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riter. 혜성
2025년 12월 20일, 멜론뮤직어워드(MMA) 시상식이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이었다. 익숙한 전주가 흐르는 순간 고척돔의 공기는 일순간에 바뀌었고,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엑소(EXO)의 <으르렁>이었다. 단 1초의 비트만으로도 대중은 2013년으로 되돌아갔다. 필자 역시 엑소가 시대를 주름잡던 시절부터 10년의 세월을 엑소엘로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다시금 엑소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과거 명곡이나 무대, 자체 콘텐츠를 추억하는 숏폼 콘텐츠와 X(구 트위터) 게시물이 급증하면서 대중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그 시절로 회귀하고 있다. 2025년의 막바지에서 다시 한번 ‘엑소 붐’이 찾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엑소 붐’은 단순히 흘러간 시절을 그리워하는 대중들의 ‘추억팔이’ 때문일까? 신인이 우후죽순 쏟아지는 현재로서, 긴 공백기를 가졌던 3세대 그룹이 다시금 중심부로 진입한 것은 결코 우연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이는 강력한 노스탤지어의 자극과 더불어, 3세대 그룹의 탄탄하고 본질적인 실력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시대의 역행인 것이다.
엑소 재흥행의 가장 강력한 동력은 단연 노스탤지어다. 여기에서 노스탤지어는 단순히 옛 노래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 2010년대 케이팝을 이끌었던 엑소와 그 시절 우리가 함께 열광했던 시대 자체에 대한 향수이다. 2025 MMA 엑소 무대는 이를 향한 완벽한 트리거였고, 그 시작은 ‘생명의 나무’가 등장하는 VCR이었다.
엑소의 거대한 세계관에서 생명의 나무는 큰 의미를 지닌다. 데뷔 초 엑소는 EXO-K와 EXO-M 두 그룹으로 나뉘는데, 이 두 세계는 오직 일식과 월식의 순간에만 생명의 나무를 통해 하나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데뷔곡 <MAMA>와 초기 타이틀곡 <늑대와 미녀>에서는 생명의 나무를 몸으로 표현한 안무가 등장하기도 했다. 따라서 오랜 공백 끝 마주한 이 VCR은 대중의 흩어진 추억을 하나로 모으는 촉매제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어진 <늑대와 미녀> 무대에서 멤버들은 다시 ‘생명의 나무’를 만들어 내며 2025년 모두가 이 퍼포먼스에 열광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경험을 한다.
뒤이어 나온 <으르렁>의 전주에 고척돔이 흔들린 것은 당연한 결과다. 과연 2013년 대한민국을 흔들었던 전설적인 명곡 답게(우스갯소리로 <으르렁>을 애국가라고 부르던 때도 있었다.), 커다란 함성이 장내를 뒤덮었다. 그 시절을 케이팝과 함께 보낸 이라면 모두가 <으르렁>의 응원법 정도는 외우고 있었다는 것은 과장이 아니었다. 그날 응원 소리가 가장 컸던 곡은 다름 아닌 <으르렁>이었다고 한다.
<으르렁>은 단연 그 시절로 회귀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트리거다. 필자는 <으르렁>의 전주를 듣자마자 2015년 드림콘서트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수많은 아티스트가 참여한 연합 콘서트였음에도, 단독 콘서트에 버금가는 압도적인 응원 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메웠던 그날의 열기는 여전히 생생하다. 이처럼 거대한 집단이 하나의 대상을 향해 일제히 쏟아냈던 열정은 좀처럼 잊히지 않는 법이다. 이는 수많은 아이돌과 팬덤으로 세분화된 현재에는 좀체 경험하기 힘든 감각이며, 필자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여전히 엑소와 <으르렁>을 '집단적 추억'의 대명사로 회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엑소는 이후 차례로 <Monster>와 <전야>, <Love Shot>처럼 반응이 좋았던 곡을 연달아 선보였다. 이는 과거의 영광을 현재의 유행으로 다시 끌고 오며, (멤버 수 변동에도 불구하고)노스탤지어의 힘을 다시 한 번 실감케 했다는 점에서 감동적이다.
https://youtu.be/Z1oeUV45EsA?si=L0BE8P4oTiuWZNKs
현재 케이팝 시장은 이른바 ‘이지 리스닝(Easy Listening)’의 시대다. 4세대와 5세대 아이돌을 필두로 짧은 호흡의 숏폼 챌린지에 최적화된, 듣기 편안하고 감각적인 음악들이 주류가 된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많은 케이팝 팬이 열광했던, 케이팝 특유의 강한 콘셉트와 탄탄한 보컬 역량의 중요성은 다소 뒤편으로 밀려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MMA 무대에 오른 엑소의 존재감은 독보적이었다. 메인 보컬 첸, 백현의 빈자리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라이브와 고음을 선보인 이들의 무대는 ‘아이돌은 결국 무대를 잘 해야 한다’라는 중요성을 직시하게 만든다. 특히 이번 무대에서 선공개된 신곡 <Back it up>에서도 역시나 엑소는 이지 리스닝이 트렌드에 편승하기보다, 자신들의 강점을 내세운 곡을 선택했다. 이 뒤 쏟아진 폭발적 반응은, 오랜만에 셋리스트가 모두 밀도 높은 곡으로 구성된 감동에 대중이 얼마나 목말랐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엑소 붐’은 케이팝 산업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아이돌의 인기는 유통기한이 정해진 것이 아니며, 대중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언제든 시대를 역행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10여 년을 엑소엘로 살아온 필자는 여전히 열정 가득한 눈빛으로 몸이 찢어질 듯 무대 위에서 춤추는 그들을 보고, 감동을 넘어선 뜨거운 무언가를 느꼈다. 우리가 다시 엑소를 찾는 까닭은 단순히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무대 위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내는 그들의 건재함에 열광하는 것이다.
MMA 엑소 무대 영상에 달린 댓글이다. 필자 또한 여전히 <으르렁>이나 <XOXO>, <Lucky>의 간주를 들을 때면 최애 멤버의 명찰을 달고, 〘EXO의 쇼타임〙을 보던 때로 돌아간다. 세훈이 자주 간다던 카페에서 버블티를 먹고, 앨범을 사기 위해 광화문 핫트랙스 앞에 몇 시간이고 줄을 서 기다리던 그 시절 말이다. 이처럼 엑소는 단순한 아이돌 그룹을 넘어, 한 시대를 공유했던 이들의 거대한 서사 그 자체다. 엑소가 있었기에 우리는 무언가를 그토록 사랑하며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가 다시 엑소를 바라보는 건 단순히 그들을 추억하는 것을 넘어, 각자의 뜨거웠던 어린 시절을 마주하는 재회인 것이다.
시계의 태엽 도는 사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널 써내려간 마지막 한 장을 넘겼지만 더
읽어낼 용기가 안나 슬픈 글은 지워낼 거야
우리 얘긴 끝이 아닐 거야
다시 만나볼 테니까
<피터팬>의 가사처럼 엑소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2026년 1월 19일, 정규 8집 《REVERXE》로 컴백하는 엑소는 수많은 잡음을 뚫고 다시 한번 무대 위에 설 준비를 마쳤다. 긴 기다림 끝에 마주할 그들의 무대가 어떤 감동을 전해줄지 기대해 본다.
* 이 글은 아이돌레 웹진 소유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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