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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Aug 28. 2020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프랭크 오션

『음악을 입다』, 못다한 이야기 

책 『음악을 입다』에 미처 싣지 못한 데모 데이프.

지금 가장 주목받는 뮤지션 프랭크 오션의 음악과 티셔츠에 관한 이야기.



내가 더 어리겠지만, 당신을 돌봐줄게요
우리가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당신과 자 줄게요
당신이 여기 없을 때, 내가 당신을 위해 저축 좀 할게요
나는 그가 아니지만 당신에게 뭔가 의미가 되어줄게요
내가 당신에게 뭔가 의미가 되어줄게요
내가 당신에게 뭔가 의미가 되어줄게요
내겐 룸메이트가 있어서 우리가 뭘 하는지 들을 거예요
당신이 그 녀석이랑 정분이 나면 그저 어색할 거예요

- 프랭크 오션, 〈Nikes〉 가사 중




#오늘의티셔츠


프랭크 오션Frank Ocean의 티셔츠를 사기 위해 한 시간 정도 온라인의 바다ocean를 돌아다녔다. ‘아재 개그’ 같은 표현이지만 정말 그랬다. 가품을 파는 판매자들로 수두룩한 ‘알리익스프레스’를 훑어보는 재미 때문에 시간은 금방 흐른다. 그곳엔 천 원에서 만 원 정도에 살 수 있는 뮤직 티셔츠들이 부유한다.


눈요기만 실컷하고 저렴한 가격의 유혹을 뿌리친 후 끝내 인터넷 창을 닫았다. 결국은 해외배송인데다, 분명 조악한 품질일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그리고 꾸역꾸역 어렵게 찾아낸 프랭크 오션의 라이센스 티셔츠를 구입했다. 티셔츠 장만 기념으로 유튜브에서 프랭크 오션을 찾아보려 검색하니, 의외의 영상 클립이 올라와 있었다. 어느 클럽에서 프랭크 오션이 라디오헤드의 〈Fake Plastic Trees〉를 짧게 부른 영상이었다. 나는 평소 프랭크가 라디오헤드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이 영상에 추측은 확신이 되었다. 새삼 〈Fake Plastic Trees〉의 노랫말이 의미심장했다.


녹색의 플라스틱 물통
이 가짜 플라스틱 지구의
중국제 가짜 고무 공장에서
그런 것이 그를 지치게 해...


방금 전에 알리익스프레스를 헤매다 나온 나와 같은 이들을 위한 발라드로 들렸다.


하지만 라디오헤드나 프랭크 오션이나 공식 라이센스 티셔츠 또한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과 순식간에 품절되는 재고로 인해 곧잘 팬들을 지치게 한다. 가끔씩 알리익스프레스 같은 바다를 헤매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가짜플라스틱나무 #언제나품절의티셔츠





 오렌지. 그 빛깔을 ‘오렌지색’이라고 표현하는 것 외에 다른 적합한 말이 있을까? 백과사전에 언급된 ‘주황빛’이라 하기에도 좀 맞지 않고, 붉은색과 노란색이 적절히 섞인 그 어느 중간 계열의 색이라고도 하지만, 오렌지의 빛깔은 그저 ‘오렌지’, 혹은 ‘오렌지색’이라 해야 그 자체로 오롯한 빛을 발한다.


 열아홉 살 프랭크 오션이 첫사랑을 만나 여름 한때를 보냈을 때, 그에게 줄곧 떠오른 색이었다. 첫사랑은 남성이었다. 이 이야기는 그가 텀블러를 통해 밝힌 것으로, 당시 공식 앨범의 출시와 함께 이미 그전부터 주목 받아 온 미래의 스타가 쏟아 부은 센세이션이자, 자극적 가십에 굶주린 미디어들에게 던져진 근사한 떡밥이었다. “자, 이 친구는 동성애자냐, 아니면 양성애자냐? 어떻게 다뤄줄까?”


 ‘색공감각’이라는 말이 있다. 인간의 오감 중 하나에 자극이 주어졌을 때 그 자극이 다른 영역의 자극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공감각이라고 한다. 어떤 숫자나 문자, 상황을 보거나 경험할 때 그것을 특정한 색으로 인식한다면 공감각 중에서도 색공감각이 된다. 오렌지. 첫사랑과 여름은 그의 첫 공식 앨범의 제목이 되었다. 《Channel Orange》.


 내가 프랭크 오션이라는 아티스트에 대해 기억하는 첫 이미지도 바로 오렌지였다. 어느 잡지를 뒤적거리다 그의 데뷔 앨범 《Channel Orange》를 화제의 출시작으로 소개하는 기사를 보았다. 앨범 제목과 디자인을 보고 백인 댄스 뮤지션이겠지 생각했는데, ‘의외로’ 흑인 아티스트였다. 상투적으로 작동하는 연상 작용. 내 일상의 편견들은 흑인 음악과 오렌지색 조합을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 R&B나 소울 음악에 색이 따라 붙는다면, 그것은 조금 어둡거나 원색 계열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만큼 그가 전면에 들고 나온 오렌지는 의외였고, 그래서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랭크 오션은 미국 NBC방송의 유명 TV프로그램 「새터데이나잇 라이브」에 게스트로 나와 《Channel Orange》 앨범의 두 곡을 불렀다. 〈Thinkin’ Bout You〉와 〈Pyramids〉.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의 진면목을 가늠하기엔 충분한 라이브였다. 두 곡 모두 존 메이어가 기타를 쳤는데 특히 〈Pyramids〉에서 후반부를 장식하는 솔로 연주는 솜씨 확인 차원을 넘어 프랭크 오션이 만들어낸 풍경을 가득 채워주었다. 무대의 배경은 아케이드 게임기로 가득했고, 자신의 보컬을 마친 후 존 메이어가 블루지한 솔로를 연주하자 그는 무심한 듯 게임기 앞에 앉아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테마와 전략이 있는 데다, 고집 있어 보이는 무대 연출. 남다른 감각이 있는 아티스트였다.


 그로부터 4년, 2016년 그는 두 번째 공식앨범 《Blonde》를 발표했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이 앨범을 라디오헤드의 《Kid-A》에 비견하기도 했다. 기존 흑인음악의 문법에서 벗어나, 사이키델릭, 팝, 소울, 재즈, 펑크, 일렉트릭의 음악적 요소들의 전례 없는 실험적 조합이었다. 대중들도 반겼지만, 평론가들도 상찬일색이었다. 어느 평론가는 멜로디 감수성 측면에선 마빈 게이와 스티비 원더를 연상시키고, 일부러 긴장감을 뺀 느슨한 곡의 구조에선 디안젤로나 맥스웰, 에리카 바두 등을 떠올리게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평가는 뒤늦게 찾아본 것이고, 이 앨범의 진가는 3년이 넘은 지금에서야 곱씹어가며 느끼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찾게 되는 곡 순서도 바뀌었다. 라디오헤드의 《Kid-A》의 ‘참맛’이 몇 년 지난 후에야 다가온 것처럼.


 프랭크 오션의 자타공인 ‘필살기’는 바로 가사다. 지나치게 자의적인 내용의 독백으로 독해가 어려운 곡들이 적지 않지만, 날 서고 섬세한 감성으로 짝사랑, 섹스, 갈망, 타락, 사회계급을 이야기한다.


 2016년 미국 올랜도의 게이클럽에서 49명이 살해되는 총기 참사가 발생했다. 그는 그 사고에 대한 충격과 좌절, 위로의 메시지를 담은 에세이를 발표했다. 이 글에서 그는 여섯 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동성애 혐오자라는 것을 알게 됐고, 아버지와 같은 이들의 생각과 말 때문에 수많은 동성애자들이 자살 충동을 느껴왔다고 말한다. 일찌감치 절연했다는 그의 아버지는 그가 자신을 동성애혐오자라 명예를 훼손했다며 약 150억 원 소송을 제기했다. 증거 불충분으로 법정에서 기각 당하긴 했으나 프랭크 오션의 애정 결핍엔 분명 아버지의 악영향이 존재했다. 브라이언 윌슨, 마빈 게이, 마이클 잭슨이 그랬던 것처럼.


 《Blonde》 앨범의 출시와 함께 그는 360페이지에 달하는 잡지 「Boys Don’t Cry」를 발간했다. 패션과 자동차를 주제로 한 특별판 잡지로, 울프강 틸먼, 비비안 사센, 타이론 르본, 렌 항, 할리 위어 등과 같은 세계적인 사진작가들의 작품을 수록했고, 오션 자신의 사진작품도 실었다. L.A, 뉴욕, 시카고, 런던의 팝업 스토어에서 무료 배포된 이 잡지는 몇 달 후 이베이에서 1,000달러에 거래될 정도로 품귀 현상을 빚었다. 곧이어 영국의 사진 잡지 「Print」에서도 「Boys Don’t Cry」에 수록되지 않은 오션의 다른 사진들을 게재했다. 스타 뮤지션이라는 후광 덕도 있겠지만, 「보그」 또한 뉴욕에서 열리는 연례행사 메트 갈라에 그를 뮤지션이 아닌 사진작가 자격으로 초청했다.


 스타일리스트 프랭크 오션의 티셔츠는 어떨까? 기대감에 차서 그의 공식 홈페이지(blonded.co)를 찾아보면 다소 실망하게 된다. 상시 판매하는 아티스트의 공식 티셔츠나 머천다이즈는 없다. 시즌 판 티셔츠가 비정기적으로 업데이트되지만, 웬만해선 전부 ‘품절’이다. 어쩌겠는가? 이 또한 아티스트가 추구하는 하나의 이미지 관리 방식인데.


 2018년 11월, 미국의 중간선거를 앞두고 애플이 운영하는 라디오 방송 ‘비츠 원Beats 1’의 시즌 프로그램 「블론디드 라디오」에 호스트로 나온 프랭크 오션은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스윙 스테이트(미국에서 정치적 성향이 뚜렷하지 않은 부동층을 이르는 말)인 휴스턴, 애틀란타, 마이애미, 달라스 네 곳에 있는 이들이 투표했다는 증빙(사진 등)을 보여줄 경우 자신이 특별 제작한 티셔츠를 무료로 주겠다는 약속이었다. 트럼프와 공화당을 혐오했을 리버럴 성향의 공개적 동성애자로서 정치적 참여 정신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적인 에피소드였고, 동시에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그의 팬들에겐 반가운 선물이었을 것이다. 한편 그 조건부 티셔츠가 이베이 등에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아이템으로 올라온 것을 보면 씁쓸한 기분이 든다. 나중에 그는 인터뷰에서 이런 소회를 남겼다.


저는 우리가 여전히 어떤 가능성에 대해 비관적인 태도를 취할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진행한 프로젝트가 영향력 있는 한 유명 아티스트로서의 ‘책임감’ 때문이었냐는 것에 대해) 전 투표에 관해서는 “책임감”이라는 말을 “기회”라는 말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우리에겐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도 있지만, (투표를 통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있기 때문이죠.


 국내 온라인 쇼핑몰에서 글로벌 배송대행으로 《Blonde》 앨범의 커버 이미지가 프린트된 화이트 티셔츠를 판매하고 있었다. 기대했던 만큼 근사한 티셔츠였다. 이제 그의 내한 공연만을 기다리고 있다.


 절창과 본능적 그루브, 게토와 소외를 토로하는 원초적인 외침이 블랙의 코드였다면, 프랭크 오션은 음악 신에 새로운 지평과 가능성을 가져오고 있다. 넷플릭스의 한 인기 드라마 제목을 살짝 틀어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블랙은 새로운 오렌지다Black is the New Orange.”




바로 이 앨범: 《Blonde》



2016년에 발표한 두 번째 공식 스튜디오 앨범이다. 《Channel Orange》에 비해 좀 더 추상적이고 가라앉은 분위기의 곡들로 구성되어 있는 이 앨범은, 내레이션과 전자 효과음, 느슨한 멜로디 등이 만들어 낸 사운드 합이 전례 없이 독창적이어서 R&B나 팝 앨범으로 규정하기 어렵다.


몇 년간의 감상을 돌이켜보니, 나는 첫 곡 하나만으로 이 앨범이 걸작이란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수록곡 모두 개성이 살아 있고, 어느 곡 하나 예사롭게 넘어가지 않는다. 안드레3000과 비욘세 등의 스타들이 객원 보컬로 참여했고, 말레이와 퍼렐 윌리엄스, 제임스 블레이크, 존 브리온 등이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이 앨범의 출시 전날, 이전 소속사였던 데프 잼과의 최종 결별을 위한 계약 조건을 채우기 위해 다른 곡들을 담은 비디오 앨범 《Endless》를 스트리밍 형식으로 발표했는데, 이마저도 뛰어난 앨범이다. 사정이 있어 각기 선보인 두 앨범이 결국 팬들에겐 일종의 ‘더블앨범’ 패키지가 되었다.


피치포크는 《Blonde》를 2019년 최고의 앨범에 선정했다.




『음악을 입다』, 백영훈 지음


더 많은 음악과 뮤직티셔츠를 단행본 『음악을 입다』에서 읽어보세요!


<책 링크>

교보문고 :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91190093095&orderClick=LEa&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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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6865033

반디앤루니스 : http://www.bandinlunis.com/front/product/detailProduct.do?prodId=4353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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