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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돌레 매거진 Mar 29. 2020

전간디 작사가의 ‘첫 사랑니’로 읽는 첫사랑

<가사의 미학> File.1

- 그가 내게로 왔을 때 나는 운명이라 느꼈다

 유난히 무덥던 2013년의 어느 날, 당시 중학생이었던 필자는 기말고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초중고 12년 인생을 책상에 모두 바치며 열심히 공부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아이돌 덕후에게 좋아하는 아이돌의 컴백 소식은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쉽사리 지나치지 못하고 기대하며 귀를 열곤 했다. 


 방학 중에도 자습실을 나갔던 그날도 어김없이 5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당시 집에는 와이파이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기에 집에 오자마자 하는 일은 컴퓨터를 켜는 것이었다. 부팅이 되는 동안 설레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할 수 없어 심호흡을 했는데,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자마자 울려 퍼지는 노래에 화살이 머릿속을 휙, 하고 지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별사탕을 입안에서 굴리는 것처럼 팡팡 터지는 전자음이 주는 짜릿함에 발가락을 절로 오므렸다 펴길 한 시간. 멜로디에 심취해 듣다 무언가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 길로 음원 사이트에 들어가 가사를 확인하고는 이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날은 2013년 7월 29일. f(x) 불후의 명반, 정규 2집 <Pink Tape>의 타이틀곡 ‘첫 사랑니(Rum Pum Pum Pum)’를 처음 들었던 날이자 작사가 전간디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SM ENTERTAINMENT

이런 가사, 본 적이 있나요?

 지금은 김이나, 서지음 작사가와 같이 예쁘고 의미 있는 가사로 팬덤 내에서 지지를 얻고 있는 이들이 많고, ‘가사가 예쁜 아이돌 노래’와 같은 제목으로 카드뉴스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2010년대 초반만 해도 멜로디 라인이나 ‘훅(hook)’이 살아 있어 ’후크송’ 이라 불리는 음악 장르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가사에 대한 관심도가 적었었다. 이는 아이돌 음악은 다소 의미가 없다는 세간의 편견도 한몫했다. 실제로 당시에는 후크송이 2018년의 트로피컬 하우스처럼 우후죽순으로 유행했기에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도 필자는 ‘그래도 음악은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앨범이 발매될 때마다 제일 먼저 가사를 확인하곤 했다. 그렇게 몇 년을 반복하다 이젠 다들 사랑에 관한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낄 때쯤 전간디 작사가를 만나게 된 것이다.


 전간디 작사가가 참여한 노래들의 특징은 사랑을 특정 대상에 비유한 내용이 많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사랑은 문과식으로 표현된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깨는, 소위 ‘이과형’ 가사가 등장하곤 한다. 이에 해당되는 가장 대표적인 곡이 바로 러블리즈의 ‘Destiny(나의 지구)’와 EXO의 ‘Thunder’다. 두 노래 모두 사랑을 이루지 못한 화자의 시점에서 쓰인 가사가 돋보이는데, 짝사랑의 상대와 자신의 관계를 지구와 달로 치환하거나 떠난 사랑을 천둥과 번개에 비유하는 것은 기존 K-POP 음악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내용임이 틀림없다. 단순히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다양한 단어로 표현함으로써 음악에 이야기가 입혀지고, 그러면서 우리는 노래에 감정이입을 하며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너도 이런 감정 느껴본 적 있을걸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그가 작사한 노래를 처음 듣는 이들은 ‘무슨 가사가 이래?’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필자 역시 처음 노래를 들었을 때 이질감을 느끼긴 마찬가지였고, 그런 식으로 비유한 가사는 그동안 본 적이 없었기에 낯설기만 했다. 하지만 노래를 제쳐 두고 가사를 찬찬히 읽어보면 ‘사랑을 이런 식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라는, 경이롭기까지 한 깨달음을 얻게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의 ‘첫 사랑니’ 가사 일부분을 함께 읽어보자.


“이거 어쩌나 곧게 자란 아일 기대했겠지

삐딱하게 서서 널 괴롭히겠지 내가 좀 쉽진 않지

이렇더라 저렇다 말들만 많지만

겪어보기 전엔 알 수가 없겠지

힘들게 날 뽑아낸다고 한대도

평생 그 자릴 비워두겠지”


 다양한 사람들에게 ‘첫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묻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게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답변은 ‘평생 가슴에 묻고 가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는 또 다른 사랑이 찾아와 비어 있는 공간을 채운다고 하지만, 무엇이든 ‘처음’이 특별한 법이기에 첫사랑의 상흔은 쉽게 씻어낼 수 없다. 잘 살다가도 예상치 못한 때에 가슴을 쿡, 하고 찔려버릴 땐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사랑니도 마찬가지다.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고 잊어버린 채 살다가 “안녕, 잘 지냈어?”라고 말하는 첫사랑처럼 일격을 날린다. 


 사랑니가 나면 아프다더라, 삐딱하게 나면 잇몸을 절개해야 한다더라 등의 말들 역시 ‘겪어보기 전엔 알 수가 없’다. ‘곧게 자라나’ 가지런한 달콤함만 존재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 사람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함에 못 이겨 밤잠을 설치고,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돌아서는 장면까지도 사랑이라 부를 수밖에 없다. 그런 아픔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삐딱하게’ 선 사랑니에 비유하다니, 그때의 필자는 이 사람이 천재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첫사랑이 실패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확률적으로 따졌을 때 미숙하고 어린 감정이 완성되기까지는 어려움이 따른다. 당신과 나는 인연이 아닌 것 같다며 겨우 잊었다고 생각했을 땐 이미 마음 한 조각은 그 사람에게 넘겼다고 보아야 한다. 그 조각의 감도는 깨진 유리를 밟았을 때 느껴지는 따끔함과 같지만, 빼면 그만인 유리조각과는 달리 수시로 나를 괴롭힌다. 그렇게 열병처럼 앓고 지난 자리는 평생 안고 갈 기억으로 바뀐다. 남자의 첫사랑은 무덤까지 간다는 FTISLAND의 노래 제목처럼 누구나 ‘평생 그 자릴 비워’두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첫사랑은 아프기만 한 걸까? 마지막 가사를 보자.


 “진짜 네 첫사랑

(특별한 경험 Rum Pum Pum Pum)

짜릿한 첫사랑

(새로운 경험 Rum Pum Pum Pum)”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와도, 쉽게 잊지 못하더라도 결국 첫사랑은 인간이 느끼는 가장 강렬한 감정 중 하나인 사랑의 시작이기에 특별할 수밖에 없다. 나쁘게 남았을지라도, 마음의 성장을 이끌어내며 성숙해진 나를 만들어주는 것도, ‘그땐 그랬었지’라며 추억할 수 있는 대표적인 대상이 되는 것도 바로 첫사랑이다. 그때라서 만들어낼 수 있었던 감정들을 사랑니에 비유해 재치 있게 풀어낸 ‘첫 사랑니’는 그런 점에서 곱씹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좋은 가사를 가진 노래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이렇게 좋은 타이틀곡을 가진 f(x)의 ‘Pink Tape’는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유일하게 선정된 아이돌 앨범이다. 사랑 때문에 혼란스러운 마음을 차임벨 소리에 곁들여 표현한 ‘미행 (그림자 : Shadow)’도 이 앨범의 수록곡이자 전간디 작사가의 작품이다. 여름 햇살에 반사된 물결처럼 반짝거리는 노래로 가득한 ‘Pink Tape’는 오래 기억될 만한 가치가 있는 앨범이라 말할 수 있겠다.


Written by. 뚜뚜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 본 글은 아이돌레 웹진에 실린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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