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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돌레 매거진 Mar 27. 2020

[지식 채널 É] 여자친구, "오늘부터 우리는"

난수방송에 등장하는 아이돌 음악

오싹한 숫자들의 정체는?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UfKLLuH3R9w
0816호, 0816호 전문 받으세요. 조수 38조 본문 부르겠습니다.
34 59 25 43 98 03 70 38 04 52 94 05 28 47 53 92 85 96 37 84 35 40 57 89 17 03 47 10 93 42 30 95 38 52 45 38 79 67 61 78 20 97 84 17 29 06 30 51 81 03 47 28 76 12 50 73 86 95 39 03 72 85 07 53 99 42 60 14 78 46 52 93 48 95 13 45
본문 다시 부르겠습니다.
3459 2543 9803 7038 0452 9405 2847 5392 8596 3784 3540 5789 1703 4710 9342 3095 3852 4538 7967 6178 2097 8417 2906 3051 8103 4728 7612 5073 8695 3903 7285 0753 9942 6014 7846 5293 4895 1345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https://youtu.be/FIEL6Hilai8     


의미를 도통 알 수 없고, 규칙성도 전혀 발견할 수 없는 의문의 숫자들이 나열됩니다. 분명 사람의 목소리인데 너무 건조하고 딱딱해서 마치 기계가 얘기하는 것처럼 느껴지며 나도 모르게 오싹해집니다. 내용은 고사하고 어디에서 보냈는지, 누가 들어야 하는지 등의 정보 또한 없습니다. 도대체 정체가 무엇일까요? 그리고 아이돌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방송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숫자들은 사실 암호입니다. 정확히는 ‘코드북 암호’라고 하여, 숫자와 단어의 일대일 대응 관계가 적힌 코드북(난수표)이 있어야만 이 방송의 내용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일반 사람들은 코드북 없이 어떤 노력을 해도 절대 암호를 풀 수 없게 됩니다. 위와 같이 난수를 사용해 만든 암호를 특정한 상대에게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되는 출처 불명의 비공식 방송을 ‘난수방송(numbers station)’ 또는 ‘암호방송’이라고 합니다.


언제, 어떠한 양상으로 발생할지 모를 전쟁에 대비하고 행여나 일어날 전쟁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서는 대상 국가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국가들은 불특정 다수의 나라로 정보요원을 극비에 파견합니다. 난수방송은 이렇게 파견되어 현장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요원에게 지령을 전달하고자 할 때 이용합니다. 대표적으로 중국의 V26, 미국의 신시아(Cynthia) 난수방송, 우리나라의 V24, 북한의 V15 등이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중단되었다가 2010년을 기점으로 남북 모두 활발하게 난수방송을 보내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송출되고 있는 난수방송의 목록은 http://priyom.org/ 에 들어가시면 확인이 가능합니다.

     

난수방송에 여자친구의 노래가 나온다?    

비밀스러운 암호만 전달하고 종적을 감춰버리는 난수방송은, 본격적으로 암호를 불러주기 전 방송을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도입부에 개시곡을 내보냅니다. 2010년대 초반까지는 주로 가곡, 클래식 음악 또는 “신라의 달밤”, “반갑습니다”, “잘못된 만남” 같은 2000년대 이전의 대중가요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다 2016년이 되어서부터는 보다 최신 대중가요가 개시곡으로 쓰이기 시작합니다.


2016년 2월 17일 23시 30분, 난수방송 수신을 취미로 하는 유튜버는 새로운 5290kHz 주파수에서 한 난수방송을 잡습니다. 개시곡은 바로 여자친구의 “오늘부터 우리는”이었습니다.


실제 방송 링크: https://youtu.be/bv3f_stswbw

“오늘부터 우리는”은 2015년 7월에 발매된 노래이기는 하지만 전설의 ‘꽈당’ 영상을 발판 삼아 2015년 하반기 K-POP 역사에 또 하나의 역주행 신화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여자친구를 있게 한 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2016년 1월 말 여자친구는 ‘학교 3부작’의 마지막 시리즈로서 타이틀곡 “시간을 달려서”로 컴백하게 되고, 이때 “오늘부터 우리는”도 덩달아 음원 차트 순위가 상승합니다. 2016년 2월에 멜론 13위, 가온차트 11위로 최고 순위를 찍으면서 심지어 어른들도 따라 흥얼거리는 노래가 됩니다. 컴백한 여자친구가 음악 프로 15관왕을 향해 바쁘게 질주하고 있는 동안, 난수방송에는 “오늘부터 우리는”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여자친구의 노래 말고도 6310kHz 영역에서는 걸스데이 소진의 “매일 그대와”, 5900kHz에서는 아이유의 “좋은 날”, 6215kHz에서는 백아연의 “이럴거면 그러지말지” 등 송출 시점을 기준으로 발매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노래를 선택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요? 북한에 스마트폰 같은 최신 전자기기가 많이 유입되었다고는 하지만 평양을 중심으로 한 일부 지역에 해당되는 얘기일 뿐, 평양을 벗어나면 TV도 겨우 있을까말까 한데다가 관영 방송국 프로그램은 재미도 없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춰 남한에서 오는 방송을 찾아 듣는다고 합니다. 이때 북한 사람들에게 남한을 홍보하는 효과를 보기 위해 난수방송에 최신 노래를 넣는 것이 아닐까... 하고 저는 추측해봅니다. 난수방송의 거의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있는 만큼 선곡 담당자가 누구인지, 선곡 담당자가 왜 이 곡을 골랐는지 역시 미지수이기 때문에 정답은 아무도 모릅니다.

    

근데... 이거 들어도 되는 거야?     

실외에서 좋은 주파수 수신기를 이용하면 난수방송을 잡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걸... 들어도 되는 걸까요? 정보 기관에서 하는 방송인데 함부로 들었다가 국가보안법에 걸리지는 않을까요? 난수방송은 공개방송이고, 모두 공개된다고 해도 어차피 코드북이 없으면 그 내용을 알 수 없는 방송인데다가 북한의 방송도 아니기 때문에 법에 저촉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너무 공공연히 듣게 되면 오해를 사기 딱 좋겠죠?


우리나라는 전국이 주파수가 잘 잡히지 않는 지역에 해당되기 때문에 최근에는 난수방송이 감지되는 빈도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제가 호기심을 유발하는 차원에서 난수방송을 소개한 것이지 실제로 이걸 들어보기 위해 비용과 시간을 쓰시는 분은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여자친구의 팬이라고 해서, 여자친구가 나오는 모든 프로그램을 다 봐야 한다고 해서 난수방송에 흘러나오는 “오늘부터 우리는”까지 들으려고 하시는 분은 없겠죠? 이렇게 듣기 힘든 방송이 아닌 인터넷과 TV로 편하게 덕질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저는 접근도 쉽고 또 빠른 인터넷으로 여자친구의 “교차로”를 들으러 갑니다~!     


* 본 글은 아이돌레 웹진에 실린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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