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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Jan 31. 2017

네팔의 롯지, 가장 따뜻한 순간

"Have a Nice Life!"

여행 매거진 BRICKS Trip - 카페 미야 #6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 Part II


푼힐 일출

 새벽 4시. 눈이 번쩍 떠진다. 재깍 준비를 하고 나선다. 간밤에 세차게 내리던 비는 부슬비로 변했다. 과연 두 시간 뒤 맑은 히말라야 산자락을 볼 수 있을까. 새벽부터 피루룽 울어대는 새소리가 꼭 휘파람 소리로 들려 몇 번을 돌아보며 사람 형체를 찾기도 했다. 손전등으로 발아래를 비춰가며 어두운 산길을 따라 오르길 45분. 푼힐Poon Hill 전망대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었다. 구름과 산은 얽히고설켜 줄달음치고 있었다. 점점 금빛으로 물들며 근사한 풍경을 혼자 보기 아까워할 무렵, “우와! 지기네!”하는 소리가 들렸다. 직감했다. 입산기록 명단에 있던 두 명의 한국 남자라는 것을.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가 조용했던 푼힐을 흔들어 깨웠다.



 금빛 구름이 점점 붉은색으로 짙어질 즈음 여행자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이틀 전 입산 기록 공책 속의 이름들은 오늘의 푼힐 일출에 초대된 사람들의 명단이었다. 내내 혼자인 줄 알았는데, 각자의 걸음으로 각자의 길을 걸어 여기서 모이게 되어 있었나 보다. 해는 완전히 떠오르고, 신령스레 모습을 드러내는 안나푸르나의 파노라마! 몰아쉬는 숨, 감탄, 감회. 시끄럽던 전망대가 일순 조용해졌다. 구름도, 산도, 사람들 얼굴도 붉게 물들었다. 힘겹게 모습을 비죽 드러냈던 안나푸르나가 순식간에 운해 아래로 사라져 버렸다.



거머리


 일출을 함께 본 인연으로 경상도 남자 둘, 취리히 출신 호마가 합류하여 일행은 네 명으로 불어났다. 비수기 히말라야의 또 하나의 장애물은 바로 거머리다. 실 낱 같은 거머리는 피부에 닿으면 새끼손가락만큼 몸이 늘어나도록 피를 빨아댄다. 강아지, 당나귀들이 이마의 피를 철철 흘리고 있어서 박치기 싸움이라도 하나 했는데, 다들 거머리 때문이었다. 때로는 제 몸 터지는 줄도 모르고 미련하게 피를 쪽쪽 빨아먹는다. 산을 타는 내내 거머리와의 싸움이다. 30초에 한 번씩 신발을 체크해서 거머리를 떼어내야 한다. 손가락에 힘을 빡 주고 아주 힘차게 튕겨내지 않으면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이 거머리 같은 자식아!’가 얼마나 상욕인지 깨닫게 된다.





롯지, 가장 따뜻한 순간


 3,000m가 넘는 산길을 걸어도 머리가 아프다거나 가슴이 답답한 증세가 없으니, 내 몸은 이 정도 고도는 견딜 만한가 보다. 꼬박 7시간을 걸어 안나푸르나의 5대 뷰 포인트인 타다파니Tadapani 마을에 도착하자 녹초가 되었다. 산봉우리를 정면으로 두고 있는 분홍색 롯지가 마음에 들었다. 이 롯지엔 엄마와 어린 딸 셋이 살고 있었다.



 금방 어둠이 내리 깔렸다. 이 롯지가 아지트라도 되는 듯 푼힐 일출 쇼 참가자들이 한데 모여들었다. 다들 씻는 둥 마는 둥 낡은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테이블 아래 숯 난로 덕분에 발이 따뜻하니 온몸이 훈훈해졌다. 막내딸 수니타가 가져다준 메뉴판에는 산속 마을 식당 메뉴라고 믿기지 않게 피자, 스파게티, 오믈렛 등이 적혀 있었다. 과연 이런 서양 음식이 가능할까? 피자를 시키고, 혹시 가져간 라면도 끓여줄 수 있냐고 물으니 물 값만 내면 된단다. 산 속에서 먹는 라면과 피자, 이 얼마나 훌륭한 조합인가!
잠시 후, 스톡홀름에서 왔다는 다니엘이 밖을 나갔다 오며 웃으며 말했다.
“부엌에 한번 가봐. 엄청 재미있어.”

 그날 밤도 여지없이 정전이었다. 도마 사이에 세워 놓은 촛불 몇 개와 아궁이 아래 탁탁 타오르는 장작불이 어두운 부엌을 밝히고 있었다. 요리 경연대회라도 나온 듯, 머리에 헤드랜턴을 쓴 첫째 딸 미투는 전투적으로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야채를 썰고, 아궁이의 불 조절을 능숙하게 해가며 프라이팬을 달구고 국을 끓여냈다. 오븐을 대신하는 솥뚜껑 아래에는 치즈가 먹음직스레 녹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한 구석에서 끓고 있는 라면 물을 쓱 보더니 한 국자 덜어내고 다시 바삐 도마 위 감자채를 썰었다. 수백 번 라면을 끓여온 나도 아직도 물을 제대로 못 맞춰 망하기 일쑤인데, 대단한 눈썰미구나! 아궁이 한 쪽에 엉덩이 따뜻하게 걸터앉자 엄마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 한 덩이를 입에 넣어줬다. 어느새 다들 부엌으로 모여들어 옹기종기 앉았다. 미투가 음식을 완성하면 접시에 담기도 전에 곧바로 포크를 찔러대며 다 같이 나눠먹었다. 라면은 꼬들꼬들한 면발에 국물 간도 딱 맞았다.


 푼힐의 줄달음치던 붉은 산봉우리를 함께 떠올리고, 앞으로 남은 산행을 얘기하다보니 마치 다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 같았다. 길에서 만난 인연만큼 색다른 인연이 있을까. 처음 만나는 사이에도 스스럼없이 깊숙한 곳에 묻어둔 자기 삶을 꺼내놓게 된다. 다시는 안 볼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인스턴트 대화 같지는 않다. 한 마디 한 마디 깊은 동지애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딱 한 번 교차하는 인연일지도 모르지만, 그 순간에는 오랜 친구만큼이나 살가웠다.



 다음날 아침, 구름은 설산을 덮고서 보여 줄 듯 말 듯 약을 올렸다. 그러다 스르르 사라지면 마치 포토샵으로 삽입한 듯 웅장한 설산이 쨍하고 코앞에 나타났다. 다들 눈곱도 떼지 못하고 맑은 공기 들이마시며 마당 어귀에 쭈그리고 앉았다. 팬케이크와 코코아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떠날 채비를 했다. 떠나는 목적지도, 떠나는 시간도 모두 다르다. 하지만 떠나기 전 다들 잊지 않았던 건 콧노래 흥얼거리며 풀밭을 서성거리는 자매들에게 살며시 돈을 쥐어주는 일이었다. 이는 이모, 삼촌이 조카에게 “맛있는 거 사먹어라!” 하면서 부모 몰래 손에 쥐어주는 용돈이었다.



 호마는 떠나기 전 내게 이 롯지에 데려와 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Have a nice trip” 대신 “Have a nice life!”라고 인사를 건넸다. 4일 간의 트래킹 내내 단 한 번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의 완벽한 파노라마를 마주하지 못했다. 하지만 롯지에서의 그들과의 하룻밤은 파노라마 못지않게 행복한 순간이었다. 이렇게 따뜻한 순간들이 추억으로 징검다리처럼 놓이는 내 인생은 이미 더할 나위 없이 ‘Nice’한 게 아닐까?





글/사진 miya

런던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옥스퍼드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지금은 서울 체류자. 대륙을 가리지 않고 오지를 휘젓고 다녔지만, 이제는 카페에 나른하게 앉아 일기를 쓰고 엽서를 쓴다. 창밖을 바라보는 맛이 더욱 좋아져 걷기도 싫어져 버린. 아니, 아니, 나이 때문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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