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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Nov 07. 2016

도쿄 일상 : 신주쿠 골든가

별 말없이 우롱하이 두 잔을 주문하고

 도쿄 향락의 중심지 카부키초歌舞伎町에 있는 음식점 거리, 2차 대전 이후 난립한 목조건물이 성냥갑처럼 다닥다닥 붙어 늘어선 좁고 어두운 골목을 친구와 함께 걷고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목덜미를 식혀주고 살갗에 끈적끈적한 느낌도 없어 한여름의 초입치고는 꽤 상쾌한 밤이었다. 인접한 신오오쿠보新大久保에서 조그만 바를 운영하는 친구와 틈이 나면 가끔 술자리를 갖고 있는데, 얘기가 길어져 조금 더 마시고 싶은 날은 2차 장소로 자주 골든가를 찾고는 한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평소와는 달리 노란 출입금지 테이프로 둘러쳐진 어두컴컴한 장소가 나타났다. 얼마 전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해 2층짜리 건물이 전소된 곳으로, 같은 건물1층 바의 바텐더와는 친분이 두터워졌을 정도로, 골든가에 왔을 때 한 번은 꼭 들르는 익숙한 곳이었다.

 화재 당시의 얘기를 조금 하자면.
 회사 휴식시간에 별 생각 없이 구글링을 하던 도중 골든가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기사를 읽게 되었는데, 불타고 있던 건물이 낯이 익은 건물이라 깜짝 놀랐다. 화재가 발생한 시간이 대낮이라 바텐더가 퇴근한 상태였기에 별다른 인명피해가 없었던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범인은 인근을 배회하던 노숙자로 밝혀졌는데, 나중에 친분이 있던 바텐더에게 전해들은 얘기로는,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골든가를 재개발하기 위해 일본정부가 방화를 사주했다는 루머도 돌고 있는 모양이었다.



 기억 속의 뉴스 한 장면이 지나가자, 흰 바탕에 붉은 글씨로 여기가 골든가임을 알리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굳이 그 간판이 아니더라도 일본어를 비롯한 시끌벅적한 외국어가 주변 공기와 함께 밀려온다 싶으면 골든가 입구에 다다랐다는 뜻이다.

 우리는 별 말없이 챔피온에 들어가 우롱하이 두 잔을 주문했다. (일본은 한국과는 달리 메뉴판에 적힌 알콜의 종류가 굉장히 많은데, 우롱하이는 누구나 즐기는 일본의 대표적 칵테일로 우롱차에 일본 소주를 섞은 술이다.) 챔피온은 언제나 푸른 눈의 외국인들로 붐비는 곳이다. 정수리 가운데만 남긴 긴 머리와 코의 피어싱이 강렬한 여성 바텐더가 언제나처럼 환한 웃음과 함께 우롱하이를 건넸고 나는 허리춤에서 꺼낸 오백 엔짜리 동전 두 개를 쥐어줬다.


챔피온은 항상 외국인들과 현지 젊은이들로 북적인다.


 얼음만 남은 잔을 반납하고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익숙해진 신주쿠 그리고 신주쿠의 풍경들이 이제는 제법 평범해진 내 삶의 모습을 대변해 주는 것도 같았다. 조금 일찍 돌아가는 아쉬움에 주변 가게들의 겉모습을 좀 더 신경 써서 보고 있자니, 옆으로 긴 직사각형의 작은 창문 사이로 고양이 한 마리가 눈을 깜빡이며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을 때 사진 한 장을 남겨야겠다 싶어 휴대전화를 꺼내려는 찰나, 고양이의 표정을 놓치면 안 된다는 긴장감이 들었고, 이 긴장감으로 돌아가는 아쉬움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고양이 사진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창문 안 고양이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냐옹? 캬악!




글/사진(1, 3-5) 굔 짱

국문학과를 다니는 내내 일본어를 공부하다 7년 전 도쿄로 떠나 은행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일본 여자를 만나 하루빨리 도쿄 가정을 이루고 싶지만, 이유를 모르겠네, 줄곧 미팅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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