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RITER 덕원
지난해 5월 30일, 우리의 마음을 똑똑 두드리며 등장한 소년들이 있다. 필자는 소년들의 첫 무대를 잊을 수가 없는데, 보이넥스트도어라는 그룹명보다 지코가 프로듀싱한 보이 그룹으로 먼저 이름을 알린 이들이 데뷔 무대만으로 팀의 방향성을 단박에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손에 꼽히는 강렬한 데뷔 무대가 아닐 수 없다. 보이넥스트도어와 팬을 이어주는 ‘문’이라는 상징적인 매개체의 사용, 사춘기 소년들이 쓴 것 같은 낯간지러운 가사와 그것을 직관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자유분방하고 역동적인 안무. 이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들의 음악과 무대에는, 옆집 소년처럼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은, 동경의 대상보다는 꾸밈없는 솔직함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보이넥스트도어의 지향점이 잘 표현돼 있다.
보이넥스트도어 음악의 가장 큰 강점은 각 앨범을 연결해 주는 유기적인 ‘스토리텔링’에 있다. 특별히 세계관이 없는 보이넥스트도어의 음악에서 진한 스토리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모든 앨범의 수록곡까지 전부 감상했을 때 이들의 음악은 한층 더 재밌어진다. 보이넥스트도어는 앨범 시리즈의 첫 주제로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공감하기 쉬운 ‘사랑’을 택했다. 처음 사랑을 마주한 소년들의 모습을 표현한 [WHO!], 첫사랑과 헤어진 이후 혼란스러운 감정을 담은 [WHY..], 그리고 [WHO!]와 [WHY..]사이에 있었던 서사를 들려주는 [HOW?]까지 총 3개의 앨범을 발매하며, 첫사랑 시리즈를 완성했다. 보이넥스트도어의 솔직하고 유쾌한 매력은 10대 소년이 사랑에 빠진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냈고, 소년 만화 주인공처럼 보이기를 추구하는 여느 그룹과는 다른 보이넥스트도어만의 순수한 사랑 스토리를 구축했다. 흔하다면 흔한 사랑 이야기로 자신들을 소개하고, 독보적인 색깔까지 증명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첫사랑 3부작은 보이넥스트도어가 앞으로 들려줄 음악을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야 내가 미친 건지 함 들어봐
손이 슬쩍 닿은듯한데
날 보고 씩 웃네
뭐 이리 예뻐
미쳤나 봐 I'm sorry
-돌아버리겠다 가사 中-
첫 가사부터 미쳐버리겠다고 표현하는 소년들. 보이넥스트도어는 친구들에게 고민 상담하며 첫사랑의 시작을 알린다.
‘돌아버리겠다’의 뮤직비디오에는 SNS에 좋아요를 누르고는 금세 후회하고, 우연히 만나지만 인사를 건네지 못하고 씩 웃기만 하는 멤버들의 귀여운 모습이 나타난다. 처음 마주한 사랑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로봇처럼 뚝딱거리는 자신을 보며, 멤버들은 이 상황을 ‘돌아버리겠다’고 표현한다. 웃음이 나오는 어린아이 같은 단어 선택이지만, 이 감정이 사랑인지조차 헷갈려 하는 멤버들에게 ‘돌아버리겠다’는 지금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최적의 단어다.
뮤직비디오에서는 멤버들이 사랑에 빠진 서로를 응원하지만, 이후 모두가 같은 사람을 좋아하고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다소 황당한 스토리가 전개된다. 하지만 멤버들이 이 사실을 알고 사랑을 포기할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즉 ‘돌아버리겠다’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WHO!]의 관전 포인트는 보이넥스트도어가 짝사랑 상대에게 고백에 성공하는지, 마는지에 달려있다.
‘One and Only’는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고백을 결심한 멤버들이 멋지게 치장하는 모습이 나온다. 옷도 이것저것 입어보고, 안 뿌리던 향수도 뿌리면 말이다. 그리고 긴장한 모습이 웃퍼질 때쯤, 멤버들은 쇼윈도에 비친 자신을 보며 스스로 멋있는 사람임을 상기시킨다. 고백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One and Only’ 같은 존재임을 깨달은 것이다. ‘One and Only’는 멤버들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곡 답게, 중간중간에 자신들이 보이넥스트도어임을 드러내는 가사들이 많다. 마치 우리를 보이넥스트도어 음악 속 주인공으로 초대하는 느낌을 선사하며 말이다.
자신감으로 채워진 소년들은 고백하러 상대방의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아무리 꾸몄어도 떨리는 마음은 숨길 수 없는 법, 긴장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끝내 고백을 결심하고는 길가에서, 그녀의 집 앞에서 계속 사랑을 노래한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그녀의 이름을 알 정도로 말이다.
‘Serenade’는 보이넥스트도어의 순수한 소년미가 가장 잘 돋보이는 곡이다. 가사 중에는 난 차도 없고, 면허도 없고,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너의 아버지와 잘 지내겠다는 약속만은 하겠다는 내용이 나온다.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것도 아니고, 상대방의 마음을 설득한다는 것이 고작 아버지를 소환하는 것이라니. 10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새로운 고백의 발상이다. 어딘가 엉뚱해 보이지만 이것이 보이넥스트도어의 진정한 매력이 아니겠는가.
‘Serenade’에서 사랑을 고백하며 순정 모먼트를 보여줬던 보이넥스트도어. 하지만 사랑이 있으면 이별도 있지 않은가? 이별을 맞은 소년들은 3개월 뒤 다소 거친 모습으로 돌아온다. 쓸쓸함과 분노가 동시에 느껴지는 컨셉 포토에서 알 수 있듯, 이별의 감정을 한 형태로만 정의 짓지 않았다.
첫 트랙 ‘Crying’은 이별을 받아들이긴 힘든 마음이 담겨있다.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별에, 담담하게 이겨내는 것도, 눈물을 흘리는 것도 어렵기만 한 소년들은 이별의 감정을 미숙하게 대처한다. 하지만 보이넥스트도어의 음악 세계관에선 미숙함도 품어야 하는 대상이며 온전히 드러난다. ‘첫사랑은 어렵다’는 공식은 누구에게나 당연하다는 듯, 구차해도 상관없다며 이별을 받아들이긴 힘든 자신의 감정을 인정한다. 상대방을 원망도 해보고, 울어도 보고, 웃어도 보이면서 말이다.
첫 트랙에선 이별의 감정이 하나로 정의되지 못했다면, 타이틀곡 ‘뭣 같아’는 슬픔을 받아들인 소년들의 모습을 다소 거칠게 표현했다. 소년들은 여전히 상대방을 좋아하지만, 이별했어도 난 너를 사랑한다는 로맨틱한 고백 따위는 던져버린다. 상대방을 위해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은 것, 옷차림 하나까지 너의 취향에 맞춘 것, 모든 시간에 회의를 느끼며 어린아이처럼 화를 주체하지 못한다. 고백했던 장소를 불태우고 심지어는 추억이 담긴 물건을 끌어안고 다이빙까지 하며 말이다.
타이틀곡의 제목이자 메인 가사인 ‘뭣 같아’는 얼핏 보면 욕 같지만, 이별의 복잡한 감정을 ‘뭣’이란 단어 하나로 대신한 것이다. 결국 상대방을 보고 싶은 것이 진짜 속마음이지만 솔직하지 못하고 분노하기에 바쁘다. 이는 청춘들의 사랑이 얼마나 순수한지 보여주면서도, 순수하기에 미숙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공감한다.
분노한 상태에서 앨범이 마무리됐다면 이별의 결말이 귀여운 투정에 그쳤겠지만, 보이넥스트도어는 사랑의 다음 챕터까지 상상하게 만들었다. 앞서 말했듯 이들은 이별의 감정을 하나로만 정의 짓지 않았다. 이별은 슬프지만 이겨내고 나면 또 다른 사랑이 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보이넥스트도어는 첫사랑은 영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라도 한 듯, 다음 트랙에서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ABCD같았던 우리 사랑이 돌아오지 못한다면 새로운 사랑을 달라며 말이다. 슬픔 보다는 새로 찾아올 사랑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별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한 것이다.
고백과 이별의 과정을 듣고 나니 궁금해지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소년들의 연애는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HOW?]에는 소년들의 연애 과정이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첫 데이트, 다툼, 화해, 연애상담, 그리고 첫사랑의 끝맺음 까지.
https://youtu.be/_bcd9boEj4A?si=pmsu9As00VUsFnKK
위 영상은 [HOW?]의 트레일러 필름이다. 트레일러 맛집인 보이넥스트도어는 영상을 통해 각 곡의 메시지부터 앨범의 전체적인 스토리까지 스포하는 것이 포인트다. 그리고 역대 가장 길었던 [HOW?]의 트레일러에는 소년들의 첫 연애가 설렘으로만 가득 차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도서관 데이트, 상대를 위해 요리하는 등 달달한 모습을 이어 나가지만, 이후 다퉜는지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자 화내고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끝내 이별을 맞이했는지 방황하고 슬퍼하는 모습까지 나타난다.
첫사랑과의 연애 과정을 짧은 영상 안에 모두 표현한 트레일러는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떤 스토리가 앨범의 메인 메시지가 될 것인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보이넥스트도어는 시시각각 템포가 변화해 감정선을 느끼기 힘든, 사랑 노래와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는 곡을 타이틀곡으로 내세웠다.
트레일러 필름을 자세히 보면 영상이 매우 속도감 있게 전개될 뿐만 아니라 주변 요소들이 요동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급기야 뮤직비디오에서는 멤버들이 어딘가 불시착해 비, 바람, 번개 등 본인들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며 이상 현상을 마주한 것을 볼 수 있다.
보이넥스트도어는 첫 연애의 설렘보다는,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너와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맘대로 되지 않아 얼마나 답답한지를, 자연에 빗대어 표현했다. 지구, 바람, 불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나에겐 넌 자연만큼이나 뜻대로 되지 않는 존재라고 얘기한다. 보이넥스트도어가 모두의 예상을 깨고, ‘Earth, Wind & Fire’와 같은 혼란함이 강조된 노래를 낸 건, 뜻대로 되지 않는 너를 너무 좋아해서 나도 내 마음이 어디로 튈지 모를 만큼 요동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임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처음 경험한 사랑이기에 서투를 수 밖에 없고, 서툴기에 더 설레고 요동쳤음을 보이넥스트도어만의 키치한 감성과 자연에 빗대는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낸 것이다.
[HOW?]는 청춘의 불안정한 사랑을 잘 고증했지만, 사랑의 설레임도 다채롭게 표현하고 있다.
매일같이 반복되네 think I have amnesia, amnesia
지겹지도 않게 다퉈 돌아서면 후회해 희한해
Oh 물어뜯고 할퀴고 늘 다투고
좋을 땐 또 뭐가 그리 좋다고
Think I have amnesia 약도 없다고
-Amnesia 가사 中-
첫 데이트에 설레는 생각들로 머리가 가득 찬 ‘OUR’, 헤어질 듯 싸우다가도 다시 보고 싶어하는서로를 기억 상실증에 빗댄 ‘Amnesia’, 그리고 별을 보러 가자며 밤 데이트를 요청하는 드라마의 한 장면 같은 ‘So let's go see the stars’까지. 보이넥스트도어가 의도한 것처럼, 가사에 집중해 듣다 보면 주인공의 감정에 몰입하게 되는 후유증을 낳는다.
컴백 전 멤버들을 닮은 귀여운 인형들이 이번엔 꼭 헤어질 거라며, 연애에 관해 대화하는 컴백 영상이 올라와 화제였다. 새벽 4시에 운아기는 빼고 모두 모이라며 나누었던 귀여운 대화들은 ‘Life is cool’의 복선이 되어, 멤버들이 사랑과 인생에 대해 서로 고민 상담하는 노래로 탄생하고 그들의 케미까지 엿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의 첫사랑은 앨범의 마지막 곡 ‘Dear. My Darling’으로 끝이 난다. [WHY..]에서 표현된 감정들은 이별이 주는 수많은 감정 중 하나였고, 첫사랑과의 헤어짐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상대방의 행복을 빌며 한층 더 성숙해지는 것, 이것이 보이넥스트도어가 바라는 이별이자 이 스토리의 진정한 결말이다.
보이넥스트도어 첫사랑 3부작은 누군가에겐 어설프게 느껴지는 사랑 앨범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보이넥스트도어의 음악에선 어리숙한 행동과 감정마저도 청춘이기에 누릴 수 있는 고유한 감정으로 그려진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예쁘게 포장해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는 로맨틱한 곡들도 많다. 하지만 이들은 사랑이 싹 피는 좋은 감정뿐만 아니라, 이별이라는 슬픈 상황에서도 못난 감정일지 언정 솔직하고 과감하게 표현했다. 즉, 사춘기 소년들의 정제되지 않은 감정을 거침없이 보여준 것, 이것이 보이넥스트도어가 독보적인 첫사랑 시리즈를 완성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정제되지 않은 음악적 화법들이 거칠게 느껴지기보다는, 오히려 멤버들의 소년미와 순수한 감성을 더욱 살리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이들이 앞으로 들려줄 서사와 음악을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 본 글은 아이돌레 웹진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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