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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Feb 01. 2017

노르웨이 ‘마이댄스 페스티벌’

이십 대 청춘과 작은 도시 시민들이 함께하는 현대무용축제

 ‘노르웨이’ 하면 뭐가 떠오르십니까? 뭐니 뭐니 해도 입맛을 돋우는 연어? 교과서에서나 봤음직한 피오르 해안이나 오로라? 좀 알만 한 사람들은 북유럽의 높은 복지수준과 그만큼 살인적인 물가에 대해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기껏해야 두 번째지만, 햄버거 하나에 만 원 하는 나라로 다시 간다 하니 사람들이 물었다. “아니, 노르웨이에 대체 뭐가 있길래?”

 오슬로 역에서 기차로 20분, 뢰렌스코그Lørenskog는 Langvannet라는 커다란 호수를 아주 한적하게 둘러싸고 3만이라는 많지 않은 인구가 살고 있는 작은 도시다. 내가 이곳을 찾아간 건 현대무용 축제 ‘마이댄스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이런 유의 외국 축제 앞에는 ‘세계적인’ 같은 말을 붙이는데, 나도 그런 표현을 써서 아는 사람은 다 아는데 당신은 몰랐던 겁니까, 하는 자부심 은근 깔고 갔으면 좋았으련만, 이 축제는 2014년에 시작된 새내기 페스티벌이다.


뢰겐스코그 ⓒChell Hill


 몇 해 전 우연한 계기로 만난 기획자와의 교류가 어찌어찌 안 끊기고 이어져 온 결과다. 그래도 기획자라는 사람이 한국에서 일부러 찾아갈 정도니 화려하고 웅장한 뭔가가 있지 않겠나, 글 뒷부분에 엄청난 경험담을 터뜨리려고 소박한 도시라는 암막을 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 일단은 그냥 소소했다는 것부터 말하고 넘어가야겠다. 지역 젊은 예술가들이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업을 선보여 시민들이 손쉽게 문화예술에 접근하는 기회를 만든다.’ ‘시민과 예술가의 역량을 강화하고 성장을 조직한다.’ 어디서든 많이 봐 온 문구 아니던가? 이게 이 행사의 불씨를 일으킨 생각이었다고 한다.

 이 축제의 놀라운 점은 어디선가 많이 봐 온 저 상투적 슬로건을 어떻게 눈여겨 볼만한 축제로 만들어 냈는가 하는 점이다. 하나는 축제 기획자들이 모두 20대라는 것이다. 축제에 참여한 예술가이기도 한 카타리나 씨와 튜바 씨는 모두 20대 청년이다. 유럽이라는 지형적·문화적 유리함이 있다고는 하지만, 20대 청년들이 10여 개국의 예술가들을 불러 모으고 행사를 조직하고 진행한다는 건 예사롭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한국의 청년들을 떠올려 보자면, 한국의 현장에도 고군분투하는 청춘들이 많이 있지만, 보통은 지역의 공공재원을 두고 경쟁하는 단체들과 예술인들의 기득권 구조에 어정쩡하게 끼어 있는 모양새다.
  
 또 하나의 놀라운 점은 지역사회의 지지와 응원이다. 뢰렌스코그 인구는 고작 3만으로, 장터가 서진 않는 날엔 인적을 찾아볼 수 없는 정선군보다도 못한 도시인데, 지역사회가 이 축제를 지켜보고 지원한다는 게 축제 곳곳에 아주 잘 나타나고 있다. 식당들은 예술가들에게 식사를 후원하고, 뢰렌스코그에서 가장 큰 호텔은 예술가들은 숙박을 책임져 준다. 축제 당일에는 이웃들이 물물교환 장터를 열고, 다양한 먹을거리를 나누는 훈훈한 광경이 만들어진다.


물물교환


 올해는 축제가 공동체로 확장해 가는 모습이 더욱 확연했다. 축제의 오프닝은 시민들이 워크숍을 통해 만든 퍼포먼스와 활동한 지 50년이 넘었다는 포크댄스 동호회의 공연이었다. 기획자의 어머니를 포함한 시민들의 공연은 ‘CITY TALK’라는 제목에 걸맞게 도시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작품이었다.

 공연 참가자 한 사람이 퍼포먼스 중 내게 다가와 이야기를 건넸다. 지역에 대한 애정이 물씬 담긴 말과 표정이었다.

 “나는 뢰렌스코그를 좋아해요. 뢰렌스코그의 숲, 숲의 고요함, 숲에서 부는 바람, 숲에서 산책했던 기억, 달렸던 기억, 아이들과 놀았던 기억. 숲에선 휴대전화나 번잡한 것을 잊어버리고 고요해질 수 있어요.”

 전통 복식을 충실하게 갖춘 어르신들의 댄스가 관람객의 환호 속에 막을 내렸다. 최소한 70살은 넘어 보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유쾌한 표정은 왜 인간들이 춤이란 걸 만들어 억지스럽게 몸을 흔들어 왔는지 아주 잘 설명해 주었다.


먹을거리 장터


 마이댄스 페스티벌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무대다. 대부분의 메인 퍼포먼스는 시청 옆 공원에서 열리는데, 호수와 숲을 끼고 있는 풀밭에서 펼쳐지는 춤은 다른 미사여구를 곁들이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숲 한가운데서 기계음을 연주하며 새들과 교감하던 예술가, 지역 음악 동호회의 연주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는 시민들, 그 뒤에 펼쳐진 맑고 드넓은 호수. 오래도록 잊지 못할 장면이었다. “모든 예술은 자연에서 받은 감동을 연장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 날을 위해 어디서 읽었는지도 가물가물한 이 말을 기억해 왔나 보다.

 사실 노르웨이를 포함한 북유럽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부러웠던 건 풍요로운 녹지와 자연환경이었다. 대학 시절을 지나 나이 서른이 될 때까지 나는 한국이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과 뚜렷한 사계절을 가진 세계 유일의 아름다운 나라라는 관념을 심장처럼 달고 다녔는데, 유럽의 자연환경은 내 건강을 위협할 만큼 충격이었다. 인공 구조물을 거의 배치하지 않고 수백 년 된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리 잡은 광활한 공원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이번 축제에서 나는 ‘Eye of Tree’(배규자, 카나리나의 2인조 그룹) 공연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세월호를 주제로 한 퍼포먼스를 진행한 것은 너무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처음에는 축제 장터에서 캠페인을 진행하려 했다. 그런데 사전 워크숍에서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니 캠페인보다는 작품을 통해 내용을 공유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았다. 우리에게 절실한 문제가 이들에게도 같은 밀도로 전달되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베트남 보트피플에서부터 유럽 난민 문제에 이르기까지 배와 연동된 이미지와 상상을 작품에 활용하기로 하고, 준비한 전단과 소품을 추가해 퍼포먼스를 구성했다.
 
 이 축제의 남다른 점은 예술가들끼리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 예술 축제는 작품 발표 시기에 맞춰 방문한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고 돌아가기에 분주한 데 반해, 마이댄스 페스티벌은 일주일에서 열흘 가까이 체류하면서 예술가들이 워크숍과 활발한 대화를 통해 밀도 높게 교류할 수 있게 했다. 이 과정을 통해 예술가들은 서로의 나라를 방문하거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도모하기도 한다.


춤추는 사람들


 세월호 문제에 대해 콩코르디아호의 사례를 이야기하며 공감해 준 이탈리아의 클로리사 씨, 난민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럽이 적극 나서야 한다고 역설하며 작업으로 이를 표현했던 스웨덴의 한나 씨, 직장을 그만둔 내게 “창조적인 발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자신이 쓴 시집을 선물한 미국의 에릭 씨. 예술가들과 보낸 시간들은 정말 감사한 순간들이었다.

 이쯤에서 어쩔 수 없이 한국의 상황을 한 번 더 이야기하자면, 한국의 축제 현장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규모를 키우지 못해 안달이다. 작은 규모로 예술가들의 밀도 있는 교류를 매개하고, 공동체와 결속력을 더해 가면 축제의 질도 높아지고 시민들의 참여와 호응도 늘어난다. 마이댄스 페스티벌의 장점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건 바로 이런 부분에서다. 기회가 된다면 이 페스티벌과 계속 함께하고 싶어지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마이댄스 페스티벌
연혁 : 2014년 시작, 올해로 4회째
개최시기 : 매년 5월
장소 : 시청 광장, 문화의집 등 로렌스코그 곳곳
홈페이지 : http://www.maidans.org




글/사진(3~5)

문화 정책과 기획 일을 하고 있으며, 삶과 예술이 만나 섞여 드는 과정에 관심이 많다. 토론 패널 섭외와 원고 청탁에 관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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