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Sep 03. 2020

수수께끼 같은 음악의 집, 카사 다 무지카

가장 완벽한 콘서트홀

여행 매거진 BRICKS Trip

88일간의 건축기행  #3





 건축을 테마로 여행하기를 권한다. 나처럼 건축을 잘 모르는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답사를 핑계로 평소라면 가지 않았을 장소를 체험할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 건축 답사는 역사•종교적 건물보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공간을 경험할 수 있다. 알바로 시자의 첫 번째 건축물인 보아 노바Boa Nova 레스토랑을 본다는 핑계로 포르투 바닷가 절벽 위에서 미슐랭 셰프의 디너를 즐기고, 12명의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개성이 담긴 마드리드의 푸에르타 아메리카 호텔Hotel Puerta América을 답사한다는 핑계로 ‘자하 하디드 디럭스 룸’에서 하룻밤을 묵는 것처럼.


 렘 쿨하스의 건축을 보러 간다는 핑계로 피아니스트의 독주회를 감상한 것도 그런 종류의 기쁨이었다. 포르투 보아비스타 지역에 있는 카사 다 무지카Casa da Música는 세계 최고의 어쿠스틱 음향을 자랑하는 ‘음악의 집’이다. 



도시의 새로운 수수께끼


 카사다 무지카에 가려면 메트로를 타고 동명의 역 Casa da musica에서 하차하면 된다. 출구가 어디인지 확인할 필요도 없다. 지하철역을 빠져나오자마자 기하학적인 덩어리가 보이기 때문이다.


 카사 다 무지카는 보아비스타 광장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보아비스타 광장은 19세기 프랑스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역사적 상징성을 가진 장소다. 초록의 화단과 나무 사이로 우뚝 솟은 이베리아 반도 전쟁 기념비Monumento a la Guerra Peninsular가 눈에 띈다. 이 광장을 중심으로 낮은 주택지구가 동심원처럼 펼쳐져 있다. 이 주변은 노동자들의 주거 지구로 형성된 곳이기 때문인지 포르투 시내보다 관광지라는 느낌이 덜하다. 특히 카사 다 무지카는 다소 뜬금없게 느껴지는 존재다. 친숙한 주거단지 사이에 외벽에 콘크리트를 드러낸 거대하고 기하학적인 콘서트홀이라니.


보아비스타 광장과 카사 다 무지카 ⓒOMA


 카사 다 무지카는 2001년 포르투가 ‘유럽 문화수도’로 선정되었을 때 세워진 문화 공간이다. 국제적인 건축 회사 다수가 프로젝트에 지원했는데, 그중에서 렘 쿨하스 건축사무소 OMA의 제안이 채택되었다. 네덜란드 출신의 건축가 렘 쿨하스는 서울대 미술관 MoA와 삼성 아동교육문화센터의 설계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의 제안의 핵심은, 오래된 도시와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건물이었다. 도시에 흐릿하게 세워진 비슷비슷한 건물이 아닌,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독특하고 색다른 건물을 짓자는 것이었다. 그의 제안이 받아들여진 후, 포르투 시와 유럽연합의 예산이 투입되어 2005년 카사 다 무지카가 완공되었다.



 카사 다 무지카는 영국 왕립건축가협회가 제공하는 스털링 상을 받기도 했다. 당시 심사평 중엔 이런 말이 있다. “포르투의 도시 형태에 생소하고 수수께끼 같을 뿐 아니라 강력한 흥미의 대상으로서 또 다른 현대적 역할을 수행한다” 확실히 부조화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카사 다 무지카는 수수께끼 같고 생소하다. 그러나 흥미와 주목을 끄는 다이내믹한 건축물임에는 틀림없다.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는 독특한 다면체에 주목하는 것이 필수다.


카사 다 뮤지카의 기하학적 매시브를 표현한 굿즈들



완벽한 공연장의 비밀, 신발 상자


 독특한 외관만큼 카사 다 무지카의 내부 구조도 특이하다. 쉽게 설명하자면, 커다란 직육면체의 신발 상자가 메인 콘서트홀이자 카사 다 무지카의 중심추다. 사실 렘 쿨하스는 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공간을 만들고 싶어 했으나 콘서트홀의 기능성을 고려할 때 신발 상자 형태가 음향적으로 최적이기에 어쩔 수 없이 적용했다고 한다. 신발 상자가 들어가고 남은 공간에는 레스토랑, 리허설룸, 녹음실, 휴게실 등 각기 다른 공간들이 조각조각 숨어 있다. 


신발상자와 작은 조각들이 숨어있는 카사 다 무지카의 구조 ©OMA


 그래서 카사 다 무지카의 내부 동선은 무척 창의적이다. 일반적인 콘서트홀에 있는 로비 공간도 없다. 대신 변덕스러운 계단이나 시야가 좁아졌다가 다시 확장되는 경사로 같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마치 재미있는 산책로를 걷는 느낌이다. 투명한 유리가 레이어처럼 겹친 창문은 햇빛이 들어옴에 따라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렘 쿨하스의 아버지는 영화학교 교장이고, 그도 전직 시나리오 작가였다. 전통적인 건축학도와는 다른 길을 걸어온 렘 쿨하스. 그래서일까, 누군가는 이 공간이 장면마다 스케치가 달라지는 영화 같은 공간이라고도 말한다. 


카사 다 무지카의 영화같은 통로 / 아래사진 ©위키피디아


 답사의 가장 큰 핑계가 되어준 신발 상자, 메인 콘서트홀로 향했다. 피아노 독주회를 들을 장소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양쪽 끝의 물결 모양 유리다. 구불구불한 유리는 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않고 공연장 내부에 정확히 전달되도록 도와준다. 무엇보다 아름답다. 투명한 유리 밖으로 야외의 광경이 보여 건물 내외부가 연결된 것 같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외부의 빛이 들어오는 콘서트홀이라니. 금빛 무늬로 장식된 벽은 우아했고, 넓은 스테인리스 좌석은 편안했다. 




땀 흘리는 피아니스트를 본다는 것은


 이제는 직접 음악을 들어볼 일만 남았다. 그날 예매한 연주자는 바딤 콜로덴코Vadym Kholodenko였다. 2013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이자 강한 흡입력과 뛰어난 음감으로 러시아 전통 피아니즘을 구현하는 연주자이다. 1300석이나 수용 가능한 큰 공연장에서 초대받지 않고 직접 티켓을 사서 연주를 듣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맨 앞자리에 앉았는데, 이 콘서트홀은 어디에 앉아도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물결치는 유리와 덩그러니 놓인 피아노 한 대가 마치 그림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앞자리에 앉았을 때의 장점은 피아노 연주자의 땀 흘리는 모습까지 볼 수 있다는 것이다. 1부는 익숙한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와 라흐마니노프의 프렐류드, 2부는 알렉산더 스크랴빈의 소나타가 연주됐다. 콜로덴코의 연주를 보면서 나는 이상하게 기시 마사히코가 그의 책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에서 말한 육체노동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육체노동이란 하는 도중에는 ‘덥다, 힘들다, 아프다, 춥다’라는 신체적인 감각을 일정 시간 계속 느끼는 작업이다. 고로 육체노동이란 몸을 판다기 보단 감각을 파는 행위다”


 눈을 감으면 아름답고 풍부한 선율만 들리지만, 눈을 뜨면 연주를 위해 고통스럽게, 때로는 빙의한 듯이 집중한 연주자의 얼굴과 땀이 보인다. 그간 클래식을 작업을 위한 배경음악 정도로만 듣는 사람이었는데, 콜로덴코의 연주를 보고 나니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배경음악' 정도로 듣는 게 죄송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굴곡진 유리벽 바깥으로는 포르투의 불그스름한 노을이 지고 있었다. 멋진 건축과 연주, 이 답사가 한층 더 풍부해지는 순간이었다.




시민 모두를 위한 문화 공간


 카사 다 무지카를 나올 때는 벌써 어둑해진 저녁 시간이었다. 처음 왔을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러 나온 사람들이다. 


 카사 다 무지카 주변은 평지가 아니라 인공적으로 조성된 언덕이다. 트래버틴이란 건축용 석재를 이용한 것인데, 바닥은 경주의 대릉원처럼 요동친다. 카사 다 무지카와 바닥의 곡선은 하나의 세트가 되어 색다른 도시 공간을 선사한다. 스케이트 타기 딱 좋은 구조라 어디든지 보드를 타는 사람들이 보인다. 콘서트홀은 침착하고 우아할 것 같다는 예상과 다르게 카사 다 무지카 주변은 10대 보더들의 바퀴 소리와 환호 소리, 넘어지고 일어서는 역동적인 몸짓으로 가득 차 있다.



 렘 쿨하스는 카사 다 무지카를 만들 때, 대다수의 문화시설이 소수 엘리트에게만 집중되는 현실을 지적했다. 건물 내외부로 대중과 소통하는 문화공간을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 중 하나였다. 역동적인 콘서트홀이자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어 젊은이들을 이끄는 문화 공간으로 카사 다 무지카는 보아비스타 광장 옆에 우뚝 서 있다. 도시 주민 모두를 위한 '음악의 집'이라니, 여러모로 부러워지는 공간이다. 




글/사진 사과집

한때 모범생 증후군과 장녀병에 걸린 ‘공채형 인간’이었으나, 퇴사 후 1년간 동남아와 유럽을 떠도는 여행자가 되었다. 한동안 캐리어 속에 우쿨렐레를 넣고 메콩강을 여행하는 노마드로 지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머물 때는 건축에 빠졌다. 삶과 사람을 예민하게 감각해 자주 소름이 돋는 피부를 갖는 것이 꿈이다. 2019년 첫 에세이 『공채형 인간』을 출간했다.

https://brunch.co.kr/@applezib

매거진의 이전글 두 번째 세계여행의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