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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Oct 05. 2016

오감이 지도인 도시

모로코의 페즈에서 가방을 잃어버렸다

여행 매거진 BRICKS Trip - 카페 미야 #3


모로코, 페즈 Part I


 나는 ‘시모’에게 페즈에서 제일 좋은 카페로 데려다 달라고 주문했고, 시모는 Hotel Sahrai 루프탑으로 안내했다. 은인인 시모에게 할 수 있는 근사한 대접이라고 해봐야 카페에서 모히토 한잔 사는 거였다. 테라스 아래로 페즈의 메디나(medina, 구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기도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고, 거리를 가득 채운 무슬림들의 기도 소리가 들린다. 온 메디나가 그들의 바람을 동글동글 풍선처럼 피워 올리는 것 같다. 성스러운 순간이다.

 시모 덕분에 나는 사하라 사막으로 떠날 수 있게 되었다.




 하늘에 별은 총총한데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카사블랑카를 경유하는 작은 비행기는 좌석의 반도 채우지 못하고 떠났다. 승객들은 동네 이웃처럼 앞좌석 뒷좌석 가리지 않고 와글거렸다. 페즈에 도착, 까다로운 입국 심사를 마치고 한참을 기다려도 내 가방은 나타나지 않았다. 항공사 직원과 고성방가에 삿대질까지 오가며 알아낸 절망적인 사실은, 가방의 행방은 알 수 없다, 매일 밤 이 시간 비행기가 도착해봐야 안다, 혹시라도 가방이 도착하면 호텔로 연락할 테니 가지러 와라였다. 자기가 무슨 잘못이냐며 오히려 목에 핏대 세우는 직원을 이길 여력이 없었다. 나의 모로코 여행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사하라 사막을 가기 위한 모든 걸 준비해왔는데! 가방 속에 담긴 준비물들을 머릿속으로 헤아린다. 하늘에 별은 총총한데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디로 갔을까, 너는


 덜컹대는 차에 몸을 싣고 20분 남짓 달려 메디나에 도착하고도, 구불거리는 골목을 더듬거려 한참을 들어가야 했다. 창문 하나 없는 붉은 흙벽, 낡고 커다란 나무문은 수용소의 외관 같았다. 사진발에 속았다고 한숨을 내쉬는 찰나, 문이 열린다. 그건 천국의 문이었을까? 푸른색 이슬람 전통 문양의 타일로 둘러싸인 벽과 바닥, 작은 분수와 화초가 잘 가꾸어진 안뜰이 나타난다. 오래된 샹들리에와 테이블이 근사하다. 객실은 안뜰을 두고 ㅁ자형으로 둘러 싸여 있고, 모든 창이 안뜰을 향해 있다.

 이 호텔은 부유층이 살던 모로코의 전통 가옥 리아드(Riad)를 개조한 곳이다. 리아드는 모로코의 고온 건조한 기후와 바람에 견디기 위해 두껍게 흙벽을 바르고, 이슬람 문화권의 폐쇄적인 사생활 보호, 정확히 말하면 ‘보호’라는 사명 아래 여성들을 감추어놓기 위해 모든 창문을 안뜰 정원으로 향하게 두었다. 5만 원짜리 호텔방이라고 하기에는 놀랍도록 화려하다. 매끈한 침대 시트 위에 대자로 뻗었다. 아, 내 가방... 어떻게든 되겠지. 앞선 걱정을 하기엔 너무 지쳤다.



 다음날 모로칸식 아침식사로 건강히 배를 채우고 전체가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된 전통시장으로 향했다. 호텔에서 챙겨온 지도는 푸른색의 아라베스크 문양의 부즐르드 문(Bab Boujloud)에서부터 이미 무용지물이었다. 문 뒤로 모로코식 찜요리 타진(Tajine) 냄새가 솔솔 흘러나오는 식당 골목에 발을 들이자마자 나는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9세기 페즈는 모로코 이슬람 왕조의 최초 수도로 선정되며 종교, 정치, 문화의 핫플레이스로 떠올랐고, 지중해와 사하라를 잇는 북서부 아프리카의 상공업 요충지로 등극하면서 외부의 탐나는 먹잇감이 되었다. 외적의 침입이 얼마나 두려웠던지 주민의 불편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하여, 9600개가 넘는 길을 좁히고 굽혀가며 지상 최대의 미로를 만들어냈다.


모로코식 아침식사


부즐르드 문


 시장 초입부터 털도 깎지 않은 채 눈알이 뒤집힌 낙타 머리가 대롱대롱 걸려 있는 푸줏간이 등장해 혼비백산하게 만들더니, 다리가 튼실한 닭들이 닭장에서 죽을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싱글대며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닭 장수는 정다운 이야기 중간 푸드덕 대는 닭 한 마리를 들어 올려 군더더기 없는 솜씨로 단번에 해체해 버린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달걀은 아직도 따뜻한 기운을 내뿜고, 시식용으로 입에 넣은 올리브는 짭조름하고 고소해서 와인 한 잔 생각이 난다. 제 몸보다 큰 짐을 싣고 힘겹게 걸음을 떼는 당나귀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좁은 골목에 차도 수레도 다니지 못하니 당나귀는 천 년 째 메디나의 대체 불가능한 운송 수단이다. 골목에서 맞닥뜨릴 때면 뒷걸음쳐 길을 내주어가며 나는 점점 시장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땅땅 때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발길을 향하니 나무망치로 구리, 황동을 두들겨가며 각종 냄비와 솥을 만들어내는 금속공예점 거리가 나온다. 고소한 냄새를 따라 걸으면 어김없이 화덕이 밀집해있는 빵집 거리가 나온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굴뚝 아래에는 이슬람식 공중목욕탕 하맘(hammam)이, 알록달록 붉은 천으로 뒤덮인 거리는 카펫 상점들로 가득 차 있다. 이제야 안다, 메디나에서는 오감이 지도다. 언제 페즈를 떠날 수 있을지 알 수 없게 된 마당에 구태여 바삐 찾아다닐 곳도 없으니, 이번엔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이상야릇한 악취를 따라, 코를 킁킁거리며 따라가 본다.



Part II로 계속.




글/사진(1-2, 5-12) miya

런던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옥스퍼드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지금은 서울 체류자. 대륙을 가리지 않고 오지를 휘젓고 다녔지만, 이제는 카페에 나른하게 앉아 일기를 쓰고 엽서를 쓴다. 창밖을 바라보는 맛이 더욱 좋아져 걷기도 싫어져 버린. 아니, 아니, 나이 때문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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