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1 - 여성 공연인 릴레이 인터뷰
Q. 작품이나 배역을 고르는 기준이나 중시하는 요소가 있다면
제가 부르는 노래가 어떤 노래인지도 중요하고요, 뮤지컬이니까. 어떤 캐릭터인지 살펴보죠. 비중을 보기는 하는데, 제 노래가 딱 한 곡 있어도 노래가 너무 좋으면 할 수 있어요. 노래 욕심이 좀 더 있는 것 같네요. 그리고 또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 연출이라든가.
Q. 이영미에게 좋은 연출이란
배우들은, 아니 적어도 저는 그래요. 작업을 할 때 재밌고 즐겁고 절 편하게 해주는 사람도 좋지만, 결국은 무대에서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는 사람이 좋은 연출이라고 생각해요. 나를 빛나게 해주는 사람. 결국은 무대 위에 뭔가를 올리기 위해 만난 거고 그렇다면 좋은 걸 뽑아내주는 사람이 좋은 연출인 것 같아요.
Q. 2005년, 제11회 한국뮤지컬대상 인기 스타상을 수상하며 “뮤지컬을 사랑하는 네티즌들에게 가장 많은 표를 받아 수상한 만큼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해 더 큰 배우가 되겠다”라는 소감을 남기셨는데, 그 이후의 행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제가 그런 얘기를 했다고요? (큰 웃음) 무슨 술 취한 기억처럼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전 그런 얘기를 한 적 없는 것 같은데요. 어머 너무 놀랍다. (끝없는 웃음) 그 이후로도 13년이 지났지만 어떻게 흘러갈지 예상하거나 기대했던 부분은 별로 없어요. 뮤지컬을 하다 보면, ‘아 저 역할은 하고 싶다’ 그런 건 몇 개 있었거든요. <지킬 앤 하이드> 루시 했고, <헤드윅> 이츠학 했고, <맨 오브 라만차>의 알돈자도 했고. 몰랐는데 여배우들이 굉장히 하고 싶어 하는 역할들이래요. 제가 저 세 가지를 했더라고요. 그 정도면 잘하고 산 게 아닐까. <조로> 이네즈 좋아했고, <스팸어랏>도 전 재밌었고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마리아와 <마리아 마리아>의 마리아 둘 다 했고. <벽을 뚫는 남자>, 그리고 일인극도 한 번 하고. 아, <오첨뮤> 했잖아요, <오첨뮤>! 다른 것들에 <오첨뮤>까지 한 사람은 저밖에 없으니까요. 할 때 너무 힘들어서 ‘내 또래 다른 여배우들도 하자고 하면 했을까? 내가 결혼을 잘못해서 나만 이거 하는 거지’ 그런 생각도 많이 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다잡고 그랬네요. (큰 웃음)
Q. <지킬 앤 하이드>의 루시와의 첫 만남
예전에 친구들과 함께 <지킬 앤 하이드> 실황을 봤던 기억이 있어요. 처음 봤을 때, 루시만 눈에 꽂힌 거예요. 왜냐면 루시는 너무 매력 있고 넘버도 너무 좋았고요. 여자가 할 수 있는 것, 사랑 노래도 부르고, 클럽에서 춤도 추고, 결국 죽임도 당하지만 보여줄 것이 많은 역할인데다가 음악적으로도 몇 방이 있으니까요.
Q. 공연하면서 스트레스 받았던 적은
사실 전 작품을 하면서 그렇게 스트레스 받지 않는 사람이에요. 공연이든, 연애나 사랑이 끝날 때든 사람 성격에 따라 천차만별이잖아요. 차였건, 내가 찼건, 엄청난 후폭풍이 밀려오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원래 그런 게 전혀 없어요. “아 상쾌하게 다시 한 번 찾아볼까~” 하면서, 사람이 원래 그래요. 그런데도 <오첨뮤>와 <미 온 더 송>은…
[즉흥 뮤지컬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과 일인극 뮤지컬 <미 온 더 송> 작업이 그렇게 힘드셨다고.]
<베르나르다 알바>에서도 각자 할 게 너무 많아서 다른 배우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저는 사실 <오첨뮤>와 <미 온 더 송>이 더 힘들었어요. <오첨뮤> 초연은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어요. 처음에 작곡가님이 악보를 주셨는데 멜로디만 있고, 곡이 어디에 어떻게 삽입되고 쓰이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극도 정리가 안 되어 있었어요. 연출도 헤매고 있으니 제가 일단 가사를 붙이기 시작한 거예요.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아, 너희들도 하나씩 붙여봐”하면서 시작했던 거죠. 이렇게 스텝 작업부터 시작한 걸로 치면 완전 중노동이었어요. 공연 형식도 만들어나가고 가사도 쓰고 한 달 반 안에 이루어진 일이라 너무 힘들었어요.
<미 온 더 송>도 마찬가지로, 대본조차 없이 곡을 썼어요. “이런 상황에 맞춰서 그런 곡을 쓸게” 이렇게 작사, 작곡하고. 마지막 보름 동안에도 “이런 노래 넣어줬으면 좋겠어” 해서 쓴 곡이 서너 곡 됐고요. 적지 않은 분량의 대본이 늦게 완성돼서 마지막 리허설할 때까지도 계속 들고 외우고 했어요. 특히 작년엔 아이 때문에 마음이 더 쓰여서 더욱 힘들었죠.
<조로>에서 플라멩코를 처음 배웠을 때는 스트레스가 아니었고, 오히려 굉장히 재밌고 행복했어요. <서편제> 송화할 때는 스트레스라기보단 정말 뼈를 갈아내는듯한 무게감이 있더라고요. 소리를 해야 되니까. 그전에는 사실 그렇게 부담을 느끼며 일한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아, 어릴 때 제가 가수로서 앨범을 준비할 때는 스트레스를 엄청 많이 받았어요. 일 년, 일 년 반 동안, 마치 웅녀가 동굴 안에서 쑥과 마늘을 먹으며 지냈던 것처럼 녹음실에서 작업을 하고 나서도 결과가 어떨지 몰라서 너무 힘들었어요. 그에 비해 공연은 결과를 바로 알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것 같아요.
Q.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에 다시 한 번 참여하셨을 때 좀 편해졌다고 느꼈는지
<오첨뮤> 재연 때 발전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조금 더 편하긴 했어요. (홍)우진이의 경우는 작년 초연에는 마냥 즐겁게 공연했는데 올해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힘들었다고 했고요. 아마 재연 때는 노래를 즉흥으로 해야 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저는 즉흥으로 노래 부르는 게 재밌어서 초연보다 더 즐겁게 했던 것 같아요.
Q.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초연 관객과의 대화 때 세상사에 무심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정수가 너무 잘했었잖아요. 주옥같은 어록을 매일 쏟아냈고요. 저는 세상 돌아가는 거에 큰 관심 없이 살아왔어요. [비록 전공은 정치외교학이지만] 전공도 모르고, 비전공도 모르고, 네이버 뉴스도 모르고. [그걸 계기로 좀 자극을 받으셨는지?] 사람이 변하나요? (웃음) 기본적으로 저는 세상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에요. 육아를 안 할 때도. 자랑은 아니지만, 저는 뉴스 보기를 싫어해요. 안 보는 게 아니라, 싫어해요. 그런 현실을 맞닥뜨리는 걸 불편하는 사람이에요. 뉴스에서 계속 무슨 사건이 터지고, 무슨 일이 있고, 계속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스트레스가 막 와요. 그래서 보다가 다른 채널로 돌려요. 그런 건 조금 심각한 것 같아요. 그러다 제가 이번에 <태일>을 보고 느낀 바가 많았는데, 저 같은 사람에겐 직격탄이었어요. ‘너만 그렇게 숨어 살면 되니, 난 이렇게 살다 죽었어,’ 그런… 그래서 너무 슬펐거든요. 정말이지 너무 슬펐어요. (눈물) 저 지금 술 먹었나요? (휴지를 뽑음)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느낌과 저는 좀 다르게 더 마음이 아팠던 것 같아요.
Q. 공연계 페이에 관한 생각은
배우들은 사실 페이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지 않아서 서로 정확히 알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제가 적지 않은 작품들을 했는데, 매번 제시받는 금액을 보면 거의 동일하더라고요. 저는 그런 것을 딜하는 데에 항상 실패하고 잘 못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런데 한 가지는 확실히 알아요. 남자 배우와 여자 배우 사이에는 엄청난 갭이 있다는 것. 왜 그렇게까지 차이가 나는지 잘 모르겠고, 너무 놀랐어요.
배우들에 비해 스텝들은 훨씬 더 어려울 것 같아요. 배우들은 어쨌든 공연이 길어지면 회당 페이도 받으니까요. 그런데 연출이나 작가 등은 작품 건 당으로, 한 작품 하고 연출료를 얼마 받는 식이기 때문에 차이가 나더라고요.
Q. 이 업계에서의 나만의 유니크함이 있다면
유니크함이 있다면 캐릭터적으로는 아니고, 노래일 것 같아요.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아닌, 정말 할 사람이 없을 정도로 어려운 노래를 가진 역할들이 많이 들어와요. 어쩔 수 없죠. 거기에 희소성이 있다고 보면 틀린 얘긴 아니고요. <오첨뮤>를 하면서 또 하나의 무기를 가지게 되었다는 생각은 한 적 있어요. 그걸 하고 나서 폰시아를 했기 때문에 조금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Q. 최근 인스타그램에 올린 과거 사진이 화제(?)가 되었는데, 이영미의 이십 대는 어땠는지
제가 대학교 때 미시족 같단 얘기 많이 들었거든요. [주: Missy 족, 외모나 옷차림이 처녀처럼 젊고 세련된 기혼 여성을 일컫는 당시 신조어] 굉장히 성숙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다녔죠. 그때 당시 화장을 한껏 할 때고, 당시 이런 (갈매기) 눈썹과 진한 아이라인, 두껍게 그리는 입술 등등의 화장법이 유행했었어요. 사실 그 사진은 저보다 더 어린 두 친구와 셋이 찍은 사진이었어요. 다들 얼마나 나이가 들어 보였는지 몰라요. (웃음)
어릴 때 ‘살 날이 까마득히 남았는데 어떡하지’ 같은 생각은 못 했는데, 이십 대가 제일 길긴 길었어요. 아직 아무것도 못 찾고 뭐가 될지 모르는 시기였어서 너무 지루하고 깜깜했죠. 사실 그때 기억이 잘 안 나요. 제 별명이 ‘과거가 없는 여자’에요. 기억을 못 해서. 친구가 “너 저 영화 예전에 나랑 봤잖아,” 하면 “내가? 저 영화를 봤다고? 그것도 너랑?” 이런 식이죠. 그렇다고 계획적이거나 미래 지향적인 것도 아니고, 현재만 살아요. (웃음)
Q. 앞으로 하고 싶으신 배역이나, 올라왔으면 하는 작품은
(웃음) 없어요. 다만 전에 말했듯이, 창녀 아니면 공주. 창녀 엄마, 공주 엄마. 못된 애, 착한 애. 늙은 애, 안 늙은 애. 그런 작품 말고 여성 캐릭터가 여러 명 나오고 남자 캐릭터는 등장하지 않는 그런 극을 한 번 같이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베르나르다 알바> 공연하고 있을 때는 꼭 해봐야지 했는데, 요즘은 집에서 매일 아이와 장난감 조립하고, 공룡 만들고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생각이 좀 희미해졌어요. 지금은 그저 이 시절을 즐기고 싶은 생각도 좀 있어요.
Q. 이영미에게 육아란
사람들은 제가 아기를 낳아도 데면데면할 줄 알았대요. 아무도 이런 모습일 거라고 예상을 못 해서 저희 엄마조차도 놀랐고 피붙이들도 “진짜 언니가 그럴 줄은 몰랐다” 그래요.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은 어이없어 하고요. (웃음) 주위에서 자기 아이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으로 제가 손꼽힌대요. 제가 아이를 좀 늦게 낳아서 더 그런 것도 있어요. 어렸을 땐, 만약 아들을 낳으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집안일을 시키고, 딸을 낳으면 하나도 안 시킬 거라는 우스갯소리를 했었는데 생각보다 제 아들이 너무 귀해서 제가 하녀더라고요. (큰 웃음) 친구에게 “이번 작품에서 내 배역이 하녀야,” 했더니 친구가 “왜, 우린 원래 하녀잖아” 이랬어요. (웃음)
에고가 강한 사람이 자기 아이를 그렇게 좋아한대요. 또 다른 자아인 거죠. 그걸 보는 재미가 되게 크고요. 각자 자기 어린 시절은 잘 기억하지 못하잖아요. 그런데 아이를 통해서 세상을 보는 게 또 하나의 기쁨이더라고요.
어떤 사람들은 이걸 안타까워하기도 해요. 훌륭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집에서 아이를 키우느라 일을 쉬는 것. 그런데 개인적으로 보면 그것 또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제가 작품을 많이 한 건 아닌데, 그렇다고 또 쉬지도 않았어요. 지난 한 2년은 미안한 마음이 많았고요. 아이는 분리불안이 없는데 제가 분리불안이 있다니까요. 내가 모르는 하루를 살고 있고, 저녁 시간에 저는 나와서 일할 때 ‘걔는 할머니랑 뭐하고 있을까,’ 그러면서. 아이는 훅훅 커버려요. 벌써 다섯 살이고, 내년 한 해만 제가 아이 옆에 있어줘도 여섯 살이 된단 말이에요. 어떻게 보면 아들이 ‘애’가 되기 전 마지막으로 ‘애기’인 시기라 함께 보내고 싶어요.
Q. 이영미의 원동력은
어릴 때 공부를 열심히 했던 원동력은 있었어요. 가난해서 제가 인정받을 길이 그거밖에 없었기에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공부가) 딱히 어렵지도 않았어요. (웃음) 지금은 그냥 살기 위해서 (배우 일을) 해요. 생계를 유지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안 하고 있는 나는 죽을 것 같아서 하는 거고요. 그게 저를, 제 존재를 증명해주는 것이라 하는 거예요. 제가 살아야 되는 이유는 아이 때문에, 내가 살아야 얘도 산다는 생각을 많이 하니까요. [그렇다면 아이를 낳기 전에는?] 그때의 저는 그저 놀기 위해서 했어요. 너무 재밌어서. 사람들 좋아하고, 술도 좋아하고, 노래도 좋아하고, 춤추는 것도 좋아하고, 무대도 좋아하고, 다 좋아해서.
Q. 마지막으로, 인터뷰 소감은
저는 어렸을 땐 인터뷰가 너무 재미없었는데 언젠가부터 너무 재밌는 거예요. 누구랑 하든, 누군가가 저한테 질문을 물어보면 대답을 하면서 제가 새록새록 알아가는 게 있어요. 재밌었어요. 릴레이 인터뷰라고 하셨는데, 다음 타자로는 누가 좋을까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