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Bonn, 내추럴하게
오랜만에 알람을 맞추고 일어나려니 진짜 힘듭니다. 창문을 살짝 열어놓아 새소리가 기분 좋게 아침을 맞이하게…가 아니고 새벽 4시부터 무지하게 울부짖는 통에 분노지수가 올라 아무래도 쥐약 푼 새 밥이라도 저 나무에 걸어놓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아침을 맞이합니다.
사실 오늘은 6주간의 여름휴가가 끝나고 첫 출근하는 날이라 간만에 알람 소리와 저 새 놈들이 더 거슬린 듯하네요.
다행히 이곳에도 이제 여름이 오나 봅니다. 한국이 연일 기록적인 무더위라는 인터넷 기사를 보면서도 거의 일 년 내내 오리털 이불을 덮고 자야 하는 서늘함이 익숙해진 제겐 말 그대로, 남의 나라 일로 느껴진 여름이어서 그런가, 아침에 보는 맑은 하늘과 햇빛이 그나마 출근길의 저를 위로해 줍니다.
해만 뜬다 싶으면 빨래할 생각에 들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뒤로한 채 저의 애마, 만들어진 지 20년은 되었을 "구와하라"에 탑승, 라인 강을 건너 회사로 갑니다. 아시다시피 유럽은 자전거가 레저의 수단이 아닌 실제적 교통수단으로 이용됩니다. 따라서 세부 도로법규와 전용 도로 등 인프라가 매우 탄탄하지요. 실제로 시내에선 버스나 트람 등 대중교통보다 이동시간이 가장 빠른 편입니다. 무엇보다 주차 걱정이 없어 최고입니다.
요즘 한국에서도 라이딩 열풍이 상당하더라고요. 한국에서 놀랐던 것은 일단 자전거를 포함한 장비들이 정말 고가로 보였다는 점입니다. 제 자동차도 그렇지만 1~20년 된 자전거를 고치고 또 고쳐 쓰는 짠돌이들의 나라 독일에선 흔히 보기 어려운 기종들, 바퀴 한 짝만 봐도 가격이 상당할 것 같은 자전거들이 주말이면 심심찮게 보였습니다. 더 놀라운 건 도로에서 자전거들과 자동차들이 아슬아슬하게(제 눈엔 그리 보였던) 곡예 운전을 하지만 저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익숙한 듯 전혀 의식하지 않는 모습이었는데요, 진짜 자전거 인구 늘어나는 것만큼 도로법규도 세세하고 안전하게 마련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제가 회사를 가려면 시내 중심부로 통하는 케네디 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이렇게 날이 좋은 때엔 물 위에 비친 태양과 주변 경관을 보는 것이 그렇게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십년을 넘게 보아왔지만 한 번도 질린다는 생각이 들지를 않네요. 아, 날이 개떡 같아 해가 잘 안 뜨기 때문에 이 감정을 자주 못 느낀다는 게 함정입니다.
제가 사는 독일의 본Bonn은 라인 강을 사이에 두고 동과 서로 나뉘어 길게 형상되어 있으며, 라인 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는 총 3개입니다. "라인 강의 기적"이란 말로 저와 유년시절 세계사 시간에 처음 만났던 이 라인 강은 우리나라 서울의 한강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폭이 좁습니다. (물론 구간에 따라 차이가 있겠습니다만 평균적으로 봤을 때 그렇습니다.) 본의 도시 규모를 봤을 때 아무리 그래도 다리 3개는 좀 모자라지 않나, 처음엔 그런 생각을 했더랍니다. 그나마 제가 오늘 건넌 케네디 다리가 버스, 트람 그리고 시민들의 도보 통행량이 가장 많은 곳이며 나머지 두 개의 다리는 고속도로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살면서 느끼지만 독일의 건설 정책 자체가 매우 보수적(?)이어서 다리를 더 증축하기보다는 다리 건설을 시내 접근이 용이한 곳으로 최소화합니다. 나머지 비교적 교통량이 적은 지역에서는 Fähre라고 하는, 사람과 물건을 실어 나르는 배를 이용해 자동차와 사람들을 건너편으로 이동시킵니다. 인공 건설물들이 적어질수록 당연히 자연은 더 살아나게 되고 그로 인해 얻어지는 시너지효과도 상당합니다. 빽빽하고 삭막하게 느껴지는 대한민국의 대도시들과 비교되는 인식이지요. 이런 독일의 친환경 정책들에 부러운 감정도 생기고요.
이렇게 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태양과 더위가 잠깐 방문해 주셨을 때 당황하지 말고 매뉴얼대로 가야 하는 겁니다. 이런 날, 일 년에 몇 번 없으니까요. 자, 일찍 퇴근했겠다, 일단 긴 겨울이 오기 전 광합성을 해야 하니 발코니에 엎어져 봅니다. 노련한 아내 또한 아침 출근 전에 통보하신 대로 빨래를 몇 탕해서 이미 널어놓으셨어요. 역시 언행일치하시는 분!
이윽고 햇빛 부족으로 인한 곰팡이가 피부에서 사라질 만큼 뜨겁다 느껴지고, 냉장고에서 시원해질 대로 시원해져 있는 맥주 한 잔을 제 몸 안의 피들이 강력히 원할 즈음 과감히 뿌리치고 그냥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저의 의지가 강해서라기보다, 밖에 나가서 마실 거니까요!!!
글/사진(2-6) 프리드리히 융
2003년 독일유학 중 우연히 독일 회사에 취직하여 현재까지 구 서독의 수도(현재 독일의 행정수도)인 본에 거주중인 해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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