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 비바체
유튜브를 자주 보는 사람이라면 ‘슈퍼주니어 몸싸움의 진실’이라는 영상을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슈퍼주니어 멤버들이 SBS 예능 프로그램 ‘강심장’에 출연하여 ‘Mr. Simple’ 활동 당시 음악방송 대기 시간에 있었던 일을 풀어낸 영상으로,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유튜브에서 20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예능 프로그램의 큰 파급력을 보여주었다. 강심장은 아이돌만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아니었지만, 수많은 아이돌이 거쳐간 프로그램으로, 슈퍼주니어의 ‘몸싸움의 진실’, 지드래곤의 ‘내 이름은 곤드래곤’ 등 레전드 에피소드들을 다수 남겼다. 1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아이돌들은 각종 예능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데, 그때 그 시절 예능 프로그램 속 아이돌과 현재의 예능 프로그램 속 아이돌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아보자.
그 시절 아이돌은 한 가지 공통적인 사명감을 갖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였다. 바로 ‘그룹을 띄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SNS 프로모션, 틱톡 챌린지, 자체 컨텐츠가 없던 시기에 아이돌 그룹이 성공하려면 노래가 엄청 좋거나, TV에 많이 나와 그룹의 인지도를 높이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때 아이돌들이 선택한 방식은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허들이 낮은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그룹별로 한 명씩은 존재하는 ‘입담 좋고 웃긴 멤버’가 좋은 활약을 보여주면 방송 당일 실시간 검색어 장악은 물론이고, 네이트판 등 인터넷 커뮤니티가 들썩이곤 했다. 이런 멤버를 ‘예능돌’이라고 부르는 등 새로운 수식어가 탄생하는 계기 역시 되었던 때다.
대표적인 ‘2세대 예능돌’ 하면 제국의아이들 광희와 카라 박규리가 떠오른다. 광희는 SBS ‘강심장’, MBC ‘세바퀴’ 등의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특유의 화려한 입담을 뽐내며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그룹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신곡 홍보 역시 잊지 않았다. 박규리 또한 KBS2 ‘스타 골든벨’, MBC ‘공감토크쇼 놀러와’ 등의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규리여신’이라는 별명을 널리 알리며 카라와 박규리라는 이름을 모두 알렸다.
하지만 예능돌의 뛰어난 말솜씨 뒤에는 소년 · 소녀 가장의 서글픔이 숨어 있다. 광희가 그 시절 예능에서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 꺼낸 소재는 다름 아닌 성형이었다. 아이돌에게 성형 의혹은 굉장히 민감한 이슈이지만 광희는 오히려 당당하게 성형 사실을 고백하며 주목받았다. 시청자들은 그 모습을 보며 뻔뻔함에 웃음을 참지 못했지만, 광희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지난 3월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광희는 그 당시를 회상하며 절박한 심정을 고백하며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박규리도 ‘규리여신’ 이미지 때문에 많은 악성 댓글을 받았다. 스타 골든벨에서 멤버별로 한 글자씩 말하며 사자성어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한국어가 서툰 니콜, 예능감이 좋았던 강지영과 구하라의 합작으로 인해 규리여신이라는 별명이 탄생하게 되었는데, 이후 박규리 하면 규리여신이 떠오를 정도로 ‘예능계 레전드’가 되었다. 그렇지만 이런 콘셉트가 과하다는 이유로 악성 댓글에 시달려야 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그룹을 알리기 위해 자기 자신을 내려놓으며 절박하게 활동했다는 점이다. 그 시절 예능 클립을 조금만 보면 알 수 있다. 광희와 박규리뿐만 아니라, 많은 아이돌들이 자기 자신을 디스 하는 ‘자학개그’를 하거나, 오버해서 ‘댄스 배틀’을 하고, MC들이 몰아가는 부담스러운 상황에 눈물을 참아가면서까지 녹화했다. 필사적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장면들이다. 그 당시에는 재밌었을지 몰라도, 사회의식이 진보한 오늘날 다시 보면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아이돌이 안쓰럽고, 그런 녹화 환경이 불쾌하게도 느껴진다.
이에 비해서 요즘 예능은 많이 달라졌다. 출연하는 아이돌들의 편안함이 화면 밖의 시청자에게도 느껴진다. 매주 금요일 19시 유튜브 ‘차린건 쥐뿔도 없지만’ 계정에 올라오는 동명의 웹 예능을 한 번 보자. ‘차린건 쥐뿔도 없지만(이하 차쥐뿔)’은 가수 이영지가 진행을 맡은 음주 토크 방송이다. 이영지의 실제 자취방에서 촬영이 이루어지는데, 게스트와 함께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게스트들은 처음엔 쭈뼛거리고 낯을 가리는 모습을 보이지만, 술이 들어가니 본래의 텐션을 보여주며 내면의 진솔함을 고백한다. 에스파의 카리나는 ‘차쥐뿔’에 출연하여 가족 모두 머리가 작은데, 이것이 굉장히 콤플렉스였다고 밝히며 이영지에게 위로를 받았다. 르세라핌의 김채원은 이영지에게 데뷔 전 연습생 시절의 고충을 이해한다는 공감과, 지금 콘셉트가 너무 잘 어울린다는 칭찬 세례를 받았다. 이처럼 게스트가 부끄러울 수 있는 결점은 오히려 긍정적 반응으로 넘기고, 진행자가 더 개그에 적극적이거나 사소한 미니게임으로 재미를 유발하는 등 출연진과 시청자 모두가 불편하지 않은 예능을 연출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십오야’ 계정에 올라오는 ‘출장 십오야’에서도 출연진들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출장 십오야2 X 스타쉽:가을야유회’ 편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스타쉽 소속 아이돌은 물론, 배우들까지 총집합하여 31명이 출연한 이 회차에서는 남자와 여자, 아이돌과 배우라는 벽이 허물어진 채 하나가 되어 즐기는 출연진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우주소녀의 설아와 배우 천영민이 초면에 어색함을 못 견디고 MBTI를 물어보며 대화를 이어나가는 모습이나, 식당으로 이동하는 관광버스 내에서 손을 흔들며 노래를 떼창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줌과 동시에 자연스러움, 편안함을 느끼게 만든다. ‘출장 십오야2 X 하이브’ 편에서도 비슷한 장면들을 볼 수 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휴닝카이가 포켓몬 성대모사를 하자, 같은 그룹 멤버들과 담당 스태프는 물론이고 르세라핌, 세븐틴, 엔하이픈 등 다른 출연진들도 분위기가 어색하지 않게 박수를 보내주었다.
이처럼 오늘날의 예능은 옛날보다 아이돌들이 더 편하게 출연할 수 있는 모습으로 발전하고 있다. 여기에는 단지 사회의식의 변화만 반영된 것은 아니다. 방영 플랫폼이 유튜브, OTT 서비스 등으로 많이 옮겨 가면서 더 이상 ‘1순위 콘텐츠’가 아니게 된 것의 영향 또한 존재한다. SNS와 인터넷이 덜 발달했던 2010년대 초만 하더라도 안방에서 아이돌을 보려면 TV 말고는 매개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많은 SNS가 등장한 지금은,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쇼츠, 자체 컨텐츠 등 아이돌이 모습을 드러낼 곳은 무궁무진하다. 이로 인해 더 이상 굳이 기존의 자극적이고 불편한 예능에 출연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인기 있는 스타들이 더 이상 TV 예능에 출연하지 않고, 또 시청자들은 사회의식이 발달하면서 출연진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부 예능에서 발을 돌렸다. 자연스레 TV를 포함해, 아이돌 출연자들을 포함한 다수를 불편하게 했던 예능 진행 방식이 하나 둘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아이돌을 울리는 예능이 아닌, 아이돌도 함께 웃을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 많이 등장하길 바란다.
* 본 글은 아이돌레 웹진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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