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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Sep 27. 2016

후쿠오카 텐진역 앞 포장마차

여긴 정말 이국적이에요, 그게 뭐가 됐든 말이에요

여행 매거진 BRICKS City - 작은 술집 #2


 전주까지 와서 예식장 뷔페나 먹어서야 되겠어? 대학 후배의 결혼식으로 전주에 내려갔다가 입맛을 모은 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 나는 전주 남부시장으로 갔다. 운암식당에서 콩나물 국밥에 모주 한 잔을 하고 나와 아직 덜 들어선 야시장을 거닐며 속을 조금 비우고, 저녁 8시, 전동성당과 경기전 사이에 서서 전일수퍼에서 갑오징어를 먹을 것인가, 영동수퍼에서 닭발 튀김을 먹을 것인가, 아니면 오원집에서 고기를 먹을 것인가, 결국 세 곳을 다 가게 될 거면서 분분히 들떠 있었다. 볼 거 하나도 없는데 대체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려든 거니?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모처럼 마음먹은 듯한 아들 부부에게 집 나선 소회를 풀어 놓았고, 우리는 아들 부부의 대답을 외면하며, 우리는 또 대체 무엇이 좋아서 밤기운에 설치는 버드나무 잎사귀처럼 파들거리고 있었던가, 머쓱하게 입을 다물고 서둘러 갑오징어 가게 대기 열에 배어들었다.




텐진 역 츠타야 서점. 지점에 따라 입점해 있는 카페는 달랐다.


 볼 거 하나도 없다는 그 말을 다시 듣기까지는 딱 일주일이 걸렸다. 나는 출판사 디자이너와 번역서 출판 자료와 다음 달까지 만들어내야 하는 책, 브로슈어의 자료를 모으러 3박 4일 후쿠오카 출장을 다녀왔다. 우리는 이틀간 츠타야 서점 세 곳과 무지북스MUJI books, 뜬금없는 장소에 갑작스레 나타나는 동네 서점 네 곳을 돌아다니며 30여 종의 잡지와 다섯 권의 단행본을 샀다. 여기에 백화점과 쇼핑몰, 레코드, DVD 판매점에서 긁어모은 브로슈어, 포스터를 얹자 트렁크는 추가 요금을 확신할 무게로 불어나 있었다.

 셋째 날, 디자이너는 못 다 본 서점과 쇼핑몰에서 자료를 구하기로 했고, 나는 인근 히타日田 시로 가서 숙박 시설과 관광거리를 조사하기로 했다. 우리는 7시 반 로프트loft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각자의 일정을 떠났다. 히타 시에서 돌아온 건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나는 로프트에서 조지루시 텀블러를 아내에게 줄 선물로 낙점하는 데 20분, 조카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 데 10분, 누름 초밥을 만드는 틀과 스팀 안대 같이 집에 있으나 마나 한 것들을 사는 데 나머지 시간을 보내고 약속 시간에 맞춰 가게를 나왔다. 뭐 볼게 있다고 여기까지 오는 건지 모르겠네, 한국하고 똑같잖니. 엄마인 듯한 여자의, 그 또렷한 한국말 핀잔을 들으며 딸인 듯한 이십대 중반의 여자가 내 쇼핑백을 살그머니 스쳐 로프트의 문을 열었다. 모녀의 다음 대화가 이어지려면 딸의 입가에 맺힌 힘이 누그러지기까지, 아마도 한참은,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히타 역과 히타 온천. 누군가 HITA에 I는 어디 갔나 묻는 말이 들려 과연 왜 그럴까 싶었는데, 지나던 한사람이 I 자리에 잠시 섰다 떠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해주었다.




 우리는 기린 맥주 전문점에 들어가 1000cc 맥주 세 잔을 비우고, 땅콩 소스에 묻힌 고등어, 명란, 에다마메 같은 안주를 줄줄이 비우고 나서 나카스 강 인근 꼬치구이 집으로 갔다. 모츠 나베 국물에 아사히 생맥주 두 잔을 더 비우며 각자가 모아온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들을 예사로이 주고받자니, 드디어 밤 열시, 이번 후쿠오카 여행의 주안점, 포장마차 나들이를 의식처럼 치러낼 시간에 이르렀다.


 나카스 강변의 포장마차 거리는 늘 관광객이 성시고, 가격이 비싸다는 얘기를 여기저기서 들었던 터라, 우리는 도착한 날 밤부터 미리미리 눈여겨 두었던 미츠코시 백화점 앞 포장마차로 갔다. 네다섯 개의 포장마차가 나란히 서 있었고, 빈 자리는 없어보였다. 대부분의 포장마차가 라멘을 주로 팔고 있었다. 나의 더부룩한 위장에 라멘 육수 끓이는 향이 썩 개운치가 않았으므로 자연스레 야키소바 가게 앞에 줄을 서게 되었다. 주인은 두 명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무례하고도 거침없이, 앉아 있는 손님을 몰아붙여 두 명 자리를 만들어냈다. 심지어 혼자 온 남자 하나는 포장마차의 요리하는 공간으로 들어가 맥주병을 들고 플라스틱 의자에 앉게 되었다. 우리는 그 남자와 옆에 앉은 세 명의 여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야키소바 하나와 에비스 맥주 세 병을 주문했다. 어디서 왔느냐, 한국인이냐, 당신은 어디서 왔느냐, 우리는 교토京都 근처 오쓰大津에서 왔다, 내일 우리는 사세보 온천으로 간다, 당신들은 어디 가냐, 우리는 집으로 간다, 여자들과만 주섬주섬 대화를 나누며 우리는 그녀들의 튀김 안주로 맥주를 비웠다. 야키소바가 나오자 그녀들은 자기들 빈 접시를 내밀며 덜어 달라 했고, 우리는 얼른 맥주를 두 병 더 시키고 다섯 개의 잔을 채워 열렬하게 받아들인 야키소바 위에서 건배를 나눴다. 다들 배가 불렀는지 그 열광적인 환대가 무색하게 면이 줄어드는 속도는 지지부진했다.


이 요리사의 오른팔 아래, 나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맥주병 내려 놓을 테이블도 없이 호젓하게 앉아 있는 사내가 있다.




 어쩌면 나의 특정 취향 탓에 후쿠오카에서 마주친 모든 것들이, 야키소바마저, 열렬한 환희를 일으켰는지 모르겠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란 책에 이국적이란 것은 고향에서 원했으나 얻지 못한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오래 전 읽어서 정확하진 않지만, 아무튼, 유유자적, 뒤따라오는 자동차에 길을 비켜 줄 일 없이, 앞서 걷는 사람의 담배 연기, 전신주 아래 그득한 쉬어 빠진 쓰레기더미 없는 곳에서 산책을 하고 싶다는 갈망이 나카스 강변에서, 히타의 습기 찬 골목에서, 그리고 전주에서도 길이길이 이어졌고, 이국의 환희는 내가 사는 곳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치달을수록 커졌다. 내게는 이 갈망이 정말이지 이국적이었다. 런던에 사는 그 작가가 느낀 이국이 세습 제왕이 다스리는 민주국가, 재산도 아닌 업을 세습하는 명상의 나라의 것들에 대한 갈망이 아니었다면, 그 역시 서울에 와서 다 똑같구먼, 무엇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걸까 하며 이집트나 인도를 갈망했을 것이다. 



 포장마차를 나와 우리는 나카스 강변을 걸어 캐널시티의 코카콜라 광고판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먼지 없는 바람이 방죽 길 포장마차를 채운 사람들 사이를 유유히 훑고서 강 주변을 에워쌌고, 나는 여태껏 마신 맥주와 음식의 종류를 헤아리며, 유유자적 이국의 정취 뒤에 숨어 있었다. 이제 술이 깨면 내 몸은 온갖 갈망 따위 머잖아 절망이 돼 버릴 도시에 드러나게 될 것이기에, 정말 똑같을까,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은 다르지 않은 걸까, 다 됐고 그냥 맥주나 더 마실까, 생각이 길어졌다. 여긴 정말 너무 다르지 않나요? 하얏트 호텔의 번쩍이는 불빛에 홀려 호텔 값을 검색하던 디자이너가 말했다. 우리는 포장마차라는 전혀 이국적이지 않은 장소 주변을 서성이다 호텔 앞 편의점에서 산토리 프리미엄 맥주 두 캔씩을 사 들고 호텔로 돌아왔다. 나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풀이 말하고 싶었다. 맞아요, 여긴 정말 이국적인 것 같아요. 이국적인 게 뭐가 됐든 말이에요.





글/사진(1-8, 10) 이주호

여행 매거진 브릭스BRICKS의 편집장.
여행을 빌미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최근에 에세이 <도쿄적 일상>을 냈다.
그의 <도쿄적 일상>이 궁금하다면.
http://www.yes24.com/24/goods/30232759?scode=032&OzSran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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