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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Sep 29. 2016

후쿠오카 서점 탐방기

디자이너에게 있어서 서점이란

 제작중인 매체의 디자인 리뉴얼에 대한 자료를 구하기 위해 후쿠오카 행 비행기에 올랐다.


 도쿄나 오사카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도시인 후쿠오카를 목적지로 정한 이유는 짧은 일정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을 만큼 가깝기 때문이다. 자료 수집이라고는 하지만 어차피 서점 몇 곳을 둘러보는 게 목적이었으니 도시의 규모는 중요하지 않았다. 일본은 서점이나 쇼핑몰 등의 경우 지역에 따라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내용의 차이는 전혀 없으니 말이다. 이 도시를 선택한 소소한 이유를 하나 더 들자면 일본에서 후쿠오카 정도의 도시는 여름에 비를 맞지 않고 시내 중심부를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교묘하게 건물과 건물이 지붕으로 연결되어 있거나 아케이드로 형성된 상가가 이어져 있다.




츠타야 Tsutaya 서점



 서론이 길었다. 이제 후쿠오카의 서점이야기로.


 디스플레이의 차이가 조금 있겠지만 팔고 있는 책이야 어느 서점이든 같을 테니 여러 서점을 들러 볼 필요는 없지만 책을 고를 수 있는 분위기의 작은 차이를 느끼기 위해 이곳저곳에서 조금씩 책을 사 모았다. 방문한 곳은 텐진의 츠타야 세 곳. 캐널시티의 무지북스. 하카타 역 도큐핸즈의 서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텐진의 이온몰에 있는 북오프. 일정의 맨 끝에 중고 서적을 판매하는 북오프에 들른 것은 두고두고 억울한 일이었다. 내용이 아니라 이미지 중심의 디자인 콘셉트를 참고하기 위한 책을 찾기 위해 간 것이니, 1월에 나온 책과 7월에 나온 책의 구분은 의미가 없는 터였다. 몇 권이 아니라 무게로 책을 계산한다면 북오프 이전 10kg, 북오프 이후 총 중량 30kg정도 되겠다. 다만 싼 값에 현혹 되다보니 한 권씩 책을 펼쳐보며 감동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많았다. 그저 바구니에 책을 쓸어 담기 바빴으니.


디자인 트렌드는 비슷하다. 거기나 여기나.


 사실 웬만한 일본의 책은 한국의 서점에서 다 팔고 있다. 굳이 종이 책이 아니라도 세상의 모든 책(특히 잡지)은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다운받을 수 있다. 그것도 광고 없이 엑기스만 담은 PDF로. 하지만 디자이너에게 책이란 본다는 것보다 느낀다는 표현이 더 적당하다고 할 수 있겠다. PDF를 통해 보는 레이아웃과 직접 경험하는 종이의 질감과 인쇄의 상태. 중간에 접히는 부분으로 숨겨지는 디테일과 손에 잡히는 두께와 무게감. 냄새와 맛까지 함께 느끼는 감흥은 확실히 다르다. (뭐랄까 일본의 책은 종이 냄새와 잉크 냄새도 우리 책과는 조금 다른 듯하다. 물론 순전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같은 부르터스지만 일본의 서가에서 발견한 부르터스는 또 달랐다.


 그리고 책을 보기 편하게 설계된 공간과 압도당할 만큼 다양하고 방대한 종류의 책들 사이에서 느끼는 감흥 역시 한국의 서점과는 차이가 있다. 요즘 일본의 서점 트렌드가 파는 곳에서 체험하고 휴식하는 곳으로 탈바꿈하는 분위기라 공간의 구성 역시 편안하고 다양한 시설이 어우러져 설계되어 있다. 다만 그렇다고 복잡하지는 않고 오히려 심플하다. 오로지 책과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만이 따로 존재한다. 물론 그런 구성은 일본의 여러 서점 중에서도 츠타야가 확실히 앞서 있다.


도무지 실수란 없을것 같은 이 나라 사람들에게도 가끔 빈틈은 있다. 립스틱이 뭍어 있던 커피잔.




무지북스 MUJI Books

 한국에도 무인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디자이너에게도 무인양품은 디자인적 영감의 원천이다. 모두에게 해당되지는 않겠지만, 심플하다라는 단어 하나로 표현되는 무인양품의 광고와 시각적 아이덴티티를 담당하는 디자이너 하라 겐야의 스타일을 존중하는 디자이너가 꽤 많은 것은 사실이다.


 무지북스는 무인양품의 매장에 자리한 일종의 숍 인 숍 shop in shop 개념의 서점이다. 주로 무인양품의 제품철학에 맞는 내용의 책들이 전시되어 있고, 책의 내용에 근접한 성격의 제품이 가까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물론 도서 공간과 제품 공간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지는 않다. 왠지 엄청 신선하고 먹으면 건강해질 것 같은 음료를 파는 공간이 자리 잡고 있고, 100엔짜리 원두커피를 마시며 책을 고를 수 있는 서비스까지 구비되어 있다. 한국의 서점처럼 지나치게 엔터테인먼트화되어 책과 상관없는 고객들로 북적였다면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들고 책을 고르는 것은 언감생심이었을 것이다. 


무지북스의 북스탠드. 특별하진 않지만 흔해 보이지도 않았다.


 150만. 후쿠오카의 대략적인 인구다. 이 도시에서 내가 들른 서점은 여섯 곳이다. 이것이 후쿠오카 서점의 전부는 아니다. ‘도대체 왜 여기에?’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위치에 제법 큰 서점이 있기도 하고, 모든 백화점의 8층쯤에도 서점이 하나 씩은 자리를 잡았으며, 지붕이 씌워지지 않은 여러 상가에도 서점은 더 있을 것이다.


 그 많은 서점의 수에 압도당하기도 하지만 더 대단한 건 서점을 채우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다. 일본어를 수월하게 읽을 수 없는 처지라 콘텐츠의 다양함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잡지 몇 권만 들춰봐도 이 나라 사람들의 책에 대한 치밀함은 금방 알 수 있다. 한국에도 인테리어, 패션, 디자인, 건축 등의 전문지와 종합지를 표방하는 여성잡지 등이 있지만 사실은 모두 종합지라 할 수 있다. 엘르 같은 잡지가 엘르 데코 정도로 분류되어 독립적으로 간행되지만, 여러 내용이 혼재된 성격의 종합잡지일 뿐이다. 일본의 잡지는 종합지라도 정기 간행물이든 무크지든 국수, 커피, 도시, 지역 등으로 세분화되어 발행된다. 별 희한한 내용의 전문지들이 발행되는 건 물론 당연한 일이고.


 잡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일본어만 한다면 세계의 모든 정보를 일본어로 번역된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들의 언어정책 중 하나이다. 책을 통해 영어를 넘는 세계어로 통용될 수 있도록 자국어를 키우겠다는 야망. 온 국민이 영어에 매달려 버둥거리는 한국의 언어정책과 견줘 생각해 볼 부분이다.


후, 불고 싶어 지니.


 일본에 갈 때는 항상 설렌다. 한국이랑 별 다를 것도 없는 나라에 가면서 뭐가 그리 설레냐 묻는 이들이 많지만, 적어도 디자이너의 눈에 일본은 모든 것이 새롭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다듬어 놓는 디테일을 디자이너라면 발견하고 감탄해야 한다. 들고 간 빈 트렁크로도 부족해 기어이 가방 하나를 더 사게 만드는 서점의 다양한 책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많은 정보가 그들에게는 일상이라는 것이 한국으로 돌아오는 나를 좌절하게 만든다. 30kg의 책을 직원들 앞에 쏟아 놓으면서 이 따끈따끈한 자료들이 우리 회사 디자인 리뉴얼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내가 가져간 것 말고도 좋은 책은 엄청나게 더 있고, 이것이 츠타야, 무지북스라는 공간 안에서 어떻게 배치되어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없을 테니, 결국 아마존을 통해 구입한 다른 책들과 다를 바 없는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글/사진(3-7) 김경일

디자인 DNC의 대표이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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