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 차이트
아이돌 연습생은 보통 소속사의 자체 트레이닝 후 여러 선발 과정을 거쳐 데뷔한다. 이 과정은 대부분 사내에서 폐쇄적으로 진행된다. 그러니 대중들은 이를 볼 기회가 없다. 그런데 이를 모두에게 공개한다면? 연습생은 데뷔 전부터 미리 얼굴을 알릴 수 있고, 소속사도 데뷔조의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기대수익을 높여볼 수 있다. 데뷔 과정마저 일종의 자료로 만듦으로써 또 하나의 안전자산을 확보는 것이다. JYP 엔터테인먼트와 스타쉽 엔터테인먼트는 이런 방식으로 트와이스(TWICE)와 몬스타엑스(MONSTA X)를 선발하면서 두 그룹의 안정적인 출발을 꾀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시청자가 공감할 수 없는 심사평이 문제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응원하는 '내 스타'의 데뷔 여부를 판가름 짓는 만큼 모두가 '공정한 심사'를 외치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여전히 프로그램 별 시스템과 경연 콘셉트, 연습생 별 역량이 판이한 탓에 심사위원조차 흔들리는 경우가 많아 정말로 공정하고 정확하게 평가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더불어 해당 조언이 필요한 당사자(연습생)에게 도움이 될지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사람도 많다. 필자가 본 대부분의 심사평은 큰 부분만 보고 은유적으로, 혹은 뭉뚱그려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심사위원의 시선이지 연습생의 시선이 아니다. 이러한 불친절함 역시 연습생의 눈높이에 맞춰 해설해주지 않은 결과다. 연습생은 스스로의 상태를 잘 모를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이의 평가가 유의미하다. 그러니 와닿지 못할 추상적인 말들의 향연 속 필자의 눈에 띈 것은 아무래도 구체적인 피드백이다.
'걸스플래닛:999'에서의 티파니 영(소녀시대)은 이러한 부분에서 탁월하다. 첫 회, <비올레타> 무대를 본 티파니가 C그룹 왕치우루 연습생에게 박자감을 지적하는 장면은 호평일색이다. 해당 연습생이 1절 프리코러스 최예나의 파트에서 4/4박자 반주보다 반 박자 이상 빨리 탐으로써 가창과 안무가 함께 무너진 것. 이를 보고 줄곧 혼자 튀는 박자가 원인임을 잡아낸 예리함이 돋보인다. 댓글 반응에도 티파니를 향한 칭찬이 가득하다. 사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누가 '잘' 했는지 '못' 했는지는 모두가 알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부분을 어떻게 잘못했는지,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내용까지는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부분이다. 즉, 이런 부분에 대한 해설이 시청자가 심사위원에게 바라는 바일 것이다. 그러나 여태 이런 측면을 자세히 풀어 말한 심사는 거의 없다시피 한 탓인지 반응이 더더욱 뜨거웠다. 이 영상은 코앞에서 듣는 연습생의 입장에서도 이해하기 쉬우면서, 동시에 사람들에게는 심사위원으로서의 역량과 평가 기준을 명확히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필자가 감히 생각하기에 이는 이상적인 심사평의 참고서가 될 만하다고 생각해 본다.
웬디(레드벨벳) 역시 꼼꼼한 코칭으로 화제였다. '더 딴따라'의 심상일 참가자가 <희재> 후렴 음역대에서 'ㅏ' 발음을 열창할 때마다 목에 서는 핏대를 본 웬디는 즉석 조치를 취한다. 아예 토르소(torso; 머리부터 윗가슴근육까지의 신체 부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에 힘을 빼도록 머리만 벽에 닿은 채로 몸을 비스듬히 기대 부르도록 하자 금세 문제점이 개선된 것이다. 이 기적 같은 장면은 쇼츠로도 제작되어 널리 퍼져나갔다. 우지(세븐틴)도 하이브 자체 오디션 'R U NEXT?'에서 특별심사위원으로 참석했다. 샤넬(현 피프티피프티)에게 힘의 완급조절을 조언하거나, <우주를 건너>를 부른 윤아(현 아일릿)에게는 모음 처리를 예쁘고 깔끔하게만 마무리하지 말고 원곡자(백예린)처럼 툭툭 뱉는 구간도 만들어볼 것을 일렀다. 심사위원이 무슨 생각으로 특정 참가자의 점수를 높였는지, 혹은 낮췄는지가 궁금하다면 이러한 디테일 담긴 조언은 꼭 챙겨보자. 오디션 프로그램을 단순히 수동적으로 즐기기만 하는 것을 넘어 적당한 이해력을 안겨줄 것이다.
반면, 연습생의 입장을 고려해 자세하게 말하지 않은 대신 나름의 통찰을 제시한 평도 있다. 좋은 심사평이란 어떤 것일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도 심사위원의 가치관이 반짝이는 말에 두 눈을 번쩍 뜰 것이라 장담한다. 김세정은 '유니버스 티켓'에서 이미 현역 아이돌 경력직인 두 참가자의 무대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저는.. 걸그룹에게 실력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대신 무대에서 그 실력이 드러나서는 안 돼요.
조심스레 운을 뗀 김세정은 '부족할지언정 완성은 해 와야 한다.'라는 마무리로 나름의 일침을 가했다. 이전부터 '걸그룹에게도 실력이 중요한가?'는 늘 논의되던 문제다. 그러니까 사실 이 장면은 아이돌, 특히 여자 아이돌이 대중으로부터 받는 논란까지 함께 의식한 김세정이 나름대로 혼자 치열하게 고민해 내놓은 답변인 셈이다. 긴 현역 활동에 비례하지 못하는 자기이해력이 문제라고 참가자를 일깨우고, 걸그룹에게 실력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완성도'라는 개념이 있음을 잊지 말라고 동시에 역설하는 일석이조를 이뤘다.
MBC가 방영한 오디션 프로그램 '방과후 설렘'에서 비슷한 결의 심사평은 또 있었다. 이 방송의 첫 대면 오디션은 참가자들이 서는 무대와 심사위원 부스 사이 벽이 있는 전용 세트에서 진행된다. 그러니 문이 열리기 전까지 참가자들은 (너머에 심사위원이 있을)닫힌 벽과 무대 주변 레일을 따라 돌아가는 카메라만을 보고 공연한다. 문이 열릴 기회는 누가 만들어주는가?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면 으레 있는 현장 평가단(비대면 평가단)이 쥐고 있다. 첫 관문이 온전히 그들의 손에 달린 것이다. 녹화되는 무대 실황을 비대면 평가단이 모인 방에만 먼저 송출하는데, 이들로부터 일정량 이상 득표 시 그 순간부터 벽이 열린다. 그러면 비로소 심사위원들은 벽 너머의 참가자를 만나고 점수를 매길 수 있다. 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심사를 받기는커녕 출연 자체가 좌절된다.
<살짝 설렜어>를 커버한 두 참가자의 시종일관 맞지 않는 합에 소연((여자)아이들)은 차분히 일갈했다. 정확히는, 문이 열린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실력이 좋은 친구들도 문이 안 열려서 못 만난 경우도 있는데..."라고 먼저 입을 열자 같은 심사위원으로 나온 유리(소녀시대)가 끄덕였다. 이어 '(누군가의)꿈을 가지고 평가하는 자리인 만큼 비대면 평가단 분들도 책임감을 갖고 누르셨으면 좋겠다'고 사람들에게 한 표 한 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분노의 대상은 참가자가 아니라 문이 열리도록 만든 비대면 평가단인 것이다. 댓글 반응도 비슷하다. 아무리 이유를 추측해보려고 해도 어느 부분이 잘했는지, (좋은 의미로)이목을 끌 만했다고 생각해서 누른 건지 도통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조금이라도 진지했다면 비대면 평가단에게서 이 무대는 문이 열릴 정도의 득표율이 나왔을까? 당장 현장에서부터 대기실의 다른 참가자와 심사위원 양측 모두를 납득시키지 못하는 이들의 태도는 한 번쯤 결정권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물론, 일반인인 이들에게 심사위원과 같은 수준의 안목이나 책임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소연이 이를 몰라서 한 말일까?
그동안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어 왔다. 아이돌 연습생을 대상으로 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유행한 이후로는 더더욱 심사를 맡는 이들과 그 평가도 같이 도마 위에 오르는 일이 많아졌다. 이 과정에서 많은 오해가 서로 뒤엉킨다. 하지만 우리가 같이 보았듯 심사란, 적어도 그저 '편하게 앉아서 보기만 하는 일'은 확실히 아니다.
소연이 지적했듯 설사 별 거 아니어 보이는 비대면 평가단이라도 책임은 클 수 밖에 없다. 위의 사례가 단지 방과후 설렘의 시스템 때문에 일어난 일만은 아닐 테니 말이다. 관객에게는 관객으로서의 역할이 분명 있다. 평가단은 평가단으로서, 심사위원은 심사위원으로서의 역할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 우선 관객은 프로그램을 자세히 보지도 않고 말하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심사위원이 때마다의 직감이나 과한 자기주관에 기대 평가하는 기분파라고 단정짓기도 그만둬야 한다. 심사위원 역시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중용을 지키는 선에서 개개인의 잣대를 세우고 이를 모두에게 일관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또, 참가자 스스로가 알아채지 못할 만한 부분을 이해 가기 쉽게 설명해주어야 한다. 그러니 멘토링 방법 개발 역시 평가자로서 키워야 할 역량이다. 특히나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의 심사위원은 트레이너로서도 나서는 경우가 많고, 민감한 여론과 팬덤 심리도 의식해야 한다. 결국 이래저래 영리해야 한다. 본인이 플레이어일 때와는 이야기가 다르다. 소위 '본업존잘'이라고 코칭도 잘하리라는 법은 없으니 말이다. 안일한 방조와 투표 예절, 심사 태도가 합쳐져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조금은 부담스럽고, 또 조금은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결국 적당한 책임감을 갖고 무대를 봐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또 적당한 책임감을 갖고 심사를 봐야 한다고도 말하고 싶다. 혹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어떤 식의 피드백이 가장 괜찮은 모양일지 궁금해 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관객들의 역할은 무엇일지 고민해 본 적 있는가? 한 번이라도 그런 적이 있다면 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오디션 프로그램의 투표권 의식에도 경고등을 키는 일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참고문헌
Mnet K-POP, " [1회] ‘기운 감별사’ 선미와 ‘실력 감별사’ 티파니 영의 시너지♥Girls Planet 999 | Mnet 210806 방송 [EN/CN/JP]", Mnet K-POP, 2021년 8월 6일, 동영상, 1:51~2:10, https://youtu.be/x7XPIh_LkWM?.
더 딴따라 THE DDANDDARA, " [더 딴따라] 보컬 일타 강사 웬디�의 등장! 웬디 마스터의 특급 고음 비법 대공개! [더 딴따라] | KBS 241124 방송", 더 딴따라 THE DDANDDARA, 2024년 11월 25일, 동영상, 1:18~3:42, https://youtu.be/1LfQgevghlM?.
JTBC Voyage, " [ENG] "한 단계 더 나아가려면" 세심하게 조언해주는 세븐틴 (SEVENTEEN) 우지� 본업 존잘 모먼트✨ l R U NEXT l JTBC 230804 방송", JTBC Voyage, 2023년 8월 7일, 동영상, 12:00~12:18, https://youtu.be/HZyIQLkDQFo?.
JTBC Voyage, " [ENG] 다정함 MAX 세븐틴(SEVENTEEN) 우지(WOOZI)� 연습생들 무대 지켜보고 건넨 따뜻한 피드백� l R U NEXT l JTBC 230728 방송, JTBC Voyage, 2023년 7월 31일, 동영상, 15:00~15:15, https://youtu.be/1TFFAlPCWrI?.
스브스 예능맛집, " �뼈 때리는 김세정 심사평ㄷㄷ "부족해도 완성은 해야죠"
#유니버스티켓
#UNIVERSETICKET
", 스브스 예능맛집, 2023년 11월 20일, 동영상, 15:24~16:40, https://www.youtube.com/watch?-Q495bXuxI&.
MBCentertainment, " [방과후 설렘] 화도 안날 정도로 최악이었어요 전소연 선생님의 혹평에 붉어진 <살짝 설렜어>팀의 눈시울�, MBCentertainment, MBC 211128 방송", 2021년 11월 28일, 동영상, 0:00~1:20, https://youtu.be/5Pk8rV6GsfE?.
* 본 글은 아이돌레 웹진 소유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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