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머릿속은 사서 없는 도서관과 같다. 수많은 생각과 관점, 이야기가 빼곡히 들어차 있지만, 그것을 꺼내어 분류하고 세상에 내보여 줄 길이 없다면 그저 먼지 쌓인 책장에 불과하다. 나 역시 그런 도서관을 가진 사람이었다. 디자이너로, 기획자로 살아가며 수없이 많은 생각의 조각들을 그러모았지만, 그것들은 정돈되지 못한 채 머릿속을 부유하다 이내 사라지곤 했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나에게는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선이 있고, 일을 풀어내는 나만의 방식이 있는데, 왜 세상은 나를 발견해주지 않는가. 그 답답함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깨달았다. 세상이 나를 잊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세상에 보여주는 법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가장 뛰어난 당신이 먼저 잊히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실력이라는 내용물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을 담아낼 단단한 그릇, 즉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나에게 브런치는 바로 그 ‘그릇’을 만드는 행위였다. 서랍 속에 잠들어 있던 문장들을 꺼내어 먼지를 털고, 흩어져 있던 생각의 조각들을 그러모아 하나의 맥락으로 꿰어내는 일. ‘글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나는 비로소 나의 생각에 이름을 붙여주고, 나의 관점에 형태를 부여하게 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무형의 나를 유형의 존재로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나만의 언어를 갖게 된다는 것은, 내면의 도서관에 작은 창문을 내는 일과 같았다. 그 창문으로 조심스럽게 내보낸 문장들이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기 시작했을 때, 나는 비로소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 나의 글은 더 이상 나만의 독백이 아니었고, 생각은 외로운 메아리가 아니었다. ‘De.fin’이라는 이름은, 'Mag De.'라는 매거진으로 세상의 서가 한편에 조용히 꽂히기 시작한 한 권의 책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엮어낸 문장들이 모여, ‘나를 증명하는 언어들’이라는 이름의 책 한 권이 되었다. 나의 가장 깊은 고민과 경험을 담아낸 그 책이 누군가의 서가 위에서 조용히 말을 건네고 있다는 사실은, 내게 하나의 분명한 증거가 되어주었다. 나의 생각이, 나의 글이, 누군가의 삶에 닿을 수 있다는 것. 서랍 속에서 잠자던 문장들이 누군가의 밤을 밝히는 작은 등불이 될 수도 있다는 믿음.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이유, 그리고 작가라는 꿈을 꾸는 이유는 브런치를 통해서 명확해지고 있다. 단순히 또 한 권의 책을 내기 위함이 아닌, 흩어지는 생각들을 그러모아 세상의 서가 위에 단단한 문장을 쌓아 올리는 일. 그것은 잊히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가닿는 기쁨을 알게 된 자의 소명 같은 것이다.
내 안의 도서관에 불을 밝히고, 그 창문으로 세상과 끊임없이 말을 건네는 일.
나는 그 일을 계속해나가고 싶다.