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 차이트
<불후의 명곡>에서 우승해 본 아이돌 멤버가 있다는 사실을 들어본 적 있는가? 걸그룹 우주소녀(WJSN)의 다원과연정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우주소녀의 보컬 퀄리티를 책임지는 메인보컬인 만큼, 둘이 보여주는 합을 조금만 들어본다면 우승 이유에 대한 짐작이 갈 듯하다.
그런데 이 그룹, 조금 더 알아보니 경연 프로그램 출전 경력이 상당하다. <퀸덤2>에서는 팀 단체로 우승을 거머쥐고, <복면가왕>에서는 무려 절반에 가까운 멤버(5명)가 출전했다. 심지어 그 중 두 명(엑시, 다영)은 아이돌 보컬이 갈수록 뚫지 못하는 3라운드 진출의 벽도 통과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였다. 이외에도 멤버 엑시는 단신으로 보컬 경연 프로그램 <두번째 세계>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다수가 안정적인 실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이러한 쾌거는 매번 세간에서 좀처럼 화제성 있게 다뤄지지 못했다. 출중한 실력과 쌓은 성과에 비해 늘 미적지근했던 반응은 큰 타격으로 다가왔고, 결국 재계약 전까지 활발히 활동하던 10명 중 2명(루다, 다원)은 소속사인 스타쉽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해지를 알렸다. 힘들게 부채질한 열기가 맥없이 식는 상황의 반복에 우주소녀 역시 많이 지치고 답답했던 걸까. 이런 어중간함이 지속되는 상황을 이미 본인들도 <퀸덤 2>에서 직접 토로한 바 있다. 현재 멤버들은 재계약 이후 각자 개인활동에 임하거나 휴식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분명 완전체로 돌아오는 일도 있을 수 밖에 없는 만큼, 팀 전체의 모습에 대한 재고와 함께 기획 방향성의 개선 역시 이 시점에서 필요함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2막을 맞은 우주소녀는 여태 어떤 방향성을 가져왔고, 앞으로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바람직한 것일까?
'우주소녀'하면 보통 몽환적인 신시사이저 사운드가 이끄는 아래 촘촘한 트랙을 겹쳐 무겁게 쌓은 볼륨감 있는 음악이 떠오른다. 여기에 감정 낙폭이 큰 보컬, 서사성 짙은 가사, 반짝거리는 천체 그래픽으로 완성된 판타지적 이미지까지. 하지만 이런 류의 방향성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한 번 빠져들기에는 너무 좋아도 몰입이 끝나면 금방 지친다는 것이다. 같은 서브컬처 스타일을 시도하는 축에 드는 다른 그룹의 국내 음반, 음원 성적이 저조한 점도 이를 반증한다.
하지만 그동안 본인들의 커리어에서도 변화의 가이드라인으로 적합한 노래들은 분명 나름대로 있어 왔다. 주목할 점은 특히 <BUTTERFLY>가 음악적으로발매 시기를 고려하지 않은 데에 패착이 있는 듯하다는 사실인데, 반대로 말하자면 이를 피드백 삼아 우주소녀가 나아갈 모범적 방향성을 이야기하기 쉬울지도 모른다. 초장부터 달뜬 분위기를 깔고 시작하는 <BUTTERFLY>가 전개 내내 크게 텐션을 떨어뜨리지 않는 것에 비해, 직전 히트곡인 <이루리>가 그리는 점진적인 상승감은 보컬의 완급조절 덕에 그 폭이 훨씬 크다. <이루리>가 역주행했음을 생각하면 대중들이 바로 그 다음 활동곡이었던 <BUTTERFLY>에서 우주소녀에게 바라던 것은 <이루리>가 가진 미학과 비슷한 성질을 띠는 노래이겠지만, <BUTTERFLY>가 그리는 감정선의 상승폭이 그렇지 못했다는점에서 전작에 대한 피드백이 충분치 않아 보인다. 결국 이러한 행보는 우주소녀의 음원 기획에 있어서 되돌아볼 점이 분명히 있음을 시사한다.
또, <너에게 닿기를>까지 포함해 대중들에게 반응이 좋았던 곡은 주목을 끄는 리드 신스(Lead Synth)가 보컬과 함께 눈에 띄는 고음역대를 담당한다. 여기에 박자감을 쪼개는 나머지 악기들이 저음역대를 담당하며 그 사이가 텅 빈 느낌으로 표현되는 공간감이 대중성의 핵심인 세련됨을 만들었다. 하지만 <BUTTERFLY>에서는 도입부를 빼고는 리드 신스가 없다. 게다가 모든 트랙을 한 번 포근하게 덮어주는 패드 소리가 아래 깔리는데, 이 패드가 일으키는 희뿌연 안개가 전체 트랙의 위계를 잴 수 없게 흩뜨린다. 결국 보컬부터 패드까지 전체적인 한 덩어리로 얼버무린 채 묶이게 되면서, 앞의 두 곡과는 다르게 세련된 소리의 분리도, 공간감도 느낄 수 없게 된다. <BUTTERFLY>가 가지는 음악적 디테일의 문제인 것이다.
이미지적인 기획도 문제였다. 특히나 알 수 없는 문장이나 문양, 시각 기호들을 동반한 <비밀이야>, <꿈꾸는 마음으로>,<부탁해> 등의 기획은 그럴듯하지만 막상 자세히 그 안을 들여다보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너무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때문에 그들이 그리는 세상은 어떤 것들이 어떻게 오가고, 통하고, 호흡하는 체계를 갖춘 것인지 최소한조차도 알 수 없다. 이는 읽고 뜯어보는 재미의 면에서 큰 깊이 차이를 느끼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러한 디테일 설계 깊이의 차이는 설정적 요소에 의존도가 높은 판타지/오컬트적 컨셉에서 가장 중요한 "몰입"을 깨는 결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일까. 비슷하게 스토리텔링적 기획을 구사하는 aespa나 드림캐쳐의 팬들이 각종 설정이나 복선에 대한 자발적 분석을 행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과 달리 우주소녀의 팬덤은 이에 크게 흥미가 없는 모습이다. 오히려 팬메이드 콘텐츠나 댓글 반응 중에는 이러한 설정을 의식한 모습보다 멤버들의 외모나 실력 위주의 칭찬이 더 자주 보일 뿐이다.
상기한 문제점들의 개선 조짐만 있다면 분명 <이루리>처럼 기존의 벅차오르는 애틋함이나 서정성이라는 무기를 포기하지 않고도 대중성을 향해 한 발짝 더 다가선 음악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곧 우주소녀가 기존의 유산을 버리지 않는 것으로 바람직한 정체성 형성의 지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대중적으로 잘 되는 음악들은 대개 감성보다 감각에 초점을 맞춘 노래다. 우주소녀는 감성에 초점을 맞춘 쪽이었으니 위기감을 느낀 소속사는 한 번의 스타일 변화는 있어야 했다고 판단한 듯 하다. 하지만 그 방법을 파악하지 못해 7년 간 여러 번 컨셉을 뒤집으며 갈팡질팡했다. 그리고 재계약이 후인 현재까지도 좀처럼 갈피를 못하는 모습이다. 그렇기에 이런저런 이유로 완전체 활동은 아직 멀었겠지만 그동안 부디 어떤 방향성을 가진 팀으로 남아야할지 그 답을 잘 찾았기를 바라 본다. 마지막으로 멈추지 않고 도전을 계속해 준 우주소녀 멤버들과, 그들이 보여주는 모든 퍼포먼스에 감사를 표한다. 이제는 앞으로도 좋은 변화, 좋은 모습을 또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응원의 목소리로 마무리하려 한다.
* 본 글은 아이돌레 웹진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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