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언제나 푸라 비다
코스타리카에선 이 말 한 마디면 된다
나라마다 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 고유의 정서를 담고 있어서 다른 언어로 번역되기가 어려운 단어들이 있다. 러시아의 Toska(한, 비애 정도의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인도네시아의 Jayus(너무 어이가 없어서 터져 나오는 웃음), 일본의 わび・さび(와비사비, 불완전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삶의 태도) 등등. 코스타리카에는 단연 푸라비다(Pura Vida)라는 말을 꼽을 수 있다. 직역하면 pure life, 즉 순수한 삶이라는 뜻이지만 코스타리카에서는 거의 모든 상황에 쓰일 수 있다.
고맙다고 푸라비다, 괜찮다고 푸라비다, 네가 최고일 때도 푸라비다, 그릇이 깨져도 푸라비다, 고된 하루를 보낸 날에도 푸라비다, 인생이 아름다울 때도 푸라비다, 건배할 때도 푸라비다, 행운을 빈다고 푸라비다. 이쯤 되면 코스타리카에서는 푸라비다만 알면 됐지, 굳이 스페인어를 배울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들이 일상을 사는 법
코스타리카에 도착한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내가 앉아있던 의자가 흔들릴 정도로 강한 지진이 발생했다. 사실 코스타리카는 환태평양 화산대에 속해 있고, 이 작은 국토에 열 개가 넘는 화산이 있다. 이라수, 투리알바, 포아스, 아레날 화산은 아직도 활동 중인 활화산이다. 특히 투리알바는 가장 최근인 2015년 8월에 마지막 폭발이 있었고, 포아스는 2013년에 폭발하여 화산재와 연기가 수도인 산호세의 하늘까지 뒤덮었다고 한다.
꾸준한 화산 활동 때문에 지진도 자주 발생한다. 약 700여명이 사망한 1910년 진도 6.4 지진과 125명이 사망한 1991년 대지진이 가장 피해가 컸던 지진으로 기록돼 있다. 강도 4~6 사이의 크고 작은 지진은 일주일에도 몇 번 발생한다. 코스타리카 사람들에게 지진은 일상이지만, 나에게는 태어나서 처음 겪어본 지진이었고, 전기충격을 받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꿈쩍도 할 수 없었다. 그때 같이 있던 코스타리카 친구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푸라비다, 강도가 더 심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어떠한 상황에도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려 하는 것은 코스타리카 사람들이 일상을 대하는 자세였다. 그리고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끙끙 앓는다든가 내일을 걱정하기보다 현재를 살고 있는 지금에 충실하고 최대한 즐겁게 보내려 했다. 물론 성격 급한 한국인인 나에게 코스타리카 사람들의 느긋하고 여유만만한 자세가 조금 답답하기도 했다.
언젠가 친구들을 저녁에 초대했는데 코스타리카 친구들만 일러준 시간보다 거의 두 시간 늦게 나타나 내 속을 부글부글 끓게 만든 적이 있었다. 정성껏 음식을 차리느라 애쓴 내 마음도 몰라주고 어떻게 이렇게 늦게 나타날 수가 있지. 그런데 각자 가져온 와인을 따고 마시면서 왁자지껄 떠들다 보니 신기하게도 이 친구들이 늦게라도 와 준 것이 고맙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푸라비다, 그럴 수도 있지 뭐.
모르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 보면, 대화가 끝난 다음에도 바로 돌아서서 가던 길을 가지 않고 또 뭘 도와줄까요? 하는 친절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서 있다. 남을 도와주고 사는 것이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기라도 한지, 도움을 요청하면 거절하는 경우가 없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서로 눈이 마주치면 살며시 미소를 지어보이며 Hola하고 인사한다. 이게 습관이 되어 한국에서 이런 행동을 했다가 이상한 사람 취급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코스타리카에서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있다면, 바로 빈대에 관한 경험이다. 전에 내 방에 살았던 사람이 강아지를 길렀다고 하는데 그 때문인지 몰라도 어디선가 빈대가 나타나 몇 달 동안 가려움증에 시달렸다. 방 전체를 소독한 후에야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었지만 빈대에 물렸던 자국이 마치 수두를 앓고 난 것처럼 흉터로 남았다. 누군가 흉터를 없애는 데는 알로에가 최고라고 해서 슈퍼에 사러 갔는데 마침 그날따라 재고가 없었다. 돌아서 나오는데 한 아주머니가 자기 집에 알로에 나무가 있으니 따라오란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신세를 지려니 좀 멋쩍었지만 아주머니가 워낙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이었고 또 당장 급하기도 해서 따라가게 되었다. 한 5분 정도 걸었을까 대문이 으리으리한 커다란 집이 나왔다. 지체 없이 정원으로 간 아주머니는 엄청난 크기의 알로에를 가리키며 필요한 만큼 뽑아가라고 했다. 이파리 하나가 얼마나 큰지 성인 남성의 팔 굵기 만했다. 두 개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고 했더니 알로에를 봉지에 담아 주면서 아주머니가 푸라비다, 필요하면 또 와서 가져가, 하며 웃으셨다.
푸라비다는 좋을 때나 위기의 상황에 닥쳤을 때나 매일 인생의 높고 낮은 파고를 경험하는 나에게, 우리에게, 지나친 환희에도 절망에도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삶이 지금보다 나빠질 수도 있다는 것
오랜 전 독일에서 일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오랜만에 날씨가 너무 좋아서 독일인 직장 동료와 함께 회사 근처 카페에서 맥주를 한 잔 걸치며 점심을 먹었다. 카페는 유명한 트라베 강을 내려다보는 멋진 전망이었는데 햇빛에 강물이 반짝이는 모습과 어디선가 불어오는 포근한 바람에 거의 천국에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아져서 “this is fantastic!’을 연발했지만 정작 동료는 차분한 얼굴로 “life can be worse (이보다 더 나쁠 수도 있지)”라고 말했다. 왜 좋다는 말을 저렇게밖에 못할까,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독일인 특유의 유머감각이겠거니 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말투가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생겨났는데, 가족을 잃고 먹고 입을 것이 턱없이 부족하던 시기, 어려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최악의 상황에 놓이지 않은 것을 감사하는 길뿐이었다고 한다. 나는 삶이 지금보다 더 낫지 못하다는 것을, 남보다 더 잘 살지 못하는 것을, 오늘 하루가 완벽하지 않은 것을 아쉬워한다. 하지만 인생은 지금보다 좋아질 수도, 나빠질 수도 있다. 좋은 순간도, 나쁜 순간도 인생의 일부분이고 내일을 맞이하려면 모든 순간을 담담하고 의연하게, 여유롭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행복한 순간도 절망스런 순간도 모두 ‘순수한 삶(pure life)’의 연장이다. 기쁜 날이든 힘겨웠던 날이든, 하루는 언제나 Pura Vida다.
글 강수진
코스타리카의 유엔평화대학에서 지속가능한 개발을 전공했다.
지구별의 모든 사람이 환경친화적이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정책 입안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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