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음영 속의 초상<본 투 비 블루>

쳇 베이커

by cozyoff

필름을 필사하다,《매거진 필사



- 본투 비 블루(2014, 로버트 부드로)

by. cozyoff


1950년대 초반, 재즈의 역사는 현란하고 정열적인 비밥(bebop)의 열기 속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복잡한 화성과 신경질적 에너지로 대표되던 비밥의 영향력은 미국 동부와 서부에서 서로 다른 형태로 발전했죠. 동부 뉴욕에서는 비밥의 복잡성을 유지하면서도 블루스와 가스펠의 요소를 더한 하드 밥(Hard bop)이, 서부에서는 한결 평온하고 부드러운 쿨 재즈(cool jazz)가 움트기 시작했습니다. 재즈의 전설 마일스 데이비스의 기념비적인 녹음 <Birth of the Cool>이 그 서막을 알렸고, 바로 이 시기 마치 시대의 요청에 응답하듯, 쳇 베이커라는 이름이 쿨 재즈의 가장 아름다운 아이콘으로 떠올랐습니다.


'호흡이 느껴지는 톤'이라 불리는 쳇 베이커의 사운드는 수많은 뮤지션들이 모방하려 했지만 결코 재현하기 어려운, 독보적인 것이었어요. 마틴 커미티(Martin Committee)트럼펫의 풍부하고 따뜻한 음색이 그의 스타일과 만나 매끄럽게, 때로는 거의 속삭이는 듯한 음표들로 피어났죠. 이는 빠르고 격렬한 비밥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의 트럼펫은 그야말로 '최소주의적 웅변'으로, 수많은 음표의 나열 없이 단 몇 개의 음표만으로 깊은 감정의 파고를 만들어 냈죠.


그의 목소리 또한 트럼펫만큼이나 특별했습니다. '졸린 듯한 느긋함'으로 특징지어지는 그의 보컬은 듣는 이를 즉각 사로잡았고, 때로는 신비로운 '양성적 특질'로 묘사되어 성별을 가늠하기 어렵기도 했습니다. 특히 느린 발라드에서 그의 연약하면서도 꿈결같은 목소리는 곡에 더없는 매력을 더했죠.


그러나 이렇게 섬세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창조해낸 예술가의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깊은 어둠과 혼돈으로 얼룩졌습니다. 쳇 베이커는 평생을 마약 중독과 방탕한 생활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으며, 그의 삶은 무너져 내리는 순간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처절하게 망가진 삶은 그의 음악, 특히 그가 대표했던 쿨 재즈의 서정성과 기묘한 방식으로 얽혀 있는 듯 보입니다.


쿨 재즈 특유의 절제된 아름다움과 차가운 멜랑콜리는, 어쩌면 그의 내면에 들끓던 고통과 자기파괴적 욕망이 투영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아름다움과 추함, 창조와 파괴는 그의 삶과 음악 안에서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했죠.


<본 투 비 블루(Born to be Blue)> 라는 이름처럼, 그가 우울함 속에서 태어날 운명이었음을 말해주는 영화는 쳇 베이커의 삶, 그 눈부신 재능과 처절한 몰락이 교차하는 한 시기의 단면을 포착하여 보여줍니다.


124346_2802378_1747566968163553742.jpg 엔터테인먼트 원 제공


'본 투 비 블루'는 감독 스스로 "anti-biopic(반전기영화)"이라 명명했을 만큼 독특한 접근 방식을 취합니다. 영화는 쳇 베이커의 실제 삶의 궤적을 좇으면서도, 중요한 지점들에서 의도적인 변형을 가하는데, 이러한 차이점들은 단순한 사실 왜곡을 넘어, 예술가의 복잡한 내면과 그를 둘러싼 세계를 더욱 깊이 있게 탐구하기 위한 창의적 선택이라 할 수 있죠. 그렇다면, 영화가 어떤 방식으로 사실을 비틀고, 그 안에서 어떤 주제의식이 드러나는지, 그 지점들을 짚어볼 차례입니다.


'영화 속 영화'라는 은유적 프레임
영화의 시작부터 이러한 접근방식은 명확히 드러납니다. 쳇 베이커(에단 호크)가 자신의 전기영화 제작을 위해 석방되는 장면으로 영화는 문을 열지만, 이는 실제 쳇 베이커가 당시 이미 미국으로 돌아와 요양 중이었던 사실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 허구적 장치는 두 가지 의미를 나타냅니다

그의 삶에서 반복되는 몰락의 악순환을 상징하는 동시에, 전기영화가 지닌 재현의 한계, 예술가의 실제 모습과 대중이 소비하고자 하는 이미지 사이의 간극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지 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게 되죠. 이 장치는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하여, 쳇 베이커라는 인물이 가진 여러 모순적인 측면을 표현하기 위한 효과적인 전략이며, 단순한 형식적 실험이 아닌 그의 삶과 예술이 가진 본질적 복잡성을 담아내기 위한 필연적 선택인 것입니다.


제인, 창조된 뮤즈
연인으로 등장하는 제인(카르멘 에조고)은 '영화 촬영으로 만난 여배우'로, 실제 쳇의 여러 연인들을 모티브로 삼아 창조된 허구적인 인물입니다. 여배우라는 설정부터, 그녀가 현실이 아닌 이야기 속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드러내죠.

그녀는 단순한 로맨스의 대상을 넘어, 이야기의 핵심적인 동력이 됩니다. 쳇의 "대립항(foil)"으로서 예술가가 사랑과 파멸적인 중독 사이에서 내려야 하는 고통스러운 선택의 중심에 서며, 이야기의 결정적 순간들을 이끌어갑니다.


압축된 회복 과정과 내적 투쟁의 극대화
영화는 앞니를 잃은 쳇이 연인인 제인에게 의지하며 트럼펫 연주를 다시 배우는 고통스러운 훈련 장면들을 감동적으로 그려냅니다. 이는 실제 쳇 베이커의 재기 과정보다 훨씬 압축되고 극화된 것으로, 각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며 예술가의 내적 갈등을 최고조로 끌어올립니다. 특히 뉴욕의 재즈 클럽 '버드랜드'에서 복귀 무대를 갖는 클라이맥스는 굴곡의 세월을 넘어서는 재즈와 그의 인생 자체로 다가오도록 연출되었지만, 공연 역시 실제와는 다른 허구적 설정입니다. 이는 쳇이 평화로운 삶과 중독의 위험이 도사리는 무대 사이에서 겪는 근본적인 딜레마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common.jpg


이처럼 영화는 쳇 베이커라는 예술가의 삶을 단순히 서사적으로 따라가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의 음악 장르처럼 감정의 흐름과 내면의 갈등을 복합적으로 조율해내는 정교한 구조를 보입니다. 특히 영화적 긴장감은 이 작품의 미학을 결정짓는 또 다른 축으로, 그것은 바로 ‘쿨 재즈’라는 장르가 지닌 이중적 특성과 맞닿아 있습니다.


쿨 재즈의 겉보기에는 절제된, 그러나 내면에는 진한 감정이 응축된 사운드는 영화의 로맨스에도 그대로 반영됩니다. 쳇과 제인의 관계는 뜨겁지만 침묵이 깃든, 애틋하지만 결코 전부를 말하지 않는 사랑의 양상으로 묘사됩니다. 이같은 감정의 미세한 떨림이, 두 사람의 관계는 불꽃이 아니라, 꺼지지 않는 담담한 잿불처럼 오래도록 남아 보는 이를 사로잡게 되죠.


이러한 섬세한 미학적 균형을 가능하게 한 중심에는 배우 에단 호크의 헌신이 있습니다.

그는 쳇 베이커를 단순히 '묘사'하거나 '흉내' 낸 것이 아니라, 그의 음악을 몸에 새기듯 재현했습니다. 트럼펫 연주법은 물론, 쳇 특유의 몸짓과 호흡까지 구현하며 진짜 연주자처럼 무대에 올라섭니다. 영화 속에서 직접 부른 “My Funny Valentine”“I've Never Been In Love Before”는 단순한 삽입곡이 아니라, 쳇 베이커의 존재를 입체화하는 또 하나의 감정선이 되어 줍니다.

특기할 점은, 이 영화에 실제 쳇 베이커의 연주는 단 한 곡도 사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 대담한 선택은 결과적으로, 영화 전체가 ‘에단 호크라는 악기’를 통해 쳇의 세계를 다시 연주해내는 하나의 시도로 읽힙니다.


결국 '본 투 비 블루'는 쿨 재즈가 지닌 차가움 속의 뜨거움, 절제된 형식 속의 감정의 폭발을 스크린 위에 옮겨낸 섬세한 연주이자, 한 예술가의 균열진 내면을 음악처럼 구성한 시적 자화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음악 영화도, 평범한 전기 영화도 아닌, 한 예술가의 내면을 통째로 '재즈처럼' 재현한 작업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영화는 음악의 떨림과 배우의 숨결, 화면에 번지는 재즈의 그림자를 통해 애틋하게 속삭입니다.

마치 쳇 베이커가 생전에 남겼던 그 속삭이듯 낮은 한 음처럼.







뉴스레터 매거진 필사 구독:https://magazinefilsa.stibee.com/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