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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거진 연 Dec 17. 2018

[인터뷰] #1. 배우 이영미 (1)

PROJECT #1 - 여성 공연인 릴레이 인터뷰

매거진 [연]의 첫 프로젝트인 <여성 공연인 릴레이 인터뷰>에서는 국내 공연계의 여성 인물을 만나, 지난 작품 활동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제에 대한 생각들을 들어보고자 합니다. 이 릴레이 인터뷰의 취지를 듣고 흔쾌히 승낙해주신 첫 인터뷰이는 바로, ‘배우이자 싱어송라이터’ 이영미입니다. 

2018년 가을 공연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에서 이영미 ‘폰시아’를 보았던 관객들은 그녀가 보여준 강렬한 존재감에 열광했습니다. 폰시아는 1930년대 스페인, 권위적이고 독단적인 베르나르다가 군림하는 집안 안팎의 모든 사건과 사람들을 오랫동안 지켜봐온 핵심적인 인물입니다. 이영미는 작품의 긴장감을 쥐락펴락하며 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냉정한 모습으로 관객들을 알바 집안 깊은 구석구석까지 안내합니다. 어느덧 뮤지컬 데뷔 20년 차가 되어가는 그녀가 처음으로 ‘온전히 이해받았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이 작품의 뒷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여배우라면 한 번쯤 꿈꿔봤을 배역들부터 즉흥극과 일인극까지 다양한 작품을 거쳐온 그녀의 삶과 공연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주의.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에 대한 강한 스포일러가 1부 중반에,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 관한 약한 스포일러가 2부에 등장합니다.)




<미 온 더 송> 이영미 / 출처 아이엠컬쳐




Q. 공연이 끝나고 보름 정도 지났는데 어떻게 지내셨는지 
저는 그동안 아이와 시간을 좀 보내고 있었어요. 공연하는 동안 같이 못 있어준 게 너무 미안했고, 저도 아쉽고 그리웠거든요. 밖에는 딱 한 번 나갔어요, <태일> 보러. 저도 <태일>을 보고 싶었는데 애기 때문에 못 본다고 생각하고 아쉬워하고 있었어요. 근데 남편인 김태형 연출이 혼자 보고 온 거예요. 그리고는 저도 볼 수 있게 해준다고 약속했고, 원래 그날 일이 있었는데 아이를 데려가 줘서 제가 나와서 공연을 볼 수 있었죠. (웃음)

Q. <베르나르다 알바>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는지 
<베르나르다 알바>의 협력 안무이자 플라멩코 아티스트 이혜정 씨와 제가 친분이 굉장히 두터워요. 여름 전에 정영주 배우와 우란문화재단에서 뭘 한다고 듣기는 했지만 자세히는 몰랐는데, 폰시아 역할에 배우를 구하는 데 난항을 겪었나 봐요. 어느 날 피디님이 연락을 주셨죠. 전 단순히 플라멩코를 너무 좋아하고, 또 여자 배우 열 명이 나온다고 하니 독특할 거라 생각했어요. 혜정이가 <베르나르다 알바> 영상과 희곡 대본을 발췌하여 계속 보내줘서 보게 되었는데 영상도 멋있고 의외로 대사가 재밌었어요. ‘프롤로그’ 영상 처음 등장에 빨마도 있고, “와, 이런 거 되게 멋있다” 했더니 “우리는 이것보다 훨씬 더 멋있을 거야” 하더라고요. 더 멋있을 거란 말에 영업 당했습니다.

Q. <베르나르다 알바> 연습 과정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오첨뮤)> 공연 전부터 연습은 시작되었는데 저는 못 가다가 세 번째 연습쯤부터 참여했어요. 주 1-2회 플라멩코 연습을 먼저 시작해서 연출이 오기에 앞서 이미 추석 전에 3주 정도 저희끼리 음악 연습을 다 끝내놓은 상태였어요. 플라멩코 안무도 동작 동작 다 만들어서 연습해 두었고요. 사실 혜정이가 없었으면 이런 퀄리티의 공연은 못 나왔을 거예요.
정말 좋은 퀄리티의 공연을 올리기 위해 많이 노력했어요. 특히 외국 연출과의 소통이 좀 힘들었거든요. 사실 말이라는 게,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제가 ‘아’ 한다고 상대방이 ‘아’로 받는 게 아니잖아요. 국내 연출과는 말이 통하니까 오해가 생기거나 바꾸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끝나고 둘이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외국 연출 사이에서는 통역을 거쳐야 하다 보니 시간을 더 많이 쓰게 되고 작업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어요. 어떻게든 저희가 원하는 걸 얻어내고자 연출님께 비위도 맞췄다가, 반항도 해봤다가, 정말 무던히도 노력했어요.

Q. <베르나르다 알바>의 음악과 대본에 관하여
라키우사의 곡 스타일이나 음악을 삽입하는 방식은 너무 좋았어요. <씨왓아이워너씨>는 못 봐서 잘 모르지만요. 전에 <셜록 홈즈2: 블러디 게임> 할 때 최종윤 작곡가의 곡이 되게 어려웠지만, 그 와중에 한 번 쑥 풀리고 쑥 풀리고 하는 것과 오케스트라가 들어왔을 때의 느낌이 좋았거든요. 좀 비슷한 라인을 느꼈어요. 좀 어려운데 해놓고 보니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 부르는 사람만 어려운 음악. [어려운 게 티가 잘 안 나는?] 틀리면 티 나던데요? (웃음)
대본 자체는 로르카의 희곡과 서사는 똑같고 중간중간 노래를 집어넣은 거라 많이 변하지 않았어요. 그대로 가져오긴 했지만 뮤지컬 특성상 대사를 줄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희곡 원문을 읽고 나니 빠져서 아쉬운 대사가 많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살리고 싶은 욕심이 들었는데, 기나긴 테이블 회의와 투쟁으로 얻어낸 결과물들이 꽤 있어요. 극 중 폰시아가 말하는, ‘나쁜 애들은 아니야. 그저 본능이랄까?’ 이 대사도 그중 하나죠. 제가 제일 좋아하는 대사거든요.

Q. 대사, 표정, 동선 등 가장 작은 부분 하나까지도 고민을 많이 하셨다는 걸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중 관객들에게 잘 전달하고자 더욱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아델라가 그저 욕정에 눈이 먼 여자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건 저희가 원한 바가 아니거든요. 아델라는 사랑을 했고, 그 사랑이 그녀 인생의 희망이자 불꽃이었어요. 단순히 한 인간이 욕망을 추구한 결과가 자살로 이어졌다는 걸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잖아요. <베르나르다 알바>에서 저희 여성 배우들이, 한 인간이 본능을 억압받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어떠한 모습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표현하기 위하여 끝없이 노력했다는 것을 알아주시길 바라요.

Q. 폰시아에 관하여
엄마에 관한 언급이 잠깐 나오잖아요. 폰시아와 엄마. 폰시아의 엄마로부터 이 여자의 뿌리가 있을 테니까. 창녀, 그리고 싱글 맘이었을 것이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해서 아이를 낳았을 것이다. 폰시아는 아빠도 누구인지 모르고, 엄마는 수군거림과 손가락질의 대상이었을 텐데 그마저도 일찍 돌아가시고, 그 와중에 폰시아는 어렸을 때부터 남의 집에서 하녀 살이를 하며 살지 않았을까. 폰시아도, 그리고 그녀의 엄마도 불우했겠죠.
베르나르다와는 갑과 을의 관계인데도 대적할 수 있는 권력관계가 형성되는 건 오랜 세월을 함께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말이 있잖아요, 사람마다 감정 쓰레기통이 필요하다고. 베르나르다에게 폰시아는 꼴보기 싫게 굴어도 내칠 수 없는 존재인 거죠. 너무 많은 걸 가까이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이 여자가 나가서 무슨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고, 그녀가 없어지면 베르나르다도 외로운 거예요. 이렇게 서로의 감정적인 교류가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가 거의 대등하게 형성될 수 있었다고 해석했어요.
폰시아도 결혼을 했고, 아들 둘이 있고 – ‘큰 아들’이라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 멋대로 둘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마을에 집이 있어서 남편이나 아들들과 함께 지내고,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에서 잘 때도 있고 집에 돌아갈 때도 있고, 그렇게 살지 않았을까요. [거주 하녀(?)인 줄 알았어요.] 결혼 전엔 거주 하녀였을 거예요. 남편도, 아들들도, 모두 이 집의 소작농일 거예요. 이 집의 논밭 – 스페인의 사막에선 뭘 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 이 집안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더더욱 폰시아가 베르나르다에게 함부로 할 수 없고, 더럽고 치사해도 그녀를 인내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겠죠.

Q. 폰시아가 딸들을 대하는 느낌이 조금씩 다르다고 느껴졌는데
자기 아이조차도 좀 더 예쁜 애가 있고 덜 예쁜 애가 있고, 또 성향이 맞는 사람과 안 맞는 사람이 있잖아요. 하물며 남인데, 훨씬 더 그렇겠죠. 앙구스티아스의 경우, 제일 나이가 많고 폰시아와 지낸 세월도 더 길어요. 친아빠도 어릴 때 죽었고 엄마가 새로운 남자와 결혼하는 것도 봐야 했고, 그 남자에게 강간도 당했죠. 앙구스티아스가 여러 가지 일을 겪는 동안 폰시아가 계속 지켜보고 위로해 줬을 것이고, 그녀가 엄격한 엄마에게는 이야기 못하는 것들을 폰시아한테는 이야기했을 거고요. 그런 일련의 시간들로 다른 딸들보다는 관계가 훨씬 돈독히 형성되었을 거라, 폰시아에게 앙구스티아스는 좀 더 짠한 아이죠.
아델라는, 어리고 예쁜 막내이니 예뻐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거침없고 자신감에 찬, 뭐든지 할 수 있고 또 할 것 같은 그 패기는 부럽기도 하고요. 하지만 페페와 앙구스티아스의 혼담이 오가는 와중에 폰시아는 그전부터 아델라가 페페와 만나고 있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러니 자제시킬 수밖에 없었던 거죠. 마르티리오는 몸이 아프니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은 들지만, 까칠한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을 자꾸 밀어내서 폰시아 또한 다가가기 어렵고요.

Q. <베르나르다 알바>의 캐스트 중 실제 성격과 맡은 캐릭터가 가장 비슷한 사람, 혹은 가장 다른 사람, 혹은 첫인상과 가장 반전이었던 사람은
다들 괜찮은 여자들이더라고요. (김)히어라가 반전은 좀 있었어요. 되게 하얗고 여리여리해서 좀 예민할 것 같았는데 엄청 털털해서 동네 오빠 같더라고요. (웃음)
각자 맡은 캐릭터와 실제 성격이 어느 정도 비슷한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캐릭터를 만들어서 하는 연기보다 자기 내면으로부터 출발해서 자신답게 만드는 연기를 좋아하는데 다른 배우들도 그런 방식으로 작업하지 않았나 싶어요. 연습할 때는 딱히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공연이 끝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 배우가 연기한 캐릭터이기에 닮아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만약 제가 다섯 딸들 중 한 명을 고른다면… 그 아이들 중 저와 성향이 꼭 맞는 사람은 없는데, (백)은혜가 연기하는 막달레나를 보면 되게 저 같아요. 만사 귀찮고, 내 생각은 있지만 잘 끼지 않는 성격이에요.

Q. <베르나르다 알바> 공연장의 긴장감이 어마어마했는데, 실수나 사고가 있었던 날은 어땠는지
공연장의 공기가 너무 무거웠어요. 상대 배우가 평소와 조금만 다르게 나와도 저도 모르게 휙 쳐다보게 될 정도로요. 보석 떨어졌을 때, 아, 그게 (황) 석정 언니 목걸이에요? 영주 언니 부채에도 똑같은 보석이 달려있어서 그 부채가 뜯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다들 보석이 쏟아진 순간, 그 다음에 춤추는 씬도 있고 치우지 않을 수가 없어서 ‘어떡하지? 주워야 하나?’ 하다가 자연스럽게 처리했어요. 석정 언니는 그 하얀 옷을 입고 구석에 쭈그려 앉아서 퇴장도 안 하시고 열심히 줍고 계시더라고요. ‘아아아 저 비주얼은.’ (웃음) 석정 언니도 진짜 재밌으시고. 처음엔 언니를 잘 몰라서 걱정도 하고 조심스러웠는데 좋은 사람이더라고요.
기립이 안 나왔던 하루, 10월 31일에 작은 실수들이 좀 있었어요. 공연 첫 일주일을 지내고 하루 쉬고 온 다음 날이었잖아요. 그 전주부터, 아니 한참 전부터 못 쉬고 계속 달려왔고. 일요일까지 열심히 하고, 월요일을 어떻게든 견디고, 그러고선 화요일 하루 쉬다가 왔는데… 그날 스텝들 실수도 좀 있었고요. 막 문도 잘 안 열렸던 날 아니었나요? 문이 잘 안 열려도 공연은 진행됐지만요. [바로 그 다음날 폰시아가 의자를 부숴 또 큰 화제였고요] 저도 한 건 했네요. (웃음)

Q. <베르나르다 알바>, 첫공 커튼콜과 막공 커튼콜 소감은
첫공 커튼콜은 그야말로 정말 충격이었어요, 쇼크. 계속 너무 놀랍고 너무 감동적이었고 너무 울컥하더라고요. 그리고 나서는 커튼콜성애자, 기립성애자가 된 거예요. (웃음) 막공 커튼콜은 뭔가 풍요로운 추석의 느낌. 추수를 다 하고 편한 마음으로 ‘아, 내일부터는 술을 퍼먹어도 되겠구나’ 하는. ‘곡식 가득히 겨울을 한 번 따뜻하게 보내보자,’ 그런 마음이었어요. 근데 또 되게 슬프더라고요. 다들 이런 기분을 또 느끼지 못할 것만 같은 시간 중 마지막 같아서.

Q. <베르나르다 알바>에 대한 뜨거운 관객 반응은 체감하셨는지
너무 놀랐어요. 깜짝 놀랄 만큼 피부로 와닿았죠. 사실 저희끼리는 (작품이) 좋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이게 어떻게 비칠지는, 마치 예전에 <헤드윅>을 처음 올릴 때처럼 불확실했거든요. 저희가 좋다고 해서 관객분들이 좋아하시는 건 아니더라고요.
내부적으로 안무나 연출에 관해 고민이 많을 때 함께 걱정하기도 했지만, 저는 관객분들께서 분명히  좋아해 주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혜정이도 “언니 이 공연 되게 독특하고 좋아. 이런 공연 없는 것 같아. 난 다들 너무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라고 말해서 더욱 믿음을 가졌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예상보다도 관객들이 훨씬 더 집중하며 보는 게 느껴졌고, 작품이 이해하기 어려울 거란 생각도 했지만 확실히 이해하시는 모습이 너무 놀라웠어요. 멋있기만 하고 그 이상은 없는 공연이 될까 봐 걱정했는데 그 안의 알맹이에도 집중하시는 게 감동적이었어요. 많은 여성들이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고 가슴 아파한다는 점에서 또 한 번 확 와닿는 게 있었고요.

Q. 여성의 전통적인 성 역할에 관하여
최신 외국 영화를 봐도 아직까지 남녀의 성 역할에 관한 건 전혀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요즘 <섹스 앤 더 시티>를 다시 보고 있는데, 그게 벌써 20년 된 작품이지만 지금 봐도 급진적이고 어쩌면 그게 최대치인 것 같아요. 20년 전, 성에 관해서 여성이 좀 더 앞으로 나서고 성 역할이 변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그 시절 수준에 아직 그대로 머물러 있어요. 외국도 마찬가지고요. 뮤지컬에서의 성 역할은 더 심해요. 여성 캐릭터는 창녀, 아니면 공주. 창녀 엄마, 아니면 공주 엄마.
남자아이를 키워보니 기본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성향이 조금 다른 것 같긴 해요. 여자아이들은 대체로 배려도 많고 남을 많이 생각하고 눈치를 많이 보는데, 남자아이들은 눈치도 안 보고 다른 사람 얘기도 안 듣고 제멋대로일 때가 많아요. 대부분의 남자들에겐 본능적으로 권력욕이나 지배욕이 있고, 여자들은 사랑받고 싶어 하는 욕구와 잘 지내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한 것 같아요. 또 사회적으로 고정 관념을 더욱 심화시키다 보니 그와 같은 성 역할이 지속되고 고착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남편과 저는 아이에게 “남자는 이래야 해,” 같은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해요. 가령 색깔을 고를 때도, “너는 남자 애니까 파란색,” 이렇게 골라주는 게 아니라 다른 선택지를 열어주려 해요. 사소하지만 아이에게 그런 식으로 일종의 벽을 만들어주고 싶지 않아요.

Q. <베르나르다 알바>가 어떤 점에서 특별하게 느껴졌는지
남자 배우 한 명 없이 전원 여자인 캐스트인데, 물론 극장이 작고 기간이 짧았던 것도 있었지만 티켓 매진부터 상상하지 못한 것이었죠. 공연 평도 굉장히 좋았고, 관객분들도 좋아해 주셨고, 여러 가지가 굉장히 잘 맞아떨어진 행복한 공연이었어요.
배우들에게는 그런 게 있거든요. 만약 공연은 너무 좋은데 제 역할이 별로면 완벽하게 만족하긴 어려워요. 공연은 연일 아우성 난리가 나고 커튼콜 호응도 폭발적이고 사람들은 좋아 죽는데, 그 영광이 제 건 아닌 듯한 기분이 들 수 있죠. 반면에 제가 어느 작품의 주인공이라거나 제 역할은 너무 좋은데 사람들이 ‘작품 너무 별로인 거 아냐?’하면 이것도 불만족스럽죠.
어느 한 역할도 빠지지 않게 열 명을 잘 배치하면서 모두가 다 기뻐할 수 있는 공연을 만드는 건 정말 어렵거든요. <베르나르다 알바>에서는 모든 캐릭터가 다 중요해요. (정)영주 언니가 타이틀롤이지만 또 유일한 주인공은 아니고, (오)소연이에게도 굉장한 임팩트가 있고 (전)성민이에게도 한 획이 있어요. 폰시아와 하녀 두 명도요. 국희 같은 경우 대본 상으로는 프루덴시아 역할 말고는 대사가 전혀 없거든요. 안무나 장면 장면이 만들어지기 전까진 각자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알기 어려웠던 거죠. 결과적으로는 누군가에겐 약간의 아쉬움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누구든 씬 스틸을 할 수 있는 특별한 공연이었다고 생각해요.



2부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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