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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패월간 Mar 15. 2020

실패월간 6호 학교실패

학교 : 일정한 목적, 교과 과정, 설비, 제도 및 법규에 의하여 계속적으로 학생에게 교육을 실시하는 기관.


스무 살이 되고, 처음으로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혼자 살게 되었다. 대학까지 뒷바라지를 해주겠다는 엄마 아빠 나름 최선의 지원으로 찬란하고 위대하게 스무 살, 독립 생활을 시작했다. 시간, 공간 그리고 의무로부터 해방되어 하루하루 자유가 채워지고, 젊음의 자신감으로 빛을 더해갔다. 모든 책임이 아직 다 오지 않았던, 눈이 부시게 반짝이던 이십 대. 나는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다. 다른 지역의 문화를 접하고, 언어를 배웠다. 함께 밥을 해먹기도 하고, 성인이 되었다며 거하게 술도 마셨다. 과음한 다음날은 나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로 대출을 부탁하며 새로운 친구와의 끈끈한 우정을 확인하곤 했다. 어린 시절부터 만화를 볼 때만큼은 진중하게 집중력을 발휘했는데, 학생의 미덕은 역시 집중이라 믿으며 대부분의 시간 엠씨스퀴어마냥 애니메이션을 켜놓고 집중했다. 마지막 기말시험을 소울 소사이어티에서 승천하던 5번 대장의 온화한 미소와 맞바꾼 사실을 알게 된다면, 친애하는 엄마와 아빠에겐 이보다 더 소름 끼치는 충격적인 반전은 없을 것이다. 애니메이션으로 채우지 못한 마지막 한잔의 부족함은 자유와 저항의 상징인 락밴드로 인도했고, 뭐라도 된 듯 음악에 심취해 허세 가득한 고민에 빠져 시간을 보냈다. 사랑에 빠져 휴지 한 통을 다 쓰며 울던 날도, 사람이 좋아 술에 취하던 날도, 애니메이션과 드라마로 시간 삭제를 일삼던 날도,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었던 음악에 중독되었던 날도, 모든 학생의 순간은 눈부셨다. 반짝이며 돈과 시간, 마음을 자유에 소비한 나를 학교는 정직하게 평가했다. 여기저기 구멍 난 수업으로 F학점이 대거 방류했고, 밝기만 하던 4년은 오간 데 없이 절망의 짙은 어둠만이 눈앞을 가렸다. 뜨겁게 해가 비추던 날이었는지, 땀같이 끈적거리던 비가 내리던 날이었는지, 초콜렛 같이 진한 밤이었는지, 수채화같이 옅은 오전의 찰나였는지 졸업불가를 판정 받던 그날은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 자유와 유희로 채운 이십 대의 나는 행복했지만, 졸업에 실패했고, 학교생활은 취업 등 훗날 줄줄이 연이은 실패를 생산한 참패의 서막이 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실패한 학교생활의 추억은 아직도 그때를 회상하며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웃고 떠들 수 있는 재미있는 안주거리로 변했다. ‘학창시절’이라는 향수와 동경에 가끔 학생들을 만나면, 요즘의 학교생활은 어떠냐고 물어보곤 한다. 빠르게 변한 시대만큼이나 학생들의 생각도, 생활도 바뀐 것 같았다. 형식적인 졸업장, 단체생활의 유대, 체면 때문에 가야 하는 술자리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대신 빠르게 바뀐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학교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지, 나는 어떤 것을 원하고,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지 고민했다. 내가 먼저 사용해버린 여유로, 지금 학생들에겐 속도만 남은 것은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고민 없이 해맑기만 했던 15년 전의 나와는 다르게, 지금은 교육과 학교라는 시스템에게 스스로 원하는 것을 요구하거나 더 나아가 대안을 제시하는 모습에 괜스레 콧등이 시큰해진다. 일찍 철이 들었다고 해도, ‘학생’이라는 젊음의 뜨거운 열기를 분명 어딘가에서 자유롭고 즐겁게 소비하고 있을 터이다. 진화는 포켓몬스터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님을 새삼 느끼며, 시대에 맞춰 진화한 학생들의 수고함에 열렬한 박수를 보낸다. 사실 개인의 학교실패는 없으며, 학교에 실패가 있다면 단지 공공 시스템의 실패이고, 어떤 모습으로도 진화할 수 있는 모든 이브이같은 학생들을 응원하며 군소리를 마무리하겠다.


#졸업을_축하드립니다 #이브이를_진화하겠습니까? #샤미드_부스터_쥬피썬더_에브이_블래키_글레이시아_리피아_님피아 #진화도_이제는_커스터마이징 (한강각)




#1. 고감각 인터뷰


하늘 사진 찍기를 좋아하고, 시인을 꿈꾸던 신학생 ボネ(보네)님이 알을 깨듯 학교를 자퇴한 이야기를 한강 고감각이 들어보았습니다.


Q: 먼저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어떻게 대학원까지 가게 되었나요?

고3 때 외부적 요인으로 사춘기를 심하게 겪으면서 성적이 많이 떨어졌어요. 원하는 대학교도 못 가겠다 싶었고, 다니던 교회도 나가지 않게 되었어요. 예상대로 수능 성적이 좋지 않아 재수를 결심하던 찰나, 어머니의 한마디가 저를 합리화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신의 뜻이 너를 그곳으로 인도한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위로가 되더라고요, 그렇게 신학교에 진학했고, 잘 순응하며 신앙심도 깊어졌던 것 같아요. 원래 대학원까지 갈 마음은 없었는데, 부유한 여자친구와 교제하면서 신학이란 학문이 저에겐 권력이란 것도 알게 되었어요. 나 자신을 한 번 더 속이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어요. 제가 신학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자연스럽게 그 친구와는 관계가 멀어졌어요(물론 제 부족한 인격도 한몫 했습니다.) 당시에는 상실감이 커서 지금까지 배운 것에 열중하고 싶기도 했고, 종교인이 되는 것이 평생 소원이었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대학원에 가게 되었어요.


Q: 확신이 없다고는 해도 졸업은   있었을 텐데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자퇴를 하시게 되었나요?

제가 신학을 공부하면서 신학생에게 주어지는 환경과 체제의 문제가 개인에게 모든 책임이 전가되는 것을 보았어요. 신학생에겐 먼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신학생은 평일에는 신에 대한 학문을 배우고, 주말에는 교회에 속해 전도사 생활을 병행하는 것이 필수인데 시간이 없어요. 학생으로 충분히 신과 학문을 탐미하며, 신에 대해 고민하기도 하고, 주변에 있는 옆 사람을 둘러 볼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랄까 한국 사회가 경험한 빨리빨리와 효율이 이곳에도 통용되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저는 목사가 되기 전에 오늘 해가 지는 시간을, 노을을 보는 시간을 가지고 삶에 대해 고민해보고 싶었거든요. 두 번째로는 순종과 헌신에 대한 의식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전도사를 하면서 받은 돈이 80만원이었어요. 적은 돈이지만 신학공부를 결심하며, 인생을 신께 드린다고 생각하며 부족한 주머니를 버틸 수 있었어요. 그 속에서 나름 자본주의 시스템이 아니라 신이 주는 안정감을 느끼겠다는 의미도 들어있었어요. 그런데 이 사회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든든한 공동체 없이 월 80만원을 받으며 행복하게 가치를 유지하기 쉽지 않더라고요. 이상적인 것을 듣고 그리며 살았는데, 그 순종과 헌신의 결과는 은퇴하는 소수의 어마어마한 전별금을 받는 소수의 목사와 궁핍하게 살아가는 목사들의 삶을 보며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목사로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목사를 하면 멋도 없고 재미도 없을 것 같아요. 고민하다가 교단이나 신학교라는 권위가 아니어도, 한국 사회에서 제가 꿈꾸는 가치를 지키며 신의 뜻에 따라볼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자퇴를 결정했습니다.


Q: 학교를 자퇴한 지금은 어떠세요?

지금은 사회라는 현실을 체험하고 있어요. 하루에 한 시간씩 배민커넥터로 일하며,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해보고 있어요.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PUB을 기획하기도 하고, 농산물 소매업과 업사이클링 창업도 조금씩 작지만 접하며 나아가고 있어요. 모든 과정 중에 있는 것 같아요. 


Q: 과정에서 발생한 다른 실패들이 있었나요?

사실 제가 PUB에 대해 하나도 몰라요. PUB에서 판매하는 맥주에 대해서 잘 몰라서 재미있는 창피를 당하기도 했고, 모르는 것들은 공부하고 배우며 내공을 쌓아야겠어요.


Q: 실패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지금까지도, 지금도, 앞으로도 끊임없이 흔들리고 실패하고 후회하겠지만, 내가 부족해도 패배감 없이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이고 살게. 도전이 없다면 실패도 없을 테니까 계속 실패하면서 살게. 친하게 지내자 실패야~!






#2. 인터뷰 

성공과 실패는 매일 바뀌는 메뉴처럼 늘 같은 상태로 남아있지 않는다. 학교의 급식을 책임지고 있는 영양사 미디엄스테이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Q: 학교에서 어떤 일을 하시나요

보통 얼굴을 잘 비추지 않아서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수 있는데요, 저는 학교에서 영양사로 일하고 있어요. 영양사는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음식으로 필요한 영양을 골고루 잘 섭취할 수 있도록 고민해 메뉴를 정하고, 만들어내는 과정을 지휘하는 일을 해요. 프로 메뉴 선정러라고 할 수 있죠. 


Q:  매일 메뉴가 바뀌어야 하나요메뉴를 바꾸는  어려움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일단 매일 같은 음식을 먹을 수 없기도 하고, 새로운 음식과 늘 먹는 음식의 조화를 맞춰야 질리지 않고, 맛있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다른 음식으로 다른 영양을 보충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보통 급식은 밥과 국을 제외하면 4가지의 반찬을 준비하는데요, 반찬의 기본값 하나는 김치에요. 매일 3개의 반찬을 준비하고, 전부 조리법이 달라야 해요. 매일 다른 조리법으로 새로운 음식을 준비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한계가 많죠. 메뉴를 정하는 건 영양사 개인의 능력이지만, 메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음식을 만들어주시는 여사님들과 함께 팀플레이를 해야 해요. 요즘은 여러 가지 새롭고 맛있는 요리를 쉽게 접해서, 급식메뉴도 다양해졌답니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조리법은 여사님들에게 어려울 수 있거든요. 잘 설명해드리고, 공유를 하는 일들도 꼭 챙겨야 할 일이에요.


Q: 조리방법을  다르게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그건 어떤 뜻인가요?

학교에는 튀김을 하기 위한 튀김기(튀김솥) 한대, 굽기 위한 오븐한대, 전이나 부침개를 부치는 전판이 한대씩 있어요. 보통 조리시간 안에, 한정된 도구로 조리를 해야 해요. 꼭 조리방법을 다르게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한정된 조건과 환경 때문에 조리방법을 다르게 해야 쉽고 편하게 조리를 할 수 있답니다.


(밥이 밑반찬… 밥은 거들뿐.jpg)

Q: 영양사는 음식의 메뉴만 생각하면 되는  알았는데생각하고 챙겨야  것이 많네요영양사로서 실패를 경험한 적이 있나요

많이 했죠. 처음에는 발주실패를 많이 했어요. 조리하면 물성이 바뀌거든요. 예를 들면 나물은 조리하기 전에는 빳빳한데요, 대치면 성질이 바뀌어서 흐물흐물하게 변해요. 삼겹살, 목살 같은 고기는 부피가 많이 작아져요. 동파육을 했는데, 고기를 손질하고 조리를 하니 양이 정말 작았어요. 과일의 양도 짐작이 가지 않아 양 조절에 실패했죠. 발주를 잘못하면, 양이 부족해지고 아이들이 많이 못 먹으면 너무 미안해서 울기도 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조리 후의 양도 파악이 되고, 자신감도 생겨 여러 새로운 메뉴에 도전했어요. 조리해주시는 여사님들에게 신 메뉴와 조리법을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짬뽕은 늘 매콤한 빨간 짬뽕만 생각하셨는데, 나가사끼 짬뽕을 요청 드리면 굉장히 낯설어하셨어요. 오꼬노미야끼위에 뿌려야 할 가쓰오를 빠뜨리거나, 마초킹 치킨을 만들 땐, 청량고추를 소스가 아닌 반죽에 넣어 만드시기도 했어요. 여사님들의 연령이 높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음식을 조리하실 땐, 아주 자세히 여러 번 설명을 드려야해요. 소통은 늘 어렵잖아요. 발주, 메뉴, 소통, 관계 등 직업으로서 영양사로 많은 부분에 실패했어요. 


Q: 이런 실패들은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처음이라서 많이 서툴렀고, 많이 실수했어요. 그래서 메모를 하게 되었는데요, 메모를 하니 다음 번에는 실수가 많이 줄었어요. 메모로 극복한 것 같아요. 


Q: 미디움 스테이크님의 학교생활은 어떠신가요영양사로서 속상하거나 기쁠 때가 있으신가요

저는 어릴 때 학교에서 나오는 급식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먹었어요. 요즘은 학생들이 자기 표현을 잘 해서 맛이 없으면 맛없다고 이야기해요. 학부모 검수도 있고, 메뉴가 생각한 만큼 나오지 않을 때 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해요. 반대로 맛있으면 복도에서 아이들이 막 날라 다녀요. 가끔 복도에서 만나면 고맙다고 해주는데 그때 정말 기쁘고 보람 있어요. 


Q: 미디엄스테이크님에게 실패란 어떤 것인가요일상의 실패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개인적으로 일하면서 실수하고, 실패할 때 서글프고, 힘들다고 느껴져요. 저는 힘들 때 가족들에게 말을 안 하는데, 그게 참 미안하고 마음에 걸려요. 사실 실수나 실패는 해도 큰일나지 않는데 말이죠. 내가 오늘 실수를 해도 다음부터 안 하면 되요. 그날의 실수는 그날 비난을 받을 순 있지만, 그 하루가 나의 절대적인 평가가 되지는 않아요. 오늘 메뉴에 실패해도, 요리를 못하는 영양사로 평가 받지 않거든요. 힘들거나 그렇지 않을 때나 언제나 일하며 잘 웃어서, 사람들은 성격이 좋은 것 같다고 이야기해주세요. 사실 실패해도 큰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라떼는 말이야 카레랑 짜장이 최고였어. 고기는 금요일만 맛봤지. 세상 참 많이 변했군 #latte_is_horse #한강꼰대각)






#실패 이야기 _ 01 _ 시배우 최일춘  


실패내용 : 대학실패, 나 한명이면 돼


‘달칵’ 소리와 함께 교무실 문이 열렸다. 열린 틈으로 조심스럽게 몸을 우겨 넣었다. 이상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몸도 마음도 움츠려 들었다. 그랬다. 그날은 유독. 마침 담임 선생님은 상담 중이셨다. 선생님은 엄마에게 눈인사를 하고는 우리에게 잠깐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다. 나와 엄마는 교무실 중앙의 난롯가에 앉아서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상담을 기다리는 동안, 나와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난로만 쳐다봤다. 다행히 난로 위에 놓인 주전자의 물 끓는 소리가 싸늘한 마음을 데워주었다. 한 모금의 훈기에 마음도 조금은 단단해지는 거 같았다. 

1994년 11월 22일. 벌써 26년이나 지났지만 날짜는 물론, 시험이 끝난 후 함박눈이 왔던 기억이 있다. 난 그 함박눈을 맞으며 시험장을 빠져나왔다. 마치 『쇼생크 탈출』의 남자주인공 앤디가 된 것처럼 쏟아지는 함박눈을 맞았다. 벌린 입으로 눈이 들어왔다. 청량감과 해방감이 입 안 가득 맴돌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험만 끝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다. 시험의 종료가 내게 보장해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밀려오는 허무함과 함께.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은 5분이 채 안 걸렸다. 기다린 시간에 비하면 어처구니없이 짧았다. 그렇다고 딱히 상담할 내용도 많지 않았다. 내 앞에 커다란 배치표가 펼쳐졌고 성적에 맞춰 합격가능성에 대해 얘기가 오고갔다. A대학은 합격자 성적 평균이 이러이러하니 상향지원이고, B대학은 적정 수준이고, C대학은 안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단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관심 있는 학과에 대해 물어봐주셨다. 나는 어문계열에 관심이 있다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 목소리를 들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국문과, 중문과, 일문과 이렇게 세 개 학과가 그 자리에서 정해졌다. 대입원서를 쓸 대학 세 곳도 상향, 적정, 안정 전략에 따라 정해졌다. 3년간의 수고가 5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땅땅땅!’ 결정됐다.

상담이 끝나고 교무실 문을 나섰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지만 억지로 참았다. 엄마는 두세 걸음 앞서 걸으셨다. 복도를 따라 계단을 내려오고, 학교 정문을 지나 내리막길로 내려가는 동안에도 엄마는 뒤돌아보지 않으셨다. 앞서가는 그 뒷모습이 왜소하고 초라해 보였다. 그리고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시험 결과가 속상해서인지, 선생님과의 상담 내용이 화가 나서였는지, 하루에 도시락 3개를 싸주신 엄마의 수고로움에 보답하지 못했다는 미안함 때문인지, 엄마의 뒷모습이 초라해 보여서인지, 이유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 와중에도 내 우는 소리를 들으시면 엄마가 속상해하실 수 있으니 소리 내지 말고 울어야 한다는 생각에 소리 없이 울었다. 흐린 하늘 때문인지 엄마의 뒷모습도, 거리도, 지나가는 사람들도 뿌옇고 흐릿흐릿했다. 

한 번의 시험으로 3년의 노력이 평가되는 수능. 그 수능 결과는 이미 26년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불편하다. 그 순간을, 마음을 다시 들여다봐야 했기에 이번 주제는 한 달여간 나를 괴롭혔다. 내게 있어 대학, 대학실패 이 주제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고, 시간들이다. 그 바란 기억이 아직도 아픈 거 보면 대한민국에서 수능이, 대학입시가 어떤 무게인지 충분히 가늠이 된다. 

수능을 본지 26년이 흘렀다. 그동안 난 대학을 졸업하고 2개의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대학에서 일을 하고 있다. 지난 12년 동안 대학 입학처에서 입학사정관으로 일을 하고 있다. 내가 이 일을 하게 된 계기는 다른 동료들처럼 거창하지 않다. 난 수능이라는 한 번의 시험으로 모든 걸 재단해버리는 대입구조가 싫었다. 고등학교 3년 동안의 성실함이 긍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대입제도에 대한 청사진을 꿈꿨다. 지금은 그런 순수한 믿음을 내려놓은 지 오래지만. 

최소한 한 번의 시험으로 모든 수고가 아무렇게나 해석되는 일은 되풀이 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대학실패, 그건 나 한 명만으로도 족하다.



인생을 사는 것만으로도 이야기가 되고, 시가 되고, 삶이 된다. 삶 자체에서 삶을 배우는 시배우 한봄일춘 작가님의 시집. (서툴러서 서둘렀다. 꿈공장, 12,000원) @hanbomi20 






#실패 이야기 _ 02 _ ボネ


실패내용: 2월 학교 실패(벚꽃을 기다리면 생각나는 실패)


수능을 준비하면서 버킷리스트에 꼭 적은 것이 있었다. 대학생이 되면 꼭 누구에게나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캠퍼스를 아름다운 여자친구와 걸어 다니는 CC에 대한 환상이었다. 수능을 똥 망치고 가고 싶은 학교엔 갈 수 없었다. 1학년은 열등감이 내 파트너였다. 이 만남의 결별을 결심하고 주변을 둘러봤더니 나는 고추 밭의 잠자리였다. 이 상황을 회피하려는 마음으로 간 군대는 곧 휴가만 바라는 야생의 세계였다. 그렇게 내 20대 초반 학교 생활을 보냈다. 민간인이 된다면 장범준의 벚꽃 엔딩의 가사처럼 벚꽃을 단둘이 손잡고 볼 줄 알았는데 고추 밭의 늪은 생각보다 깊었다. 썸과 연애를 향한 욕망은 한 번 두 번의 실패를 맛보며 빗물에 떨어지는 벚꽃 잎처럼 눈부시게 떨어져나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질겼다.

변하지 않는 단단한 현실(연애불가)과 질긴 욕망(강제 비혼 탈출) 사이에서 학교 생활은 어땠을까? 

결국 나는 꿈에 그리던 CC를 이뤘다(무조건 CC만 하겠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간 관계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고로 믿어달라.) 환상의 나날을 보내다가 부슬부슬 봄비에 떨어지는 벚꽃 잎처럼 우리의 관계는 쉽게 떨어졌고 내 영혼은 흩뿌려졌다. 어린 시절의 연애여서일까? 은은하게 시작한 벚꽃 향의 연애는 우리에게 노랑이 얼마나 강력한 똥 냄새를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은행처럼 떨어지고 으깨졌다. 헤어짐은 신발 밑창과 함께 구수한 똥 내를 집안으로 가져오는 은행처럼 내 마음 한 켠에서 구린내를 풍겼다.(그때를 생각하면 종종 이불 킥을 한다. 이어폰을 꽂고 헤어짐의 아픔을 노래로 표현했던 때였다. 노래를 시작하면 가끔씩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내 방문을 열었던 기억이 있다. 그 때 나는 쉬즈 곤을 쌩목과 자칭 가성으로 불렀다.) 

그런데 개인의 흑역사를 넘어 헤어짐 이후 이게 정말 골치가 아프다. 마주치고 싶지 않은데 좁은 학교 캠퍼스에서 만날 수 밖에 없는 이런 머같은 상황들이 연출된다. 어느 누군가가 나에게 심어놓은 CC의 환상은(BB크림을 넘어서는 CC크림은 Complete Care라는 의미가 있다.) 나에게 씨X 케이지라는 단어로 자리 잡았다. 자유로운 학교 생활을 나는 대 실패했다. 운이 없어 좁은 캠퍼스에 갔는데 CC를 꿈꾸는 그대 또는 지금 CC인 그대. CC는 Campus Couple의 약자가 아니다. 학교 생활이 자칫 잘못하면 Civa Cage라는 단어의 약자다. 어쨌든 나는 CC를 했고 학교 삶을 GG 쳤다. 그럼에도 나는 CC를 지지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3월부터 지속가능한 패션과 관련한 곳에서 일을 시작합니다. 또한 업사이클링 창업도 계속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품은 손수건하고 데코 용품이에요 조만간 실패 월간에 광고 낼게요!! 기다려주세요 편집자님..ㅎㅎ)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나중엔 라이프 스타일 회사도 만들거에요. 이 일환으로 저는 책방열음 사장님과 이희원 작가님에게 배우면서 쓰레기 없는 장을 준비하고 있어요. 지금의 두려운 상황이 조금 물러가면 곧 쓸장에서 뵐게요. 마지막으로! 내년 4월 부활절을 전후로 이든교회 한희준 목사님과 수도원 형식의 Pub을 열 계획이에요. 많은 관심 가져주세요. 여기 제 인스타그램 주소를 남깁니다. 계속해서 제 실패에 관심이 있다면 들러주세요. 오글거리는 글들과 사진이 많습니다.  

@joongho_sf






라떼는 말이야… “학교” 

끝나면, 

오락실에 갔지: 철권, 보글보글, 틀린 그림 찾기, 1945… (한강각) 

PC방에 갔지: 스타크레프트, 스페셜포스, 서든어텍, 크아, 카트라이더, 퀴즈퀴즈, 리니지… (한강고감)


학교에서 몰래 듣는 음악 

CD 플레이어로 노래를 들었다고 (한강각)

아이리버로 노래를 들었다고 (한강고감)


라떼의 싸이월드 브금 모음

Y_프리스타일, 술이야_바이브, 리쌍부르스_리쌍, 고백_다이나믹듀오, 남자를 몰라_버즈, 걸음이 느린 아이_고유진, Promise U_바이브, 청혼_노을, 낙원_싸이, 귀로_나얼, 우리 정말 사랑했을까_브라운아이드소울, 눈의꽃_박효신, 사랑했잖아_린, 애송이_렉시, 사랑의 바보_더넛츠, 처음 그 자리에_이보람, 다시 사랑 할 수 있을까_포맨




(미디엄스테이크님의 체감 뇌피셜급식 메뉴 the BEST & the Worst 


가장 인기 있었던 메뉴 


1. 치킨마요덮밥

2. 카츠동

3. 날치알 김치볶음밥

가장 인기 있없었던 메뉴 

1. 나물

2. 나물

3. 나물





실패월간 6호 끝


크고 작은 실패를 응원하는 실패 각성 잡지 실패월간.

by 도시 비둘기 


문의 : fffail0902@gmail.com

SNS : @magazine_f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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