템은 저와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 달 만에 퇴사를 합니다. 그리고는 인도로 떠났습니다. 제가 대학교 졸업여행으로 늘 꿈꿔오던 곳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요가 좋아했기 때문에 인도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요가 수련원인 아쉬람에서 요가 수련을 하고, 한 달간 머물렀습니다. 그때의 일기들을 모아서 시인 친구와 함께 책을 만들었습니다. 


독립출판으로 책을 한 권 만들기 위해 출판사 신고를 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책을 더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언니와 함께 연 카페를 지키며 앉아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손님이 없는 카페에서 주인의 마음을 기록해보자는 마음으로 『오늘도 손님이 없어서 빵을 굽습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만들었습니다. 참 즐거운 날들이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할 것이 있다는 것,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 나의 가치를 내가 안다는 것이 앞으로의 인생도 기대해볼 만하다고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글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써야 할까, 그것이 어려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기에는 내공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다양한 삶을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또 마음 한편으로는 그저 떠나고 싶기도 했습니다. 아직 서른이 되지 않았으니까,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알아보던 중, 이탈리아의 투어 회사에서 가이드를 모집하는 공고를 봤습니다. ‘아, 이거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합니다. 워킹홀리데이를 찾던 중에 갑자기 해외 취업을 하게 되다니…….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갈 날을 기약할 수 없어, 로마에서 어떻게 하면 자리를 잡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손님들께 들려드릴 수는 없습니다. 이십 몇 년을 산 저의 최근 몇 년조차도 이렇게 풀어보면 몇 단락이 넘어가는데, 저에게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 물어보셨던 70대 노부부의 이야기는 얼마나 길까요? 그 이야기를 다 듣는다고 그 사람의 삶을 온전히 알 수 있을까요? 어쩌면 삶이라는 것은 ‘저, 저, 하는 사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한껏 진지합니다. 누군가의 현재를 마주하며 ‘어쩌다 그렇게 살게 되었나요?’ 했을 때, 그 사람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순간들, 그 순간들에 느꼈던 감정들, 그 지난한 과정들을 제가 감히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대학원에 가겠다던 언어학과 장학생이 갑자기 로마에서 가이드가 되어 있을 때, 7년 동안 연애를 한 이모가 갑자기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70대의 노부부가 둘이서 유럽여행을 하고 있을 때…….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이 최선일 때가 있습니다. 저, 저, 하는 사이에 흘러가버리는 것이 삶이고, 그에 대한 대답도 침묵일 때가 많습니다. 침묵이 우리를 감쌀 때 그것이 서로의 진지한 삶에 대한 최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글/사진 박무늬

대학교에서 언어학과를 졸업한 후, 취업이 막막하고 의욕도 없어서 작은 카페와 독립출판사를 차렸다. 친구와 함께 첫 번째 책 『매일과 내일』 을 내고, 출판사 사업 신고한 것이 아까워서 두 번째 책 『오늘도 손님이 없어서 빵을 굽습니다』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계속 글을 쓰고 싶은데, 경험이 부족한 것 같아서 이탈리아 로마에 왔다. 현재 유로자전거나라 회사에서 투어 가이드로 일하며, 사람과 삶에 부딪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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