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을 필사하다,《매거진 필사》
영화 <블랙베리>는 단순한 기술 기업의 흥망성쇠를 넘어, 혁신의 빛과 그림자,
그리고 성공이라는 양날의 검이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시험하는지를 예리하게 포착합니다.
아이폰 이전 시대를 풍미했던 블랙베리의 드라마틱한 몰락은 이미 널리 알려진 서사입니다.
영화는 이 익숙한 사건의 연대기적 나열을 넘어서, 그 과정에 개입된 인간 군상의 심리와 관계 변화에 현미경을 들이댑니다.
결과적으로, <블랙베리>는 한때 세상을 지배했던 기술의 허망한 종말을 통해,
현대 사회의 성공 강박과 그로 인한 가치 전도 현상을 통렬하게 고찰하는 현대적 알레고리로 기능합니다.
영화의 핵심은 창업자 마이크 라자리디스(제이 바루첼)의 변화와 그를 둘러싼 두 인물, 더그 프레긴(맷 존슨)과 짐 발살리(글렌 하워턴)의 역학 관계에 있습니다.
초기 RIM(Research In Motion)의 정체성은 단순히 ‘성공에 대한 욕망 부재’라기보다는,
어쩌면 기술적 순수성과 공동체적 가치를 우선시했던 그들만의 평형 상태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발살리의 등장은 이 균형을 깨뜨립니다. 그의 야심은 RIM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키는 동력이 되지만, 동시에 마이크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성공에의 갈망을 자극하며 파우스트적 거래의 서막을 엽니다.
감독 맷 존슨은 다큐멘터리적 기법과 극적 연출을 영리하게 교차시킵니다.
핸드헬드 촬영은 인물들의 불안정한 심리와 급변하는 상황의 현장감을 생생히 전달하며, 의도적으로 배치된 벽과 기둥 등의 시각적 장애물은 인물 간 소통의 단절과 심리적 거리감을 효과적으로 은유합니다. 이러한 연출은 마이크와 발살리 간의 아슬아슬한 긴장감, 그리고 그 사이에서 소외되는 더그의 고뇌를 입체적으로 조형하며 관객을 몰입하게 만듭니다.
영화는 마이크가 ‘바람(wish)’을 넘어 ‘욕망(desire)’에 잠식당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추적합니다.
성공은 마이크에게 혁신에 대한 강박을 심고, 이는 곧 가치 판단의 기준을 왜곡시키게 됩니다.
더그를 향한 “넌 쓸모없어”라는 대사는 단순히 친구와의 관계 파탄을 넘어, 초기 RIM의 정신을 스스로 부정하고 ‘발살리의 형제’로 거듭나는 마이크의 자기 배반을 상징합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단순한 경영 실패담을 넘어, 성공이 개인의 도덕성과 인간관계를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를 날카롭게 통찰합니다.
<블랙베리>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단선적인 답을 제시하기보다, 그 복합적인 과정을 조명합니다.
성공에 대한 집착은 마이크의 또 다른 자아를 보여줍니다.
친구보다 일을,
단체보다 개인을,
예의보다 힐난을 일삼은 마이크의 현재 모습은, 더그의 친구 마이크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이제 마이크는 발살리의 욕망으로 이어진 형제가 된 셈이죠.
발살리와의 협력, 혁신에 대한 압박, 시장의 변화, 그리고 내부의 균열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음을 보여주면서도, 결국 모든 선택의 중심에는 인간의 ‘욕망’이 자리함을 암시합니다.
다만 확실한 건 마이크의 순수했던 기술적 바람이 시장 논리와 결탁하며 통제 불가능한 욕망으로 변질되는 순간, 몰락은 이미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RIM의 사례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성공해야만 한다’, ‘2등은 패배다’라는 구호가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순수한 꿈과 열정은 종종 왜곡된 욕망으로 치환되곤 합니다.
<블랙베리>는 이러한 시대적 풍경을 배경으로, 진정한 성공의 의미와 가치를 되묻습니다.
마이크의 여정은 우리에게 ‘바람’과 ‘욕망’의 차이를 직시하고, 그 경계선 위에서 끊임없이 성찰할 것을 요구합니다.
결국 <블랙베리>는 한 기업의 실패담을 넘어, 우리 시대의 성공 강박과 그 이면의 공허함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영화는 관객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바람’은 안녕하신가요, 아니면 이미 ‘욕망’의 그림자에 잠식당하셨나요?
이 질문이야말로 <블랙베리>가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묵직한 화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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