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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패월간 Mar 15. 2020

실패월간 5호 계획실패

계획 : 앞으로 할 일의 절차, 방법, 규모 따위를 미리 헤아려 작정하는 것


결혼을 했다네, 집을 샀다네, 사업이 망했다네, 이혼을 했다네, 연봉이 어떻다네, 자식을 낳았다네… 다양한 카더라가 뒤엉킨 교차로에서 삼십 대의 중간을 돌며, 마음은 복잡하게 정체되었다. 친구는 늘 같은 방향을 보며 같이 달리는 줄 알았는데, 교육이라는 제도에서 벗어나니 다양한 방향을 선택해 각자 다채로운 길을 가고 있었다. 사이드미러로 보이는 자동차처럼 친구들은 보이는 것보다 가까운데 멀게 느껴지기도, 어느 순간엔 서로의 시야에서 멀어지기도 했다. ‘살기 바쁘다’는 변명에 상처와 수긍을 반복하다, 생존 앞에 모든 것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간혹 만나 카더라로 전해들은 서로의 소식들이 반갑기도 하고, 비교라는 신기루 앞에 허망하기도 했다. 어릴 때 아기가 좋아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사실 대부분의 시간 꼭 무엇이 되고 싶었던 것은 없었고, 20대엔 인생에서 아프리카에 한번쯤 다녀오고 싶다는 계획을 했었다. 남이 보여주는 좋은 방향과 선한 길을 따라가다 보면 온 우주가 날 위해 일해줄 것이라는 비밀스러운 바람으로부터 온 계획이었다. 물론 내 계획이 아닌 타인의 좋은 방법은 나에게 통할 리 없었다. 거창했던 나의 몇 안 되는 인생 계획은 목적과 목표가 부실해 과정을 견뎌내지 못하고 실패했다. 신기루에 가까운 보여지는 모습, 그리고 카더라는 나만 제자리인 것 같다는 불안과 공포라는 정체구간을 만들었다. 작게나마 모아둔 돈은 사업을 한다고 다 썼고, 결혼은 글쎄... 전문성은 기르지도 못하였으며, 좁아지는 관계 속 남은 건 툭하면 몸도 맘도 잘 상해 건강에 켜진 적신호뿐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계획하고, 어떻게 살아온 것인가. 흔들리는 마음의 근간을 다잡으며 호기롭게 삼십 대의 중간을 돌며 ‘독립’과 ‘운동’을 계획했다. ‘나도 이제 생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고, 몸도 마음도 ‘건강함’을 증명하고 싶었다. 보여지는 모습에 집중한 신기루 같은 계획은 결국 형상화되지 않았다. 기대하던 청년주택은 떨어졌고, 바쁘다는 정당화로 운동은 실행에 옮겨보지도 못했다. 물론 계획에 없던 프로젝트를 참여하는 기회나 동업이라는 새로운 관계도 생겼다. 정체구간으로만 생각했는데, 계획하지 않고 생긴 크고 작은 기회나 관계가 느리지만 꾸준하게 새로운 길로 이어지고 있었다. 무계획 안에 얻은 가장 큰 결과물은 실패월간이었고, 이제는 실패월간을 통해 미래를 계획하게 되었다. ‘이렇게 보여지고 싶은’ 실패월간의 욕망 가득한 계획은 대부분 또 실패하고, 성공이라는 다른 신기루와 비교하며 무기력감에 정체될 것 같다. 그럼에도 일단 단 한가지, 2020년 올해를 버텨보겠다는 큰 계획을 계획해본다.


#무계획의결과 #실패월간 #존버는 #계획인가 #계략인가 #꽃게수작인가 #초심으로돌아가자 #이제는계획도생긴 #실패월간 #비나이다비나이다 #올해만버텨보자 #무사히 #레스기릿 (한강각)



고감각 인터뷰



실패월간의 발행인 *한강 고감각에게 2020 실패월간의 ‘계획 물었다.

(*A32 신금용은 한강고, A32 박정민은 한강감, 책방열음 이미지는 한강각이라는 필명으로 실패월간에서 글을 쓰고 있다. 일터가 한강근처라 한강에서 필명을 만들어 한강 고감각이 되었다.)


Q: 드디어 5호가 나왔네요! 축하 드려요. 실패 월간은 계획대로 순항하고 있나요?

한강각 : 처음부터 계획이 있었나 싶어요. 그냥 월간지 발행이 계획이었는데, 그 계획은 이루어졌어요. 부록으로 넣었던 *굿즈가 잘 나가던 호엔 굿즈를 만들어볼까, 독자가 관심 가져주는 방향에 흔들거리며 이런 저런 계획을 정하기도 하고, 보류하기도 하고, 실행하기도 하고 있어요.

(*굿즈: goods, 상품, 물품의 뜻으로 기획된 상품을 뜻한다. 실패월간은 1호를 제외한 모든 호에 부록을 같이 넣어서 판매했다. 2호(패션)는 한강감의 a-land에 납품이 좌절된 맨투맨티셔츠와 모자를, 3호(구매)는 쥬얼리님의 구매 실패한 스와로브스키 귀걸이를, 4호(사랑)는 2020 달력을 굿즈로 제작하였다.) 

한강감 :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작은 계획들은 매번 수정되는 것 같습니다. 크게 바라보면 계획대로 순항 중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한강고 : 항해를 하려면 배가 있어야 할 텐데 저희는 애초부터 배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어떤 모양의 배를 만들지 생각하며 1보 전진 1보 후퇴 중입니다.



Q: 지금까지 주제는 바뀌지만 모든 사연이 실패로 구성되어 있더라고요. 실패한 사연들을 받다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한강각 : 다른 사연들이라 재미있어요. 나와 다른 환경이나 생각, 상황이 재미있고, 관심이 없던 분야도 실패라는 콘텐츠가 버무려져 흥미롭고 맛깔 나는 것 같아요. 

한강고 : 실패한 사연들을 받아 보면 결국 크게 보았을 때 개인에게 성공이더군요, 실패 사연들을 통해 내가 겪었던 실패들도 결국 성공으로 가는 과정들이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한강감 :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통해 삶에 있어서 스스로에게 부합하는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사연을 들어보면 무수한 실패들이 한 사람을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만든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Q: 실패월간을 통해 실패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어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한강감 : 정신적 위안이라고 할까요. 실패를 겪으면 누구나 상실감을 갖게 되죠. 우리가 전하는 실패 이야기들이 상실감을 조금 덜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강고 :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에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만 실패하는 것이 아니구나, 누구나 이런 실패들을 겪는구나 생각하고 자신의 실패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과 다음으로 갈 수 있는 용기를 전달하는 것이 그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한강각 : 성공은 결과고, 실패는 과정이라고 느껴져요. 결국 결과보단 과정에 더 집중하는 것이 실패월간의 철학과 가치라고 생각해요. 결과는 중요하지만, 오랜 과정의 시간이 지나야 비로서 나타나는 것 같아요. 긴 여정의 찌질한 순간을 버티며, 생존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사람 사는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Q: 세분이 다르면서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한강 고감각 셋의 장점과 단점을 말하자면? 

한강고 : 한강각의 장점은 불 같은 실행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불씨를 주변에 옮기기도 합니다. 단점은 모든 것이 좋다고 말하는 것 이었으나 현재는 변하고 있습니다. 한강감의 장점은 차근차근 쌓아가는 것, 단점은 그 역시 모든 것이 좋다고 말하는 것이었으나 현재는 변하고 있습니다.

한강각 : 한강감은 잘 들어주고, 캐치하고, 배려하는 것 같습니다. 소통에 아주 능숙해 보여요. 한강고는 질문을 잘합니다. 질문에 답을 하다 보면, 목적과 방향이 정리되곤 합니다. 단점은 한강 고감, 아니 각까지 칭찬에 조건 없이 의심부터 하는 아주 시니컬한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강고 : 한강각은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누구나 그의 앞에 있으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단점은 너무 편안한 나머지 정신차리지 않으면 조금 무례하게 되어버릴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강고는 통찰력이 있습니다. 조금만 관찰해도 그 사람의 특징들을 잘 잡아내는 것 같아요. 단점은 실패를 많이 한 나머지 염세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어요.


Q: 작년 11월에는 서울도서관에서 주관한 ‘*2019 서울서점페어’에 참여해 처음으로 함께 실패월간을 판매했다고 들었어요. 서점페어에서 계획대로 되지 않은, 실패요인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2019 서울서점페어: 서울특별시 서울도서관이 주관하는 문화행사로 서울의 각 지역 동네서점들은 책을 소개하고 판매하며, 서점을 찾는 시민은 독서모임, 강연회 등 여러 책과 관련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한강각 : 처음으로 서울서점페어에 함께 나가서 실패월간을 팔았어요. 짐이 많아 택시 어플리케이션으로 택시를 잡았는데, 도착장소를 잘못 찍었어요. 행사장이 DDP였는데, 저희 집을 도착장소로 찍었어요. 계획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가장 일찍 도착했었어요. 결국 너무 일찍 도착해버린 것이 계획의 실패인 것 같아요.

한강고 : 찾아오시는 손님들에게 제 스스로 밝게 대하지 못했던 것이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매번 여러 이유로 페어에 참가할 때면, 오늘은 웃자 라고 다짐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다음 페어에 참여할 기회가 생긴다면 좀 더 밝은 모습으로 실패월간을 소개할 것입니다.

한강감 : ‘달력 만들기’라는 조그만 행사를 진행했었는데, 신청해주신 분들이 제각각 다른 시간에 오셔서 1:1수업처럼 한 사람 한 사람씩 진행했던 기억이 납니다. 계획대로라면 한번으로 끝났을 텐데, 계속 설명해야 했던 기억이 나네요.

Q: 작년 11월에는 많은 일이 있으셨네요. 페어 참여뿐 아니라 실패월간 주관의 첫 행사가 열렸다고 들었어요. 3호(구매) 특집으로, 구매에 실패한 물건들을 경매에 붙인 경매행사는 조금 실험적이라고 느껴지는데요. 행사가 어땠는지 평가해주실 수 있나요? 

한강고 : 소비에 실패한 물건들을 모야 경매를 해보자는 야심 찬 계획으로 경매행사를 기획했지만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진행하며 소중한 사람들을 얻었습니다.

한강감 :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았어요. 결국 우리만의 파티로 끝내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예상했던 결과였습니다. 이전에 다른 생계 형 일들이 많아서 그만큼 준비도 못했기에 당연한 결과였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소수의 인원들이 더 진솔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기에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한강각 : 실패월간이란 이름에 걸맞게 실패했어요. 실패하면 실패한대로 실패월간에 풀어보자고 했는데, 너무 신경을 쓰지 못한 것 같아요. 행사실패때 또 다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웃음) 


Q: 2020년 새해가 밝았는데요, 실패월간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신가요?

한강각 : 계획 하지 않고, 흘러갔음 좋겠어요. 대단한 계획보단, 실패월간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다 보면 다른 어떤 계획 속에서 실패월간이 갈 길이 정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사실 바람이죠. 한강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사건을 마주하는 것이 계획입니다. ‘실패월간’이라는 네 글자가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한강감 : 더 많은 사람들의 실패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계획입니다. 


Q: 혹시 실패월간의 성공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한강감 : 매월 꾸준히 발행되고 있다는 것이 성공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강고 : 실패월간에게 성공은 ‘무엇인가 만들어보자’인 것 같습니다. 지난해 무작정 모여 뭔가를 만들어보자고 했던 무모한 계획이 지금 인쇄물이 되어 제 앞에 있습니다. 이만하면 작지만, 성공한 계획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한강각 : 실패월간이 성공할 계획은 제가 결혼할 확률과 같은 것 같습니다.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뭐든 계획한대로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결국 우리는 뭔가를 하고 있더라고요. 


Q: 혹시 실패월간의 콘텐츠를 위해 일부러 실패를 조장하거나, 실패를 유도한 계획을 한 적이 있으신가요?

한강감 : 아닙니다. 이제는 정말 성공이 하고 싶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실패하는 것은 싫네요.

한강고 : 그렇진 않지만, 아무래도 저는 콘텐츠 제조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강각 : 실패월간을 발행한 후 모든 일에 부담이 없습니다. 실패하면 ‘이건 사연각!’ 이라는 생각에 사실 가끔 실패를 조장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실패도 성공이라는 정신승리의 나날들 입니다.


Q: 끝으로 2020년 실패월간이 독자들에게 전하는 포부가 있나요?

한강각 : 독자님들 2020도 계속 그렇게 우리같이 생존해요. 독자님의 관심이 가장 중요하지만, 가끔 잊어버리셔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보겠습니다. 아직도 살아남았다며 웃으면서, 기특해하며 지켜봐 주세요. 

한강고 : 끈질기게 살아남아 다양한 채널에서 실패월간을 만나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강감 : 2020년도 함께 실패해요. 성공하는 그날까지!



기고 글 #1


실패자 : 시배우 최일춘 

실패내용 : 네. 아빠입니다. 그래서요! 

실패년도 : 아빠가 된 후로… 


“윤찬아, 아빠랑 놀아줘!” 

“싫어. 아빠랑 노는 거 재미없어!” 

곧 중학교에 올라가는 아들 녀석이 나를 거부하면서 내뱉는 말이다. 곰곰이 헤아려보면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나와 놀아달라고 한 적이 없으셨다. 나도 그런 아버지에게 놀아달라고 떼쓴 적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가 아니어도 내겐 놀 거리가 많았다. 딱지치기, 구슬치기, 공놀이, 숨바꼭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등 동네 친구들과 할 수 있는 게 수없이 많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굳이 바쁜 아버지를 찾을 이유가 없었다. 유년시절의 아버지와 비교했을 때, 난 그래도 신식 아빠다. 아들과 놀아주는 게 아니고 나와 놀아달라고 얘기를 하니. 아들과 ‘놀아 준다’고 생각하는 순간 굉장한 스트레스와 피로가 동반된다. 물론 아들의 눈높이에서 아들이 좋아하는 것을 해줘야 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놀아주는 게 맞다. 사실 아들과 놀 때, 함께 논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들이 깔깔 웃을 때마다 나도 엔도르핀이 샘솟는다. 여느 아빠가 그렇듯 나도 이런 기쁨으로 아들을 키우고 있다. 그럼에도 아들은 매번 ‘아빠랑 노는 건 재미없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아마도 나와 노는 게 정말로 재미가 없어서 던진 말일 게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그런데 이상하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아들의 이 한 마디에 스멀스멀 피로감과 죄책감이 밀려든다. 충분히 못 놀아줘서, 잘 져주지 않아서,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공감을 잘 못해줘서 등등. 심지어 나는 좋은 아빠가 아니라는 자책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 나도 좋은 아빠를 꿈꿨다. 그냥 아빠가 아닌 좋은 아빠를. 세상사가 그렇듯 꿈이 꼭 현실이 되지는 않는 거 같다. 아무리 꿈을 꿔도, 아무리 애를 써도 현실은 늘 불만족스럽다. 그렇다고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나는 아직 젊다. 여전히 젊은 아빠다. 그래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정리해보았다. 정리가 되니 어떤 걸 시작해야 할지 조금은 선명해졌다. 좋은 아빠라는 타이틀을 벗어 던지니 숨통이 조금은 트였다. 좋은 아빠에서 그냥 아빠로, 그냥 아빠에서 ‘나’를 주어로 생각하기 시작할 때, 때마침 직장인 극단 활동과 글쓰기를 시작했다. 요즘 극단 활동과 글쓰기는 좋은 아빠라는 허상의 피난소를 자처하고 있다. 쉬는 법도 모르고 365일 슈퍼마켓을 여신 아버지의 성실함을 지켜보며 자동 적립된 부성父性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어 좋다. 스스로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호젓한 공간과 시간이 살갑고 고맙다. 물론 대학로 무대에 서기 위해 연극 연습을 할 때도, 카페에서 오롯이 글쓰기에 집중할 때도, 1년에 하루 내게 나만의 휴가를 선사할 때도 일말의 죄책감이 부산물로 주어진다. 여전히 아빠로서 해내길 바라는 생의 역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유롭게 선택하고, 자유롭게 행동하고 싶은 마음은 아빠라는 배역 앞에서 늘 무릎을 꿇는다. 그럼에도 오늘도 꿈을 꾼다. 좋은 아빠가 아닌 그냥 아빠를. 그냥 아빠가 아닌 ‘나’ 자신을. ‘부자 아빠 No! 친구 같은 아빠 Yes!’, ‘우리 아빠가 달라졌어요!’, ‘아이 성공 비결은 아빠의 역할에 달려있다!’ 이처럼 아빠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강요되는 요즘이다. 세상의 변화에 발맞춰 아빠의 역할은 예전의 아버지 세대와 사뭇 달라졌다. 하지만 아빠라는 역할을 수행해야 된다는 당위성은 변함이 없다. 그 당위성을 부인하지는 않다. 다만 당위성을 강요하는 세상에 소심하게 외쳐본다. “네. 아빠입니다, 그래서요!”




시집 : 서툴러서 서툴렀다.

인생을 사는 것만으로도 이야기가 되고, 시가 되고, 삶이 된다. 삶 자체에서 삶을 배우는 시배우 한봄일춘 작가님의 시집. (서툴러서 서둘렀다. 꿈공장, 12,000원) @hanbomi20 





기고 글 #2


실패자 : 신금용

실패내용 : *서울디자인페스티벌 실패 

실패년도 : 2019년 12월 


대학시절 나에게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은 꿈의 도착지였 다. 졸 업한 지 한참이 지나서야 그 도착지에 400만 원을 주고 작은 부스를 얻을 수 있었다. 지난 몇 년간 서울디자 인페스티벌을 둘러볼 때, 준비가 미흡해 보이는 부스를 보면 나는 혼자서 생 각했다. 많은 돈을 지불하고 나왔는 데, 저렇게 대충 있고 싶을 까... 같은 비아냥 섞인 생각이 었다. 하지만 2019년 참가업체 로 참여한 나는 내가 비 아냥거리며 바라보았던 부스와 똑같은 상태였다. 그렇게 400만 원을 내고 4일을 앉아있었다. 우리 부스 앞으로 지나가는 사람 구경만 하면서 하루에 100만 원씩 까먹 은 셈이다. 첫날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둘째 날은 왜 이 런 일이 벌어졌는지 생각했다. 셋째 날은 이유를 알게 되 었고 넷 째 날은 합리화에 들어갔다. 나에게도 이곳에 참 여한 탄탄한 계획과 불꽃같은 동기가 있었다. 좋은 물건 을 만들어서 고객 에게 선보이자는 짧고 명료한 계획은 여러 외압으로 좌절되었 다. 둘째 날 원인을 생각하며 나 에게 가해졌던 외압을 생각했 다. 외압의 종류는 다양했 다. 디자인 외주, 장례식, 나가고 싶 지 않은 모임, 잔병치 레, 사무실의 누수, 그리고 공사, 떼인 돈 을 받아 내는 것 에서 오는 스트레스, 가족의 문제 등 다양했다. 셋째 날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다른 부스들을 돌아보며, 그 들도 왜 여러 외압이 없었겠는가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 구하 고 멋진 상태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부스들을 보며 나 스스로 반성했다. 동시에 과거에 내가 비아냥거리던 부스들을이해했다.넷째날이것을깨닫기위해400만 원을 지불했다면 괜찮 은 금액이라고 생각했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직 은 매너리즘에 빠지지 말고 개같이해야 할 때라고 결론짓고, 2020년은 밀어낼 수 있 는 외압은 힘껏 밀어내고, 내가 원하는 것을 취하기로 계 획했다. 그렇게 합리화했다. 


(*서울디자인페스티벌: 디자이너와 브랜드, 기업들과 함께 디자인 동향을 선보이는 디자인 전문 전시행사입니다.) 



실패월간의 한장면

‘11/9 토요일 오전 8시 책방으로 집결.’ 서점페어라는 큰 행사에서 처음으로 대중에게 실패월간을 소개할 수 있던 날이었다. 큰 행사에 나간 경험이 거의 없는 한강각은 9시부터 부스 설치가 가능하다는 공지에 8시부터 모두를 집합시켰다. 그날따라 거리는 텅 비어 사람이 없었고, 아침이었지만 새벽 같이 찬 공기가 가득했다. 미안한 마음에 밀크티도 한잔 권하며, 서둘러 택시를 불렀다. 짐을 싣고, 출발한 택시 안에서 한강각은 어딘가 모를 불안함과 설렘으로 가득 차있었다. 낯익은 길이 나왔다. 한강고감에게 이 길은 익숙한 길이라며 설명을 늘어놓으며 불안한 마음을 감췄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익숙했던 그 길은 서점페어에 가는 길이 아닌, 우리집에 가는 길임을 알게 되었다. 어플리케이션의 도착지를 잘못 찍은 것이다. 시작부터 예감이 좋다. 실패 월간… (한강각)




(당신의 실패에 실패를 바라며불특정 1인에게 물었습니다.) 2020 어떤 계획이 있으신가요


10세 미만: 놀고 싶어! 고양이카페 가고 싶어!

20대: 올해는 졸업을 앞두고 있어요. 내가 뭘 좋아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찾는 것이 올해 목표에요. 

30대: 유투브를 개설했어요. 안정적으로 유투브를 운영하고, 운동, 외국어공부, 그리고 사랑도 하면서 살고 싶어요. 

50대: 해가 지날수록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책도 많이 보고, 계속해서 공부도 하고 싶어요. 

80대: 아프지 않았음 좋겠는데… 바라는 것이 없으니 그냥 하루하루 잘 지나가면 좋겠어요. 계획이 없죠. 



5호 끝.


크고 작은 실패를 응원하는 실패 각성 잡지 실패월간.

by 도시 비둘기 


문의 : fffail0902@gmail.com

SNS : @magazine_f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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