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실패월간 May 01. 2020

실패월간 8호 <평화롭기 실패>

평화: 전쟁이나 분쟁 같은 갈등이 없는 평온하고 화목한 상태


꽤 오래 전부터 나는 이 드라마를 애청해왔다. 66.2%라는 최고의 시청률 기록한 만큼 이 드라마에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먼저는 스토리가 탄탄하다. 언제나 그렇듯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충돌하곤 했는데, 신문기사, 텔레비전, 그리고 라디오까지 대중 매체는 각자의 프로그램을 통해 의견을 내놓았다. 과거의 전개에서 참고했고, 현재의 요점을 찾았고, 미래를 바라보았다. 시대의 여러 부분을 입체적으로 착용하며 서로 다른 관점을 내놓았다. 가끔 이야기의 답을 찾은 듯 번뜩이며 작가가 되기도 했다. 물론 변하지 않는 전개에 습관적으로 회의감을 느끼곤 했지만, 이성과 감성에 굳은살이 배겨 일희일비하지 않는 뿌리깊은 애청자가 되었다. 돌고 도는 일일 드라마처럼 어디선가 새로운 사건과 문제가 발생했고, 희한하게 지금까지 서사는 계속되고 있다. 

이 드라마의 정점은 등장인물의 탄탄한 캐릭터다. 각자 자신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봄바람처럼 살랑살랑 불어왔다, 이내 사라졌다. 어떤 이는 몇 번이고 불사조라 불리며 다시 부활했는데, 손과 옆구리가 아닌 철면으로 증명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캐릭터 고유의 위기관리부분인데, 돌발상황을 대처하는 등장인물의 처세는 깨달음의 시간이기도 했다. 모든 등장인물은 국민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했다. 그 ‘옳음’이 자신의 고집과 몽니로 뭉친 똥볼을 차면 악당이 되었고, 시대와 정서에 골인하면 영웅이 되기도 했다. 이들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웠다. 보는 사람들이 두통을 일으킬 만큼 강렬하게 부딪쳤고, 중독된 막장드라마처럼 끊지 못했다. 

정치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이야기다. 평화라고는 한 순간도 찾아볼 수 없는 충돌하며 싸우는 전쟁의 시간이다. 역설적이지만 전쟁의 목적은 평화로운 일상을 사수하기 위함이다. 고용주와 노동자, 미혼자와 기혼자, 10대와 80대, 서로 다른 입장과 요구가 있을 뿐이다. 그럴듯한 대의나 공공성을 이야기하지만 한없이 사사롭고 개인적인 행위로 나타난다. 하지만 정치가 가지고 있는 충돌의 진자는 생각이라는 파장을 남기기도 한다. 판단기준이나 개인의 철학이 쌓이고, 이 작은 파장이 모여 시대의 정신을 만들어 간다. 평화는 충돌이다. 아직 오지 못한 유토피아적인 평화의 시대가 있다면, 정치를 통해 끈질기게 확인하고, 요구하며, 그 시대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어차피 살아생전 이 서사의 끝은 볼 수 없다. 살아있는 현재진행형인 정치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야겠다. 마음껏 평화롭게. 


#이제요구해볼까 #쇼미더머니 #얼마줄수있어요 #나…돈…필요해요 #젊은자영업자의슬픔 

(한강각) 












[인터뷰각]

평화를 꿈꾸는 쿨한 모임 쿨피스의 다혜님과 형진님을 만났다. 



각: 먼저 자기소개 부탁 드려요. 

다혜: 18학번으로 입학해 벌서 대학교 3년차가 되었어요. 기독교 학교를 다니고 있어요. 입학할 때 기대가 가득했는데요. 어쩌면 종교는 평화라는 무한한 편견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기독교학교에선 다들 인자하고, 환경도 인격적으로 주어지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대학생활은 생각처럼 평화롭지 않았고, 세계 여행도 하고, 어른스러워 질 줄 알았던 나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는 달리 과제에 치여 살고 있는 중이에요. 

형진: 마땅히 다른 진로가 떠오르지 않아서 신학교를 졸업하고, 신대원에 입학한 대학원생이에요. 


각: 학교에서 ‘평화’ 동아리에 계시다고 들었어요. 동아리에 대해 이야기 해 주실 수 있나요? 

형진: 작년에 4학년시절 복학했거든요. 책을 읽으러 왔다가, 쿨피스 모임 광고를 보고 궁금해서 찾아갔어요. 말 그대로 평화의 동아리에요. 

다혜: 쿨하게 평화를 외치는 동아리로,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토론하고 공부하기도 해요. 다들 캐릭터가 톡톡 튀는 즐거운 동아리죠. 


각: 기억에 남는 쿨피스의 활동이 있나요?

다혜: 저는 초기부터 함께한 멤버는 아니고, 나중에 들어간 멤버에요. 꾸준히 모이려고 노력했는데요. 축제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일회용 빨대대신 지속적으로 사용 가능한 스테인레스 빨대를 팔고, 직접 제작한 스티커를 나누어주었어요. 

형진: 동아리 이름으로 뭉쳐서 대형교회 세습반대집회도 참여해보았어요. 책을 읽고 독서모임도 했었는데, 신선했어요. 환경, 페미니즘, 페스트패션(*유행에 따라 소비자의 기호가 반영 되어 빠르게 바뀌는 패션)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 비건, 정상가족 등의 이슈에 관해서도 함께 공부하고 이야기해보았어요. 저는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비건을 해보기 위해 일주일정도 채식하며 브이로그를 찍기도 했었어요. 


각: 쿨피스에서 활동할 때 실패라고 느껴지신 적이 있나요?

다혜: 쿨피스에서 동성애, 난민, 환경문제 등 소수와 사회 이슈와 평화에 대해 함께 공부했어요. (신학교라 그런지) 다른 시선이나 소수 의견들에 대해 보수적으로, 또는 배타적으로 바라보시기도 하더라고요. 여러 문화에 어떻게 바라보고 신의 뜻을 맞춰나갈지 생각하고 토론해야 하는데, 다른 의견을 이야기하면 신앙을 의심하거나 부정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어요. 타인을 바꾸려고 할 때,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는 실패로 느껴지기도 해요. 고유성을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다름에는 가시가 있는 것 같아요. 반대쪽의 입장이나 나와 다른 생각과도 대화하고 소통하고 싶어요. 서로 공감능력이 자라났음 좋겠어요. 


각: 평화란 어떤 것 이라고 생각하세요? 

다혜: #이해 #공감 #애증 #사랑 이에요. 이 네 개의 감정들 안에서 평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형진: 누구의 평화를 뺏지도 않고, 나의 평화를 추구하는 삶의 태도라고 생각해요. 저 혼자 평화롭기 위해선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서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누군가의 평화를 뺏지 않으려면 저도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같이 평화롭고 싶어요. 예를 들면 육식은 나를 위해 동물의 희생을 강요하고, 편한 플라스틱 사용으로 환경은 아파해야 해요. 삶에서 어느 정도 희생하고, 가치를 얼마나 부여하는지는 각자 다르기 때문에 평화는 삶의 태도 같아요. 단순히 희생만 하면 힘든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물론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평화의 지향점과 방법은 다른 것 같아요. 누군가는 군사력을 강화해야 평화롭다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그 반대가 평화롭다고 생각해요.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지향점과 방법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대화해야 할 것 같아요. 다른 논리의 충돌도 필요한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저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의 모양이 바뀌었어요. 주변의 영향을 받은 것 같거든요. 다른 의견과 생각이 궁금하기도 했고, 많이 물어보고 찾아보았는데, 바뀌었어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대화를 통해 조금은 설득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각: 앞으로 어떤 쿨피스를 꿈꾸세요? 

다혜: 쿨피스의 활동이 꾸준했음 좋겠어요. 코로나 때문에 다들 얼굴도 보지 못했지만, 신입생들도 만나고, 같이 힘을 냈음 좋겠어요. 신학생들은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는데요. 굳이 착한 아이일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뭐든 참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을 했음 좋겠어요! 하고 싶은 말을 합시닷!  


각: 내가 생각하는 실패란? 

다혜: 실패월간에서 과정이란 말이 인상 깊었어요.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서 그런지, 실패가 항상 기억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실패로 좌절할 땐 좋지 않지만, 가끔은 추억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성공하면 액션영화같이 멋있어 보일 수 있겠지만, 실패덕분에 코미디도 가질 수 있는 것 같아요. 매번 액션영화만 볼 수는 없잖아요!? (웃음)

형진: 두렵지만, 평생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최대한 실패를 하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어서요. 실패가 없다면 성공도 없겠죠.


쿨피스의 다혜님












실패사연_01

허물없이 하루가 간다


시배우 최일춘



‘까톡!’ 

경칩을 앞둔 어느 목요일 밤. 한통의 카톡.


“토욜 아침에 머하노? 매주 불암산 감. 시간될 때 갈려?”


격주로 진행되는 글쓰기 모임의 문우이자 책방 대표에게서 카톡이 왔다. 책방 대표하고는 작년 겨울부터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며 가까워졌다. 사람 좋게 생긴 인상과 ‘경상도 싸나이’ 특유의 호방한 성격 덕에 우리는 호형호제하는 사이까지 발전했다. 책방 형님은 글쓰기 모임의 문우 한명과 함께 요즘 매주 산에 오르고 있는데 나도 같이 가자고했다. 날짜를 보니 대학입시 추가모집 마감 다음날이었다. 대학입시를 운영하느라 지친 몸과 마음의 재충전이 필요했던 터라 흔쾌히 수락했다. 하지만 약속한 산행 전날,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하느라 산행보다는 잠을 택했다. 그렇게 산행은 일단락되는 듯싶었다. 


“낼 산 가자!” 

“낼 산행?” 

“이번 주는 산행가자! 불암산”


그 이후 책방 형님은 매주 등산을 가자고 카톡을 보내왔다. 공교롭게도 토요일마다 출근을 해야 했고, 출근을 하지 않는 날은 쉬고 싶은 마음이 더 앞서 제안을 거절했다. 그렇게 2개월이 흘렀다.


코로나-19로 인해 자의 반 타의 반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한 지난 한 달. 방역시스템에 같이 동참하고 있다는 자부심과는 별개로 옅은 우울감이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시시때때로 원인 모를 외로움이 찾아들었다. 날씨도 좋고 내가 좋아하는 봄은 왔는데 이상하리만큼 나는 무기력해져갔다. 도무지 뭘 하고 싶지도 않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그때 마다 책방 형님의 등산가자는 카톡이 왔고, 나는 이런 저런 핑계로 거절을 했다. 


8년 전,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를 왔다. 이 동네를 선택한 이유 중에 하나는 단지 뒤에 황금산이라는 산이 하나 있어 운동 겸 등산을 할 수 있지 않을까였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지난 8년 동안 단 한 번도 이 산을 오르지 않았다. 지난 두 달간 책방 형님의 등산가자는 카톡 때문이었을까, 봄은 왔는데 무기력한 나를 마주하는 게 더 이상 싫어서였을까? 지난주부터 무작정 황금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여파로 ‘확찐자’가 된 나는 해발 128m의 나지막한 황금산을 오르는데 몇 번이고 숨을 골라야했다. 옅은 우울감도, 무기력증도 들여다볼 수 없을 만큼 숨이 찼다. 죽지 않을 만큼 힘들었다. 지금은 10여분이면 오르는 산 정상을 30분 정도가 걸려 겨우 도착했다. 헐떡이는 숨과 함께. 처음 산 정상에 올랐을 때, 성취감과 함께 나의 저질 체력에 화가 났다. 몇 번이나 숨을 고르며 올라왔는지 셈을 해봤다. 8번. 해발 128m를 올라오는데 8번이나 쉬어야하다니. 자괴감과 함께 이래서 되겠나하는 오기가 생겼다. 그렇게 시작된 황금산과의 만남은 지난 열흘 동안 계속되고 있다. 이젠 한두 번 정도 숨을 고르면 오를 수 있는 만만한 산이 됐다.


체력이 어느 정도 올라오니 비로소 산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새순이 돋아난 이름 모를 들풀과 인기척에도 도망치지 않고 지 할일 다하는 청솔모, 초록의 청량함을 가득 담은 햇살, 맑고 청아한 새소리까지. 황금산은 연초록색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내 마음도 연초록색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뱁새도, 인적도 구름인양 간 곳 없고, 덩그러니 홀로 앉아 묻는다. 산에 오르는 이유를. 묻고 묻지만 답은 아직이다. 한 지인의 말처럼 답이 없는 게 답일 수도 있을 터. 때때로 바람이 분다. 머무르지 않고 지나가려고. 허물없이 하루가 간다. 평화로운 산이 저물어 간다. 도종환 시인의 「산경」을 읊조리며 하산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산경(山景), 도종환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산도 똑같이 아무 말을 안 했다.

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았다.

산도 내가 있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하늘은 하루 종일 티 없이 맑았다.

가끔 구름이 떠오고 새 날아왔지만

잠시 머물다 곧 지나가버렸다.

내게 온 꽃잎과 바람도 잠시 머물다 갔다.

골짜기 물에 호미를 씻는 동안

손에 묻은 흙은 저절로 씻겨 내려갔다.

앞산 뒷산에 큰 도움은 못 되었지만

하늘 아래 허물없이 하루가 갔다.











실패사연_02



나는 다수의 평화보다는 개인의 평화에 더 관심이 있다. 개인이 평화로우면 결론적으로 다수도 평화로워지지 않을까 라는 논리라기 보다는 그냥 내 인생이 좀 평화로웠으면 해서이다. 나는 늘상 이루고 싶은 욕망을 갈망하는 내 자신과 그것을 이룰 만큼 성실하지 못한 내 자신 사이에서 서로의 탓만 하며 사느라 평화로웠던 기억이 별로 없다. 그래서인지 나는 평화란 욕망과 맞닿아있다고 생각한다.


평화는 어떻게 이루는 걸까. 모든 욕망을 채우면 이루어질까.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유명한 짤을 많이들 즐겨 쓰듯이, 욕망 채우기는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다. 부와 권력을 모두 거머쥐었었다고 알려진 솔로몬도 욕망을 채우는 것이 헛되다고 기록한다. (헛되어도 좋으니 한 순간이라도 부와 권력 냄새라도 맡고 싶다 쫌...)


그렇다면 욕망에서 자유 하면 평화를 이룰까. 나무 아래에서 석가모니처럼 수행을 거듭하면 욕망은 사라지고 온전한 평화를 이룩할 수 있을까. 또 그러기엔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많은 욕망의 인간이다. 

부와 권력은 없으나 욕망은 타고 난 나에게 평화는 이미 태생부터 실패다. 그래서 어쩔까. 평생을 함께해온 욕망에게 집을 나가라고 하느니 평화를 포기하겠다. ‘죽으면 평생 잘 수 있어요’라는 커피 광고처럼, 관속에 들어가면 평화는 이룰 수 있다. (꼬북핏자)









실패월간 8호 끝.


크고 작은 실패를 응원하는 실패 각성 잡지 실패월간.

by 도시비둘기


문의 : fffail0902@gmail.com

SNS : @magazine_fail

작가의 이전글 실패월간 7호 <만장일치 실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