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연애시대>

가정의 달 2

by cozyoff

필름을 필사하다,《매거진 필사》


헤어짐 뒤에 시작된 의식

- 연애시대(2006, SBS)

by. cozyoff



지난 3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를 보며 문득 떠오른 드라마가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제 마음속에서 변치 않는 인생 드라마, 2006년작인 <연애시대> 입니다. 폭싹 속았수다가 2025년에 한 가족, 한 인물의 삶과 희노애락을 담았다면, 연애시대는 15년도 더 전에 한 부부의 상실과 사랑의 깊이를 담아낸 작품이죠.


드라마는 흰 눈이 내리던 날, 세상에 잠시 머물다 간 아이 '동이'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출산과 동시에 세상을 떠난 짧은 생과 긴 부재는 이동진(감우성)유은호(손예진)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살아있다면 두 살이구나"라며 매년 아이의 나이를 세어가는 은호, 그리고 함께 울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은 결국 아이의 죽음 앞에서 서로를 붙잡지 못했고, 이혼이라는 또 다른 상실을 택하죠.


하지만 이혼한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매년 결혼기념일마다 만나는 기이한 의식을 이어갑니다. 호텔에서 보내오는 디너 할인권으로 결혼식을 올렸던 그 장소에서 함께 식사를 하죠. "거기 스테이크 끝장나게 맛있다" 라는 동진의 말 뒤에 숨겨진 진심은, 아마도 서로의 눈에 비친 동이의 흔적을 잃지 않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결혼기념일에 만나는게 이상하면, 이혼기념일에 만나는 건 어때?"라는 동진의 농담처럼, 두 사람은 어색한 관계 속에서도 서로를 완전히 놓지 못합니다.


124346_2781710_1746360785914847409.png SBS 제공


<연애시대>의 매력은 이런 일상의 담백하고 섬세한 묘사에 있습니다.

과장 없이 그려낸 이혼 후의 미묘한 감정선, 서로에게 남은 그리움, 서점과 스포츠센터라는 현실적인 배경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삶과 닮아있죠. 하지만 '결혼기념일마다 만나는 이혼한 부부'라는 아이러니한 설정은, 현실과 로맨스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며 독특한 긴장감을 형성합니다. 이 틀 안에서 삶과 사랑, 상실과 재회를 아주 조심스럽고 진지하게 탐색해 나가게 되죠.


드라마 속 현실감은 작은 디테일에서 시작됩니다.

직장 내 사소한 대화, 습관처럼 반복되는 일상, 자꾸만 어긋나는 타이밍.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며 인물들의 감정선은 보다 복잡해지고, 그 안에서 서정적인 순간들이 조용하게 빛나기 시작합니다. 이는 단순히 로맨스의 양념이 아니라, 사랑의 현실감을 말하는 방식이죠. 그저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하지만, 우리가 지나온 감정의 자취와 그것들이 만들어낸 '현재의 나'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들어 냅니다.


드라마의 톤도 단순히 밝거나 어둡지 않습니다. 때로는 유쾌한 농담과 위트 있는 대사가 피식 웃음을 자아내다가도, 문득 찾아오는 장면들에서 생각지도 못한 파문을 남기기도 합니다.


동진이 다른 사람과 재혼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은호는 주방에서 피클 병을 열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립니다. 아이를 잃은 슬픔, 자신을 잃어버린 공허함, 그리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절망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장면이죠. 병 하나 열지 못해 무너지는 사람을 통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억눌려 있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무너짐이야말로 누군가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가장 생생한 증거임을 알게 되죠.


“이미 늦었는데 이제와서 나보고 어떡하라고. 열려라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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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의 특별한 점은 그 고통을 과장하거나 쉽게 치유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은호와 동진은 아이의 죽음을 잊지 못한 채, 서로를 바라보면서도 계속 머뭇거립니다. 그리고 그 멈칫거림은 '상실을 안은 사람들'이기에 더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그 사랑이 다시 상처가 될까 두려운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연애시대>는 단지 '이혼한 연인들의 재회'를 그리는 드라마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죽음 이후의 사랑, 사랑 이후의 삶에 대한 고찰이며, 삶이라는 이름의 상실에 어떻게 견디고 또 살아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죠.


동진의 "살아있으면 한살이구나...작년엔 그렇게 말했다. 앞으로도 계속 죽은 아이의 나이를 세어보겠지"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 시간을 상상하며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대변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그렇게 상실을 끌어안고 다시 조금씩 자라납니다. 눈 내리는 창가, 책장 사이의 침묵, 스치는 손끝의 떨림. 말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들이 화면 곳곳에 살아 있고, 그 침묵이 전하는 메시지는 때로는 대사보다 더 명확하게 다가옵니다.


이 드라마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단순합니다.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는데, 그 상처를 안고도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은호와 동진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모든 관계, 모든 이별, 모든 후회에도 같은 질문이 반복됩니다. 우리가 익숙해서 지나쳤던 순간들이, 얼마나 깊고 무거운 의미를 품고 있었는지를요.



그래서 '연애시대'라는 제목은 하나의 시처럼 보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연애시대’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잃고, 그리워하고, 다시 사랑하는.

그 시대를 통과하면서 우리는 삶의 경계를 건너고, 상실이 가르쳐주는 사랑의 무게를 배우며, 빈자리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힙니다.


익숙했던 슬픔이 낯설어지고, 낯설었던 행복이 다시 가까워질 때쯤

동진은 말합니다.



어디서부터가 사랑일까

걱정되고 보고싶은 마음부터가 사랑일까

잠을 설칠 정도로 생각난다면 그건 사랑일까


어디서부터가 사랑일까

오랜시간이 지나 뒤돌아봐도

그래도 가슴이 아프다면 그게 사랑이였을까


-연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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