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Writer. 차이트
올 상반기도 어느덧 막바지다. 필자는 최근 6개월 간 음악 행사만을 집중적으로 다녔다. 평소 정갈하게 다듬어진 음원을 홀로 오롯이 즐기려는 편이지만 오프라인의 느낌은 또 다르다는 주변 반응에 나도 슬슬ㅡ취향과 무관하게ㅡ한 번쯤은 경험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다 발견한 반가운 부분이 있다. 장르음악 페스티벌 및 비(非)아이돌 가수의 공연에서도 아이돌을 마주하는 일이 훨씬 늘었다는 점이다. 코첼라(COACHELLA), 롤라팔루자(Lollapalooza) 등 저명한 대형 해외행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내도 다르지 않았다. 원래도 페스티벌마다 중간중간 환기력을 위한 예외적 섭외는 있었으나 이번에는 한층 본격적이다. 아이돌의 문법을 차용한 밴드나 보컬 그룹이 아닌, 아이돌로서의 색채가 선명한 한창 때의 이들이 대거 발탁된다. 라이즈(RIIZE)는 2024 부산 록 페스티벌에, 도영(NCT)은 2025 서울재즈페스티벌에 솔로로 출격했다. aespa(에스파), i-dle(아이들), 세븐틴(SEVENTEEN) 역시 'SUPERPOP(슈퍼팝)', 'SUMMERSONIC(서머소닉)' 등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물론 뒤탈도 있었다. 다른 음악 소비층인 관객이 절대다수이니 더더욱 그렇다. 평소 뮤직 페스티벌을 보던 이들의 수요와 이해관계가 충돌한 것이다. 음악을 우선하는 곳에서조차 가수의 기를 살려준다는 핑계로 뽐내는 집단행동이나 캐릭터, 비주얼 위주의 소비 양상 등이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아이돌 출신’이 공연에 나가 정도 이상의 호응을 얻지 못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팬덤만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 중에서 실제로 아이돌 신분인 이상 필연적으로 가지게 되는 한계가 있다.
이들은 보통 팬이 모인 홈그라운드가 익숙한 탓에 초면인 관객을 향한 호응 유도는 좀처럼 어색해 한다. 춤, 노래, 연기, 제스처링과 외국어 등 일찍이 여러 영역에 시간을 나눠 투자하는 트레이닝 체계의 태생적 한계도 있다.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장르음악 전문 아티스트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그만큼 투자한 시간의 물리량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녹록지 않은 현실이다. 결국 부가적인 요소의 즐거움 없이도 러닝타임을 공백 없이 이끌어갈 수 있는 아이돌은 정말 드문 상태다. 특유의 정형화된 칼군무, 조심스럽기만 해서 재미 없는 멘트, 비주얼이 매우 우선시되는 연출과 팬덤의 소비행태 등 홀로 이질적인 결이 아니꼽던 사람들은 페스티벌에서 이내 불만을 터뜨렸다.
B.I(비아이)는 일찍이 iKON(아이콘)을 나간 뒤 〈BTBT〉, 〈겁도 없이〉 등으로 힙합 씬에서 독자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그러면서도 곡마다 안무를 붙이는 아이돌 특유의 제작문법 역시 오랫동안 유지했다. 자연스레 그의 공연은 코레오 붙은 악곡이 대부분을 이룬다. 여기서 논쟁적인 담론이 하나 생긴다. ‘아이돌’ 출신 가수가 장르음악을 아울러야 할 때, 얼마나 ‘아이돌스러움’을 내세울지에 대한 화두 말이다. 견해는 각자 다르겠으나 당시 확실히 호의적이라고만 하기는 어려운 반응이 쏟아짐은 사실이었다.
‘힙합플레이야페스티벌(이하 힙플페)’에 꾸준히 나오던 그지만, 이전부터 지적받던 부분에서 달라진 점이 없는 무대를 보였다. 래핑에 집중하기보다 안무와 1:1로 똑같은 비중분배를 하는 탓에 라이브로 폭발력을 끌어올려야 할 타이밍에도 마이크가 조용한 경우가 많았다.(위 영상 참고) 라이브를 좀 길게 하려나 싶은 순간이 와도 점핑 혹은 손짓 위주의 제스처로 똑같은 시간을 채우는 데에만 신경쓰는 결과, 이 애매한 길이감은 현장에서 업다운이 모호한 기류만 계속해서 만든다. 당연히 관객은 어느 장단에 맞출지 파악하느라 점점 진을 뺄 수 밖에 없다. 각잡고 댄스브레이크에 집중하는 시간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 체공시간이 길거나 간단한 동작만 있는 안무에도 그는 같은 시간을 투자한다. 전반적으로 터뜨리는 지점 딱히 없이 빌드업만 오르락내리락했다 끝나는 느낌이랄까. 안정적인 라이브와 뚜렷한 외모, 훌륭한 춤사위가 이를 어느 정도 보완하지만 이것이 다라면 굳이 자유롭게 힙합 씬에서 솔로로 활동하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도 공연이 끝나면 “잘생겼다”, “춤 잘춘다”(실제로 그는 몸을 꽤 잘 쓰는 편이다.)라는 반응만 많았을 뿐이다. “재미있었다”는 공연의 여운을 다시는 사람은 잘 없었다. 라인업 내 다른 뮤지션과 적당히 어울리며, 장르음악 공연도 잘 소화하는 것’도’ 가능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면 곁가지를 많이 얹지 않고도 현장을 끌어갈 피지컬, 관객을 조련할 감각이 있음을 보여야 할 것 같다.
안무가 상징적이라면 그 부분만 춤을 추기로 정해두는 것도 좋다. 실제로 〈새삥〉, 그리고 〈Smoke〉와 〈My Cat〉을 같은 행사에서 각각 소화한 지코와 이영지는 이런 방법을 택했다.
특히 지코는 밴드셋을 대동해 리얼 세션으로 악기 트랙을 채우는 정성도 보였다. 리얼 세션의 연주는 합을 많이 맞춰보아야 하며, 단순히 반주트랙에 드럼셋의 소리를 담아 가져오는 일과는 편의성 면에서 매우 큰 차이가 난다. 그만큼 가수가 ‘현장감 있고 사실적인 소리를 들려주고 싶은 열망’이 있다는 뜻이고, 밴드셋이 당연하지 않은 힙플페에서는 이러한 아티스트의 결정은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사람들 역시 리허설 도중 밴드셋을 설치할 때 열띤 환호를 보내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또 이영지가 온몸에 물을 뿌리는 대담함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면, 지코는 중간중간 모자와 선글라스를 번갈아 착용하며 소소한 스타일링 변화를 주는 센스도 발휘한다. 두 사람 다 아이돌과 접점이 없지 않은 바. 이러한 부분이 바로 아이돌로서의 경험치를 알차게 활용하는 모범 사례가 아닐까. 이러나저러나 공연마다 자신이 부각해야 할 각 매력의 비중을 알고 조절하는 적당함도 잊지 말아야 할 핵심이었겠지만 말이다.
https://youtu.be/r9RGHrbIwuo?si=snw-91t-mYQU6cye
'SUPERPOP 2025'에서 만난 몬스타엑스(MONSTA X)의 주헌, I.M.(아이엠) 듀오도 노련하다. I.M은 〈Don’t Speak〉 등의 선곡으로 약간의 약점을 노출했지만 두 사람 모두 훌륭했다. 10년 차라는 경력 때문일까. 인지도가 부족한 곡의 셋리스트 구성을 상쇄할 만큼 능숙한 호응 유도, 넘치는 자신감, 적절한 제스처와 표정연기로 이들은 공연장을 휘어잡았다. 케이콘에서만 보인 미발매 듀엣곡 〈삼박자〉를 들고 나온 것도 좋다. 팬에게는 선물이고, 대중에게는 캐치한 훅이 떼창을 쉽게 만들었다. 추가로 방송을 타고 유명해진 “꾸꾸까까”를 언급하거나, “잘생겼다 이주헌”(...)을 연호하는 팬덤에 화답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관객으로부터 멘트 소재를 끌어올리는 등 주헌의 진행력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장에 응원봉을 든 몬베베(몬스타엑스의 팬덤)가 많이 있었는데, 이들이 아니었어도 충분히 누구나 즐겁게 감상할 무대가 아니었나 싶다.
같은 날 후순서로 배정된 슬기(레드벨벳), 그리고 서울재즈페스티벌에서 UMI(우미)가 섭외한 백현(엑소)의 경우 도리어 정반대다. 내로라하는 히트곡이 한아름 있는 이들이지만 아쉽다.
UMI가 그와의 듀엣곡을 틀면서 무대에 깜짝등장한 그는 〈Lemonade〉로 솔로곡 하나만을 더 부르고 조용히 돌아갔다. 차라리 이럴 거라면 〈Bambi〉로 이 바이브를 끈적하게 잇길 바랐지만 아쉽게도 신곡 홍보에 그치는 무대였다.
외국인이라는 언어 장벽과 후순서 LUCY(루시)를 보기 위해 한 시간 일찍 자리잡은 타 가수의 팬층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모두가 동참할 정도로 재밌던 관객참여형 무대, 신선한 질문과 진행방식으로 예상 외로 분위기 있으면서 동시에 흥겨운 알앤비 공연을 만든 UMI의 소통력만 더 돋보였다. 결과적으로 짧은 시간에도 무대 매너, 애티튜드와 소통력 등이 비교되는 순간만 남은 것 같아 조금 슬프고 씁쓸하다. 백현이 무대 위에서 배짱 있게 놀 만한 대담함이 있음을 모르지 않아 더더욱 그랬다.
슬기는 〈Bad boy〉 + 〈Psycho〉의 레드벨벳 히트곡 메들리로 분위기 반전을 꾀했지만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곡의 유명세를 감안하면 관객 떼창은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평소 어둡고 절도 있는 음악을 지향하던 기조의 본인 취향으로만 꾸리려는 행보가 음반과 팬덤 대상 공연을 떠나 페스티벌에서도 유지되는 것 같아 계속해서 아쉬운 가수다. 이펙터를 먹여 토막(chop)낸 〈28 Reasons〉 브릿지 막판의 고음 애드립과, 호흡을 고르기 위해 MR과 메기고 받는 형식을 쓰면서 포기해버린 〈Los Angeles〉 프리코러스 특유의 말맛도 아쉽다. 이러한 사운드 디자인과 디테일 결정 방향이 달랐다면 현장 분위기를 달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만 자꾸 든다.
트와이스(TWICE)는 최근 본 비(非)아이돌형 가수와 나란히 선 사례 중 의외로 잘 녹아든 예시였다. 공연 시작 전 실외에서 대기할 때까지만 해도 왜 트와이스를 불렀는지 알 수 없다거나, 밴드세션을 쓴 무대가 아니라면 인정하지 않겠다는 볼멘소리도 매니아층인 듯한 관객으로부터 들려왔지만... 오히려 콜드플레이(Coldplay) 무대에서 보기 힘든 다인원 군무와 사운드로 좀 더 스펙트럼이 넓은 공연을 선사하고픈 듯한 게스트 라인업의 의도가 전해진 덕에 호감으로 남았다. 아울러 콜드플레이 팬덤을 고려해 영미권 활동곡인 〈The Feels〉, 〈STRATEGY〉를 부르거나, 간만에 대중 앞에 소환된〈Dance The Night Away〉등 디스코그래피를 구석구석 알차게 활용한다. 〈TT〉, 〈Heart Shaker〉 등 일부 곡에서는 나름 TPO(?)에 맞춰 온 킥 위주의 무게감 있는 편곡(위 영상 참고)과 댄스브레이크도 준비해오면서 새로운 즐길거리를 한가득 꾸려 왔다.
신인끼리조차 현장에서의 임기응변이나 대처에 차이가 보이는 것도 흥미롭다. 미야오(MEOVV)는 함께 자주 언급되는 이즈나(izna), 베이비몬스터(BABYMONSTER)와 견주어도 그렇고, 비슷한 때의 블랙핑크가 무대에서 폭발적인 기량을 뽐냈음을 생각하면 확실히 아쉽다. 컨디션을 타는 불안한 성구전환, 안전한 길로만 가고 싶은 가창 등... 이미 불안한 멤버가 과반수 보인다. 음원부터 준수했던 가원과 나린만이 현장에서도 잘 이끌었을 뿐이다. 미야오가 무대 위에서까지 한 몸처럼 유연한 고양이가 되기는 조금 더 기다리며 지켜봐야 할 듯 싶다.
외부 행사 진출이 늘었지만 요즘 아이돌에게서 소위 ‘잘 노는’ 면모를 통 볼 수 없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우선 캐스팅 경로가 달라졌다. 예전에는 클럽 등에서 춤 잘 추는 사람을 데려다가 데뷔시키는 경우도 많아 그만한 자유분방함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사회의 높아진 도덕성 요구도 아티스트 개인에게 정도 이상의 위축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다소 사건사고를 일으키고 거만하더라도, 무대를 제대로 휘어잡는 스타는 점점 드물어진다는 주장이 있다. 사회성이 늘수록 눈치를 많이 보게 되고 자기주장은 위축되는 것처럼 아무리 타협을 봐도 기본적으로 두 개념은 상충하는 관계라는 점에서, 특히나 사회적으로 가장 민감할 ‘아이돌’이라는 직업이 공연에 부적합할만큼 ‘재미 없는’ 모양이 되었다는 추측은 나름 설득력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위축될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길러지다보니, 점점 ‘내 사람들’이 아니면 금방 힘을 잃는 온실 속 화초가 된다.
물론 그럴수록 더더욱 ‘그들만의 리그’로 남는다. 하지만 팬덤이 늘 곁에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늘 곁에 있어주기만 하는 것도 건강한 길일 리가 없다. 만약 노래를 몰라 관객들의 호응이 생각보다 적다면 이 역시 기죽지 말고 반응을 끌어낼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 아이돌이고,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마음대로 하고 싶다고 착각하는 팬덤은 적당히 아티스트와 자신을 떨어뜨려 놓고 보면서 성숙해져야 한다. 언젠가는 그래야 한다. 아무리 아이돌 산업이 가장 어린 형태로 환상을 파는 직업이라도 말이다.
아이돌이 활동 저변을 넓혀가는 지금 이 순간, 안전지대 바깥으로 한 걸음 디디며 경쟁력과 생존력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니 지금 그들에게 있어 대중성을 넓히는 일에는 유명하다는 ‘명예’ 그 이상의 가치가 달려 있다. 아직까지도 케이팝 특유의 산업 장벽과 폐쇄성에 거리낌을 느끼는 이들이 많기에 외부와도 잘 어울리려면 팬덤 문화의 자정작용과 업계 측의 이미지 쇄신을 위한 선순환이 모두 절실하다. 모두가 ‘음악’이라는 최소한의 언어로만 소통할 수 있게끔, 음악 페스티벌에는 아이돌 팬덤 역시 타 팬덤을 존중하는 의미를 담았으면 좋겠다. 이를테면 다소 요란한 슬로건 등으로 너무 치장하거나 집단행동으로 아이돌 팬덤의 관행을 부각시키기보다는 같이 어울리려는 노력이 필요한 터다. 캐릭터 자체를 소비하기보다 주제(음악)에 집중하는 담백한 태도도 탑재할 줄 아는 것이 다음 관문이지 않을까 싶다.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물가와 이에 비례하는 보상심리, 해로워지는 팬덤 분위기 등 까다로운 각자의 욕구사정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케이팝 업계의 기형성은 스스로의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 당신이 정말 아이돌을 좋은 이미지로 ‘영업’하고 싶은 팬덤 혹은 제작자 등 업계의 누군가라면, 지금이라도 고립화된 도파민 구역에서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