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 차이트
필자는 지난 글에서 케이팝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몇 번 한 적 있다. 그 중 '혼종성'이 두드러지는 것이 케이팝을 구분짓는 가장 큰 특징이라는 말도 여러 번 했다. 그런데 최근 뉴진스(NewJeans)처럼 드럼앤베이스(DnB), 저지클럽(Jersy Club), 브레이크비트(Breakbeat) 등 곡 전개 내내 의도적으로 장르 풀을 제한하고 그 안에서의 변용만을 보이는 경우도 더러 있다. 또한 록 응용이 돋보이는 최예나, 발라드 외길을 걷는 규현 등 특정 장르가 아티스트의 개성으로 강하게 남는 경우도 많다. 뚝심 있는 단일 장르를 지향하고, 끝날 때까지 구성이 변하지 않는 곡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명백히 기존의 케이팝과 대척점에 있는 이야기다.
여기서부터 다양한 의제(agenda)가 발생한다. 이러한 음악들도 케이팝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부터, 멤버의 국적이나 가삿말 등 어느 기준을 얼만큼 적용할지, 그래서 어디까지를 케이팝이라고 할 수 있을지 등 다양하다. 이러한 흐름을 의식했을까. 세븐틴은 <MAESTRO>에서 장르적 혼용을 보인 이유에 부러 '세븐틴의 스케르초 아무래도 조금 특이해도', '또 새로운 조합은 우리 자랑이니까', 'mix and match가 특기니까'라며 슬쩍 변명도 덧대본다. 하지만 사실 상기했듯 mix and match는 특기라고 하기도, 특이하다고 하기도 민망하다. 이미 그것이 케이팝 그 자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케이팝은 늘 '장르를 섞은 것 자체가 특징이다'라는 메타적 정체성만을 띄어 왔다. 문제는 그것이 전부라는 점이다. 그래서 케이팝을 정의할 만한 '기초적 기반(장르)'은 늘 빈약했다. 그래서 때때마다 어울리는 예술 사조를 내맘대로 떼다 엮을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이 케이팝의 장점으로 거론되었다. 동시에 이러한 작업방식은 최종 결과물이 자칫 '면 따로 국물 따로'로 비칠 가능성을 키우기도 한다. 단순 병치한다고 하나는 아니듯 말이다. 그래서 서로 엮여야 할 만한 이유나 당위, 개연성을 찾지 못한 작업물의 요소요소는 쉽게 뿔뿔이 흩어진다. 결국 이 분야를 접하는 이상 트랙 간 리듬 변화, 촬영 기법 혼용, 안무 리듬 메이킹의 급작스런 변화 등을 경험하게 되면서, 특히나 각 예술 영역을 잘 아는 감상자에게는 더더욱 이것을 총체적으로 뭐라고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는 혼란만 남긴다. 마치 조화를 고려하지 않고 아무거나 떼다 엮은 퀼트(Quilt)와도 같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뭘 조합해도 다 되는' 식의 느슨한 제한과 기준을 주다 보니 결국 씬 전체 수준의 질적 하락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런 식의 작업방식을 일컬어 'K스럽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시간이 지나며 이는 케이팝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굳어지는 듯 했다.
하지만 이 책은 논쟁 그 자체보다, 이 모든 담론이 하나로 합쳐 만들어진 현재 케이팝의 독특하고 유일한 위치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무지성 시도였을지 모르는 일이나, 현재 장르 간 뛰어난 연결을 보이는 노래나 단일 장르 유행이 공존하는 현재의 생태계 형성을 꿰뚫어본 주장이다. 더불어 이런 호황은 거저 얻은 보상은 아니라고도 역설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러한 문화적 맥락을 분절하는 시도가 이미 익숙할 만큼 대중적으로 자리잡는 과정을 통해 현재 케이팝은 과감한 음악적 확장이 가능해진(그것도 경험치가 있는) 엄청난 곳임을 일깨운다. 여러 탈맥락과 분절적 시도가 이해받을 수 있는 곳, 그러니까 애초부터 무언가에 구애받지 않는 '메타성'을 그 자체로 정체화하는 이 업계의 잠재성, 확장성, 그리고 포용력이란 얼마나 무섭도록 커다랄지 지켜보자는 것이다. 기고인(아마도 미묘님)은 각종 장르음악의 기존 미덕, 문법이 훼손되면서까지 케이팝의 일부로 편입되는 일을 지켜보며 속상해하는 반응이 있을 거라는 점도 언급하면서 이야기를 좀 더 깊이 있게도 펼친다. 그래서 종합적으로 결국 케이팝이 마주할 과제(ex)플럭앤비가 산뜻한 장르는 아님을 알릴 의무가 있다던지 등), 혹은 직면할 비난(ex)제철성 장르 유행과 휘발, 특정 문화성 훼손에 대한 정당성 논쟁) 등을 풀어 쓴 내용은 촘촘하면서도 실리적이기까지 하다. 과거, 현재, 미래의 케이팝 음악적, 인식적 지형도를 파악하고 문제를 예측, 대비책을 마련하는 데에 상당한 참고가 된달까. 더없이 좋은 통찰력을 안겨준다. 디렉터를 꿈꾸는 필자인지라 그런 점에서도 상당히 더 인상깊기도 했고 말이다. 물론 케이팝이라는 문화 자체에 대한 이해력을 기르고픈 팬들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음악의 장르 말고도 콘셉트와 기획에 관한 이야기도 오간다. 보이그룹의 청량은 누굴 위한 것인지, 센 콘셉트는 부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 그런 부분 중 특히 스트레이키즈(Stray Kids)와 에이티즈(ATEEZ)라는 쌍두마차를 책에서 앞뒤로 주목한 부분은 놀랍다. 머리를 세게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일 정도다. 최근의 신인 남자그룹의 래퍼 증원 추세와, 힙합 기반의 반항기적 '센 콘셉트' 중 주목할 만한 작품들을 뜯어보는 시간을 가진다. 이를 통해 파워풀한 보이그룹의 스타일이 나름의 활로를 찾는 양상을 앞서 언급한 두 그룹의 선례로 소개한다. 부드럽고 편안한 시류의 유행 중에도 이러한 방향성이 생명을 조금씩 얻는 모습을 폭넓은 레퍼런스로 납득시킨다. 당연하게도 케이팝에 보통 애정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잡을 수 없는 디테일이다.
힙합적 특징의 연장선으로 곡 제작에 참여하는 멤버가 늘어나는 흐름도 언급한다. 아이돌 역시 자전적이고 당사자성 있는 작품이 연달아 나오며, 새삼 낯간지럽게 따로 명명할 필요 없이 모두가 무의식적인 '리얼타임 오디세이'를 이미 써가는 중이라고 말한다. 이미 라이즈(RIIZE)가 자연스러움을 표방한다며 데뷔 당시 많이 강조한 키워드임이 무색할 정도로 현재진행형인 단어가 되었다. 트리플에스(TripleS)의 사례까지 포함해 환상을 파는 아이돌의 본질과 다르게 놀라우리 만치 현실과 맞닿은 면이 있는가 하면, 동시에 현실적으로 있을 법 하나 또한 일렁이는 베일 너머 묘하게 닿을 수 없는 느낌의 혼재로 사람들과의 거리를 시험하는 뉴진스의 존재론까지 한 책에 모두 담겨 있다는 점에서 내용은 더더욱 흥미로워진다. 이 외에도 또다른 거대 담론장일 '그린워싱 논란'과 진짜 'ESG 경영'의 가능성과 해법 논의 등 필자도 이미 생각하거나 고민했던 부분이 있어 많은 공감, 많은 지적 갈증의 해소를 느낄 수 있었다. 한창 시끄러웠던, 특히 중화권 멤버의 이탈로 시끄럽던 이슈를 짚는다던지, '케이팝 포 플래닛'의 제스처를 주목하면서도 이와 별개로 근본적으로 케이팝은 '그린'이 될 수 없음을 빼먹지 않고 쓰는 등 민감한 이야기조차 문제의 정확한 파악과 해결을 위해서 최대한 직설적이면서도 친절히 서술한다.
미묘 님을 언급한 앞선 문단에서 눈치챈 이도 있을텐데, 사실 책을 읽으면 느껴지겠지만 저자는 한 분이 아니다. 김윤하 님, 박준우 님까지 대중문화업계에서 분석, 평론으로 저명하신 총 세 분이 필진으로 참여하셨다. 그만큼 다양한 시각에서 많은 주제가 논의된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달라지는 필체 때문에 적히지도 않은 필명을 바로 알아채버릴 것도 같지만(웃음). 개인 경험담이기는 하나 필자는 원래도 세 분의 글을 종종 읽는다. 특히 미묘 님의 글로는 많은 공부를 한지라 신간 소식에 바로 사기로 마음먹은 차였다. 그런데 아이돌레의 이름으로 도서 리뷰 요청이 들어온 것이 아닌가.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사나흘 전부터 사려던 책을 증정받고 리뷰할 수 있다니! 냉큼 나섰다. 받아서 펼친 책장 안에, 그 분들이 웹 상에서 풀지 않았던 어떤 또다른 반짝이는 인사이트가 있을지 너무 궁금했다. 필자도 책의 모든 관점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오히려 여전히 케이팝을 생산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픈 모든 이에게 정말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지지난 매거진에서 기고한 글로 언급한 바 있을 것이다. 필자는 사실 케이팝과 함께한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전성기라 부르는 2~3세대에 나는 팬덤 소속이 아니었다. 길거리에서 들리는 음악, 친구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노래와 가수 이름 등 현실의 밈(meme)이나 이슈(issue)의 모습으로만 화제성을 느꼈을 뿐이다. 현재 필자는 대학생이다. 그러면서도 3.5세대로 불리는 아이돌이 데뷔한 2018년도 여름 즈음에 입문했다. 그러니 후발주자일 수 밖에 없었다. 소위 '늦덕'이라고들 하나. 그만큼 케이팝 씬의 찬란하면서도 어둡고, 복잡하고 시끄러운 그 모든 순간 역시 함께한 일원은 아쉽게도 될 수 없었다. 그러니 이 책에서 종종 언급되는 다른 이들에겐 꽤 굵직할 일도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보니 내가 추후에라도 어떻게 채울 수 없는 필연적 공백이 생김은 매우 신경쓰일 수 밖에 없었다. 그 공백이 하필이면 가장 뜨거웠을 때라 더 그렇다.
즐거운 것이 제일일 취미라는 영역에서조차 동호인과 교집합이 제일 부족한 사람이 됨은 슬픈 일이다. 그 때 시작되었다. 정말 짧은 시간 안에 '내가 좋아하는 것이 세상에서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밝혀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또, 되어야만 했다. 종합예술의 형태를 띠는 그 무언가가 '대중예술'이라는 이름을 달고 화제성 있게 사람들에게 거론될 때, 그 사회현상의 가치와 발생 구조는 또 어떨지 궁금했다. 그리고 내가 이를 만들어낼 줄도 알고, 사람들이 열광하거나 민감해 하는 포인트까지 아는 사람이고도 싶었다. 이 모든 것을 조율하는 디렉터를 꿈으로 삼은 것도 그 때 즈음이다. 어쨌든 각종 동기가 더해져 그렇게 단기간 내 누구보다 케이팝의 생산성을 증명하려는 심미안과 논리력을 열심히 길렀다. 나름의 방식으로 케이팝을 즐기다보니 어느덧 나에게도 얘기만 들으면 아는 내용이 과거의 것으로 논의되는 시간도 찾아오는 것이 아닌가. 지금 이 책에서 다루는 17~18년 경 케이팝 내 뜨거웠던 퓨처베이스(Future bass)나 뭄바톤(Moombathon)의 변용 양상은 해당 시기를 함께한 사람으로서 이해도도 있었고, 공유되는 일상적 추억도 있어서 그 때를 떠올리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격세지감을 느끼는 대목이었다. 물론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세계>를 다시 들었을 때 신기하게도 멜로디 진행과 가사를 본능적으로 모두 읊을 수 있었던 것처럼, 사회현상으로 체감된 커다란 붐(Boom)의 형태로도 내가 함께하지 않은 때의 것조차 희미하게나마 내 안에 남아있기도 하다. 지금은 케이팝이 나와 제일 가까운 친구이지만, 상기한 대로라면 사실 이러나 저러나 결국 나에게는 케이팝의 모든 요소가 늘 의미 있었다고 봐도 될 것이라는 의외의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보니 그 다음에는 내게도 특별한 의미로 자리잡은 이 종합예술이 남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번졌다. 어떤 부분이 어떻게 좋고, 그래서 어떠한 류의 감동이 이는지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었고, 설파하고, 설득시키고 싶었다. 그러니 이 책의 에필로그가 자조하듯, 스스로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중증에, 이렇게 미련스러운 자신을 오랜 시간 가만히 두고는 견디지 못한다 여기는 사람으로서 감히 이 책을 권한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케이팝은 장르적 기반이 없다는 점에서 불안정하다. 맞다. '근본 있다'고 말하기에는 애매하다. 시기를 놓친 후발주자니까. 필자처럼 말이다. 역으로 그 유일한 위치라서 가지는 유연함이 있다. 포용력이 있다. 그렇게 존재하는 모든 영역의 공통점을 조금씩 갖는 보편성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당신에게조차 여전히 케이팝은 일부일 수 있다. 그저 스스로 모를 뿐이다. 앞서 말했듯 그 필연성은 이미 증명된 일이니까. 외부인이라면, 잘 모른다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이 하나의 축이 껍데기 그 이상만큼 자랑스럽게 일궈낸 문화적 가치라는 것을 실감했으면 좋겠고, 이 나침반에서 그 다음을 내다볼 시야를 얻었으면 한다. 이미 어린시절 향수를 책임지는 것 그 이상이 된 케이팝은 문화적, 예술업적으로 괄목할 만한 무언가임이 명확하다. 유일무이하고도 흥미로운 특징을 지닌 우리의 자랑스러운 증표가 어떻게 성장할지 지켜보는 것은 확실히 자부심과 재미를 동시에 경험하는 일이 될 것이다. 필자가 그랬던 것처럼 사랑스러운, 사랑스러워질 수 밖에 없는 보편적이고도 불안정한 우리의 빛나는 자랑을 같이 지켜보고 이야기나누는 당신이 또 생겼으면 좋겠다. 그렇게 여러분들도 언젠가 느낄 자신만의 '케이팝 씬에서의 순간들'을 언젠가 도란도란 나눠보고도 싶다. 내가 처음(또 어쩌면 외부인이라서) 느꼈을, 그 가능성의 편린이 여러분들에게도 부디 닿았으면 좋겠다.
* 이 글은 '미래의창'으로부터 홍보용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본 글은 아이돌레 웹진 소유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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