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행복을 결정하는 건 경제 지표가 아니다
코스타리카의 행복지수
행복지수는 GDP 등으로 나타난 경제 지표가 실제 삶의 행복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1972년 부탄의 지그메 왕추크 왕은 시장 경제 활동에서 제외되었지만 인간의 삶에 중요한 지표, 즉 개인의 심리적 행복, 공동체 의식, 건강, 수명, 교육, 문화, 생활 수준 등을 측정한 국민 총 행복지수(Gross National Happiness)를 제시했다. 국민의 행복 증진에는 경제 성장보다 환경 보호를 염두에 둔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 문화생활 장려, 안정적인 국가 통치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경제 번영보다 환경 보전이 우선하며, 국민이 건강하고 교육 수준이 높고 국가가 안정될수록 행복지수는 높게 평가되었다.
이를 토대로 영국의 신경제 재단(the New Economics Foundation, NEF)에서 시행한 지구 행복 지수 (Happy Planet Index) 조사에서 코스타리카는 2009년과 2012년에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신경제 재단은 코스타리카가 1위를 차지한 배경에 대해, 북남미 통틀어 두 번째로 높은 삶의 질, 긴 수명과 인구당 탄소 발자국이 매우 낮은 (미국인 평균의 삼 분의 일에 불과한) 점을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유엔계발계획(UNDP)에서 매년 실시하고 있는 인간 개발 지수(Human Development Index, HDI) 또한 경제 개발만을 척도로 하는 GDP의 대안으로 제안됐다. 각 국가의 교육 수준, 평균 수명, 개인의 삶의 질 등을 수치화하여 인간 개발의 성취도를 측정했다. 이를 바탕으로 발간된 인간 개발 보고서에서 코스타리카는 2012년 세계에서 62위, 중남미 지역에서는 1위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눈여겨볼 것은 코스타리카가 비슷한 임금 수준의 국가들과 비교할 때 인간 개발 지수가 월등히 높았다는 점이다. 코스타리카는 어떤 노력을 통해서 이렇게 높은 인간 개발 지수를 자랑하게 된 것일까?
자, 시작은 이렇다. 정부에서 군대를 없애기로 했다. 국방에 쏟는 예산을 인적 개발과 의료 복지 등에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군대가 없는 나라라니, 매년 천문학적인 비용을 국방비에 쏟아부으면서도 안보 불안에 시달리는, 천문학적 방위 비리 국가 한국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휴전 상태 때문이라고? 과연 그럴까?
코스타리카가 군대를 철페한 이유
코스타리카가 군대를 철폐한 역사적 배경엔 1948년 피비린내 나는 내전이 있다. 16세기, 스페인이 무기로 남미를 정복했을 때 코스타리카는 정복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페루나 멕시코처럼 착취할 자원도 별로 없었고 니카라과나 과테말라처럼 원주민들의 인구도 많지 않아 큰 도시 건설이나 플랜테이션과 같은 대농장 경영이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덕분에 주변 국가들이 오랫동안 살육과 착취를 당하고 있을 때 코스타리카는 그 피의 소용돌이를 피해갈 수 있었다. 심지어 1719년에는 코스타리카에 파견되었던 한 스페인 총독이 코스타리카를 두고 "아메리카 대륙을 통틀어 가장 빈곤한 스페인 식민지"라고 표현할 정도로 평가 절하되었다.
코스타리카는 중미에서 가장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오랫동안 평화를 누려온 나라였다. 그러나 1917년 군부 정권의 독재가 시작되며 내전이 끊이지 않는 등 전례 없는 갈등을 겪게 되었다. 결국 1948년, 대통령 선거를 둘러싼 정치적 대립으로 인해 군부 정권과 이를 전복하려는 쿠데타 세력 간에 전쟁이 발생했고 44일 동안의 무력 대치 끝에 쿠데타 세력이 승리했다. 이 내전으로 2천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새로 구성된 민주 정부의 호세 피구레스 대통령은 이 전쟁의 잔혹함에 충격을 받고 다시는 이러한 참혹한 비극이 일어나는 안 된다는 뜻에서 1949년 11월 8일, 군대를 철폐하였다.
코스타리카의 평화주의 노선은 주변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더 나아가 중미의 안정에 공헌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특히 오스카 아리아스 전 대통령은 뛰어난 외교적 노력으로 중미 국가 간의 긴장과 갈등을 완화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7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미주 인권 재판소(Inter-American Court of Human Rights)와 내가 다니는 University for Peace(유엔 평화 대학)를 유치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코스타리카의 현재
"군대를 폐지하고 교육에 투자하자(Army would be replaced with an army of teachers)". 코스타리카는 군대를 폐지한 후 국방비에 들어갈 예산을 교육과 의료 등 국민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에 투자하고 있다. 코스타리카의 문맹률은 3.7% 이하로 중남미 지역에서는 가장 낮은 수준이고, 초등 교육은 헌법에 의무로 규정되어 있다. 고등학교까지 무상 교육을 제공하고 있으며 공립대학은 국비 지원이 많아 학비가 매우 저렴하다. 내가 속한 석사 프로그램에 열두 명의 코스타리카 학생이 있었는데 이들 모두 정부에서 전액 또는 반액 장학금을 받았다.
유엔개발계획의 2010년 보고서에 따르면 코스타리카의 평균 수명은 79.3세이다. 1941년 도입된 사회 보험제도로 국민 건강 증진에 국가가 발 벗고 나서고 있고 2000년 기준으로 코스타리카 전 국민의 82%가 건강 보험 대상자로 가입되어 있을 정도로 보급률이 높은 편이다. 국가 전체 GDP의 7%가 의료 부문에 집중되고 있으며 특히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까지 의료 서비스를 확대 실시하는 것은 물론 출생 직후 산모와 신생아를 대상으로 국가가 무상 의료 서비스를 지원해 준다.
코스타리카는 의료 수준이 매우 높다. 이에 반해 비용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그래서 관광을 왔던 외국인이 이참에 지병을 치료 받고 가는 경우도 흔하다. 2006년에 약 15만 명의 외국인이 의료 관광을 목적으로 코스타리카를 찾았다고 한다.
사회 보장제도가 반드시 국민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크게 기여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2015년 한국의 국방비는 38조원에 달했고 꾸준히 증가 추세에 있다. 이러한 천문학적 비용을 교육과 의료에 쏟아 붓는다면? 생각만으로도 흐뭇하다. 물론 위로는 북한을 접하고 있고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등 세계 군사 대국으로 둘러싸여 있는 지정학적 위험을 코스타리카와 비교한다는 것은 무리겠지만, 지금의 정부처럼 외교적 노력이나 의지 없이 국방비만 늘리는 것으로 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 진정 대한민국을 국민이 행복한 나라로 만들고 싶다면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점점 의욕을 잃어가는 요즘이다.
글 강수진
코스타리카의 유엔평화대학에서 지속가능한 개발을 전공했다.
지구별의 모든 사람이 환경친화적이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정책 입안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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