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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돌레 매거진 Oct 15. 2020

이 시대 돌판에 필요한 ‘성인지 감수성’

WRITER Dinga


ⓒ YG 엔터테인먼트

데뷔 4년 만에 첫 정규앨범으로 컴백한 블랙핑크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논란을 불러왔다. 타이틀곡 <Lovesick girls>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에서 간호사 역할을 연기한 멤버 제니가 입고 있는 의상이 논란이 되었던 것. 짧고 타이트한 간호사복, 헤어 캡, 높은 하이힐의 간호사 코스튬은 간호사를 성적 대상화했다는 비판을 가져오며 대중들은 "요즘 세상에 어떤 간호사가 저런 옷을 입고 일하냐" 등의 반응을 보였다. 보건의료노조에서는 논평을 통해 "현재 간호사의 복장과는 심각하게 동떨어졌으나 '코스튬'이라는 변명 아래 기존의 전형적인 성적 코드를 그대로 답습한 복장과 연출이다. 간호사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멈추어라"라고 호소했고, SNS에서는 '#간호사는_코스튬이_아니다' 등의 해시태그가 확산되었다.      


이에 YG는 "해당 장면의 노래 가사를 반영한 연출이었으며, 특정한 의도는 전혀 없었다. 뮤직비디오도 하나의 독립 예술 장르로 봐 달라"는 입장을 표명했고, 뮤직비디오 속 해당 장면은 삭제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간호사 코스튬에 대한 비판이 적절한가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 상황. "해당 장면이 뮤직비디오에서 삭제될 만큼 성 상품화의 의도는 없어 보인다", "이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이다." 등의 의견도 지배적이다.      


필자는 블랙핑크의 뮤직비디오 연출에서 간호사에 대한 성적 대상화가 이루어졌고, 장면이 삭제되는 것이 맞다는 입장이다. 엄연한 전문직인 간호사가 본래 활동복이 아닌 기존의 성 고정관념을 답습한 코스튬으로 상징된다는 것 자체가 간호사 직업군을 낮잡아 보는 모욕이다. 원래도 간호사는 여성의 비율이 높다는 이유로 전문직 다운 대우를 받지 못했다. 아직도 간호사를 '아가씨'라고 호칭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구글 이미지에 간호사를 검색하면 청소년에게 유해한 결과는 제외되어 나온다. 간호사의 이미지가 평소에 어떻게 소비되는 것인가. 뮤직비디오의 코스튬 장면은 간호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고착화할 뿐이기에 적절하지 못했다.  

구글 이미지에 '간호사'를 검색한 결과이다.

게다가 당사자인 보건의료노조에서까지 간호사를 성적 대상화한 것이 맞다고 했는데, 코스튬을 보고 즐기는 입장의 대중들이 그들의 판단을 옳다 그르다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싫다고 하면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도리 아닌가. 이러한 대중들의 반응은 대중문화 속에서 고착화된 여자 연예인의 성적 대상화, 그리고 그에 따른 성인지 감수성의 부족 때문이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성인지 감수성이란 일상에서 형성된 젠더 이슈, 즉 남녀의 성차별적이고 성 역할 고정 관념적인 불평등을 감지하고, 그에 대한 실질적 영향을 이해하며, 불합리한 상황을 비판하고 이를 고치기 위해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1990년대 등장한 이 단어는 우리나라에서도 2018년 대법원 판결에서 처음 법적 용어로 사용되면서 학술적, 사회적 용어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1) 쉽게 얘기하면, 사회에 존재하는 성차별을 인식하는 능력을 뜻하는, 그래서 주관적인 기준이라고 비판을 받기도 하는, 아직은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 단어가 '성인지 감수성'이다.      


대중문화에서의 성인지 감수성은 어떨까? 아직도 대중에게는 연예인은 소비되는 존재이고, 대상화되는 상품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미디어 안에서 자연히 연예인들은 인격적으로가 아닌 상품으로 대상화되기 쉬운 존재이다. 이는 특히 여성 연예인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그들의 외모, 몸매 등은 대중들에게 성적으로 대상화되기 일쑤이다. 예를 들면, 여성 연예인의 연예 기사에서는 당사자가 어떤 일을 했건 대부분 '-에도 변함없는 미모, 몸매' 등의 타이틀을 가진다. 여성 연예인의 능력보다는 성적인 매력이 더 우선시되어 회자되는 것이 당연했다. 이는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없을 만큼 영향력이 적은, 권력 계층의 아래에 있는 여성일수록 더 심하게 적용되는데, 결국 대중문화 속 성적 대상화에서 가장 취약한 집단은 나이가 어리고 을의 입장에 있는 걸그룹이 된다.     



성적 대상화된 걸그룹의 트라우마
출처 - MBN <미쓰백>

걸그룹 성적 대상화의 예시는 최근 화제가 된 스텔라 출신 가영의 고백에서 볼 수 있다. 최근 화제가 된 MBN 새 예능 <미쓰백>의 멤버가 되어 재도약에 나선 가영은 첫 방송에서 근황을 소개하며 대중에게 충격을 주었다. 활동 당시 화제성을 위해 파격적인 19금 콘셉트로 활동했던 스텔라는 야한 의상에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로 노이즈 마케팅에 이용되었다. 가영은 노출에 대한 트라우마로 여름에도 노출 없는 긴팔, 긴 바지를 입는다고 고백했다. 게다가 아직까지도 SNS DM으로 오는 성기 사진, 스폰서 제의 등으로 고통받는다. 

     

스텔라가 19금 콘셉트로 변화한 2014년 즈음의 2.5세대 걸그룹들은 청순 혹은 섹시로 양분화되어 극도로 성적 대상화된 모습을 보인다. 걸스데이, AOA 등의 메이저 그룹들뿐만 아니라 스텔라, 식스밤 등의 그룹들까지 노출 대전에 뛰어들었던 시기이다. 그들의 노출은 자발적이었던 것일까? 스텔라의 예시처럼 당사자의 의사는 반영되지 못한 채 강압적으로, 시류에 편승되어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노출이 존재했을 것이다. 한순간의 유희를 위한 성적 대상화의 이면에는 가영뿐만이 아닌 숨겨진 걸그룹 피해자들의 트라우마가 이어졌다.      



현재에도 사각지대에 놓인 걸그룹들

그렇다면 현재에는 걸그룹의 성적 대상화가 줄어들었을까? 성 상품화에 대한 규제와 더불어 여권에 대한 인식이 전보다는 향상됨에 따라 걸그룹의 대상화가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할 정도는 되었지, 성적 대상화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하기도 어렵다. 대상화에 대한 비판도 팬덤이 어느 정도 형성된 아이돌에서나 가능하고, 그 급이 되지 않는 걸그룹은 외면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출처 - 파나틱스 V앱

최근 논란이 된 파나틱스의 브이앱에서 무대가 아닌 곳에서조차도 걸그룹의 노출이 당연시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브이앱 중 짧은 치마를 입은 멤버에게 관계자가 점퍼를 건네자, 다른 관계자가 "가리면 어떻게 하냐, 보여주고 하는 건데 왜 가리냐"라며 눈치를 주고, 멤버는 당황하며 다리 위의 점퍼를 치우고 다시 방송을 진행했다.      

브이앱 중 관계자의 태도는 기획자가 걸그룹을 아직도 성 상품으로 취급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가 변화하고 여성 연예인들의 성적 대상화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몇몇 기획자들의 걸그룹 제작 의도는 변하지 않은 듯하다. 자신들의 의사를 내비치기 힘든 어린 걸그룹 멤버들은 여전히 성적 대상화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다시 블랙핑크 간호사 복장 논란으로 돌아가 보자. 

No doctor could help when I'm lovesick


해당 장면의 가사를 바탕으로 한다면 왜 제니가 의사 역할은 아니었던 것인가? 왜 하필 성적 코스튬이 존재하는 간호사 역할을 맡아야 했던 것인가? 모든 예술에는 기획자의 의도가 담긴다. 실제와 다른 간호사복을 뮤직비디오에서 입은 의도는 무엇인가? 해당 장면의 연출은 간호사와 걸그룹 블랙핑크를 동시에 성적 대상화한 것뿐이다. 간호사에 대한 비하의 의도보다는 인식에 대한 무지에 가깝다. YG는 이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성인지 감수성이 매우 부족한 상태이다. 

     

다만 블랙핑크의 뮤직비디오가 큰 질타를 받은 이유에는 그들의 높은 위치 또한 작용한다. 표현의 자유가 존재하면 그에 따른 책임도 존재한다. 대중문화는 단지 그 문화 속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향유하는 이들에게도 큰 영향을 준다. 극단적인 예로 어린이들이 걸그룹 댄스 커버를 위해 짧고 타이트한 노출 의상을 따라 입는다.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성적 대상화가 대중의 인식에도 아무렇지 않은 것으로 각인되게 하는 것이 문화이다.      

또 다른 대상화의 피해자를 만들지 말아야 할 책임. 그 피해자는 간호사 등의 특정 직업군일 수도, 혹은 같은 걸그룹일 수도, 혹은 이를 모방하는 일반 대중이 될 수도 있다. 블랙핑크와 YG는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비단 YG뿐만이 아니다. 대중문화, 특히 성 상품화가 일반화된 걸그룹 시장의 기획자들 모두의 책임이다. 사회의 시선이 변화하는 이 시점에서 걸그룹 당사자들의 트라우마를 막고, 크게 보면 사회 전체의 고정관념을 변화시키기 위해 기획자들이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고 더 이상의 퇴보되는 행보를 이끌지 않기를 바란다.    

 


1) 최영미, 정현용(2020), 「대학생이 인식하는 성인지 감수성 실태 분석」, 『공주대학교 교육연구소』.


* 본 글은 아이돌레 웹진에 실린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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