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열대의 바다에서 한번쯤 살아보고 싶어서
오키나와에서 일을 해보기로 했던 건, 한국엔 없는 열대의 섬이기 때문이었다. 제주도가 있다고? 한국의 하와이라는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강제 이주당한 죄 없는 야자나무의 이파리 위로 한겨울 소복하게 쌓인 눈을 볼 때마다 동정을 금치 못했다. 아무리 추워도 영상 10도 이상을 유지하는, 1년 내내 맨발에 슬리퍼만 신고 지낼 수 있는 투명한 열대의 바다 오키나와.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진짜 남국의 섬이었다.
하지만 여기엔 사소한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오키나와 현지인들도 일자리가 없어 놀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키나와의 관문 나하 시, 1박에 1,000엔 정도 하는 허름한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 종일 빈둥거리는 일과도 처음엔 마냥 재미있었다. 하지만 점점 얇아져 가는 지갑은 내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고, 빈둥거림도 얼마 안 가 물리고 말았다.
그때, 구세주처럼 그가 등장했다. 나와 같은 또래의 일본인 대학생이었던 그는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오키나와 이곳저곳을 여행 중이었는데, 자신이 하던 이시가키 섬의 리조트 아르바이트를 나에게 넘겨주겠다고 한 것이다. 반신반의하며 소개받은 곳으로 전화를 하자, 리조트의 인사담당자라는 사람이 마치 몇 년 전부터 내가 오길 기다렸던 것처럼 환대해 주었다. (이것이 내가 리조트에서 겪어야 했던 극한 노동 강도를 암시하는 복선이었다.)
이틀 후, 남은 돈을 탈탈 털어 이시가키 섬으로 들어가는 편도 항공권을 구입함으로써 나하에서의 짧았던 백수생활에 작별을 고했다. 남쪽으로 한 시간을 비행한 뒤 이시가키 공항에 내리자, 나하보다 더 습한 공기와 더위가 엄습했다. 과연 일본 최남단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날씨였다. 공항은 매우 허름했고, 이에 비하면 차라리 도쿄의 버스터미널이 공항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일 년 뒤, 아주 최신식의 공항이 문을 열었다.)
10월 말이라는 시기가 무색하게,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은 전부 비치 샌들에 짧은 팬츠 차림이었다. 당장에라도 바다에 입수하겠다는 격렬한 의욕이 느껴져 괜히 나까지도 흐뭇해졌다. 설레는 마음도 잠시, 일거리를 찾아 왔다는 노동자로서의 본분을 기억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버스터미널까지 이동, 내가 일하게 될 리조트가 있는 카비라 만(?)까지는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약 40분을 가야 했다.
시내를 벗어나자, 꿈에 그리던 투명한 열대 바다가 펼쳐졌다. 수중에서 자라는 맹그로브 숲을 끼고 돌며 감탄하기를 계속, 마침내 버스가 카비라에 도착했다. 내 뒤를 이어 4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함께 내렸다. 정류장에는 리조트 직원이 마중 나와 있었다. 40대 남자도 직원의 인사를 받는 걸 보니 그도 나와 같이 일하게 될 아르바이트 스태프인 것 같았다. 무슨 사연을 가지고 저 나이에 이 섬까지 흘러들어온 걸까, 의문은 삼키고 나 역시 그에게 친절하게 인사를 건넸다.
클럽 메드Club Med는 오락을 포함한 모든 생활을 오롯이 그 안에서 전부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완전한 커뮤니티를 콘셉트로 하는 프랑스계 리조트 체인이다. 리조트는 넓은 공원부터 아름다운 바다까지 갖추어 그 자체로 하나의 마을을 이루고 있다. 일하는 직원들도 헬스 트레이너, 바텐더, 댄서에서 네일 아티스트까지 직업군이 무척이나 다양하다.
직원이 안내한 곳은 리조트의 아르바이트 스태프 전용기숙사였다. 기숙사의 관리인이라는 60대 정도의 아주머니는, 다짜고짜 여기 있는 동안은 엄마라고 불러도 된다며, 살갑게 간단한 룰을 설명해 주고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원래는 2인 1실이지만, 비수기에 접어드는 시즌이라 사람이 적어 혼자 사용할 수 있었다.
방에는 화장실과 부엌까지 딸려있어 지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일단은 짐을 풀고 치약 등 생필품을 사러 나가려는데, 오키나와 엄마(관리인 아주머니)가 아마 지금쯤이면 상점이 문을 닫았을지도 모른다며 서두르라고 재촉했다. 아직 오후 여섯 시 정도밖에 안 됐는데? 서둘러 아까 내린 버스정류장 옆에 있던 나카마 상회에 도착하니, 이미 문이 닫혀 있었다. 문에 쓰여 있는 공식 영업시간이 무색하게,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문 닫는 시간이 달라지는 모양이었다. 그 흔한 편의점도 하나 없는,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르는 슈퍼가 유일한 깡촌이라니, 드디어 본격적인 오키나와 라이프가 시작되는구나! 감격스러웠다.
Part II에 계속.
글/사진(2~5) 제민
사람들이 태국에서는 태국어로, 일본에서는 일본어로 말을 걸어올 정도로 곧장 현지인들과 위화감 없이 뒤섞이는 둔갑술과 혹독한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바퀴벌레 같은 적응력을 무기로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다. 현재는 일본 도쿄의 작은 방송제작사에서 일하며 다큐멘터리 피디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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