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thology) + K-POP
WRITER. 모브
최근 길고 특이한 곡 제목과 댄스 챌린지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그룹 르세라핌의 수록곡이 있다. 바로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다. 처음 르세라핌의 컴백 앨범 트랙리스트가 공개되었을 때부터 이 세 인물이 누구인지 사람들의 궁금증을 유발했다. 이브는 창세기 속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은, 최초의 인간 여성이고, 프시케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에로스의 명령을 어기고 그의 얼굴을 본 인물이며, 푸른 수염의 아내는 호기심에 비밀을 엿본 동화 <푸른 수염> 속 주인공의 아내이다. 이 셋은 모두 작품 속에서 정해진 규율을 어긴 여성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르세라핌은 이들을 통해 '금기를 깨고 나만의 길을 나아가자'라는 곡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처럼 케이팝에서 신화 속 인물 또는 이야기를 통해 메시지를 보여주는 다른 곡은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자.
아이브(IVE) <LOVE DIVE> 속 나르키소스 이야기
<LOVE DIVE>의 후렴 가사 “Narcissistic my god I love it"에서 단어 Narcissistic의 의미를 궁금해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Narcissistic은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 나르키소스(Narcissus)와 관련이 있는 단어다. 나르키소스는 강의 신 케피소스와 물의 님프 리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난 아름다운 소년이다. 그는 많은 님프들의 구애를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고, 그에게 거절당한 님프들 중 한 명이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에게 기도를 올려 나르키소스는 자기 자신과 사랑에 빠지는 저주를 받게 된다. 어느 날, 그는 사냥을 하다 맑고 깨끗한 샘을 발견하게 되는데, 물을 마시려고 몸을 숙인 그 때 샘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반해버린다. 그는 물에 비친 형상이 자신인 것을 인지하지 못하며, 그 존재가 자신을 받아주지 않고 도망치려고 한다고 생각해 하루하루 야위어져 가다 죽음을 맞이한다. 몇몇 작품에서는 물 속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이때 샘물 옆 그가 있던 자리에 한 꽃이 피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수선화다. 현재는 자신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자기애’를 ‘나르시시즘(narcissism)’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이브 <LOVE DIVE> 뮤직비디오 속 물속에 있는 멤버들의 모습, 거울을 보는 듯한 안무는 나르키소스 이야기를 잘 표현하고 있다. <LOVE DIVE>뿐만 아니라 데뷔곡 <ELEVEN>의 가사에서도 “내 앞에 있는 너를, 그 눈에 비친 나를 사랑하게 됐거든”에서도 이러한 나르시시즘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아이브 외에도 SF9 ‘예뻐지지 마’, f(x) ‘4 walls’ 등 케이팝의 여러 음악에서 나르키소스 이야기를 담고 있다.
태연 <INVU> 속 아르테미스 여신
우리가 상상하는 여신의 모습을 가장 잘 구현해냈다고 평가받는 태연의 <INVU> 뮤직비디오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아르테미스 여신을 모티브로 제작되었다. 신화 속 아르테미스는 달, 사냥, 숲, 순결의 신이자 태양의 신 아폴론과는 쌍둥이 남매 사이이다. 뮤직비디오에서 달을 계속 보여주거나 활과 화살을 들고 있는 태연의 모습은 이러한 아르테미스 여신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아르테미스는 올림포스 여신들 중 가장 차가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신이며, 은색, 회색 톤의 의상과 액세서리가 많이 사용되고 금속 재질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심장이 이런 면을 표현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INVU>의 가사와 뮤직비디오는 처녀의 신인 아르테미스, 태연이 한 남성을 사랑하게 되고 실연의 감정을 느끼게 되며, 자신의 활로 여신의 상징인 달을 쏘는 등 자기 자신을 벌준 후 끝내 실연의 아픔을 이겨낸 뒤 완전한 여신의 모습을 되찾는다는 내용을 보여준다.
원어스(ONEUS) <발키리(Valkyrie)> 속 발키리(Valkyrie)
[MV] ONEUS(원어스) _ Valkyrie(발키리) - YouTube
곡 제목과 같은 이름의 발키리(Valkyrie)는 북유럽 신화에서 전사한 용사들의 혼을 자신이 모시는 신, 오딘의 발할라 궁전으로 인도하는 여전사들이다. 신화 속에서는 저승사자 또는 사신과 같은 존재로 묘사되지만, 원어스의 <발키리(Valkyrie)>에서는 가사 속 어둠 속에 갇힌 화자를 빛의 공간으로 인도하는 천사로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발키리’를 불빛을 ‘밝히리’의 중의적 표현으로 사용하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 만 하다.
SF9의 북유럽 신화 세계관
SF9는 정규 1집 [FIRST COLLECTION]부터 꾸준히 컴백 티저와 뮤직비디오에 북유럽 신화 세계관을 선보이는 그룹으로 알려져 있다. [FIRST COLLECTION]의 타이틀곡 <Good Guy> 뮤직비디오에 꾸준히 등장하는 황금 팔찌는 북유럽 신화 속 오딘이 가지고 있던 ‘드라우프니르(Draupnir)을 상징한다. 드라우프니르를 착용하면 9일마다 똑같은 팔찌 8개가 만들어져 총 9개의 팔찌가 되며, 신화에서 숫자 9는 가장 완전한 숫자를 뜻해 SF9 아홉 명의 멤버들이 모두 모였을 때 완전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SF9 세계관에서 이 팔찌의 주인은 멤버 ‘인성’으로 추정된다. <여름 향기가 날 춤추게 해> 뮤직비디오를 보면 SF9 멤버들의 비극의 시작에 황금 뱀이 있는데, 이는 북유럽 신화의 대표적인 괴물 ‘요르문간드(Jǫrmungandr)’이다. 요르문간드는 전쟁의 시작, 라그나로크의 원흉인 ‘로키’의 자식들 중 하나로, 그가 입에 물고 있는 꼬리를 놓게 되면 신들이 몰락하여 세계가 멸망하는데, 뮤직비디오에서 황금 뱀이 이러한 모습을 하고 있다. <Tear Drop> 뮤직비디오에서는 라그나로크 시대 당시 혼란의 상태를 나타낸 SF9 멤버들의 역경을 보여주고 있다.
그룹의 세계관 또는 곡에 신화의 내용을 담으면 신비롭고 판타지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이를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앞으로도 케이팝에서 숨겨진 신화 속 이야기를 찾을 수 있는 음악이 많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 본 글은 아이돌레 웹진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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